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인호야 괜찮아? 어떡해. 피가 안 멈춰…….”
호은은 소매를 늘려 도인호의 피를 닦아냈다. 눈물로 얼굴이 엉망이 된 호은은 상처 치유가 안 되는 도인호에게 입맞춤을 하는 등 가이딩을 퍼붓기 시작했다.
한여름은 그런 호은이 이해되지 않았다. 도인호는 여기서 죽을 거다. 자신의 독에는 가이딩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왜, 왜……. 치유가 안 되지?”
“그만해 호은아. 가이딩 하다가 네가 다시 독에 감염될지도 몰라.”
“……인호야.”
“밑 빠진 독에 물 붓지 말고 나한테 와, 호은아.”
호은의 손바닥이 도인호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도인호의 구멍이 뚫린 복부를 막은 그의 손이 잘게 떨렸다.
한여름은 천천히 호은에게 다가갔다.
“지금이라면 날 선택해도 괜찮잖아. 저놈은 머지않아 죽을 거야.”
도인호가 죽는다는 한여름의 말이 들리고 나서야 호은은 천천히 뒤를 돌았다.
“이번에도 나 구해 줄 거지?”
이미 재생을 다 끝낸 한여름이 호은을 바라보며 팔을 벌렸다. 마치 자신의 품에 안기라는 듯. 호은은 고개를 저으며 도인호를 더욱 껴안았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호은 형……. 먼저 가요. 몸이…….”
도인호는 마지막 힘을 내 호은을 밀쳤다. 가이딩을 받아내는 것보다 몸에서 가이딩 소모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대로 있다가는 폭주하고 말 것이다.
“녀석을 따돌리고…… 뒤따라갈 테니까.”
“인호야…….”
“먼저, 먼저 가요. 제발.”
희미한 미소를 지은 도인호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러자 아까 만들었던 도깨비불이 호은의 앞으로 나타났다. 도깨비불은 호은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인호야. 나 안 갈래. 가기 싫어.”
울먹이는 목소리가 나왔다. 여기서 도인호를 떠나보내면 영영 못 볼 것만 같았다.
“형이 있으면… 이능력을 제대로 못 써서 그래요.”
호은을 안심시키듯 도인호는 비틀거리며 똑바로 섰다. 한여름은 그런 도인호의 모습을 보며 입술을 뒤틀렸다.
“재미있네. 호은아, 도망가 봐. 저 녀석 죽이고 너한테 수갑 다시 채워줄게.”
한여름은 혀로 볼 안쪽을 씹었다. 자꾸만 자신 앞에서 신파를 찍어대는 저 두 사람의 모습이 고까웠다.
“이번 수갑은 죽을 때까지 풀지 못할 거야.”
음산한 목소리로 할 말을 끝낸 한여름에게 도인호가 달려들었다. 거센 폭풍 같은 바람이 불었다. 호은은 바람에 휘말려 바깥쪽으로 튕겨 나갔다.
-화르륵
따라오던 도깨비불이 호은의 주변을 감쌌다. 두세 번 정도 바닥으로 굴렀으나 보호막 형상을 띄었다. 몸에서 더는 충격이 느껴지지 않을 때 호은은 멍하니 허공을 쳐다봤다.
금이 간 천장이 보였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저것이 자신과 닮아 보였다. 이번에도 구하지 못했다. 또 도움만 받았다.
“한심해.”
호은은 바닥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도인호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저 바보 같은 놈은 자신이 건물에서 떠나는 순간 폭주해 한여름과 함께 사라지길 자처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왜 넌 꼭 목숨으로 희생을 하는 거야.”
고요한 공간 속 호은의 목소리가 흩어졌다. 호은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쿵, 쿵. 바로 옆에서 커다란 소음이 들렸다. 당장에라도 뒤를 돌아 도인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부웅, 부웅.
그런 호은의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도깨비불이 앞으로 통통 튀었다. 호은은 어쩔 수 없이 도깨비불을 따라 걸었다. 앞에는 쓰러진 호수가 있었다. 호수를 데리고 밖에 나간 다음에… 다시 돌아와서.
돌아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차라리 빨리 나가 폴을 불러오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차장님. 저는 어떻게 해야…….”
