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재생도 안 되는 몸을 가지고 자신에게 돌격하는 도인호를 보며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녀석은 꼭 시간을 끄는 것만 같았다. 억지로 이능력을 끄집어내 폭주라도 하려는 것처럼.
“원신을 되찾고 싶어서 백우경한테 연락했었어. 호수라는 가이드를 데리고 있으니 교환하자고.”
한여름은 호은의 어깨를 잡으며 더 간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랬더니 웃더라. 교환 따위 안 해도 알아서 찾아갈 수 있으니 알아서 하라면서 말이야.”
한여름은 코웃음과 함께 마른세수하듯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왜 웃을까. 그것도 재수 없게. 생각을 좀 해 봤는데. 이제 알겠어.”
한여름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공격하던 도인호와 결국 다시 이곳에 돌아온 권호은.
처음부터 백우경은 이럴 작전이었던 거다. 가이딩이 부족한 에스퍼가 가이드를 구하러 오게끔 상황을 만들고, 현장에서 폭주하게 만든다. 옛날 연구소를 폭파했던 것처럼. 이번 사건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던 거다.
“호은아 넌 미끼였구나. 날 죽이기 위한 도구인 도인호를 부를.”
“그런가. 잘 모르겠어.”
“……하하.”
“하지만 미끼를 물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야? 아직 안 죽었잖아.”
-삑비비빅, 삑비비빅.
가이드 워치의 경고음이 아까와 달라졌다. 1% 남짓한 숫자에 도인호를 돌아보자 몸 주변으로 파란색 불길이 세어 나왔다.
“폭주를 막는 게 가장 좋겠지만. 솔직히 1%는 나도 처음 봐서 자신이 없네. 그래도 책임지기로 약속했거든.”
호은은 한여름에게서 떨어졌다. 도인호가 쓰러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름아, 난 히어로도 뭐도 아니야. 그냥…… 가이드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일 뿐이지.”
“권호은 너 지금 뭐 하는…….”
호은은 도인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손바닥이 화상을 입는 것처럼 뜨거웠다.
“그러니까 꼭 살아나가서. 이번에는 제대로 된 방법을 찾아봐. 히어로 다운 방법을 말이야.”
호은은 한여름을 따라 나가는 것이 아닌, 이곳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너 죽어. 여기 있으면 죽는다고!!!”
“그 정도는 각오했어. 가이드잖아.”
무력한 가이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에스퍼를 케어하는 것. 현장에는 자신이 필요한 에스퍼가 있다. 사실 이건 표면적인 이유고 진짜는 다른 거였다.
엉망진창이 된 도인호의 얼굴을 손으로 살살 쓸며 호은은 애틋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도망칠 수는 없잖아.”
할 말을 끝낸 호은은 망설임 없이 도인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고 피가 묻은 몸을 손으로 더듬어 가며 호은은 숨이 필요할 때 빼고는 계속 입을 맞췄다.
도인호의 몸은 폭주 이상 증상 중 하나인 푸른 불꽃이 몸을 덮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능력이 폭주한다. 저건 절대로 막을 수 없다.
“너희 둘 다 미쳤구나…….”
한여름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저 둘 사이에 끼어들 틈 따위는 없었다. 호은을 강제로 데려가도 이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호은의 말이 맞았다. 그는 히어로 따위가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 영웅처럼 자신을 구해 주던 권호은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가이드였다. 자신의 에스퍼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이드.
“부럽네.”
어째서 호은의 에스퍼는 자신이 아닌 도인호일까. 한여름의 눈빛에 질투가 그득했다. 결정체 이식자. 실험체에게 등급이 있지는 않지만, 멀티와 결정체 이식자를 비교했을 때 상황이 나은 건 멀티였다.
적어도 멀티는 폭주로 죽을 위험은 적었으니 말이다.
원래라면 도인호는 결정체를 남겨 놓고 죽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다. 그의 가이드를 자처한 권호은이 계속해서 구해낸다.
