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인 과학기술을 통해 강대한 나라가 되었지만, 강력한 신분제와 구태의연한 관습이 남아 있는 이곳. 그레이트 레본. 레본에서도 가장 구태의연한 방식을 고수하던 시골 영지에서 평생 살아왔던 공녀 엘리자베스 클레몬트는 장원의 몰락과 동시에 수도로 올라온다. 처음 타보는 증기 기관으로 달리는 기차, 빽빽한 건물들, 오수의 더러운 냄새— 그 요란스러운 풍경 속에서 만난 소년, 케이 하커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케이는 그녀를 경멸하기만 할 뿐. “귀족 아가씨는 같은 나라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듣나?” “케이 하커, 저 건방진 자식을 저에게 주세요.” 공녀로서의 권력을 휘둘러 케이와 결혼한 엘리자베스는 어쩌면 그의 경멸이 사랑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지만……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감히 나와 내 아버지가 주는 돈을 쓰면서 뒤로는 친정과 다른 짓을 꾸미다니.” 사회주의자라는 누명으로 엘리자베스의 친정을 파멸로 몰고 간 케이의 증언. 남편의 배신에 절망한 엘리자베스는 길거리를 떠돌다 사고를 당하고, ‘엘 선생’이라는 까마귀 가면을 쓴 의사에게 구조된다. *** ‘몰록’이라는 괴물의 뒤를 쫓고 있는 엘 선생. 엘리자베스는 그를 돕다 그만 몰록에게 물린다. 6개월의 시한부 인생. 엘 선생은 죽어가는 엘리자베스를, 치료제가 딱 하나 남아 있던 1년 반 전으로 되돌려보낸다. 엘리자베스가 돌아온 과거는 케이와 결혼하기 열흘 전. 이제 엘리자베스가 해야 할 일은 엘 선생을 찾아 몰록 치료제를 받아내는 것. 그리고 케이 하커와의 파혼이다.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 것들은 사랑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케이 하커.” 그 순간, 케이는 지독한 후회의 늪으로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