호은은 쓰러진 호수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호수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입술이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얬다. 호은은 천천히 호수의 가슴팍에 귀를 갖다 댔다.
“……으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호은은 죽어버린 호수의 시체를 부여잡고 미친 사람처럼 울었다. 자신 때문에 죽었다. 납치당한 자신을 구하러 와서 호수도 죽고…… 도인호도 죽고 말 것이다.
“나 때문에.”
허탈한 목소리를 흘리며 호은은 호수를 천천히 다시 바닥에 눕혔다.
-부웅, 부웅.
도인호가 있는 쪽으로 호은이 다가가자 도깨비불이 안 된다며 앞을 막아섰다.
“책임지기로 했어.”
호은의 시선이 지금까지 커다란 소음이 나는 안쪽 방으로 향했다.
“이제 걸 수 있는 게 목숨밖에 없어.”
건물을 빠져나갈 이유가 사라졌다. 호은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도깨비불은 호은을 말리듯 옷을 잡고 뒤로 끌기도 하고 시야를 가리기도 했지만 부질없었다.
도깨비불은 마지못해 몸을 부풀리며 불꽃을 키웠다. 호은은 자신의 키를 넘어선 불꽃을 바라봤다. 파지직. 불꽃이 순식간에 줄어들더니 반짝하고 뭔가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손을 내밀자 가운데에 떨어진 그것은 은색 링이었다. 은색 링 가운데에는 파란색 보석이 박혀 있었다. 언젠가 목에 걸어 줬던 목걸이와 같은 디자인이다.
반지의 존재를 확인한 호은은 헛웃음을 뱉었다. 이건 단순한 반지가 아니다. 도인호가 꼭꼭 숨겨 놓고 보여 주지 않았던…… 이능력품. 호은은 축 늘어진 왼손을 들어 올렸다.
‘도인호…… 넌 끝까지 날 지키기 위해서…….’
반지를 뱉어내고 작아졌던 도깨비불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 반지를 호은의 손가락에 끼워 줬다.
호은은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고는 힘차게 땅을 짓밟았다. 푸른 보석에서는 불꽃이 피워 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검의 형태를 만들었다.
도인호가 싸웠던 검과 똑같은 모양새의 청염의 검을 들고 호은은 돌진했다. 연기 사이로 바닥에 쓰러진 도인호가 보였다. 그리고 한여름이 도인호의 심장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으려는 순간 호은은 검을 크게 휘둘렀다.
“커헉.”
호은의 공격에 한여름이 뒷걸음쳤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호은을 쳐다봤다.
“어째서…….”
“내 에스퍼를.”
“…….”
“폭주 따위로 죽게 할 거 같아?”
호은은 도인호를 품에 껴안았다. 도인호는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힘겹게 떴다. 그의 뺨을 타고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여름아. 나 USB 영상 전부 다 봤어.”
한여름의 동공이 순간 살짝 커졌다가 다시 원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네가 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동기는 알겠어.”
“그렇지? 이제 정확히 따져보자고. 누가 빌런이고 누가 히어로인지.”
한여름은 호은이 USB를 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정의로운 호은이라면 자신의 편을 들 게 뻔했다. 한여름은 마치 어린아이를 회유하는 듯한 목소리로 호은에게 말했다.
“날 선택해 호은아. 네가 원하는 정의를 타이거가 이루게 해 줄게.”
“……아니. 내가 원하는 정의를 타이거는 이루지 못해.”
도인호의 손을 잡은 호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영상을 보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공단과 협회는 끔찍한 실험을 진행했다. 가이드와 에스퍼 상관없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그들은 인간이 저질러서는 안 될 일을 하였다. 그렇다면 그 끔찍한 일을 한 사람을 벌주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은 묵인해도 되는 걸까?
“네가 말하는 정의는 도대체 뭐야. 실험을 진행한 사람에게 복수하는 것? 더 나아가 이능력자 협회를 없애는 거? 그럼 넌 그들이랑 뭐가 달라? 그게 정의야?”
“하하. 호은아 너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방금 대사는 좀 구렸어.”
한여름의 얼굴은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호은이라면 다를 줄 알았다. 악인을 처단하는 것뿐인데, 어떻게 타이거가 그들과 같다는 걸까?
