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화 〉돌개바람의 눈. (3) (21/173)



〈 21화 〉돌개바람의 눈. (3)

삼각뿔 모양의 트리니티 아카데미에는 4개의 문이 있다.

생도들의 훈련 관련 설비들이 가득한 동문.

편의시설이 즐비한, 흔히 생각하는 번화가의 모습을 한 서문.

정문, 남문.

마지막으로, 대광장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북문.

대광장이 있다면 무언가 행사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대부분의 행사는 강당에서 이뤄지기에, 북문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굳이 북문의 특징을 꼽는다면, 전반적으로 미래도시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트리니티 아카데미 내에서 유일하게 자연적인 느낌이 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자연적이라고 해봤자 나무와풀이 존재하며, 몇 안 되는 소동물들이 서식한다는 말고는 없지만.

이는 북문의 대광장을 생태공원처럼 꾸며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공간이라 그럴 뿐이다.

평온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하는 생도들이 이따금 북문에 들린다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북문은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공간은 아니다.

그래서, 후드를 뒤집어쓴 채 돌무더기에 앉아있는, 수상한 인물은 쉽게 눈에 튄다.

“야, 저거다. 저거.”
“그러네.”

제이드가 손가락으로 후드를 푹 눌러쓴 누군가를 가리켰다.

“어떻게 할까?”
“기다려 봐.”

제임스가 등에 멘 기타 가방에서 일렉기타를 꺼내, 그것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디스토션이 걸려 거칠고 강렬해진 기타 소리가 북문 광장에 메아리친다.

그리고, 제임스의 퍼스트 어빌리티, ‘현혹의 울림’을 발동한다.

현혹의 울림은 자신이 낸 소리를 들은 사람에게 환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생명체에 유효한 소리라는 매개를 사용하는 사상력인 만큼 여럿의 잡졸을 상대하거나, 자신을 처음 상대하는 적에게 한해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사상력의 소모가 매우적어, 가성비면에선 S클래스 최강이라고 할  있다.

“이번엔 뭘 보여주려고?”
“적당히 교수처럼 생긴 사람을 보여 줘보게.”

후드를 눌러쓴 자는 허공에다 대고 뭐라고 떠들기 시작한다.

제이드와 제임스는 그 상황을 유심히 지켜본다.

그가 혼잣말을 시작한 지 대략 5분경이 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냅다 주먹을 휘두른다.

“이걸로 확인된 거나 다름없네.”
“어떻게 할까. 먼저 공격해 볼까?”
“아직은, 보니까 신체 강화계 사상력인 건 틀림없는 거 같다.”
“그럼 우리가 불리하지 않나?”
“불리하지. 너한테만.”

제이드가  말에 반박하려는 순간, 제임스가 세컨드 어빌리티, 영혼 분리를 사용한다.

제임스는 시리얼 카드의 주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 중 하나다.

세컨드 어빌리티인 영혼 분리는 사용하는 즉시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전격 방출의 순간에도 고통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뭐,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뿐이지, 전격의 피해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니, 홀로 남은 육체는 몸에 흐르는 전기로 인해 경련하고 있었지만.

영혼 상태의 제임스는 허공에 주먹다짐을 하는 그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가 전투 중인 허상 속 인물의 공격을 그대로 모방한다.

놈에게 실제로 전투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환각 속에서야그는 이 허구의 피사체를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영혼 상태의 제임스에게 물리적인 피해는 일체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영혼 분리 상태에서 입히는 공격은, 물리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영혼에 직접적인 피해를 가하는 공격이기 때문에, 상대에 따라 더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렇게 충분히 피해를 누적시켰다고 생각할 즈음, 제임스는 영혼 분리를 해제시킨다.

제임스가 영혼 분리 상태일 동안은 시리얼 카드의 주박에서 벗어난다곤 하나, 실제 제임스의 육체는 시리얼 카드에 의해 지속적으로 감전당하고 있는 상황인 탓에, 영혼 분리를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감전으로 인해 그의 몸에서 올라온 화상 자국들이 사상력을 남용하지 말라고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아, 너무 오래 썼다. 나머진 네가 알아서 처리 좀 해줘.”

그는 ‘해줘’라는 말을 강조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진짜 좆도 하는 거 없었으면서 나한테 짬처리  시키네.”
“닥치고, 해줘.”

