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김세희가 인터뷰실로 들어간 직후 복도에서 호은과 남성이 사인을 하며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잠시 후 호은이 놀란 얼굴로 대기실로 뛰어 들어가고 가만히 서 있던 남자는 느릿한 걸음으로 호은을 따라갔다.
“조연출 보조네요.”
영상을 확대한 신은혜는 마스크로 가려져 제대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그녀는 머릿속에 남자의 신상이 저장되어 있기라도 하는지 촬영 스태프들의 프로필을 정리한 파일을 열며 이어 말했다.
“신분은 확실한 사람입니다. 저희와 거래하는 이능력품 회사에 다녔던 사람으로 이사장님 촬영할 때 보조역할로 여러 번 일했습니다.”
“다녔던 이면 해당 회사는 퇴사했다는 뜻입니까.”
“네. 해당 회사는 2년 전에 퇴사했고, 이후 저희와 관련된 촬영 보조 스태프 일을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도인호의 질문에 신은혜는 망설임 없이 바로 답했다. 마치 그 질문을 예상하기라도 했던 사람처럼 말이다.
빠르고 정확한 정보 전달에 호은은 이사장 비서실장을 하려면 저 정도 능력자는 되어야 하는 건가 싶었다.
“이후 일은 권호은 씨가 설명해 주셔야 할 거 같네요.”
“아…… 네.”
도인호의 시선이 얼굴에 닿았다가 금방 사라졌다.
“우선은 촬영이 끝난 저희에게 인터뷰가 있다고 말한 반설아는 자연스럽게 인터뷰실로 데려갔습니다. 제가 먼저 받고 김세희 씨는 십 분 뒤쯤 오라고 했어요. 십 분 동안 간단한 질문을 몇 개 받았고 인터뷰는 금방 끝났습니다.”
호은은 그때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반설아의 모든 행동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테이블에 핸드폰을 꺼내 녹음기를 켰고 긴장을 풀어주듯 촬영은 괜찮았냐며 가벼운 대화로 말문을 텄다.
그녀의 질문은 이상하리만큼 알맹이가 없었다. 적어도 가이드 공단이나 에스퍼에 관한 질문을 받을 줄 알았던 입장으로서 발 사이즈가 몇이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뭐냐 등의 질문은 긴장한 사람을 김빠진 탄산음료처럼 만들었다.
마지막 질문인 후배 가이드가 생긴다면 무슨 말을 해 주고 싶냐는 말이 나오고 나서야 가이드 권호은으로서 인터뷰를 받고 있단 걸 자각했다.
“인터뷰가 끝나 나왔을 때 김세희 씨는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는 장소를 벗어나려다 제 팬이라고 하신 분을 마주쳐서 앞에서 사인하고 있었고, 그 순간 안에서 비명이 들렸습니다.”
“…….”
배연우는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이번 촬영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자신조차 권호은이 말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촬영에 대해 몰랐을 거다. 이사장과 관련된 소수의 사람으로 촬영을 진행한 게 분명할 텐데 반정부가 어디서 소식을 듣고 찾아왔을지 의문이 들었다.
“신은혜 실장님. 이번 촬영과 관련된 사람 프로필 공유해 주셨나요?”
“지금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김세희 씨는 혹시 상태 확인됐나요?”
호은은 속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촬영장이기는 했지만, 홍보부 전원이 모인 이곳은 현장이 되었다. 이곳에서 배연우는 마치 복잡한 출근길 도로 교통정리 하는 경찰과 같은 모습이었다. 엉켜 있는 사건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모습에 배연우가 얼마나 현장에서 베테랑인지 알 수 있었다.
“네. 우선 외적인 부상은 치료가 완료된 상태고 현재 검사 결과로는 가이딩이 단시간에 빠르게 빠져나간 게 기절한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답니다.”
“권호은. 방에 들어왔을 때 김세희 상태는?”
“반설아에게 팔이 붙잡힌 상태였고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혹시 몰라 잡힌 팔을 떼어 냈지만, 김세희 씨는 고통스럽다는 듯 계속 머리를 잡고 있었어요.”
