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도인호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고요했던 심장이 요란해진다.
쿵, 쿵 빠르게 뛰고 있는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이면 마치 이 세상에는 도인호와 권호은 두 사람만 있는 거 같단 착각이 들었다.
“저는 형이라면 다 괜찮아요.”
일렁이는 눈동자 안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 눈을 빤히 보다 보면 마치 들키기 싫다는 듯 눈에 담긴 감정이 금방 가라앉는다.
“너 나와.”
도인호의 벨트를 푸른 호은이 조수석에서 내렸다. 성난 걸음은 빠르게 운전석으로 향하였고 도인호에게 나오라 손짓했다.
마음만 먹으면 계속 자리에 버틸 수 있던 도인호는 이번에는 얌전히 일어났다.
“타.”
친절히 조수석 문까지 열어 도인호를 앉힌 호은은 운전석에 앉아 벨트를 매고 기어를 조절했다. 매끄럽게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내 얼굴 말고 창밖 좀 봐 봐.”
호은의 굳어 있는 옆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던 도인호는 호은의 말에 창가로 눈길을 돌렸다.
빠르게 움직이는 풍경 속 해가 지는 그 짧은 시간에 주황빛 노을이 하늘을 채워 가고 있다. 어둠이 내려오는 하늘의 경계선과 각각 색을 밝히는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도인호는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창밖을 보다 이내 창문에 비친 호은의 얼굴을 감상했다. 처음에는 어딘가 불안한 사람처럼 힐긋 쳐다보던 거 같았는데 운전대를 잡은 이후로는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
강화제 부작용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가슴이 아려 왔다. 이 낯선 고통은 언제쯤 익숙해지려는지 모르겠는 도인호였다.
빠르게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의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멀리서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를 듣던 도인호는 주변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근처 도롯가에 주차한 호은은 말없이 내렸다.
모래밭으로 가는 호은을 본 도인호도 따라나섰다.
바다를 구경하기 좋게 모래밭 안에는 그네 의자가 놓여 있었다. 호은이 의자에 앉아 도인호를 불렀다.
“여기 왜 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합니다.”
“나도 거짓말했지만, 너도 거짓말하니까.”
“…….”
“바다를 보고 있으면 왜인지 진심을 토해 내고 싶지 않을까 싶어서.”
바다는 금방이라도 파도가 몰아쳐 두 사람을 덮을 것처럼 위험한 소리를 내었다.
하얗게 부서졌다 사라지는 파도를 보자니 여기서 어떤 말을 하든 바다가 다 삼켜 줄 거 같았다.
“너도 눈치챘겠지만, 이번 일 너한테 말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내가 말 안 한 거야.”
바닷가의 차가운 바람이 두 사람을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느끼며 호은은 덤덤히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너한테 싫은 소리 듣는 게 무서워서 거짓말한 줄 알았거든? 그야 넌 내가 촬영한다고 하면 걱정했을 게 분명했고, 난 네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어.”
“…….”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너를 위해서 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한 거더라. 63스퀘어에서도 민원부에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이런 거라서. 내 이기심 때문에 진행한 일이나 다름없었어.”
“…….”
“당장 뭔가 성과를 보이고 싶었거든. 도움 안 되는 가이드가 되기는 싫어서.”
마지막 말은 쓸쓸함이 짙게 묻어 있었다. 막힘없이 술술 말하던 호은이 한 박자 쉬었다. 망설이듯 입술을 벌렸다 닫기를 반복한 호은은 결심했는지 입을 열었다.
“가이드는 그냥 가이딩만 하면 되는 존재잖아? 난 그런 가이드랑 달라지고 싶었어. 나만 할 수 있는 뭔가를 해서 증명하고 싶었고 결국 그거 때문에 너한테 거짓말을 한 거야……. 네가 실망하고 화를 내도 말이야.”
“제가 어떻게 형한테 화를 내겠어요….”
호은의 말이 끝나자마자 도인호는 망설임 없이 차가워진 호은의 손을 자신의 온기로 덮었다.
“그래도 돼.”
호은의 목소리는 가녀려 보였으나 그 안은 단단하고 견고했다. 그래서인지 듣는 사람은 다정하면서도 확고한 의지가 담긴 그 목소리를 마음 깊은 곳에 새길 수밖에 없었다.
도인호의 시선이 바다에서 호은에게 천천히 돌아갔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건지 호은의 얼굴은 해방감에 물들었다.
후련하다는 듯 상기된 얼굴을 마주 보자 응어리진 도인호의 마음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깊은 곳에 묻혀둔 이 추잡한 감정을 보여 줘도 되는 걸까. 호은 형이 놀라 혹시라도 도망치면 어떡하지?’
유리병에 들어 있는 것처럼 투명한 호은의 마음과 달리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기 꺼려지는 이 불투명한 병을 호은에게 보여 줘도 되는지 망설여졌다.
“인호야. 난 괜찮아. 무슨 말을 하든 들을 준비가 됐어.”
파도 소리와 함께 들려온 호은의 마음은 견고하게 쌓아 올린 마음의 벽을 순식간에 허물었다.
태풍이 몰려와도 부서질 거 같지 않았던 도인호의 벽은 호은이 이름이 불리는 것 한 번으로 이토록 쉽게 무너지고 만다.
“저는.”
낮에만 하더라도 빛나고 있었을 모래알이 어느덧 어둑해진 하늘에 서서히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형 옆에 있고 싶어요……. 그래서 형이 무엇을 하던 다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한참을 머뭇거리던 도인호가 입을 뗐다. 호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 애초에 알고 있었다. 위치 추적이 달린 목걸이가 집이 아닌 다른 장소를 가리키고 있을 때. 마지막까지 호은이 진실을 얘기하지 않게 만든 자신을 탓하였지 결코 그 탓에 호은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10년을 살았다. 생각이라는 거 자체가 필요 없는 삶이었다. 폭주 예정일만 하루하루 새어 나가는 것이 유일했다.
