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중간고사 대비 기간.(5)
여러분은 카미카쿠시(神隠し)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뭐, 일본에서만 사용되는 표현이니, 그 단어를 익히 들어본 사람은 별로 없지 싶다.
본래 이 단어는 어린 아이가 행방불명이나 실종을 당한 것을, 굳이 변고를 당했다는 직관적인 표현보다는, 신이 감췄다고 완곡하게 돌려 말하는 관용구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세계에는 카미카쿠시라는 단어에 다른 의미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본질적인 의미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 세계에서 카미카쿠시라는 말은, 텔레포테이션 기기를 이용하던 도중,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로 텔레포테이션에 실패하고, 실종되는 사례를 말하는 용어이다.
그 기원은 첫 텔레포테이션 실패를 본 일본의 어떤 학자가 ‘카미카쿠시를 당했다’며 소리를 지른 것에서 기원했다나 뭐라나.
아무튼, 이 텔레포테이션 기기 이용 중 드물게 경험하게 되는, 카미카쿠시의 확률은 8분의 1로, 결코 낮은 확률이 아니다.
12.5%라는 확률은 여러분들이 흔히 하는 가챠 게임의 가챠에 당첨될 확률보다 10배 이상 높으니 말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텔레포테이션 기기를 이용하는 것을 꺼려하는 게 정상이다.
카미카쿠시의 대상자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더욱이 높은 지위를 가진 인물이라면, 가진 걸 잃고 싶지 않아할 테니, 더더욱 텔레포테이션 기기를 이용하는 것을 꺼릴 것이고.
즉, 어떤 단체의 고위급 인사가 텔레포테이션 기기를 이용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카미카쿠시 따윈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대범하거나, 아니면 카미카쿠시의 위험성을 감내하고도 텔레포테이션 기기를 이용해야 할 만큼 급박한 위기가 닥쳤다는 소리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눈치챘을 것이다.
현재 이곳은 상공 75,000피트에 있는 그리폰 교도소.
이 그리폰 교도소에서, 누군가가 텔레포테이션 기기를 사용하여 트리니티 아카데미로 떠났다.
* * *
“다들 힘내자, 얘들아. 중간고사까지 3일 남았어.”
“그 말을 들으니 정말 정말 힘이 나는구나. 고맙다. 성연아. 3일 뒤가 중간고사라는 사실을 굳이 확인시켜줘서!”
…이것이 현재 S클래스의 분위기다.
지금까지도 중간고사가 목전이라고 말을 하긴 했다만, 이제 중간고사는 진짜 목전까지 다가왔다.
“자, 그럼 오늘의 마지막 매치가 남았구나. 아이나와 올리비아는 훈련실로 들어오도록.”
“네.”
“전 좀 쉬고 싶은데요.”
“이번 훈련이 끝나면 쉴 수 있다.”
빈센트의 완고한 대답에 올리비아는 툴툴거리며 훈련실로 들어갔다.
아이나는 군말 없이 빈센트의 말을 따랐지만, 자유로운 영혼이자, 귀찮음의 대가였던 올리비아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다 해서 올리비아에게 거부할 권리 따윈 없었지만.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미츠루 아이나, 올리비아 테이셰이라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훈련을 설정해주세요.]
[훈련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카운트 다운, 5, 4, 3, 2, 1, 0,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비구름으로 잔뜩 어두워진 훈련실 내부는, 그야말로 아이나의 독무대라고 볼 수 있었다.
굳이 그림자를 뽑아내지 않더라도 사방이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었으니까.
밝은 공간이라고 아이나가 그림자 지배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이 밝으면 아이나의 그림자 지배는 위력은 상당히 떨어진다.
하지만, 패널티가 있다면 당연히 어드밴티지도 있는 법.
반대로, 주변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아이나의 사상력은 당연히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아이나도 환경이 자신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일까, 평소처럼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이었음에도 묻어나는 자신감은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어 보였다.
웃긴 사실은, 올리비아는 그와 정 반대의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는 것이다.
