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돌개바람의 눈. (2)
“통신은 트아카 앱이랑 연동된 시리얼 카드의 내장 통신으로 한다. 내 채널로 접속해줘. 비밀번호는 37580. 무슨 일 있으면 말해.”
다들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각자 위치로.”
“그리하지.”
“분부대로 합죠. 샤먼킹 나으리.”
“알았어.”
모두가 조를 편성해 뿔뿔이 흩어진다.
부디 다들 잘해줬으면 좋겠는데.
** *
콧수염이 긴 놈을 찾아라.
쉽지만, 역설적으로 어렵기도 하다.
대부분이 어린 생도뿐인 트리니티 아카데미에서 콧수염이 긴 사람은 매우 눈에 띌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휴일의 서문에서 특정한 사람 한 명을 찾는 게 쉬울 리는 없다.
그래서 쉽지만, 어렵다.
“그래서, 찾았어?”
“아니, 안 보이는데.”
올리비아와 알프레드는 거리를 샅샅이 뒤진다.
하지만 빌어먹을 콧수염 자식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무의미하게 거리를 배회하는 시간이 지속되자, 올리비아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렇게 올리비아가 박성진의 채널에 접속하기 직전, 알프레드가 올리비아를 부른다.
“올리비아, 저 사람 아냐?”
“어디, 어디.”
“저쪽 말이야.”
“맞는 거 같은데? 박성진 말이 맞네. 저 푸 만추 수염 좀 봐.”
올리비아는 그의 얼굴이 재밌다는 듯, 꺄르륵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근데 만약 우리가 사람을 잘못 본 거면 어떻게 하지?”
“그러게. 박성진한테 물어보자.”
올리비아는 얼리어답터답게 알프레드보다 훨씬 빠르게 박성진의 채널에 접속한다.
“야, 박성진. 네가 말하는 사람 찾은 거 같거든? 근데 이 사람이 네가 말한 그놈인지 확실하게 알아차릴 만한 방법 없어?”
“한번 미행해봐. 카페 드 피에르로 가면 그놈이 맞아.”
“접수 완료.”
올리비아는 볼일이 끝났다는 양, 곧바로 통신을 끊는다.
그런무심한 태도를, 알프레드는 오래 봐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휘휘 젓는다.
“박성진이 뭐래?”
“미행하래. 카페 드 피에르로 가면 그놈이 맞대.”
“쫓아가자.”
올리비아와 알프레드는 미행이 걸리지 않도록, 신중하게 콧수염을 따라간다.
직진, 왼쪽으로 꺾고, 다시 직진, 이번에는 오른쪽.
길을 지나쳐올수록 알프레드와 올리비아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맞나 본데.”
“그러게, 이쪽 길은 카페 드 피에르로 가는 길이니까.”
“먼저 공격하…”
알프레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올리비아는 먼저 달려 나간다.
그리고, 그 콧수염의 머리통에 시원하게 점프킥을 갈겨버린다.
“뭐해!”
“빈센트 교수님이 그랬잖아. 선빵필승이라고. 안 그래?”
점프킥을 맞은 남성이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무슨 짓입니까?”
“선량한 척하지 말고, 너 빌런인 거 다 알아.”
“그게 무슨… 제가 빌런이라는 증거는 있습니까?”
콧수염의 사내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울분을 토해낸다.
올리비아는 말문이 막혀버린다.
알프레드는 그 꼴을 보고 한숨을 내쉰다.
올리비아는 빠르게 다시 박성진의 채널에 접속하여 속삭인다.
“야, 내가 선빵쳤는데 아니라고 잡아떼. 이놈이 자기가 빌런이라고 실토하게 만들 방법 없어?”
박성진은 조금 뜸을 들이더니 대답한다.
“‘학장실에 침투하지 못했다’라고 해봐.”
“그게 뭔 소리야?”
“하란 대로 해봐. 그냥.”
올리비아는 신경질적으로 통신을 끊는다.
“너네, 학장실에 침투하는 데 실패했다는데?”
콧수염의 억울해 보이던 표정이 일그러진다.
알프레드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사상력을 사용한다.
전격이 날아가 콧수염 사내를 타격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시리얼 카드가 이식된 생도들은 트리니티 아카데미 내에서 사상력을 쓸 시, 전기충격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전기를 다룰 줄 아는 알프레드같은 각성자는 시리얼 카드가 의미 없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당연히 그에 대한 대비책도 존재한다.