20살이 된 해였다. 더 이상 도망갈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건지 임무를 제외하고 현장을 나가지 못하게 했던 협회가 밖을 나가게 허락해 줬다.
밖을 나갈 수 있다고 해 봤자 5년 이상을 제대로 나가지 못한 도인호가 갈 만한 장소는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기억인 돈가스 가게를 갔다. 이런 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나갔던 장소가 이곳이기에 그랬을까.
도인호는 습관처럼 가게 맞은편에서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가게를 들여다봤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과정에서 도인호는 자신의 옛 기억이 정말 있었던 기억인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누굴 기다리고 있는 거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답하던 것도 시간이 지나자 점점 답하기 어려워졌다.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다. 이젠 정말 꿈같은 일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의미 없는 하루를 반복하고 있을 때 권호은을 만났다. 참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다짜고짜 돈가스를 먹고 싶냐고 묻다니.
하지만 그 질문이 마치 기억 속 남자를 떠올리게 만들어 마음 한구석 그리움을 몰고 왔다.
일반인이던 남자와 다르게 권호은에게는 가이딩이 느껴져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 한구석 묘한 기시감을 떨쳐 낼 수 없었다.
두 번째로 권호은을 인천 지사에서 마주쳤을 땐 이틀 만에 이상한 남자를 다시 만났다는 짧은 감상이 들었다.
이상한 남자는 오지랖이 넓고 정의감도 넘쳐나 자꾸 자신 앞에 알짱거렸다.
도인호에게는 권호은이 낯설기 그지없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자유가 찾아오는데.
생각을 환기하듯 다가오는 권호은을 보며 속으로 두려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애써 폭주라는 자유로 끝날 기미가 보이던 인생을 샛길로 가게 하려는 것만 같아서.
그러다 63스퀘어 사건이 일어났다. 임무를 완료하고 에스퍼 강화제를 먹으며 도인호는 이제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정부만 죽이고 나면, 아니 반정부와 같이 폭주하고 나면 모든 게 끝이다.
막상 끝이 다가왔지만 홀가분하진 않았다. 애써 그 마음을 모른 척했지만, 눈앞에 권호은이 등장한 순간 왜 폭주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자유라는 생각이 안 들었는지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조금 더 권호은과 있고 싶다. 그와 같이 저녁을 보내고, 그가 말한 디저트 가게에 가 그가 좋아하는 메뉴를 같이 먹고 싶다. 그와 하루하루 달라지는 일상을 공유하고 싶었다.
결정체 이식자라면 가지면 안 되는 미래를 꿈꿔 버렸다.
권호은의 직접 가이딩으로 폭주가 멈추고 깨졌던 퍼즐이 맞춰졌다. 돈가스집에 갔던 이유가 떠올랐다. 그건 그 남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무슨 일 있으면 아까 그 가게로 또 와.’
교복 입은 남자는 앳된 얼굴로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세월이 많이 지났기에 남자가 어린 도인호를 위해 돈가스 집에 찾아와줬는지는 모르겠다. 기억이 없던 무의식중 늦게라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은 가게를 찾아갔던 것이었다.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으나 결국 두 사람은 돈가스 집 앞에서 다시 재회했던 것이었다. 비록 그 순간에 서로를 못 알아봤을지 몰라도.
63 스퀘어에서 폭주를 막기 위해 겹쳤던 입술을 뗀 권호은과 두 번째 약속을 받아 낸 도인호는 이번 약속은 지난번과 다를 거라 생각했다.
앞으로도 폭주의 위험은 있을지 몰라도, 도인호에게는 폭주가 아닌 새로운 자유가 생겼다. 죽음이 아닌 권호은과 함께 세상을 살아나가는 자유.
그러나 63 스퀘어에서 쓰러진 권호은은 한 달 동안 깨어나지 않았다.
“형이 저 때문에 의식 불명 상태가 되었을 때.”
도인호는 그때를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폭주 예정자였던 저는 늘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바랐는데……. 그때만큼은 하루가 늦게 지나가길 바랐어요. 늦어도 좋으니까 오늘은 눈을 뜨라고.”
창백한 얼굴로 고요히 잠든 호은의 주변을 서성이며 얼마나 많은 자책과 저주의 말을 자신에게 퍼부었는지 모르겠다.
‘나 때문이야. 내가 가이딩을 너무 많이 가져갔어. 나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어. 내가 망쳤어. 차라리 내가 의식 불명이었다면.’
부정적인 생각은 도인호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자기혐오의 늪에 빠진 도인호는 충동적으로 폭주하기 위해 능력을 남발했다. 이러면 권호은이 다시 자신을 구하러 올까 싶어서.
아니, 차라리 그가 눈을 떴을 때 자신을 이렇게 만든 남자가 사라져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도인호를 막은 건 호수였다. “너 권호은 허락 없이 죽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 호수의 날카로운 한마디에 도인호는 정신 차릴 수 있었다.
권호은이 살린 몸이다. 자신은 이제 권호은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가 싫어할 행동은 하면 안 된다. 차근차근 결론을 내린 도인호는 그 뒤로 호은이 일어나길 바라며 하염없이 병실에서 기다리던 것을 멈췄다.
도인호는 요리책을 샀다. 호은이 일어나면 같이 저녁을 만들기 위해 음식을 연구했다. 그리고 고질병처럼 더듬으며 말하던 것도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조금 더 호은과 제대로 대화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인간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도 공부했다.
그렇게 호은을 위해 하루하루 버텨가던 도인호는 마침내 깨어난 호은과 마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