약간의 미소가 감돌고는 있었으나, 스며 나오는 귀찮음의 기운은 누구나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만면해 있었다.
게다가, 그것은 단순히 표정과 기운만으로 나타나고 있던 것이 아니다.
몸을 그림자로 숨긴 채 빠르게 시가지 내부로 잠입하는, 자신 있어 보이는 아이나의 움직임은, 그저 막대사탕을 쪽쪽 빨며 밍기적밍기적 걸어갈 뿐인 올리비아와 무척이나 대비됐으니.
…잠깐. 올리비아의 복장이 변했다?
아까 잠시 건물 내부로 들어가던 이유가 옷을 갈아입으려고 그랬던 거였나.
평상복으로 교체해, 일반 시민인 척 위장하려고?
꽤 재밌는 전략이었다.
하긴, 선빵의 중요성은 빈센트가 몇 번이나 강조한데다, 올리비아는 기본적으로 귀찮은 것을 싫어할 뿐이지, 전투에 관한 감각 자체는 무척이나 뛰어난 생도니.
이렇게 되면 이번 전투는 다행히 시민들의 방해가 별로 없겠군.
알프레드가 참여한 훈련들은 죄다 홀로그램 시민들이 알프레드를 알아보고 알프레드에게 들러붙어 훈련을 귀찮게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아…!
올리비아는 일반 시민으로 위장하고 급습하려는게 아니고, 단순히 시민들의 방해를 받는 게 귀찮았을 뿐인가?
참, 여러모로 올리비아도 대단하네.
아무튼, 이번 훈련은 꽤 편하게 진행될 것 같다.
애초에 그림자로 몸을 숨기고 움직이는 아이나는 시민들에게 보일 리가 없었고, 구부정한 자세로 후드를 뒤집어쓴 데다, 마스크까지 착용한 올리비아에게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한 그 가슴밖에 없으니까.
“오, 둘이 마주쳤다. 과연 아이나는 올리비아를 알아볼까?”
“당연히 알아볼 것 같은데.”
“의외로 못 알아차릴지도 몰라.”
그 결과는, 생각보다 허무하게 판가름났다.
아이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올리비아에게 암기를 투척하기 시작했으니까.
“뭐야, 어떻게 알았대?”
“숨 쉬는 버릇, 걷는 습관, 마지막으로 그 커다란 젖통.”
“음…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아이나의 마지막 발언은 모두에게 제법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다들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으니.
뭐, 근데 틀린 말은 아니지.
올리비아의 저 커다란 흉부도 하나의 큰 개성이긴 하니까.
그래도 좀 너무하네.
가슴으로 사람을 판단하다니.
정말 바람직… 아니, 못됐다.
어찌됐든, 올리비아는 아무렇지 않게 아이나의 암기들을 피하거나 쳐냈다.
물론 올리비아가 이걸 아무렇지 않게 피했다고 아이나의 급소 추적을 저평가하면 섭하다.
아무리 신체 능력이 극도로 향상된 세계관이라지만, 급소 추적이 걸린 암기를 피하는 건 분명히 어려운 일이다.
그녀의 성미에 맞지 않아 자주 선택하는 방법은 아니었다지만, 그녀가 작정하고 수백 개의 암기만을 준비해왔던 어떤 날은, 거의 암기만을 사용해 알프레드를 제압한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건 아이나의 급소 추적이 미약한 사상력인 게 아니라, 올리비아의 신체 능력이 극도로 월등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급소 추적이 그다지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아이나는 그녀의 간판 사상력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자 지배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방에 흩뿌려진 바닥의 그림자에서 어둠의 창이 솟아올랐다.
그럼에도 올리비아는 신중하게 그 창들을 피하며, 천천히 아이나에게 접근했다.
이거, 올리비아가 살짝 화난 거 같은데?
평소 같았으면 손대중을 해가며 아이나의 공격을 몇 번 정도는 허용해 줬을 법도 한데, 지금은 단 한 번도 그 공격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역시, 아까의 그 발언 때문인가?
