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
여린 허벅지 살 위로 멈춘 손은 느릿하게 피부를 쓸었다. 호은의 귀 뒤쪽으로 거친 숨결이 들렸다.
“형에 대해 전부 알고 싶어요.”
한 치의 숨김도 없이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도인호 덕에 호은은 잠시 숨을 멈췄다. 뒤쪽을 돌아보니 도인호의 낯빛이 붉었다. 시선을 천천히 아래로 내리자 부풀어 오른 바지 앞섶이 보였다.
호은의 몸을 만지며 도인호는 욕정하고 있었다. 설마 마사지할 때마다 이러고 있던 건가?
“잠깐만.”
엎드렸던 몸을 일으킨 호은은 도인호와 마주 보고 앉았다.
“인호야. 너 나랑 뭔가 하고 싶어?”
“그냥 지금처럼 만지고 싶어요. 계속 닿고 싶어요.”
지난번 자위하는 법도 몰랐던 도인호답게 그 이상의 진도는 모르는 것 같았다. 다만 본능적으로 호은을 원했고 그 결과가 마사지로 다가온 듯했다. 호은은 마른 입술을 축였다. 사실 조만간 도인호와 키스 이상의 진도를 나가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그게 오늘이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인호야. 직접 가이딩 중에 맨 마지막 단계가 뭔지 알아?”
도인호는 갑작스러운 호은의 질문에 의아해하는 것 같더니 나지막하게 안다고 답했다. 하지만 호은이 어떤 의미로 물어봤는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일반인들은 보통 이런 행위를 연인이랑 하는데.”
“연인이랑요?”
“너랑 나도 원하면 할 수 있어. 우리 둘 다 성인이니까.”
팀 가이드 성생활로 나눠 준 책자의 기억을 더듬으며 호은은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같은 남자로서 호은 또한 도인호와 스킨십이 하고 싶긴 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무려 5살이나 어리고, 성 지식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상대로는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어 키스로 만족했던 건데.
“하고 싶어요.”
“어?”
“연인과 하는 모든 것을 형이랑 하고 싶어요.”
도인호의 노란 눈동자는 위험하게 번들거렸다.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눈빛에 호은은 결국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다.
“나도 하고 싶어.”
용기를 쥐어짜 속삭이자 어느새 호은은 침대에 눕혀졌다. 몸 위로 올라탄 도인호는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으로 호은을 애타게 바라봤다.
“인호야. 키스해 줘.”
그것이 꼭 허락을 구하는 것 같아 호은은 도인호의 목 위로 손을 둘렀다. 고개를 숙여 호은의 입술을 삼킨 도인호는 아랫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호은이 입술을 열자 도인호의 혀가 입 안으로 들어왔다. 츄읍, 질척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안쪽 여린 점막에 도인호의 혀가 닿을 때마다 몸 곳곳에 열감이 피어났다.
***
“사랑해요.”
저주를 내뱉는 것처럼 도인호는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자신이 내뱉은 이 말이 호은의 날개를 꺾는다고 하더라도 멈출 수 없었다. 손목과 발목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족쇄를 걸고 죽을 때까지 함께하고 싶었다. 내 세상의 전부.
도인호는 호은의 목선을 입술로 깊게 빨아들였다. 더 표시하고 싶다. 이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으니 온통 물들이고 싶었다.
호은을 모르는 사람마저 그가 도인호 것임을 알 수 있을 만큼 각인하고 싶었다.
“나도 인호야.”
옆구리 사이로 호은의 손이 들어오더니 서로의 가슴이 부딪힐 만큼 피부가 닿았다. 두근, 두근.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듣고 있으니 꼭 하나가 된 것만 같다.
도인호는 호은의 윗입술을 혀로 핥다가 입술이 살짝 열리자 곧바로 혀를 넣었다. 적극적으로 키스를 따라오는 호은의 행동에 아래가 단단해지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밤은 더욱 깊어져 갔다.
***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호은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언제 잠든 건지도 모를 만큼 기억이 희미했다. 조금 더 자고 싶어 침대 시트를 얼굴 위로 덮자 향기로운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났다. 맨몸인 몸으로 닿고 있는 침대 시트도 유난히 뽀송했다.
“어……라?”
호은은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 쪽으로 손을 갖다 댔다. 말라붙은 정액이나 그런 거 없이 피부는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평소 잘 바르지도 않는 보디로션 냄새까지 나는 걸 보니 기절한 자신을 도인호가 씻기고 뒷정리를 한 모양이다.
“하, 씨. 창피해…. 캑. 뭐 뭐야?”
호은은 자신이 내뱉는 굵은 목소리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어제 비명 많이 질러서 쉬었네요. 꿀 탄 생강차예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도인호의 얼굴은 어쩐지 광이 나 보였다.
건네받은 생강차를 반 정도 마셔 준 호은은 씻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
“형. 괜찮아요?”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한 호은을 도인호가 잡아 줬다.
“치유 에스퍼를 불러야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 부르지 마! 우리 이거 했다고 자랑할 일 있어?”
“??”
“하여간 부르지 마. 지금 건 너무 놀라서 그래. 익숙해질 거야.”