“머리를 계속 붙잡고 있었다…….”
호은의 말을 따라 중얼거리던 배연우는 눈썹을 매만졌다.
“전부 이상하기 짝이 없네. 가이딩을 받으려고 했다면 이렇게 낮은 등급의 가이드가 있는 곳에 올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야.”
신은혜는 배연우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권호은의 등급은 D였고 김세희는 C로 높지 않은 등급이었다.
“가……, 가이딩이 목적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지난번 홍보부 영상에 대한 복수라든가…….”
가만히 듣고 있던 남운수가 이야기가 한참이 진행된 뒤에야 입을 뗐다. 호은은 남운수의 말을 들으며 지난번 이사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미끼를 문 걸까요.”
“상황만 봐서는 미끼를 물고 덫도 놓고 간 느낌인데 말이다.”
아직 녹지 않아 기다란 빙판길이 만들어진 바닥을 본 배연우는 빙판이 멈춰진 지점을 신발로 툭툭 건드렸다.
“반설아 급이면 오른팔이 왔다 간 거나 마찬가지인데. 너 다치지는 않았어?”
“네? 아…… 다행히도 남자분이.”
호은은 말을 하다 멈췄다. 그러고 보니 남자가 이능력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라며 뒤늦게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비싼 금액을 일반인이 암암리에 사는 것이 역시 합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남자분이……. 들어와서 놀랐는지 반설아가 도망쳐서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말을 하면서 도인호 쪽으로 시선을 주자 짧게 시선이 마주쳤다 떨어졌다. 반짝 빛나 예쁘다고 생각한 노란 눈동자가 오늘만큼은 탁한 색으로 채도가 낮았다. 그것이 도인호의 기분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거짓말이 점점 늘어 가고 있어.’
양심에 찔린 호은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어김없이 시선을 돌려 버렸다.
“올 때는 포탈로 와 놓고 갈 때는 창문으로 뛰어나갔네.”
어느새 창가로 간 배연우는 깨진 창을 둘러보며 콧방귀 소리를 냈다.
“확인해 보니 밖에도 포탈진이 그려져 있더라고요.”
신은혜의 말에 배연우는 창가로 몸을 내밀어 잡초가 우거진 잔디를 내려다봤다.
“이번 일은 철저하게 계획된 거 같네.”
“……내, 내부에 배신자라도 있다는 걸까요…….”
남운수의 음울한 목소리와 함께 방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만약 남운수의 가설이 맞는다면 큰 문제나 다름없었다. 이번 일은 이사장 측근으로 이루어져 있어 신분이 보장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배신이라니.
“그거만큼은 아니길 바라야지.”
배연우는 담뱃갑을 찾다 뭔가 떠올랐는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포탈진 있었다는 곳 안내 좀 해 주시겠어요.”
“따라오시죠.”
신은혜는 소모품이 이리저리 널브러진 구석으로 홍보부 직원들을 안내했다. 포탈진이라는 게 무엇인지 몰라 질문할 타이밍을 보고 있던 호은은 붉은색 페인트 같은 걸로 원형이 그려진 바닥을 보며 이것이 포탈진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원형 안에는 그림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는데 인제 보니 그림이 아니라 언어처럼 보였다.
“순간 이동 에스퍼랑 다르게 포탈 에스퍼는 이렇게 자신만의 언어로 포탈을 열 수 있는 표식을 만들 수 있어.”
호은이 질문할 걸 미리 알기라도 한 듯 배연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런 표식을 포탈진이라고 부르는데 등급에 따라서 어디까지 이동할 수 있는지 다르지만, 표식이 세세한 걸 보니 제법 높은 등급일 거 같네.”
“그러면 저희도 이 포탈을 이용하면 반정부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건가요?”
“이렇게 훼손된 포탈은 이용할 수 없어.”
마치 누군가 일부러 짓뭉갠 것처럼 포탈진은 번져 있었다.
