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425화 (424/508)

425. 정화 작업

묘한 기류가 흘렀다.

능글맞게 웃는 남궁천과 어딘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는 위종악.

그리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부지단주와 호신위 둘.

분명 이들 사이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당예설은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는 남궁천을 보았다.

‘뭔가 있는 건가? 설마 남궁천은 지금 위종악을 의심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위종악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 수도 있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의심을 드러내는데, 당사자가 모를 수는 없지 않겠나?

하면 왜 이렇게 드러내 놓고 의심을 한 것일까?

‘먼저 움직이는 걸 기다리는 모양이구나.’

대략 여기까지 유추한 당예설이 분위기가 더 어색해지기 전에 한 걸음 나섰다.

“일단 적랑단주가 왔으니 지단주님은 당장 내일이라도 신무 지역으로 안내해 줄 수 있겠군요?”

“끄음. 불가능할 건 없지요. 하지만 당 가주님도 어쩌질 못한 곳입니다. 용취곡은 그런 곳입니다. 적랑단주가 왔다고 해서 뭘 해결할 수나 있을 것 같소?”

마지막 말을 뱉으면서 위종악이 피식 비웃음을 담았다.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저는 반드시 지단주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같이 가주실 거죠?”

“그렇게까지 부탁하니 어쩔 수 없구려. 미약한 힘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소. 하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용취곡은 죽은 자의 영역이오. 산 자는 들어갈 수가 없소. 그러니 우리는 입구까지만 이동할 거요. 당 가주가 어디로 들어갔는지만 알려주겠소.”

“으음. 용취곡 안으로 함께 들어가지 않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백옥지단이 텅 비면 그것도 문제일 테니까 이해해 드릴게요.”

“미리 말해 드리건대, 조심하셔야 할 거요. 용취곡은 귀신의 땅이오. 지금까지 그곳에 들어갔다가 무사히 돌아온 자가 없소.”

“으으으, 엄청 무시무시하군요! 그런데 일단은 괜찮을 것 같아요. 거기가 정말 귀신의 땅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러자 이번엔 당예설이 불쑥 나서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아, 아직 모르셨어요? 사실 본 단에 협조하는 사람이 한 명 있거든요.”

“협조하는 사람? 누구?”

그러자 남궁천이 호신위 둘을 돌아보며 가볍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가서 백묘를 끌고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단주님.”

두 호신위가 깍듯하게 대꾸하고는 몸을 돌려 나갔다.

잠시 후 유현이 백묘를 거칠게 끌고 들어왔다.

반항하듯 몸부림치는 백묘를 앞에 세운 후, 오금을 걷어차 단박에 쓰러뜨린 유현이 포권을 하며 인사했다.

“인사드립니다. 적랑단 이대주 유현입니다.”

“유현이라면…… 화산의 그 후기지수?”

위종악이 눈썹을 꿈틀거리고 말하자,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미천한 이름을 기억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허허. 어찌 그 명성을 모를 수 있겠소?”

위종악이 일부러 남궁천이 들으라는 듯 호들갑을 떨었다.

물론 남궁천이 그런 정도로 빈정이 상할 그릇은 아니었다.

때문에 남궁천은 가볍게 무시하고는 당예설을 보며 말했다.

“이 여자가 바로 백묘입니다. 마교에서 꽤나 중용되던 여자죠. 이 여자 말로는 용취곡이 마교의 분타라고 하더군요.”

“마교!”

당예설이 그제야 납득이 된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

사실 그녀는 귀신 따위는 애초에 믿지도 않았다.

이 세상 모든 현상은 결국 논리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한데 귀신이라니.

허황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곳에 마교가 있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사천당가주마저 제압할 수 있는 자들이라면 마교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마침 듣고만 있던 위종악이 백묘를 가만히 노려보며 말했다.

“하나 저 여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소? 일부러 우리에게 혼란을 주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뇨, 백묘는 실제로 우리와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백묘에게 한 가지 약점이 있는데, 그걸 놓고 거래를 한 셈이죠.”

“약점? 그게 뭐요?”

“죄송하지만 그건 기밀이라서요. 흐흐.”

남궁천이 능글맞은 웃음을 짓자, 위종악이 코웃음을 치고는 고개를 돌렸다.

“뭐, 알아서들 하시오. 어쨌거나 나는 당 가주가 들어간 곳까지만 알려 드릴 테니.”

“그거면 충분하죠.”

남궁천이 씨익 웃었다.

“그런데 저 여인은 어찌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거요?”

“아, 마인인 만큼 혹시나 여러분들을 현혹시키는 말이라도 지껄일까 봐 아혈을 점했거든요.”

“그렇군.”

위종악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면서도 백묘를 빤히 노려보았다.

백묘 역시 위종악을 매섭게 노려보면서 어금니를 꾹 씹었다.

* * *

침상에 드러누운 남궁천이 주먹만 한 호리병을 던졌다 받길 반복했다. 그는 조금 전까지 만나서 대화를 나눈 위종악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 집중하고 있는데, 마침 기척이 들리면서 일대주 손우곤이 들어왔다.

“단주님, 말씀하신 대로 백묘는 지단 뇌옥에 가둬두었습니다.”

“잘했다.”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

“혹시 지단주가 마교와 내통하는 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아, 그렇군요.”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손우곤이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만약 지단주 위종악이 마교와 내통하고 있다면 이곳에서의 싸움이 생각보다 더 힘들어질 수 있기에.

손우곤이 다소 긴장을 풀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지단주에게 까칠하게 대하셨습니까? 유현 대주에게 전해 듣기로는 거의 마인 취급을 하셨다고 하던데.”

