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3화 〉그가 모르는 이야기. (53/173)



〈 53화 〉그가 모르는 이야기.

어제는 결국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그런 일을 겪고도 쉬이 잠들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한다.

단순히 내가 소심한 탓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강의실로 출발했다.

방안에 가만히 틀어박힌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괴롭다는  몰라서 그런  아니다.

그냥…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아이나를 다시 보기 껄끄러웠을 뿐이다.

강의실에는 이미 나를 제외한 모든 S클래스의 생도가 모여있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강의실이지만,  가지 변한 점이 있다.

원래 내가 앉던 자리 옆에, 아이나가 앉아 있다는 것.

“늦었네.”

아이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어제 그런 일이 있고도 이렇게 담담할 수 있다니.

참, 아이나스럽다.

“앉아.”

나는 주뼛거리며 아이나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강의가 시작됐다.

물론, 강의 내용은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이나의 옆모습이오,

들리는 것은 그녀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뿐이며,

맡을 수 있는 향기는 옆자리에서 나는 바닐라 베이스의 옅은 감귤 향밖에 없었다.

당연히 아이나도 내가 보내는 시선을 눈치채고 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신만을 바라보는데,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내 강의 시간은 허무하게 전부 지나갔다.

아니, 허무하진 않았다.

그녀로 가득했으니까.

강의가 끝난 지금의 강의실은, 정말 아이나만으로 가득하다.

다른 녀석들은 모두 강의실을 나갔고, 그녀와 나만이 강의실에 남아있었으니까.

내가 여전히 강의실에 남아있는 데에는 별 이유가 없었다.

그냥, 그래야만   같았다.

넋을 잃고 아이나만을 바라보던 중, 그녀가 내게 손을 내민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생각이야? 앉아 있으랬더니 진짜 계속 앉아만 있네. 오늘은 연습 안 할 거야?”

그래, 아이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우린, 서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을 참지 못한 그녀가― 아니,  경우에선 참지 못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으리라.

나의 어리숙함을 그녀가 용서해주었다고 하는 쪽이 옳을 것이다.

결국 아이나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나는 앉은 자리에서 발을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내민 손을 잡는다.

오늘 그녀의 손은, 왜인지 차갑지 않았다.

“너, 일 같은 거 거의 해본 적 없구나?”
“어떻게 알았어?”
“나보다 손결이 곱잖아.”

자연스레 눈길은 그녀의 손으로 향한다.

가늘고 길게 뻗어, 아름다운 손 모양을 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았을 땐 아름다운 손이라고 하긴 어렵다.

여기저기에 흉터도 보이고, 굳은살도 있으니까.

그에 반해, 나의 손은 부드럽고 깨끗하다.

뭔가 쪽팔리네.

“그러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그랬는데, 너도 고생 좀 하자.”
“그거 완전 틀딱 같은 발언인데.”
“틀딱이 뭐야?”

여기엔 틀딱이라는 용어가 없나 보네.

그럼 내가 유행의 선두주자가 돼야겠다.

“틀니 딱딱거리는 노인네 같….”

시야가 뒤집힌다.

지면에 닿아있던 것은 발이 아닌, 등으로 변한다.

얼얼함이 전해져 온다.

“뭐라고?”
“아무것도 아냐….”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자, 아이나가 내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준다.

그 순간, 아이나의 눈길이 어디론가 향했다.

강의실 밖의 창문 쪽이었다.

나 또한 고개를 돌려 그녀가 바라보는 곳을 응시했다.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지나갔던 거 같다.

뭐지?

“누가 있었어?”
“…아무것도 아냐. 가자.”

아이나는 나를 이끌고 훈련장으로 향한다.

 별것 없는 일상에서도, 달라진 것은 있었다.

바로 그녀와의 거리.

예로부터 아이나는 타인과 2보 이상의 거리를 항상 유지했었다.

그것이 누구든 말이다.

헌데, 지금 그녀와 나의 거리는, 대략 반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그녀와 나의 거리는 이렇게 가깝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상황에 적응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왜 자꾸 뒤떨어져? 빨리 안 오고.”
“어색해서.”
“헛소리하지 말고 오기나 해.”