자신이 호은을 감시하지 못한 그 짧은 기간 동안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여름은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찾아내지 못했다.
내가 만약에 멀티 실험의 피해자로 남아 있었다면. 그랬다면 호은이는 나에게도 기회를 줬을까. 자신의 에스퍼가 되는 기회를…….
멀티 몬스터를 세상에 풀어내려고 했다. 평화로운 일상을 파괴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다고 내 상처가 치유되는 걸까? 협회를 부숴버리고 백우경을 죽이면 이 허전한 마음이 채워질까.
아니. 채워지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 무질서를 가져다 놓는 악인으로만 그려진다면. 타이거의 슬픔을 아무에게도 공감받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니. 한여름은 현실을 깨닫자 허무함이 밀려왔다.
-삐삐삐삑, 삐삐삐삑.
가이드 워치의 경고음은 여전했다. 중간에 숨을 쉬기 위해 입술을 뗀 호은은 거슬린다는 듯 가이드 워치를 풀더니 바닥에 던져 버렸다.
“하, 하하.”
한여름이 공허한 웃음을 뱉었다. 백우경도 여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쿠웅!!
도인호의 몸에서 나온 이능력 중 하나가 천장으로 튀어 올랐다. 그 위력이 얼마나 큰지 3층에서 꼭대기 층까지 뚫어 밤하늘이 보였다.
“보스!!!”
밖에서 대기 중이던 월랑은 가만히 앉아 헛웃음을 내뱉는 한여름을 발견했다. 그녀는 넋이 나간 자신의 보스에게 빠르게 다가가 그를 챙겼다.
-쿠우우웅!!
폭죽처럼 터져 나간 이능력에 건물이 흔들렸다. 월랑은 망설임 없이 한여름을 데리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호은을 데리고 나오고 싶었으나 호은의 주변은 이미 푸른 불기둥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월랑은 미련을 떨쳐 내듯 두 눈을 감았다.
“하아. 하아…….”
한여름이 떠난 것을 확인한 호은은 아무리 입을 맞춰도 눈을 뜨지 않는 도인호를 바라봤다. 신체가 닿아도 가이딩 퍼센트가 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도인호가 준 이능력품이 폭주로 나오는 이능력을 상쇄시켜 주는 점이었다. 덕분에 이능력에 공격받지 않은 호은은 스스로의 볼기짝을 때리며 정신을 차렸다.
“아직, 아직 폭주 아니야. 막을 수 있어.”
말하면 이루어지는 소원처럼 호은은 연신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야지 막을 수 있을까. 무슨 방법이……. 아릿한 발목의 통증과 함께 호은은 하나의 사실을 떠올렸다.
호은은 길게 입을 맞췄다. 서로의 몸을 최대한 맞대고 생명이라도 불어넣듯이 도인호의 입술에 연신 숨결을 뱉어냈다.
“하아. 하아.”
부족한 숨을 몰아쉬며 호은은 도인호의 몸을 만지던 손의 방향을 바꿨다. 이게 될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뭐라도 해야만 했다.
옷 소매를 위로 걷다가 다시 내리고, 저고리를 풀어 가슴팍을 확인한 호은은 다시 바지의 밑단을 위로 올렸다. 몇 번이고 옷을 올렸다 내렸다 반복한 호은은 맨어깨를 드러냈다.
“찾았다.”
어깻죽지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인호야. 진짜 미안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 호은은 도인호에게 용서를 구하며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흔들리는 머리에 힘겹게 눈을 뜬 도인호를 본 호은이 도인호의 아래턱을 내리눌렀다.
“인호야, 입 벌려.”
초점을 잃은 도인호가 눈꺼풀을 천천히 닫았다 열기를 반복했다.
“이제 물어.”
도인호는 호은의 명령을 따르는 개처럼 착실히 입을 벌렸다. 그리고 자신의 입가에 갖다 댄 여린 피부를 깨물었다.
-콰아아아아앙!!!
