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54화 (453/508)

454. 만찬을 즐겨라

대청에서 닭다리를 쥐고 뜯어먹던 거지들, 국물을 사발째 들이켜는 거지들, 술병을 나발 부는 거지들.

수많은 거지의 시선이 남궁천에게 향했다.

아주 짧은 순간 정적이 찾아왔지만 곧 왁자해졌다.

그리고 거지들 중 몇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뜯어먹던 닭다리로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네놈은 누구냐?”

“아이고, 다 삼키고나 말씀하시지. 이리저리 다 튀네. 더럽게.”

“뭐야?”

거지가 눈을 부라리자 남궁천이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강호신룡 남궁천입니다.”

“강호신룡? 남궁천? 그보다 그런 낯간지러운 별호를 제 입으로 말하는 새끼가 어디 있어?”

“그러게 말이우.”

거지 둘이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면서 왁자하게 웃는다. 그러다가 닭다리를 한 입 물어뜯은 거지가 여전히 입을 질겅거리면서 소리쳤다.

“신룡이고 나발이고 간에. 지금 누구더러 거지라는 거야? 듣는 거지 기분 나쁘잖아!”

“거지를 거지라고 불렀을 뿐인데 어찌 거지라고 불렀냐고 물으시면 할 말이 없는데요.”

“뭐야? 이놈이 세간에서 아주 떠받들어 주니까 진짜 용인지 도롱뇽인지 구분을 못 하는구나. 네놈은 개방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얻다 팔아먹은 게야? 혼나 볼 테냐?”

“나참, 거지한테 먹을 것 주고 혼도 나야 합니까?”

“뭐가 어째? 네가 먹을 걸 언제 줬어?”

남궁천이 턱짓으로 닭다리를 가리켰다.

“그거 내가 준 건데.”

“뭐? 네가 왜? 여기가 너랑 무슨 상관인데?”

“이런. 실망입니다. 그 정도 정보력도 없으면서 개방 선배님 대접 받기는 어렵죠. 이래서야 거지 새끼들하고 다를 바가 없잖아요.”

“뭐, 뭐라? 노오오오옴!”

거지가 버럭 고함을 내지르면서 달려들려는데, 마침 박 바가지 하나가 맹렬하게 날아오는 게 아닌가?

“헛!”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낀 거지가 허리를 휘청 젖히더니 팔꿈치를 휘둘러 바가지를 깨부쉈다.

콰장!

놀란 거지가 돌아보자, 술병을 나발 불던 만취개가 딸꾹질을 하고는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이놈아! 누구 손님인지도 모르고 설쳐대느냐!”

“장, 장로님.”

“썩 물러나라.”

“예, 장로님.”

닭다리를 든 거지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얼른 자리를 떴다. 그러면서도 한 손으로는 닭다리를 꼭 쥔 채 입으로 가져가는 걸 보면 확실히 대단한 거지 근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건 배워야 해.’

남궁천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만취개를 보았다.

그러고 보면 거지들은 하나같이 집착이 심하다.

만취개는 술에 대한 집착이 심하고, 대부분의 거지들은 먹거리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물론 옷가지나 돈에 대한 집착이 심한 녀석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거지들이 욕망도 없고 그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낸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 그들의 삶을 엿보면 집착 투성이다.

거기에 개방 방도들은 정의와 정보에 대단한 집착을 보이지 않던가?

저런 집착이 바로 오늘날의 개방을 만든 것이리라.

뜻하지 않게 상념에 빠졌던 남궁천은 만취개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이야, 모처럼 우리 거지들이 포식을 했구나. 한데 당연히 공짜는 아닐 테지?”

“공짭니다.”

“흥!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것이냐?”

“믿지 않아도 어쩔 수 없고요. 그런데 정말로 공짜로 접대해 드리는 겁니다.”

“좋다. 그럼 우린 맛있게 처먹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구나.”

“물론이죠. 그럼 맛있게 처드세…… 아니, 드세요.”

“흐음. 정말 이대로 끝이라고?”

“그럼요? 돈이라도 받을까요? 거지한테요?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게 낫지 않겠어요?”

“호오?”

만취개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정보를 원하는 게 아니더냐?”

“무슨 정보요?”

“궁금할 테지. 지금쯤 무림맹이 어떤 상황인지.”

“대략 알고 있습니다. 아니, 짐작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제가 가정한 최악의 상황까진 가지 않았을 거라고 보고요.”

“호오. 어찌 그리 자신하느냐?”

“관상이 보이잖아요.”

“관상?”

“우 원주는 꼬장꼬장한 주름 사이마다 욕망이라는 걸 쑤셔 넣고 있으니, 적랑단이 없는 틈을 타서 뭔 짓이라도 벌이겠죠. 청풍 진인은 얼굴에 금칠하길 좋아하니 맹주 자리를 노릴 테고, 덕양은 뒷짐 지고 구경하면서 난장 일어난 걸 즐기니 역시 이래저래 부추겨 대겠죠.”