쏘아붙이는 듯한 말투였지만, 아이나의 행동만은 솔직했다.

그녀도 느려진 내 걸음걸이에 맞춰 걷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보니 그녀도 귀여운 면이 있었다.

내가 빨리 걷고자 하면 그녀도 잰걸음으로 걷기 시작하고, 내가 느긋하게 걸을 때면 그녀도 나지막한 걸음으로 걷는 게, 좋아하는 사람이 보였다 하면 냅다 쫓아가는 시작하는 아이 같았다.

그렇게, 말없이 이뤄지는 유치한 실랑이 끝에 우리는 훈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느릿한 걸음 탓에 평소보다 조금 늦게 훈련장에 도착하긴 했지만.

“자, 마나글레이브를 작동시켜봐. 자세 잡고.”
“응.”
“그래도 이제 기본은 다 하니까, 나랑 직접 대전을 하면서 실전 사용에 감을 익히도록 하자.”
“아직 중급 단계에 있는 기술들은 하나도 못쓰는데?”
“중급 단계의 기술들은 대부분 초급에서 회전이 더 많이 들어가거나, 축을 바꾼다든지 정도의 차이밖에 없으니까, 하다 보면 늘게 되어있어.”
“알겠어.”

연록색의 검신이 손잡이에서 생겨난다.

세컨드 어빌리티의 성장도 그럭저럭 순조롭네.

전에는 희미한 초록빛만 감돌던 것이, 이젠 온전한 연록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나는 카데르랑 시오레를 쓸 거야. 이 둘이 실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검사들의 유형이거든. 그럼, 시작할게.”

…!

대답할 새도 없이, 그녀의 찌르기가 날아들었다.

이게 시오레의 기술인가.

저번에도 말했던 이야기지만, 류진의 기본 자세는 방어에  유리하다.

포톤글레이브를 잡은 손을 조금만 아래로 향하게 하면, 자연스레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아이나인 만큼, 그렇게 깔끔하게 막아내지는 못했다.

검 끝의 궤도를 간신히 틀어낸 게 전부였으니.

포톤글레이브에 스친 옆구리가 쓰라리다.

비록 완벽하게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비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는 있다.

시오레는 막혔을  리스크가  기술들로 구성되어있으니까.

반격할 시간이 꽤 널널하다는 의미지.

앞으로 뛰어올라, 공중에서 아이나의 포톤글레이브를 튕겨낸다.

그리고, 땅에 착지하는 순간  번째 일격을 가했다.

나로서는 제법 민첩한 공격이었다고 생각했건만, 아이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 공격을 받아냈다.

역시 짬밥이라는  무시할  없네.

다음 일격을 준비하려는 사이, 곧바로 그녀가 내 측면으로 치고 들어왔다.

아까 전의 깊은 찌르기와 달리, 이번 공격은 얕은 베기로 들어온 덕에, 꽤 괜찮게 그 공격에 대처할  있었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시오레를 사용할 때와 같이 민첩하고 신속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중압감이 느껴지는 걸음으로 천천히 날 압박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엔 카데르인가.

대인전에 특화된 검술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 카데르는 상대하기 무척 어려웠다.

아이나가 카데르로 사용 검법을 바꾼 뒤, 나는 단 한 번의 공격도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간혹 그녀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상황도 있었지만,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공격 탓에 빈틈을 노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렇게 점점 수세에 몰리던 상황.

아이나의 첨예한 대각선 베기가 날아들었다.

처음에는 그 공격을 받아내려 했지만, 이내 그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대각선 베기는 쳐내려 하면 안 된다.

공격을 쳐내려 하면 더  피해를 받게 되니까.

이유는 간단하다.

 공격을 걷어내기 위해 왼팔로 마나글레이브를 들어 올리는 순간, 그녀는 포톤글레이브의 전원을 차단할 것이다.

일시적으로 검신이 사라져버렸으니, 공격을 쳐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남은  아이나가 포톤글레이브를 재작동시켜,   몸통을 베어 가르는 것뿐이겠지.

하는 수 없네.

나는 몸을 틀었다.