“가자 호은아. 이능력품 하나 생겼다고 달라질 거 없어.”
“충분히 달라졌어.”
호은은 도인호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조심스럽게 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한여름의 앞에 선 호은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저 녀석을 구하겠다고?”
“그래.”
“그게 아니잖아!!! 내 이름을 말해!! 네가 먼저 구원한 건 나잖아!!! 네 손을 잡을 자격이 있는 건 바로 나라고!!!”
호은은 한여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내게 널 구원할 수 있는 자격 같은 건 없어.”
“……뭐?”
“난 히어로 같은 게 아니야.”
“무슨 말이야. 넌 날 구해 준 히어로야, 호은아.”
“내가 진짜 히어로였으면…….”
호은은 힘겹게 한 단어씩 토해냈다.
“널 죽이는 걸…… 망설이지 않았을 거야.”
호은의 볼을 타고 눈물이 떨어졌다. 호은은 만들었던 검을 없애고 한여름에게 다가가 그를 품에 껴안았다.
“이제 그만해. 아무리 네가 여기서 이런 짓을 해도 바뀌는 건 없어. 세상은…… 결국 타이거가 나쁜 놈이라고 말하게 될 거야. 네가 아무리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해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고 할 거라고!!!”
“…….”
“아무도. 타이거가 불쌍하다고, 그럴 수 있다고 말하지 않을 거야. 네가 바라던 현실이 그런 거야?”
타이거의 실험 과정을 생각하면 확실히 한여름은 피해자였다. 강제로 만들어진 존재. 그들이 만약 연구소를 탈출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이런 끔찍한 실험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거다. 그냥 사라지는 거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여기까지만 보면 한여름의 감정에 이입해 끔찍한 짓을 저지른 백우경과 모두에게 복수하는 것이 옳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호은이 봤던 영상 속 한여름은 복수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다. 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에스퍼를 데려와 백우경이 저질렀던 것처럼 끔찍한 실험을 저질렀고 더는 사람이 아닌 존재로 만들었다. 거기다 멀티 몬스터는 일반 음식으로 배를 채우지 못했다.
영상에서 산 사람을 멀티 몬스터에 던져 준 한여름은 말했다. 이 사람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고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그렇게 범죄자를 빼돌려 먹이로 던져 주던 한여름은 깡패 조직인 드래곤과 손을 잡았다. 어둠의 경로로 드래곤과 얽힌 자들은 이제 멀티 몬스터의 밥이었다. 한여울의 새엄마 새아빠가 먹혔던 것처럼 말이다.
영상 마지막 멘트를 호은은 떠올렸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멀티 몬스터는 곧 세상에 뿌려질 거다. 우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본인들이 얼마나 편하게 살았는지. 비능력자도 알 때가 됐다.
한여름의 복수는 백우경만 해당한 게 아니다. 영상 속 한여름은 멀티 몬스터를 각 지역에 뿌려 일반인을 공격할 계획 또한 세웠다. 그의 분노는 타이거를 제외한 모두에게 향했다.
“지금이라면 멈출 수 있어.”
“…….”
“다른 방법이 분명 있을 거야.”
한여름은 호은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솔직히 지금 와서 다른 방법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이제는 습관적으로 분노를 하며 복수의 대상을 되새김한다.
멀티라는 존재를 만들기 위해 자신들은 태어났다. 그리고 그 존재에 부합하지 않아 버려졌다.
-콰직, 콰지직.
한여름은 뒤쪽에서 발작하듯 이능력을 내뿜는 도인호를 바라봤다. 폭주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늦었어. 저 녀석 곧 폭주할 거야.”
한여름의 말에 호은은 가이드 워치를 바라봤다. 도인호의 가이딩 퍼센트는 3%에서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월랑한테 명령했어. 그녀가 곧 날 구출하러 올 거야. 나랑 같이 가자 호은아.”
“…….”
“네 말처럼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 네가 원하는 대로.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가.”
“…….”
“내가 잘 못 하면 나를 꾸짖고. 나쁜 짓을 하면 네가 막아주면 되잖아.”
“미안해. 난 도인호 옆에 있어야 해.”
호은의 대답에 한여름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위로 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