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
처음 도인호는 타이거와 호은을 같은 공간에 두려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번 원신의 이능력이 먹히지 않았던 것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가이드의 혈액을 일정량 이상 섭취한 에스퍼는 해당 가이드를 공격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원신이 호은에게 죽으라고 명령했을 때 공격이 닿지 않던 것과 반설아가 만든 늑대 또한 입을 벌리며 무섭게 달려들긴 했지만 끝내 호은을 물어뜯지는 못했다.
그런 이유로 미화부는 현재 홍보부 산하에 들어오게 되었다.
“멀티 몬스터 빨리 잡아서 걔네 다시 제주도로 돌아가게 하자.”
“멀티 몬스터가 나오는 건 맞나요. 여태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는데.”
불퉁거리는 목소리로 답한 도인호에 호은은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리만큼 평화롭지.”
그 순간이었다. 해당 말이 마치 주문이라도 되는 듯 푸른 하늘 위로 검은 줄이 생겼다. 실선처럼 보이던 검은 줄은 지퍼가 열리듯 점점 커지더니 뭔가를 뱉어 냈다.
인공 호수 위로 떨어진 그것에 커다란 물줄기가 쏟아졌다.
“꺄아악!”
물벼락을 맞은 쪽에서 일반인 쪽에서 비명이 들렸고 두 사람은 어느새 일어나 호수를 불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호수가 점점 탁해지고 있어.”
“진흙 같네요.”
-지이잉, 지이잉.
손목에 차고 있는 가이드 워치로 진동이 여러 번 울렸다.
[멀티 몬스터 NO. 27 발견]
해당 메신저는 타이거가 협회에 넘긴 멀티 몬스터의 정보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공간에서 멀티 몬스터가 나오게 됐을 때 위치와 해당 몬스터의 속성의 정보를 빠르게 전달했다.
“멀티 몬스터 제가 다 잡으면 미화부 필요 없지 않을까요.”
호수가 점점 요동치는 것을 보며 도인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너 혼자가 아니라 우리겠지.”
호은은 반지를 끼고 있는 손을 휘둘렀다. 약지에서 푸른 불길이 솟아오르더니 호은이 이미지를 그린 총으로 모양새가 바뀌었다.
“타이거보다 먼저 잡아요. 호은 형.”
“그래. 먼저 잡아서 놀려 주자.”
-쏴아아아아.
진흙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괴물이 호수 위로 점프했다. 괴물을 속박하기 위해 청염으로 밧줄을 만든 도인호가 그것을 던질 때였다.
“그렇게는 안 되지.”
검은색 연기가 멀티 몬스터를 휘감았다. 고약한 냄새와 함께 진흙이 호수 바다 위로 떨어져 나갔다.
뒤를 돌자 타이거 여섯 명이 전통 탈을 어깻죽지에 붙여 놓은 채 있었다. 심지어 최선율은 한여름이 멀티 몬스터를 공격하는 걸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휴가면 편하게 쉬고 있으라고.”
이제는 전통복이 아닌 정장 차림의 타이거는 어쩐지 낯설었다. 어제는 사복 차림으로 봤기에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호은은 초록색 사원증을 차고 있는 타이거가 멀티 몬스터와 싸우는 걸 지켜봤다.
“형. 저희는 텐트 들어가서 쉴까요.”
한여름이 등장한 순간 이능력을 없앤 도인호는 못마땅한 얼굴로 호은의 허리를 껴안았다.
“좋아! 저 정도 급은 보스 혼자 충분하니까 우리는 텐트에서 놀자!”
어느새 다가온 월랑은 자기 집처럼 텐트를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반설아와 원신 선악율이 따라 들어갔다.
“그냥 집에 갑시다.”
텐트가 점령당한 걸 본 도인호는 미간을 좁혔다. 호은은 텐트와 도인호를 번갈아 쳐다보며 크게 웃었다.
“뭐야!!! 바비큐 파티면 같이하자고!!!”
멀티 몬스터를 전투 불가능한 상태로 만든 한여름과 최선율은 작은 통 안에 멀티 몬스터를 회수한 채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어느새 캠핑장을 점령한 타이거는 제멋대로 그릴에 고기를 굽고 있었다.