본인이 내뱉은 말처럼 호은은 도인호의 어깨를 잡고 허리를 천천히 세웠다. 아랫구멍이 화끈거리고 이물감이 느껴졌다.
호은은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도인호에게 애써 괜찮은 척하며 힘겹게 화장실로 걸어 나갔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는 비명이 들렸다.
“도인호!!! 너 이리 와 봐!!!”
거울에 비친 호은은 귓불에는 잇자국이 나고 목은 벌레에 물린 것처럼 울긋불긋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슨 쇄골을 이갈이하는 강아지처럼 깨물어 댔다. 심지어 가슴 쪽에도 잇자국과 키스 마크 거기다 젖꼭지는 살짝 스치기만 해도 따가웠다.
“이게, 이게 뭐야. 옷 어떻게 입으라고!”
“…….”
도인호는 눈치 보는 강아지처럼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호은의 뺨에 키스해 댔다.
“싫어. 하지 마.”
“……저 싫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음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도인호를 보며 호은은 한숨을 쉬었다. 결국에는 손을 들어 도인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적어도 옷은 입고 다녀야 하니 목은 건들지 말라며 타이를 수밖에 없었다.
***
욕실에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부엌으로 나가자 식탁 위에는 김밥과 유부초밥 샌드위치가 있었다.
“뭐야? 같이 만들기로 했잖아.”
“형 그 시간에 더 자면 좋잖아요.”
호은은 도시락통에 담긴 김밥 하나를 꺼내 우물우물 삼켰다. 참치김밥과 치즈김밥 그리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를 삼겹살 김밥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일주일 휴가 중 마지막 날인 오늘은 도인호와 당일치기 여행을 가기로 했다. 피크닉 도시락도 같이 만들기로 했는데. 호은이 한 거라고는 남은 도시락통에 과일을 담아 놓는 게 다였다.
“날씨 좋네.”
도시락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자 어제까지는 차가웠던 바람이 오늘은 꼭 봄처럼 따스했다.
햇살을 받아 내기라도 하는지 눈을 감고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도인호는 눈에 담듯 꽤 오랫동안 호은을 바라봤다. 날씨가 좋은지는 딱히 공감 주제가 아니었으나, 기분 좋은 호은을 보는 건 언제나 행복했다.
캠핑용 짐을 자동차 트렁크에 실으며 도인호는 자연스럽게 운전석에 앉았다. 인천 지사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가면 나오는 캠핑장이 오늘 두 사람의 여행지였다.
“원래 이맘때는 순천 놀러 가야 좋은데. 우리 앞으로 달에 한 번은 이렇게 여행 다닐까?”
“좋아요.”
창문을 열고 불어오는 바람을 얼굴로 받아 내던 호은은 콧노래를 불렀다. 도인호는 라디오의 볼륨을 줄이며 호은의 허밍을 귀에 담았다.
두 사람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커다란 인공 호수 주변으로 만들어진 캠핑장은 불멍과 물멍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가져온 캠핑 의자를 호수 앞에 설치한 도인호는 호은의 의자에는 담요를 깔아 놨다.
호은은 가져온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켜 놓고는 작은 책상 위로 도시락 먼저 세팅했다. 나오기 직전 보온병에 담아 놓은 수프를 종이컵에 따라 놓고 분위기용 무알콜 맥주를 놓자 그럴싸해 보였다.
앞쪽에 놓인 장작에 불을 붙이자 평소보단 푸른색 불꽃이 아닌 빨간 불꽃이 피어올랐다.
“짠.”
스프가 담긴 종이컵으로 치얼스하며 둘은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인호야. 저 구름 꼭 하트 모양처럼 생기지 않았어?”
“우리 때문에 생겼나 봐요.”
“으핫. 너 그런 말은 누가 알려 줬어?”
의자에 기대앉아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둘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근처에 캠핑 온 사람도 별로 없어 눈치 볼 게 없었다.
“다음 주부터는 많이 바빠지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호은은 눈을 감았다. 기존 반정부를 잡기 위해 만들어진 홍보부는 이름에 맞게 홍보부 일을 떠맡게 되었다.
김세희가 해킹했던 너튜브 계정을 다시 찾았기에 한 번 나빠진 에스퍼와 가이드 인식을 다시 개선하는 영상을 올려야 했다.
협회와 공단은 과거에 만들었던 폐쇄적인 이미지는 벗어던지고 이제 일반인에게 많은 것을 공개하겠다고 언론에 알린 상태다.
그래서 앞으로 홍보부는 영상을 제작해야 했고, 또 홍보부 밑으로 미화부가 들어왔기에 타이거를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맡았다.
깍지 낀 호은의 손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도인호는 손등에 쪽, 쪽 소리를 내며 뽀뽀해 댔다.
“타이거랑 같이 일하기 싫어요.”
“왜?”
“형을 아프게 했던 사람이잖아요.”
“……음. 근데 어제 너도 나 아프게.”
장난치려던 호은은 가라앉은 도인호의 분위기에 말을 멈췄다. 그의 표정은 장난으로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