전기를 다루는 각성자들의 시리얼 카드는전기충격을 가하는 것이 아닌, 극심한 작열통을 느끼게 하는 코드가 입력되어있다.
그러므로, 시리얼 카드는 알프레드에게도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생각해도 무방하다.
못 믿겠다면 고통으로 일그러진 알프레드의 표정을 보시라.
“…들켰군. 성가시게.”
알프레드는 당황한다.
분명히 전격은 정확하게 놈의 몸에 명중했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음은 틀림없다.
전격이 명중하는 순간에는 그도 얼굴을 찌푸렸으니까.
알프레드가 당황한 것은 이 빌런이 평온한 표정을 다시 되찾아서가 아니다.
단순히 놈이 고통을 참는 것뿐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놈의 몸엔 그슬린 흔적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재생계 각성자였나!’
알프레드는 작열통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전격을 날린다.
사내는 그 전격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아무렇지 않게 걸어온다.
서문 한가운데서 갑자기 일어나는 전투에, 다른 생도들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진다.
다른 생도들이 서문에서 모두 사라지자, 여유롭게 걸어만 오던 빌런이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놈이 나타난 것은 알프레드의 코앞.
알프레드는 그에 반응해 주먹를 날린다.
빌런은 마치 처음부터 그 공격을 예상했다는 양, 알프레드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고 앞으로 쏠린 알프레드의 다리를 발로 세게 짓누른다.
그러자, 가격당한 알프레드의 다리가 부자연스러운 방향으로 꺾인다.
사상력의 반동으로 인한 작열통에도 비명 한번 지르지 않던 알프레드가, 미약한 신음을 흘린다.
훈련에서 느끼는 인조적인 고통과 달리, 실제 신체에서 전해지는 고통은 그도 참을 수없었던모양이다.
올리비아는 옅은 한숨을 내쉬고, 알프레드의 목덜미를 잡아 거칠게 집어던진다.
“거기서 쉬고 있어.”
“안돼. 올리비아 너 혼자선 감당 못 할 거야.”
“그럼 뒤에서 화력지원이나 하던가.”
올리비아는 자세를 잡는다.
빌런은 소중한 물건이라도 되는 양, 자신의 콧수염을 몇 번 매만지더니, 또다시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가 이번에 나타난 장소는 올리비아의 배후.
어째서인지, 그의 주먹이 올리비아의 후두부를 가격하려는 위험한 순간에도 올리비아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너무 뻔해.’
올리비아는 자세를낮춰 주먹을 피하고, 아주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빌런의 머리통에뒤돌려차기를 먹인다.
빌런의 몸이 무너진다.
올리비아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알프레드가 당했던 것을 그대로 빌런에게 재현한다.
다리가 꺾여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놈을 끝장내려는 순간, 빌런은 올리비아의 앞에서 사라진다.
놈은 올리비아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멀쩡해진 다리와 함께.
그리고 이 이상 싸워줄 필요가 없다는 듯, 어디론가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올리비아는 다시 채널에 접속한다.
“야, 박성진.”
“이 새끼 그냥 좀 센 수준이 아닌데?”
“유령화로찾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었잖아!”
“씨발, 제이드 빡통년아. 내가 그래서 근접전에 강하다고 했… 어, 올리비아. 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은 올리비아 쪽만이 아니었나 보다.
박성진의 채널에는 여러 명이 자신이 처한 불리한 상황에 대해서 논하고 있었다.
“얘, 죽을 생각을 안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해?”
“그냥 모가지를 비틀어버려! 그럼 뒤질 거 아냐!”
“그럼 죽는 게 확실한 거지?”
“그렇다고!”
“그렇단 말이지.”
올리비아도 도망치기 시작한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뒤에선 알프레드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올리비아는 그것을 무시한다.
빌런과 올리비아는 점점 서문의 외지고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당히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나자, 돌연 빌런은 몸을 돌린다.
그 행동에 올리비아는 옅은 미소로 자신의 기쁨을 드러냈다.
‘드디어 제대로 좀 싸워볼 수 있겠는데.’
빌런은 올리비아를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끌어 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올리비아가 자신의 진짜 실력을 내보일 수 있는 공간으로 그를 밀어 넣은 것이다.