“흐음. 그런데 왜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한 것이냐?”

“공짜라니까요. 그냥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강호에는 개방 방도들만큼 주제와 분수에 맞게 사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클클클. 묘하게 마음에 들지만 기분 나쁜 말이다.”

“묘하게 모순되네요.”

“클클. 세상 이치가 원래 그런 거다. 깊이 이해하려고 할수록 모순에 빠지는 법이지. 그러니 대충 넘어가는 지혜도 필요한 법.”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즐기시길.”

말을 마친 남궁천이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불명회가 제공한 방 안으로 쑥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허어, 진짜로 가버리네?”

만취개가 홀로 서서 멍하니 중얼거리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알 게 뭐냐? 이놈들아! 다 공짜란다! 먹고 뒈진 놈이 때깔도 좋다고 했다! 실컷 퍼 마시자!”

“훌륭한 말씀입니다, 장로님! 우리도 때깔 좋아져 보자!”

“염병, 그건 먹는 거랑 상관없이 씻어야 하는 거 아녀?”

“킬킬! 알 게 뭐야? 당장 눈앞에 술과 고기가 넘쳐난다는 게 중하지!”

거지들이 다시 나발을 불며 술을 마시고 고기를 섭취하기 시작했다.

만취개도 자리에 앉아 술병을 나발 불면서 고기를 서너 점 집어다가 입에 털어 넣었다.

우물우물…… 꿀꺽!

콸콸콸콸……!

우물우물…… 꿀꺽!

콸콸콸콸……!

정말이지 만취개의 배 속으로 술이 끊임없이 들어갔다.

그렇게 마시고, 뜯고, 즐기고, 떠들고, 다시 마시길 반복했다.

그러다가…….

쾅!

마침내 만취개가 술병을 거칠게 내려놓자 거지들이 우뚝 멈추더니 만취개를 돌아보았다.

“니미럴, 맛있냐?”

“쩝…… 맛은 있는데…….”

“궁금하긴 하네요.”

“그래도 우리가 돈이 없지 체면이 없습니까?”

“먼저 가서 물어볼 순 없지요.”

“암. 중원 최대의 정보 조직 아닙니까요? 자존심을 지켜야지요.”

“그렇지. 우리가 술이 없지 체면이 없는 건 아니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만취개가 다시 술병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옘병할! 도대체 뭔 심보인지 모르겠다.

거지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시비를 거는 것 같더니, 또 다짜고짜 조건 없이 먹거리를 제공해 준 거라고?

그리 당당하게 구는 걸 보면 필시 뭔가 있다는 건데.

‘뭐지?’

쾅!

다시 그가 술병을 거칠게 내려두자, 다른 거지들이 어딘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바라본다.

“장로님?”

“염병, 내가 졌다. 가서 물어보고 오마.”

거지들 중 누구도 나서서 말리는 자가 없었다.

“빌어먹을 놈들. 궁금하면서 아닌 척은.”

“헤헤헤. 장로님이 나설 줄 알았으니까요.”

“궁금한 건 못 참으시잖아요.”

“쌍놈들아, 그것도 거지 근성의 일환이다. 네놈들은 거지 근성이 부족해.”

“새겨듣겠습니다요.”

헤실헤실 웃는 거지들을 뒤로하고 만취개가 행랑을 따라 비틀비틀 걷더니 남궁천이 들어간 방문을 확 열어젖혔다.

“이보게, 신룡!”

“아, 무슨 일입니까? 혹시 술이 부족한가요?”

남궁천이 빙그레 웃으며 묻자, 만취개가 피식 웃었다.

“됐네. 내가 졌네. 도저히 궁금해서 못 참겠으니 말해보게. 바라는 게 뭔가?”

“무슨 말씀을? 제가 바라는 게 어디에 있다고.”

“어허! 그만하자고 하지 않나! 자, 말해보게! 개방이 뭘 해주면 좋겠어? 말해봐! 무림맹에 가서 같이 싸워주길 바라나? 히꾹! 하지만 그건 해줄 수 없네! 우린 무림맹의 일에는 뛰어들지 않아. 언제나 중립이지!”

“누가 뭐랍니까?”

“뭐야?”

“말씀드렸다시피 먹거리는 그냥 제공해 드리는 겁니다. 개방 방도들이 겨우 먹을 거 한 번 줬다고 은혜 갚는 것도 웃기죠. 안 그래요? 빌어먹고 사는 게 늘상 있는 일인데.”

“거참 맞는 말을 묘하게 기분 나쁘게 한단 말이야.”

“뭐, 그것과 달리 거래를 제안해볼 수는 있겠군요?”

“거래?”

이미 만취개는 궁금증에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평소라면 거지에게 거래를 제안하다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며 거들떠도 보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남궁천의 입에서 도대체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커흠. 그래서 무슨 내용인가?”