그렇게 말하곤, 제임스는 퍼스트 어빌리티, 현혹의 울림도 해제한다.

빌런은 움찔하고 움직임을 멈춘다.

자신의 상대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 탓일까.

제이드는 당황해하고 있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거리는 대략  걸음 정도 남은 상황.

한걸음, 한걸음, 신중하게 다가간다.

이제,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제이드의 유효 사거리 내였다.

마지막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제이드의 몸이 튕겨 나오듯 멀리 날아간다.

제임스는 그 상황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주먹의 풍압만으로 건장한 남성을 날려 버릴 정도라니.

영혼 분리로 싸우는 시점에서야 물리적 충격은 전부 무시할 수 있었으니, 그가 얼마나 강한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지만, 저걸 보니 왜 박성진이 그가 근접전에 강하다고  지  것 같았다.

만약 공격을 허용했다면, 뼈가 가루가 될 정도의 위력이었으니까.

다행히 제이드는 무사했다.

주먹에 직격당하진 않은 모양이다.

자만감에 가득  있던 제이드도 그 공격에 위협을 느낀 것인지, 진중한 얼굴로 자세를 고쳐잡는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먼저 움직인  빌런이었다.

제임스가 영혼 분리 상태에서 입힌 피해는 꽤 아프게 다가왔을 터인데, 놈은 잘만 몸을 움직인다.

놈의 주먹이 곧바로 제이드에게 쇄도한다.

제이드는 거리를 유지하며 그것을 능숙하게 회피한다.

때리는 폼을 보아하니, 전문적으로 격투기를 배우지는 않은 걸로 보였다.

하지만, 현격한 무력의 차이는 그것을 상쇄시키고도 남았다.

그의 주먹이 나무에 처박히면 나무가 쪼개지고, 그의 발이 닿는 바닥의 블럭들은 모두 부서져서 파편 조각이 되는데, 어찌 쉽게 덤비겠는가.

일순, 제임스가 눈을 질끈 감는다.

빌런이 순간적으로 제이드에게 달려드는 장면을  땐, 제임스는 이대로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이드는 그것에 반응하여 무적으로 받아내고, 카운터를 먹이는 데까지 성공했다.

‘반응 속도 하나는 미쳤네.’

역으로  방 얻어맞은 놈은 공세를 거두고 제이드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제이드는 그것을 긍정적인 신호라고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나락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다행이라 생각할  없는 것이다.

제이드는 이번 카운터를 나름 회심의 일격이라고 시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격으로 상대를 쓰러트리지 못했다.

제이드의 사상력인 무적은 시리얼 카드의 반동이 무척이나 큰 사상력이었기에, 여러 번 사용하는 데 무리가 있었다.

즉, 남은 두세 번의 횟수로 상대를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반드시 패배한다.

게다가 방금 전의 카운터는 제이드의 모든 패를 공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공격이었다.

제임스와 제이드 쪽의 패색이 점점 짙어져만 갔다.

제이드는 좋지 않은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려댔다.

그러자, 제이드의 머릿속에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이건 무조건 성공하는 방법이다.’

제이드의 얼굴에 화색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제임스는 절망해있다.

저 전투에 끼어들기엔 제임스의 격투 기술은 형편없었기에, 제임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제임스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다시 현혹의 울림을 발동한다.

‘시야라도 흐릿하게 만들면 제이드가 한 번이라도 공격할 틈이 생기겠지’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제임스는 아이나나 알프레드와 다르게 고통을 감내하는  그렇게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그가 보여줄 수 있는 환각의 스케일이 조금만 더 컸더라면, 아니, 하다못해 시야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방해했다면 제이드가 빌런을 공격하는 데 성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성하지 못한 몸에 가해지는 시리얼 카드의 전격을 참지 못한 제임스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현혹의 울림을 해제해버리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제임스의 시도는 제이드와 빌런의 사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을 뿐이다.

‘박성진이라면 방법을 알지도 모른다.’

박성진의 도움을 받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는 선택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이상 그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야, 이걸 어떻게 이기라고 여기다 보낸 거냐.”
“어차피 걔 신체 강화계 싱글 어빌리티야. 다른 사상력 없다고.  피하고 잘 때리면 이겨.”
“씨발, 그게 말이나 쉽지. 저건 대만 맞으면 뒤진다고.”
“제이드는 이미 이길 방법을 알고 있을 거다. 잘 생각해봐. 그 새끼가  하고 있는지.”