공격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취한 행동은 아니다.

그녀의 공격은 어떻게 피하려 해도 피할  없는, 완벽한 궤적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선택한 행동이었다.

오른팔이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

훈련실에서 느끼는 고통은 실제로 느끼는 고통보다 훨씬 덜하다곤 하지만, 그래도 고통스러운 건 틀림없으리라.

“잘했어. 판단력은 좋네.”

그녀가 보기에도 내 판단은 옳았던 것 같다.

아, 옳지는 않았으려나.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방금 같은 구도를 만들지 않는 것이니까.

어쨌건, 상황은 내게 매우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한쪽 팔이 없이는 회전 기술의 균형을 잡는 것도 어려워지기에, 류진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포톤글레이브가  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검이라곤 해도, 양손으로 쥐는 것만큼의 효율은 나오지 않는다.

여기선 패배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겠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남은 한쪽 팔을 들어 올렸다.

“졌어.”
“확실히 아직 미숙하긴 하네.”
“당연하지. 배운지 한 달도  지났는데,  수준에 맞출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내 실력의 3할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아, 그랬었지.

아이나는 못하는 게 없는, 완벽초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이겼다는 것도, 그런 그녀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도 나라니.

이해할 수 없네.

“그래서, 방금 같은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데?”
“방금 같은 상황은 4식, 코니드 검법의 기술 이외엔 대처할 방법이 없어.”
“코니드엔 저런 것도 대처할  있는 기술이 있는 거야?”
“응, 근데 이건 네 마나글레이브를 상대론 사용 못 하는 기술이야. 너도 포톤글레이브를 하나 들고  다음에 내가 했던 것처럼 공격해봐.”

나는 훈련장에 있는 포톤글레이브 하나 가지고 온 뒤, 아이나의 검격을 흉내 냈다.

아이나가 보기엔 어설프기 짝이 없는 궤적이었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모양새였다.

그리고, 아이나가 보여준 기술은, 눈 뜨고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다시 한번 보여줄게.”

포톤글레이브의 검신이, 꺾여있었다.

“다시 봐도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건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기술이라 나도 잘  쓰는 기술이긴 해.”
“그래서, 원리는 어떻게 되는데?”
“상대방의 포톤글레이브가 날아드는 타이밍에 잘 맞춰서 네 포톤글레이브를 작동시키면, 상대방의 검신을 꺾어버릴 수 있어. 단,  포톤글레이브의 출력이 상대방의 포톤글레이브 출력보다 높을 때만 가능하고, 상대방의 검신 정중앙에 정확하게 쏘아서 맞혀야만 하는 방법이라, 타이밍을 재기가 굉장히 어렵지.”

그러니까… 저스트 가드 같은 완전 고인물 테크닉이라는 거네.

“내가 쓸 필요는 없는 거지?”
“나중에는 써야겠지. 지금은  필요 없어.”
“그냥 안 배우면 안 되나? 꼭 나중에 배워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
“포톤글레이브야 출력이 고만고만하니까 ‘그냥 이런 기술도 있다’ 정도뿐이지만, 마나글레이브는 출력이 좋잖아. 실전성이 있는 기술이니, 무조건 익혀두는 게 좋지.”

이것은 아이나의 거짓말이었다.

해당 기술은 코니드에서도 이미 사장된 기술에 가까웠다.

이 기술을 사용하는 검법은, 오직 마나글레이브 검법뿐.

따라서, 그녀가 이 기술에 익숙지 않은 것은, 단순히 사용하기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익힌 적이 없어서였다.

그것이 반대로 그녀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증거이리라.

자신이 믿는  사람만을 위해, 고작 하룻밤 만에 이 어려운 기술을  정도 경지까지 끌어올린 것이었으니까.

또한, 그녀의 순애보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겠노라는 일념만으로, 아이나는 자신과는 전혀 연관도 없는 마나글레이브 검법을 밤새도록 연마해온 것이었으니까.

물론, 그것을 그녀가 믿고 있는 ‘그’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  마나글레이브  배울래.”
“빨리 안 할래?”

밤은 깊어져 가고, 둘의 사이도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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