“불명회에 대해 아시지요?”

“알다마다. 맹의 정보를 팔아넘기는 놈들이지.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자네가 그 불명회를 접수했다는 것도 알고 있지.”

“역시 개방이군요. 빠릅니다. 하지만 불명회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죠?”

“그래서 불명회의 정보를 공유하겠다, 뭐 그런 건가?”

“예. 물론 앞으로의 정보는 제공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지난 정보는 모두 취합해서 개방에 넘겨 드리지요.”

“클클클!”

만취개가 느닷없이 웃더니 허리를 꺾어들었다.

“난 또 무슨 소린가 했군. 신룡, 겨우 그 정도로 개방을 움직여 보려고 했단 말이지? 클클. 시도는 좋았어. 내 호기심을 자극해서 먼저 접근하게 만드는 건. 안 그랬으면 아예 듣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나, 개방은…….”

“아직 제 말 다 안 끝났습니다만.”

“흐음. 말해보게.”

“개방이 이번 무림맹 전투에서 같은 편으로 싸워주세요. 그렇게 한다면 지난 정보는 물론, 앞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드리지요.”

“자네, 본 방이 어떤 곳인지 모르나? 자네가 길을 안 열면? 본 방이 활동을 못 할까 봐?”

“아뇨. 제가 말하는 건 은유가 아니라 진짜 길 말하는 겁니다.”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볼멘소리를 내뱉은 만취개가 술병을 들고 나발을 불자, 남궁천이 귓가에 대고 뭔가를 속삭였다.

다음 순간,

“푸우우우우웃!”

만취개가 머금고 있던 술을 뿜어내면서 멍청한 표정으로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자네, 그게 정말인가? 등하로라고?”

“그렇습니다. 무한 전역에 등하로가 있죠. 어때요? 개방과 이 등하로를 공유한다면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단 격이 아닐까요?”

꿀꺽……!

만취개가 침을 삼키고는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이건 정말 대단한 정보다.

무한의 지하에 등하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니!

어째서 지금까지 그 사실을 몰랐을까?

무림맹이 지금까지 버틴 것도 이제야 확실히 이해된다.

그러고 보면 불명회라는 놈들은 중원의 소식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로지 무림맹만 광적으로 집착하며 파고, 또 팠다.

그런데 이것들이 땅까지 팠을 줄이야!

남궁천이 쐐기를 박았다.

“그 등하로가 맹까지 연결되어 있지요. 어떻습니까? 이 기회에 본 맹과 손을 잡지 않으시겠습니까?”

“자네, 그걸 내게 알려줘도 되는가? 만약 내가 거절한다면?”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떡 아닙니까? 게다가 등하로의 존재를 안다고 해도 써먹지 못하면 무소용이죠.”

“하나 불명회가 더 이상 등하로를 써먹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는 있겠지.”

“등하로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 그럴까요?”

‘이 뱀 같은 녀석!’

마치 자신의 속을 훤히 보는 것 같은 남궁천을 보면서 만취개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이제 겨우 약관을 채운 청년의 뱃속에 능구렁이가 수십 마리 똬리를 튼 것만 같지 않나?

“하면 본 방이 언제부터 그 등하로를 쓸 수 있겠나?”

“쇠뿔도 단김에 빼야겠죠. 이번 전투에 바로 써먹죠. 등하로를 통해서 이동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걸로 개방과 불명회가 손을 잡는 겁니다. 어때요?”

꿀꺽……!

만취개가 다시 침을 삼키다가 얼른 술병을 들어 나발을 불렀다.

하필이면 술이 다 떨어져서 몇 방울만 혀를 축였다.

“흐음. 만약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 개방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네.”

“하지만 무림맹이 지켜주겠지요. 무림맹이 불명회를 인수한 셈이니까요.”

“클클. 그렇군. 본 방과 손을 잡는 대신, 만약 본 방이 배신하면 그 사실도 없어지는 셈으로 만들 생각이군.”

“뭐, 그땐 개방과 불명회가 하나가 되었다는 소문이 퍼지겠죠.”

“크으! 묘수로다! 참으로 기가 막힌 방법이군.”

남궁천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불명회와…… 아니, 본 맹과 손을 잡아보시겠습니까? 그럼 등하로는 바로 공유됩니다.”

일부러 불명회와 무림맹을 동시에 거론했다.

만약 동맹을 맺었다가 배신을 할 경우 세간에는 불명회와 손을 잡은 것처럼 만들 수 있다는 협박이었다.

“하나 이건 방주에게 보고를 드릴…….”

“에이, 왜 이러세요. 무림칠성께서. 장로님이 결정하면 방주님은 대부분 동의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요.”

“끄응. 징그러운 놈.”

잠시 후 만취개가 빈 술병을 나발 불고는 말했다.

“하자, 해! 까짓것!”

“잘 생각하셨습니다.”

남궁천이 빙그레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