올리비아는 미소를 유지하며 빌런을 향해 당당히 걸어간다.
그런 올리비아의 태도에, 뭔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챈 빌런의 콧수염이 실룩인다.
하지만 이제 와 다시 도망칠 수는 없다는 걸 알아차린 놈은, 마찬가지로 천천히 올리비아를 향해 움직인다.
그들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한다.
텅 빈 서문의 광장에, 두 명분의 발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진다.
격돌.
그들의 주먹이 정확히 맞부딪치려는 찰나, 올리비에는 내밀려던 주먹을 거두고, 반대편의 주먹으로 놈의 안면을 후려친다.
빠직하는 소리가 놈의 코가 박살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것으로 승부가 결착이 났으면 좋으련만, 세상이라는 게 원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강력한 재생계 사상력을 가진 녀석인 만큼, 이 정도로 전투 불능에 빠질 리는 없으리라.
빌런은 입안에 들이찬 피를 한 모금 뱉어내곤, 다시 싸울 자세를 잡는다.
‘어떻게 하면 놈의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수 있지?’
올리비아는 빌런의 주먹을 위빙으로 피하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가 돌연 공격 태세에서 수비 태세로 전환한 것은, 그녀가 빌런에게 밀리기 시작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녀가 수십 번의 타격을 성공시켰음에도, 전혀 피해가 누적되지 않는 그에게 자신의 힘을 빼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을 고쳐먹었기 때문이다.
순간, 빌런이 기습적인 공격을 시도한다.
다른 S클래스의 생도라면 분명히 허용했을 공격이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그 상대는 올리비아다.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주먹을 피해, 균형이 무너진 빌런의 배후를 잡는다.
순식간에 유리한 포지션을 얻어낸 올리비아가 놈의 목을 조른다.
놈은 어떻게든 그 자세에서 벗어나보려 발버둥을 치지만, 전부 무위로 돌아간다.
올리비아는 이것으로 자신이 승리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렇게 보였으리라.
서문 광장의 시곗바늘은 그 상황에도 그저 묵묵하게 돌고 있다.
초침이 정각3시로부터 1/4바퀴를 돌았을 즘, 서문 광장 어딘가에서 여성의 비명이 들려온다.
그 비명의 주인은 올리비아다.
빌런의 몸에서 날카로운 칼날들이 튀어나와, 올리비아의 몸을 꿰뚫은 까닭이었다.
올리비아의 완벽한 목조르기 자세가 천천히 풀리기 시작한다.
제아무리 올리비아라 한들, 몸에 구멍이숭숭 뚫리는 상황에선 그것을 유지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켁, 뒤지는지 알았네. 고작 생도 따위한테 이렇게 고전해서야 원.”
놈은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는, 피로 시뻘겋게 물든 올리비아의 몸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좆같네. 이렇게 병신같이 죽는 게어디 있어.’
올리비아가 체념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미안하다. 올리비아. 다리가 이 모양이라 좀 늦었네.”
다리를 질질끌고 등장한 알프레드는 온몸에 전기를 끌어 모은다.
보통 사람의 정신력이라면, 타오르는 고통에 기절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마당에, 알프레드는 그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서문 광장의 시계 초침이 한바퀴를 돌아 1분이 지났음을 알릴 무렵, 강렬한 섬광이 서문 광장을 뒤덮는다.
그리고, 그 빛이 잦아들어, 서문 광장의 모습이 들어온다.
다리가 꺾인 채 정신을 잃은 곱상한 청년이 한 명.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발라당 드러누워 버린 여인이 한 명.
마지막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새까맣게 타버린 시체가 한 구.
피칠갑을 한 올리비아가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고 박성진의 채널에 접속한다.
“하아… 나야, 놈을 쓰러트렸어. 다른 곳은 어떻게 되고 있지?”
“씨발, 박성진 이거 정신 나간 새끼 아냐. 이런 걸 우리한테 시키려고 했어?”
“우리도 일단은 해결. 근데 다들 상태가 영 좋지 못하다.”
통신에 접속한 모든 이들의 말에서 음울함이 묻어난다.
모두가 서로 그렇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통신 채널은잠시 웃음소리로 가득해진다.
각자 생사 여부를 확인하던 와중, 모두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박성진의 말이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는 것.
““…박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