소설리스트

〈 118화 〉 인터루드.(1) (118/173)

〈 118화 〉 인터루드.(1)

* * *

“아델 슈나이더. 아니, 카마인 진이라고 해야 하나?”

“꽤나 오래 숨겨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랬지. 그 말을 들으니 순순히 체포당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여기까지 와서 붙잡힐 수는 없거든.”

아델의 눈에 무게감이 실렸다.

그의 다리 또한 언제든지 진각(?)을 밟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 잔뜩 힘이 들어간 모양새였다.

“경계를 풀어라, 불사조. 난 너와 싸움질이나 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 ‘아델’이 아닌, ‘카마인’이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의 너에겐 흥미가 동하지 않아.”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나?”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겠지. 하지만, 너를 상대로 이기는 게 무의미하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이젠 아무런 가치도 없는 네 녀석을 잡자고 그렇게 큰 부담이 되는 짓 따위를 할 이유도 없지.”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날 찾아왔는지부터 설명해라.”

“이니셜 No.7 에버라스팅, ‘카마인 진’의 수배령이 해제되었음을 알린다. 넌, 오늘부로 자유다.”

“말장난에 불과하군. 난 이제 카마인 진이 아니라, 아델 슈나이더니까.”

카마인이자 아델이었던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불사조 자체에 대한 수배령의 해제가 아니라는 것을 뜻함을.

변방의 이름 모를 소년 정도야 얼마든지 없앨 힘을 지닌 게 코스모스였으니까.

“한 가지 계약을 이행해준다면, 아델 슈나이더의 자유 또한 약속해주마.”

“사양하지. 어차피 조금 전의 수배령 해제만 해도 난 충분한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 조용히 지낸 것을 생각하면 말이야.”

“듣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질 텐데. 정호경에 관한 이야기니까.”

아델 아니, 카마인은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전대 천마이자, 막역한 절친이었던 그를 살해했던 게 바로 본인이었으니 말이다.

따라서, 그것은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이 되어서도 카마인에게 있어 금기나 다름없었다.

그를 천마로 만든 것 또한 자신이었기에.

“그 녀석의 이름을 함부로 떠들어 대지 마라… 난 너희가 생각하는 만큼 자비롭지는 않으니까.”

“그 녀석이 살아있다는 후문이 돌고 있다. 혹시 짐작 가는 바가 있나?”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지천을 불사르는 열기가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물건은 이미 재가 되어 부산물조차 남기지 않고 있었고, 쇠붙이들은 완전히 녹아내려 제대로 그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없었다.

“정호경은 내 손으로 직접 죽였다. 물론 치기 어린 젊은 시절이었다곤 하지만, 그때라고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아둔하지 않았다.”

사내는 아직도 불사조가 이런 힘을 유지하고 있었을 거라곤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이빨 빠진 변방의 호랑이 정도라고만 여기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세간에도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렇게 ‘알려진 것’일 뿐.

애초에 윤회를 거듭하는 그에게 노쇠함이란 존재할 수가 없었다.

“불길을 거둘 생각은 없는 듯하니, 마지막 소식만 전하고 사라져 주마. 정호경은 분명히 네가 죽인 게 맞다. 누군가에 의해 되살아난 거지. ‘꿈 해방자’라는 이름을 기억해라. 그게 사건의 실마리가 될 테니.”

그 순간, 푸른 빛의 기둥이 바닥에서 치솟아 올라, 시선에 있던 모든 것들을 도려냈다.

불사조가 노리고 있던 그는 가까스로 범위에서 벗어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어차피 계약을 이행하고 말고는 너의 선택이니, 좋을 대로 하도록.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녀석의 생존 정보를 입수했고, 그에 따른 작전을 진행해나가겠지. 선수를 빼앗기기 싫다면… 서둘러야 할 거다.”

그는 자신이 할 말만 남긴 채,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남은 것은 아델과 불길에 색과 형체를 빼앗긴 가루 더미뿐이었다.

* * *

정호경이 살아있다니,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노만이 아니었다.

의심 또한 자리를 틀기 시작했다.

정호경의 죽음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내 손으로 목숨을 거뒀고, 숨이 멎은 것 또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 했었으니까.

그러니, 굳이 정호경이 살아있다고 가정한다면, 좀 전의 녀석 말마따나 되살아났을 가능성이 훨씬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도 뭔가 이상했다.

천마의 본질이나 다름없는 계승형 사상력, 천극천체(????)가 뽑혀져 나간 정호경을 되살려 보았자 아무런 득도 되지 않는데, 그를 살려낼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애초에 살려내서 얻을 수 있는 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정호경의 묘지는 나 이외엔 아무도 모르는 위치에 있는데.

평범하게 납득하고 넘어가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나 많았다.

…우선, 정호경의 무덤을 찾아가 보면 답을 알 수 있겠지.

그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으리라.

* * *

조만간 진조를 상대하러 떠나야 한다는 것을 눈치챈 세레나는 더욱더 나에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그간 감옥에 갇혀있던 세월이 하루 이틀도 아니었으니, 외로움에 시달렸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교수인데, 조금은 자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세레나와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짓궂은 장난 정도라고만 생각되기도 하고.

자꾸 피해 다니면 깨물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극악무도한 협박을 듣기는 했으나, 설마 그러려나 싶어 무시했다.

만약 진짜 물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 이빨에 물렸다간 알뜰살뜰하게 뼈만 발라져 나올 텐데.

나름대로 굉장히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던 와중,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던 프리실라가 가까이 다가왔다.

“작전은 예정된 수순대로 잘 돼 가는 것 같아?”