호은은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도인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돌덩어리에 깔리기라도 한 건지 시끄럽게 울리던 가이드 워치가 조용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도인호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지고 이상하게 빠져나가는 가이딩이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전에 폭주하던 도인호는 난폭하게 뺏어 가는 느낌이었는데 어깨를 물리고 나서부터는 냇가에 흐르는 물처럼 잔잔했다.
이건 현실일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상상일까. 호은은 미약하게 뛰고 있는 도인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뭐든 상관없다. 각인에 실패해 죽었다면, 같이 죽는 거였고. 각인에 성공해 사는 거라면 같이 살았을 테니까.
집에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았다.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은 그저 도인호의 품이었으니 말이다.
***
건물이 무너져 내린 걸 확인한 백우경은 뻐근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능력으로 만든 불이 사라지고 회색빛 연기만 나올 때쯤 백우경은 핸들을 돌려 산으로 올라갔다.
“꼴에 반정부 아지트라고 건물을 단단하게 세웠군.”
일반 건물이었다면 폭주에 흔적조차 남지 않았을 텐데. 반 정도 날아간 아지트의 안으로 백우경은 거침없이 걸음을 움직였다. 큼지막한 시멘트 조각이 무덤처럼 이루어진 앞에 멈춰선 온갖 냄새가 섞인 곳에서 뭔가를 찾아냈다.
“여기 있구나.”
백우경은 눈앞의 시멘트를 손으로 건드렸다. 그의 손짓 하나로 시멘트 조각들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우리 차장님은 가끔 보면 날 골탕 먹이고 싶어서 이런 일을 저지르나 싶어.”
싸늘하게 식어 버린 호수의 시체를 바라본 백우경의 눈은 다정스럽기 짝이 없었다.
“깔끔하게 도인호랑 타이거를 죽이고 싶었던 건데. 꼭 이런 자리에 껴서 같이 죽는단 말이지.”
백우경은 말 안 듣는 아이를 봤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투덜거렸다.
시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백우경은 자꾸만 말을 걸었다. 그는 다리를 굽혀 온기라고는 일절 남지도 않은 호수의 입술에 도둑키스를 남겼다.
“당신은 나한테서 절대 도망 못 가.”
굽혔던 다리를 펴 일어난 백우경은 호수의 몸 위로 바람을 불었다.
“죽는 것도 내 허락이 필요하잖아.”
백우경이 불었던 바람은 황금색 가루가 되어 주변을 배회하더니 이내 커다란 원형을 만들었다.
-째깍, 째깍, 째깍.
원형은 시계의 형상화를 띄더니 초침이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얼굴에 반 이상은 피 칠갑이 되고 먼지와 알 수 없는 것들이 묻어 더럽혀진 호수의 옷이 깨끗한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쿨럭, 하아… 씨발. 얼굴 치워.”
거친 숨을 토하며 눈을 뜬 호수는 주변을 둘러봤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 매끈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백우경이 있었다. 절로 욕지거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응. 나도 반가워요. 차장님.”
“꺼져.”
백우경은 호수의 욕설에도 개의치 않는지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도인호는 결국 폭주했나. 바로 도망치라고 했는데.”
도인호도 그렇고 권호은도 그렇고 말을 안 듣는다. 한 명이라도 자신의 명령을 따랐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텐데. 호수는 상황 파악을 끝내고는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하하. 나는 안중에도 없네. 서운하게 말이야.”
여전히 입을 놀리는 백우경을 흘긋 쳐다본 호수는 무시한 채 무너진 아지트를 돌아다녔다. 폭주로 시체가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도인호와 권호은이 묻혀있다면 어떻게든 찾아야 했다. 주변을 배회하는 호수의 뒤를 백우경이 따라갔다.
“…….”
뻥 뚫린 벽으로 넘어간 호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가이드 워치를 발견했다. 깨진 액정은 마지막까지 나타났던 화면을 보여 주고 있었다.
[도인호 에스퍼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