박성진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S클래스에서 멍청함으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멍청한 제이드가  답을 알고 있다?

어이가 없었다.

“제이드가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적어도 내가  미래에선.”
“야… 그딴 식으로 무책임하게 대답하지마. 이거 실패하면 우린 진짜 뒤질 수도 있어.”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인데.”
“너는 학장님이라는 뒷배도 있으면서 뭐가 뒤질 수도 있다는 건데?”
“지금 학장실에 아무도 없어.”
“됐고, 제이드의 행동에 주목하라는 거지?”
“어.”
“좆같네… 끊는다.”

제임스는 제이드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본다.

자세히 보니,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왜 나한테 싸우라고 드는 거지? 내가 몸 쓰는 거에 쥐약인 걸 아는 놈이?’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분명히 제이드의 사상력은 무적이다.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도 받아낼 수 있는 사상력인데, 그는 현재 사상력을  번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사용 가능한 횟수가  번 남지 않아 그런 것이라 쳐도,  좋은 사상력을  번밖에 사용하지 않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굳이 저 공격을 회피하고 있을까.

그리고 왜 나에게 싸우길 요구하고 있는 걸까.

왜지? 어째서지?

좀처럼 감을 잡을  없었다.

빌런의 동작은 크고 묵직했기에, 딱히 무적으로 받아내지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무적으로 받아내고 카운터를 계속 먹이면 되는 것 아닌가?

사상력을 사용할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곤 해도, 아까의 카운터는 분명히  타격이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굳이 나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알았다.’

왜 사상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지, 어째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아차리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임스는 빌런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놈의 등을 걷어찬다.

빌런이 분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 분노는 ‘지금까지 환각으로 성가시게 한 것이 네놈이었냐’는 의미였으리라.

어차피 제임스도 피해를 주고자 그를 공격한 것은 아니었다.

빈센트 정도로 강하다면 모를까, 자신의 미력한 신체로는 사상력으로 강화된 신체에 위력적인 타격을 주지 못할 거란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제임스가 그를 공격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임스가 노린 것이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놈의 어깨를 관찰했다.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제임스를 향해 주먹이 날아올 것이라는 표시였다.

‘지금.’

제임스가 서드 어빌리티를 발동한다.

그리고, 제임스와 제이드의 위치가 바뀐다.

“씨발련아. 눈치채는 거 더럽게 늦네.”
“미안하다.”

제이드의 계획은 이러했다.

‘내게는 무적이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나는 쉽게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적이 없는 제임스가 놈을 공격한다면, 놈은 주저 없이 전력으로 제임스를 공격하려 들겠지. 달려드는 순간, 제임스의 서드 어빌리티, 위치 교대를 발동한다. 그리고 묵사발이 날  알았던 제임스 대신, 내가 무적을 발동해 놈의 공격을 받아낸다. 놈은 당연히 당황할 테고,   놓은 면상에, 주먹을 한 대 먹여준다.’

오로지 제임스가 자신의 의도를 눈치채줄 것이란 믿음에서 기원한, 위험한 도박수였다.

그리고  계획은 훌륭하게 성공했다.

놈의 주먹은 제임스가 아닌, 무적을 발동한 제이드를 강타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빌런은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크게 치켜뜬다.

제이드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빌런의 아래턱에 어퍼컷을 먹인다.

‘아무리 강화된 신체라곤 하나, 뇌에 가해지는 충격을 견딜 수는 없겠지.’

놈이 눈알을 까뒤집고 쓰러진다.

“진짜 좆같이 힘드네.”
“박성진 줘패고 싶다. 이딴  시킬 줄은 몰랐네. 진짜.”
“일단 채널에 접속해서 보고나 하자.”

채널에 접속해보니, 대부분이 자신들의 상황을 정리한 거 같았다.

정작 오더를 내렸던 박성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은 조금 의아했지만.

“야, 솔직히 우리가 제일 빡센 거 맡았을 거 같지 않냐?”
“올리비아 목소리  들었냐. 걔네도 만만치 않았을  같은데.”

제임스와 제이드는 예상하지 못했다.

네 개의  중에서 자신들이 가장 멀쩡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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