“CCTV 확인했을 당시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아 자연스럽게 훼손된 걸로 보입니다.”
“잔디 쪽은 어떤가요.”
“그곳도 이미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다만 해당 포탈진은 반설아의 이능력인 얼음이 녹아 지워진 거로 보입니다.”
신은혜의 말에 배연우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뱉었다. 기껏 현장을 찾아왔건만, 반정부가 치밀하게 준비했는지 얻어 낼 건더기가 없었다.
“여기서 뭘 더 찾기는 글렀네.”
배연우의 말에 남운수도 공감하는지 작은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조용히 신은혜에게 다가갔다.
“이번 일 정리한 보, 보고서는 언제쯤 받아 볼 수 있을까요…….”
“오늘 자정 전에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자연스럽게 배연우가 현장을 지휘해서 까먹을 뻔했지만, 홍보부의 팀장은 남운수였다.
호은은 왜 배연우가 팀장이 아니라 남운수가 팀장인지 순간 의아했다. 여러모로 볼 때 팀장 역할은 배연우가 더 어울렸다.
“마지막으로 수색 한 번만 더 하고 마무리하자.”
상황을 정리하듯 마무리 멘트를 건넨 배연우에게 홍보부 직원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
건물 수색을 다 하고 나자 시간은 어느덧 저녁을 가리켰다. 수색 중에 새로운 정보를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호은은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야 부끄러웠던 사냥꾼 옷에서 평범한 일상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클렌징 티슈로 화장을 지우고 민얼굴로 거울을 바라보자 오늘따라 수척한 남자가 거울에 있었다.
-똑똑
대기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호은은 거울 보던 것을 멈추고 문을 열었다.
“대리님이랑 팀장님은 일이 있으셔서 먼저 가신다고 합니다.”
“아. 따로…….”
문을 열자 도인호가 보였다. 바짝 마르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호은은 어색하게 눈을 굴렸다.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 모르겠다. 도인호는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걸까? 이를테면 촬영하는 거 왜 말 안 했어요? 라던가, 그동안 거짓말한 거 맞냐며 따지든가.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가만히 있으니 오히려 호은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무표정한 얼굴 속은 화나 있을까? 아니면 지난번처럼 걱정하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럴 줄 알았다며 실망했을까.
“밖에 차 있으니까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내가 운전해도 괜찮은데. 너는 일하고 온 거 아니야?”
“……일은 형도 했잖아요.”
“그렇긴 한데. 나는 별로 한 거 없어서 괜찮아.”
주차장에 도착한 순간까지 도인호는 고집스럽게 자동차 키를 건네주지 않았다. 호은은 어쩔 수 없이 조수석에 올라타며 자동차에 시동이 걸리는 것을 지켜봤다.
“인호야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네. 운전하는 거 괜찮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입에 무거운 자물쇠라도 걸린 것처럼 아까까지 잘만 움직이던 입술이 쉽게 벌어지지 않았다. 애꿎은 바지를 손으로 쥐었다가 떼자 주름이 잡혔다.
시간이 지나면 바지 주름은 사라질지 몰라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 전까진 주름이 져 보기 흉한 모습일 게 분명했다.
도인호는 항상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말하는 법이 없었다. 먼저 물어봐 줘야 그 속내를 아주 조금 꺼내 보일 뿐이었다. 호은이 물어보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속으로 꼭꼭 감추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도인호의 주름이 하나씩 늘어나면 나중에 가서 주름을 폈을 때 과연 자국이 하나도 남지 않을 수 있을까.
호은은 시선을 피하고 있는 매정한 도인호의 옆태를 바라봤다. 건조한 얼굴은 마치 옛날의 도인호를 보는 것만 같았다.
운전대를 잡은 도인호가 출발하려고 하자 호은은 운전대에 올라간 손을 급하게 부여잡았다.
“인호야. 나는 이 상황이 괜찮냐고 묻는 거야.”
의지와 상관없이 목소리가 떨렸다. 석고상처럼 정면만 응시하던 도인호가 드디어 호은의 눈을 제대로 마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