“다음에는 놈들이 못 오는 해외로 가든가 해야겠어요.”
현재 타이거는 해외 출국 금지 상태다. 이렇게 방해될 줄 알았다면 순간 이동 에스퍼에게 부탁이라도 해서 해외로 나갈 걸 그랬다며 도인호는 후회했다.
“이거 잘 안 익는데? 야 불. 이능력 좀 해 주지.”
고기를 굽던 선악율이 도와달라며 소리쳤다. 호은은 선악율의 무례한 언행에 따지려는 순간이었다. 도인호가 손을 뻗더니 고기가 있는 그릴로 순순히 불을 만들었다.
“아, 씨!!!”
그러나 그릴에 있던 불은 그 위력이 세지더니 선악율을 뒤덮었다. 빠르게 나무 쪽에 생긴 그림자로 도망간 선악율이었으나 앞머리 쪽이 살짝 그을려 있었다.
“불 필요하다면서.”
도인호는 뭐가 문제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눈썹만 까딱였다. 그런 그의 태도에 따지려는 듯 선악율이 달려들려 했지만 한여름이 제지했다.
“앞으로 같이 일할 동료인데. 서로 예의는 지켜야지? 적어도 이걸 차고 있을 땐 존댓말 사용이야.”
말을 끝낸 한여름은 목에 차고 있는 사원증을 건드렸다. 선악율은 퉤 바닥에 침을 뱉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알겠다고 답했다.
“다음 주 월요일이 걱정이다. 이래서 어떻게 한 팀으로 일하려는지.”
호은은 선악율이 도망가며 흘린 집게를 들고는 고기를 구웠다. 치이익.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맛있는 냄새가 났다.
“고기 먹고 싶다면서요. 다들 안 오고 뭐 해요?”
빈 접시에 고기를 옮기며 호은은 옆에 있던 월랑에게 건넸다.
“고기다!!!”
월랑이 신나는 목소리로 고기를 먹으며 반설아에게도 한 입 줬다. 이후부터는 난장판이었다. 에스퍼면 냄새에 취약할 터인데 어쩐지 다들 고기를 못 먹어 한이라도 걸린 것처럼 모여들어 제대로 바비큐 파티를 즐기게 됐다.
물론 도인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호은의 옆에 붙어 있었지만 말이다.
“빨리 고기 먹이고 우리 둘이 시간 보내자.”
“…….”
어린 애인을 달래듯 도인호의 손을 잡아 깍지 끼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인호는 남아 있는 고기를 전부 그릴 위로 올렸다.
***
[긴장했던 멀티 몬스터의 첫 등장. 3분도 채 걸리지 않은 협회의 진압 과정 단독 입수.]
“이게 뭔지 아냐?”
월요일 회의실. 인터넷 기사를 뽑은 종이를 테이블 위로 던진 배연우는 짜증 섞인 한숨을 뱉었다.
“멀티 몬스터 발견하면 베리어부터 만든 다음에 처리하라 했지? 다 찍혔어. 네놈들 야무지게 고기 먹는 장면까지 다 찍혔다고.”
“죄송합니다.”
호은은 고개 숙여 사과했다. 배연우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천장을 바라봤다. 단전에서부터 욕이 올라오는 걸 참는 모양이다.
“그래도 기사 자체는 긍정적이던데요? 3분 안에 진압했다고. 뒤에 고기 먹다가 잔디 좀 태워서 그렇지.”
한여름은 테이블을 나뒹굴고 있는 종이 한 장을 주워 기사 중간 부분을 가리켰다.
“타이거는 멀티 몬스터를 잡는 모습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기삿거리를 만들지 말란 말이야. 제주 협회에 짱박혀 있을 거지. 괜히 홍보부 산하로 들어오는 걸로 바뀌어서.”
배연우의 시선이 호은에게 닿았다. 호은은 머리를 조아리며 도인호와 함께 사 온 꽃다발만 만지작거렸다.
“그, 그래도 오늘 첫 회의니까. 너, 너무 혼내지 말고.”
“뭐?!!”
“아, 아니야.”