어쩌면 아이나는 올리비아의 본 실력을 보고 싶어서 도발한 것일지도 모른다.
현시점에서 올리비아가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눈치채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에 아이나도 포함됐으니.
올리비아가 아이나에게 완전히 접근한 순간, 올리비아의 주먹이 아이나에게 날아들었다.
아이나도 그 공격에 반응하여 그림자 장막을 펼치긴 했다지만, 올리비아의 진심이 담긴 주먹은 가까스로 펼쳐낸 그림자 장막을 꿰뚫고, 아이나의 복부에 닿았다.
와, 멀리도 날아가네.
진짜 아프겠는걸.
“오늘 올리비아 컨디션이 좀 좋아 보이는데?”
“그러게, 평소랑 움직임이 달라.”
그야 그렇겠지.
그녀가 진심을 내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
오늘 같은 날이 드문 거다.
공격에 성공한 올리비아는 제법 통쾌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고, 공격을 허용한 아이나는 무척이나 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 온 분함일까?
단순하게 공격을 허용했다는 점?
아니면, 자신 위에 있는 사람이 알프레드뿐이 아니었다는 점?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실력을 숨긴 올리비아의 기만 행위?
뭐가 됐든 상관없다.
그것을 계기로 아이나가 한층 성장할 수만 있다면, 내겐 다 좋은 이야기다.
그래도 조금은 의외다.
표정 관리에 실패한 아이나는 보기 드무니까.
물론 아이나는 얼른 분하다는 얼굴을 지워내고, 평소와 같이 차가운 얼굴로 돌아갔다.
냉정을 되찾은 아이나의 그림자는 다시 올리비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겠다는 듯, 날카롭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올리비아도 두 번 정도의 공격은 허용하고 말았다.
올리비아의 저주의 손길이 상대방의 능력을 저하시킨다곤 하나, 아직 그녀의 사상력은 완전하게 성장하지 못했기에, 사상력의 출력까지 저하시키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사상력만으로 승부를 보고 있는 아이나에게, 중첩을 걸지 못한 저주의 손길은 사실상 큰 의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올리비아가 진심을 발휘하고 있다 한들, 사방에서 밀려드는 그림자의 폭풍에서 벗어나는 건 쉬운 게 아니니 말이다.
올리비아는 돌연 입에 물고 있던 막대사탕을 퉷하고 뱉어냈다.
아무래도 자신과 아이나의 격차를 제대로 보여주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 순간 처음으로 올리비아의 눈에 진심이 깃드는 것을 보았다.
아, 엄밀히 말하면 처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는 게임 할 때만큼은 항상 진심이었으니까.
그러니, 일상에서 진심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해야 맞겠군.
아무튼, 올리비아는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한 뒤, 마치 총탄과 같은 속도로 아이나를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몇몇의 그림자가 달려드는 올리비아의 사지에 상처를 내긴 했다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 투지를 불태우는 모양인지, 속력은 점점 올라가기만 했다.
올리비아와 아이나의 거리가 대략 5보쯤 남은 상황, 돌연 올리비아가 바닥에서 뛰어올랐다.
이번 행동은 아이나의 예상엔 없던 모양인지, 그림자가 올리비아의 움직임을 쫓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올리비아는 무사히 아이나의 무너진 배후에 착지한다.
올리비아의 마지막 일격이 아이나에게로 향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아이나가 패배할 것이라고 느꼈다.
나조차도 그랬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이나가 그 짧은 일순(一瞬)의 시간에, 놀라운 기지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아이나가 선보인 기지는, 공격을 회피하거나, 막아 내려 하는 것이 아닌, 역으로 올리비아를 공격한다는 선택이었다.
확실히 이제와서 저 공격을 방어하는 것은 늦다.
지금이라도 발생 속도가 빠른 그림자의 쐐기로 역습을 노리는 것이 백번 낫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이나의 그림자, 올리비아의 발끝.
둘이 서로에게로 교차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 기지 덕에, 아이나는 확정되었던 패배를 뒤집어 놓을 수 있었다.
[승자 없음, 무승부, 훈련이 종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