“그럭저럭. 아직 확실하게 답은 못 주겠어. 에스메랄다님은 에스메랄다님대로 바쁜 일이 있고, 세실리아와는 이견을 조율하는 중이라. 그나저나, 프리실라, 너 요즘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인다?”

“조금 자신감이 생겼거든. 이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자신감?”

“뭐, 최근엔 연습에만 매진하는 것 같더니, 감을 찾은 모양이네.”

“응, 분명 이번 작전에서 성과를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프리실라가 가슴을 펴 보이며 말했다.

맨날 우울해하는 모습만 보다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걸 보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근데, 대체 얼마나 많이 늘었길래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걸까.

오랜만에 마침 프리실라의 실력 점검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물론, 내가 점검할 수준은 이미 한참 지났겠지만.

“그럼, 한 번 확인해볼까? 얼마나 성장했는지.”

“아냐, 이런 건 나중에 직접 보고 놀라야 된다구.”

“그럼 말고.”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체했지만, 사실은 조금 아쉬웠다.

훈련장을 오가면서 얼핏 봤을 땐 큰 차이를 못 느꼈었거든.

“그리고… 신경 써줘서 고마워.”

“갑자기 왜?”

“그냥, 받은 게 많으니까. 총도 그렇고, 맞춤 제작한 탄환도 그렇고. 둘 다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운 건데, 나 쓰라고 준 거잖아.”

“맞아, 총은 손에 잘 맞는 것 같아?”

“응, 이제 완전히 손에 익었어. 편하고 좋아.”

나중에 그 남아공 아재한테 감사 인사라도 따로 보내던가 해야겠네.

고맙게 잘 썼다고.

겸사겸사 정체불명의 하얀 돌에 대한 소식도 들으면 좋고.

“다행이네. 혹시 불편해하면 어쩌나 했는데.”

“네가 준 거니까, 맞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적응해서 썼을 거야. 딱히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확실히 프리실라는 아이나랑은 다른 매력이 있다.

아이나와 있을 때는 휘둘리는 쪽도, 키워지는 쪽도 주로 나였다면, 프리실라는 내가 가르쳐주는 맛이 있다고 해야 하나.

일단 반응도 좀 더 풋풋한 느낌이고.

기특한 마음에 이마에 입을 맞춰보려 했으나, 나와 프리실라는 애초에 키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았던 탓에, 내가 고개를 들어올려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만 연출됐다.

“칭찬은 이쪽으로 해줬으면 해.”

입술이 쪽 소리가 나며 맞닿았다.

흔히 생각하는 키스라기보다는, 뽀뽀에 더 가까운 기분.

이건 이것대로 느낌이 새롭네.

여태까진 혀를 얽지 않는 가벼운 입맞춤을 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신선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늘 하던, 사랑을 교환하고, 갈구하며, 확인하는 키스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신뢰하고 있으니까 더 그럴 수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린아이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최고로 야한 신체접촉이 뽀뽀인 것처럼 말이다.

물론, 요즘의 아이들은 다르다고 듣긴 했지만.

“좋네. 그렇게 할게. 근데, 아까부터 쳐다보고 있었잖아. 무슨 이야기라도 하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

“아, 맞아. 이걸 보여주려고 했었어.”

프리실라가 나에게 내민 것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만년필이었다.

촉은 이미 다 뭉개져 있었고, 색은 다 벗겨지다 못해 금속 본연의 빛바랜 색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갑자기 나에게 이런 물건을 왜 내미는 것인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MERCURY’라고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완전히 닳아빠진 각인은 너무나 희미해서, 처음엔 머큐리인지 아닌지조차 긴가민가했었지만, 머큐리사 특유의 로고가 그것이 맞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걸 왜 나한테 줘? 너무 옛날 물건이라 진조랑은 관련도 없어 보이는데.”

“뒤쪽을 열어봐.”

이걸 실물로 영접하게 될 줄이야.

007 시리즈에서 나온 만년필 총이잖아.

되게 갖고 싶은 물건이었는데.

“지금도 작동할까?”

“아니, 너무 오래돼서 안 할걸.”

“아쉽네. 이런 거 가지고 싶었는데.”

“아무튼, 너한테 이걸 보여준 데엔 다 이유가 있어. 이건, 내 오빠가 절대 빌려주지 않던 몇 개의 물건 중 하나였어. 그때 당시엔 단순히 비싸고 고장 나기 쉬운 만년필이다 보니까 남에게 빌려주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 이건 진짜 머큐리가 아니라, 임무를 수행하던 와중, 위급할 때 사용하라고 만든 정교한 모조품에 불과하지. 만약, 이걸 주운 사람이 진짜 머큐리로 착각해서, 머큐리 사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겠어?”

최악의 경우엔 힐다가 코스모스의 정보도 입수했을 가능성도 있겠지.

…생각보다 훨씬 치밀한 녀석들이었군.

한참 전부터 이걸 설계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니까.

“예상했던 것보다 복잡한 상황이네.”

“그래, 여러 셀럽이나 VIP 회원들에게 유별날 정도로 극진한 대우를 해주는 것도 처음부터 그러한 목적이었을 가능성을 의심해봐야겠지.”

이쯤 되니 아예 머큐리라는 회사 자체가 그러한 목적을 두고 설립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억측에 가까울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니, 의심하지 않으려 해도 할 수밖에 없잖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건 이사장님의 손을 빌리는 수밖엔 없을 것 같아.”

“그래야겠어. 도무지 우리 선에선 감당이 안 된다. 세실리아의 힘을 빌려도 마찬가지일 거야.”

“같이 가자. 내가 거들어 줄 테니까.”

마음은 든든해지네.

진작에 나를 한번 퇴짜놓았던 클로에가, 프리실라와 함께 간다고 갑자기 생각을 바꾸는 일 같은 건 없을 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은 가 봐야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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