남운수는 배연우의 호통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여전했다. 배연우는 부상 때문에 올해까지는 현장 업무를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렇기에 요령 있게 빠져나갈 수 있던 본사 회의도 참여해야 했고, 이번 일로 일요일 밤부터 깨진 모양이다.
“권호은. 넌 아까부터 밑에만 보고 뭐 하냐?”
“그게…….”
“밑에 돈이라도 떨어져 있냐?”
대답을 머뭇거리던 호은은 어쩔 수 없이 테이블 위로 꽃다발을 꺼냈다.
“승진 축하드린다고…….”
도인호와 준비한 꽃다발은 배연우의 팀장 승진 축하 꽃이었다. 타이거를 잡았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배연우가 대리에서 팀장으로 특별 승진한 것이었다.
“참 나.”
호은이 내민 꽃다발을 받은 배연우는 말문이 막혔다. 타이거에게 기선 제압도 할 겸 오늘 회의는 인상 남을 만큼 무섭게 가려고 했더니만. 꽃다발을 포장하고 있는 리본 문구에는 승진을 축하드린다고 적혀 있었다.
“지난주에 휴가였던 놈들이 이건 어떻게 알았냐.”
괜히 코끝을 매만지며 화를 내듯 말한 배연우의 얼굴에는 미처 감추지 못한 웃음이 숨어 있었다.
“오늘 점심 식사는 네놈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고깃집에서 해야겠네.”
배연우는 한결 풀린 목소리로 말하며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자. 그럼 앞으로 홍보부와 산하 부서인 미화부가 어떻게 운영될 건지 회의를 시작해 볼까.”
남운수는 배연우가 던진 종이를 눈치껏 정리하며 호은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호은은 가장 끄트머리 자리에서 회의실을 한눈에 담아냈다. 자신은 파란색 사원증을 달고, 도인호는 검은색 사원증을 달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배연우는 여전히 입이 험했고, 남운수는 옆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그를 보조했다.
아, 회의실을 꽉 채우는 타이거가 늘어나긴 했으나 그들은 불만 없이 회의 참여를 했다.
적이었던 녀석과 한 팀이 될 줄은 몰랐으나 아직은 평화로웠다.
“……그리고 김세희는 수배 중이다.”
회의 도중 나온 익숙한 이름에 호은은 멈칫했다. 최근에 만난 류윤재는 김세희가 배신했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것 같았다. 인턴 가이드끼리 사이가 좋아서 그랬을까. 김세희가 나가 버린 단톡방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다.
‘세희는 이걸로 만족할까?’
결정체 이식자에 대한 안건은 현재 정부와 함께 논의 중이다. 지금 진행 중인 실험은 없었으나 앞으로 해당 실험을 폐지할 거란 얘기와 관련된 사람의 처분에 대해서 조율을 하는 것 같은데, 어떤 결과가 나와도 그녀를 만족시키지는 못할 것 같다.
호은은 도인호의 손을 몰래 잡았다. 그가 결정체 이식자라는 것을 알고 시한폭탄으로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가 떠올랐다. 솔직히 운이 좋았다. 할 줄 아는 건 쥐뿔도 없는 주제에 오기 하나 가지고 그를 구하러 뛰어간 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니까.
평생직장이다. 각인까지 했으니 퇴사라는 단어와 더욱 동떨어져 버렸다. 그러니 다니면서 쪽팔리지 않는 회사가 되길 호은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기로 했다.
김세희가 다시 돌아왔을 때 더는 실망하지 않는 그런 곳으로.
“모든 함께해요.”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호은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는 도인호는 사랑스러운 연인이 위험한 짓을 벌이려는 것에 기꺼이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쯧. 회의하는데 누가 연애질이야?”
도인호의 목소리 때문에 이목이 쓸리자 두 사람이 딴 세상이라는 걸 눈치챈 배연우가 바로 한마디 했다.
“하여간 밑에서 손잡고 있는 거 지들만 아는 줄 알지.”
요즘 것들은 공과 사를 구별하지를 못한다며 배연우는 타박했다. 호은은 멋쩍은 얼굴로 사과했다. 그러나 마주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도인호는 호은만 볼 수 있게 입술을 곱게 휘며 맞잡은 손에 힘을 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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