손우곤이 툴툴 웃으며 말하는데, 남궁천의 입에서 경악할 만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마인이니까.”

“예?”

“지단주가 마교와 내통하는 무림맹원이 아니라, 그냥 그 새끼가 마인이야.”

“예에에엑?”

저도 모르게 비명처럼 소리 지른 손우곤이 얼른 입을 틀어막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는 다그치듯 물었다.

“단주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갑자기 지단주가 마인이라니요?”

그러자 남궁천이 손우곤처럼 목소리를 잔뜩 낮추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줄까?”

“그, 그게 뭡니까? 이젠 듣기가 두려워지는군요.”

“무림맹 총관도 마인이야.”

“뭐라구욧!”

손우곤이 이번에도 버럭 고함을 내지르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가 엉거주춤 일어나서는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궁천이 피식 웃었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여기 우리밖에 없는데.”

“허어. 지금 저한테 농담하시는 거죠?”

“내가 이런 걸로 농담할 것 같아?”

“그, 그럼 정말로 총관이 마인이라는 말씀입니까? 대체 어떤 근거로요?”

“그 전에 내가 예언도 해볼까?”

“아뇨. 하지 마세요.”

“왜?”

“정말 일어날까 봐 겁납니다.”

“무슨 일일 줄 알고?”

“무슨 일이든 안 좋을 것 같습니다.”

“그새 촉이 늘었어.”

“주인 닮아가는 법이죠.”

“좋은 현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특별히 예언을 해주지.”

“듣고 싶지 않은데…….”

“거참, 사내가 그리 맘이 약해서야.”

“뭐, 뭡니까?”

“오늘 밤 날 암살하려고 두 사람이 올 거다.”

“이젠…… 놀라기도 지치는군요.”

“그 두 사람이 누군줄 알겠어?”

잠시 생각하던 손우곤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잠룡관에서…….”

“그래. 그 두 아들이지.”

“그런……! 하면 왜 그들을 받아들이신 겁니까? 다 아시면서? 아니, 그보다 어떻게 그리 빨리 아셨습니까?”

“우리가 이동하는 경로에 대해서는 맹주님과 총관만 알고 있던 극비 사실이야. 백묘를 이송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동 경로를 밝히지 않았거든. 그럴듯하지?”

“하지만 그게 총관의 행동을 파악하기 위한 덫이었군요?”

“맞아. 그런데 마침 여길 오는 도중에 잠룡관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지. 이백 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잘 수 있는 곳을. 캬, 대단하지 않아?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확실히 이백이 넘는 인원을 한 장원 안에서 재울 수 있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우연이라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긴 하다.

“하면 단주님께서는 일부러 계속 그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고 고집부린 겁니까?”

“당연하지. 솔직히 무인이 노숙을 좀 하면 어때? 나 때는 말이야, 대충 도망 다니다가 대충 거적때기 하나 대충 깔고 자빠져 자고, 대충 일어나서 운기조식하면 몸이 개운해지고 그랬단 말이지.”

‘아니, 그보다 도망은 왜 가냐고요. 그리고 나이도 얼마 안 드신 분이 나 때라고 해봐야…… 끙.’

손우곤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궁천은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그런데 왜 굳이 이백 명이나 되는 인원을 한 군데에 재우려고 했겠어?”

“총관과 내통하는 또 다른 인물을 색출하려는 속셈이었군요.”

“그래. 총관이 마교의 간자이거나 마인이라면, 분명히 뭔가 손을 쓸 테니까. 왜냐? 분타가 위험한 순간이잖아. 나는 총군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거든. 이 일에 마교가 개입되어 있다는 걸.”

“하면 잠룡관주가 마인이라는 말씀입니까? 이곳 지단주처럼 내통하는 것을 넘어서 정말로 마교도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전에 총군사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은마령이요?”

“그렇소. 본 당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마교의 간자를 은마령이라고 부르고 있소. 그들이 평범한 백도 무인의 행세를 하고 있을 거요.”

“흐음. 하면 본 맹에도 은마령이 있겠군요.”

“아마도.”

“은마령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나요?”

“본 당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은마령도 계급이 있소. 특급, 일급, 이급…… 순으로. 상위 계급의 은마령일수록 다른 은마령을 알아볼 수 있소.”

“그럼 본 맹에서 꽤 높은 지위를 가진 자가 은마령이라면…….”

“특급일 가능성이 높지. 왜, 염두에 둔 자라도 있소?”

“아뇨, 일단은 좀 지켜봐야겠습니다.”

남궁천의 말을 들은 손우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총관이 은마령이라니…….”

“이들의 특징 중 하나가 마공을 일절 익히지 않는다는 점이야. 바로 총관처럼.”

남궁천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손우곤이 긴장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하지만 위종악은 정말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듣고 보니 잠룡관주는 충분히 의심할 만한 구석이 많은 것 같습니다. 두 아들이라는 호위들도 관주와 별로 닮지 않은 것 같고.”

“역시 네가 봐도 안 닮았지?”

“예, 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뭐, 네 말대로 위종악이 마인이 아닐 수도 있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니까.”

“그럼 위종악은 주군을 굉장히 오해할 수도 있는…….”

“그럼 뭐 어때? 날 굉장히 성격 좋은 개새끼라고 생각하겠지.”

“아, 예.”

“하지만 마인이라면 오늘 밤에 바로 움직일 거다. 내가 그만큼 불을 지펴놨으니까 이젠 활활 타오를 일만 남은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본인들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 테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손우곤이 다시금 긴장한 표정으로 묻자 남궁천이 피식 웃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불나방들이 달려들겠다는데 내가 안 괜찮을 건 뭐야? 이제부터 그 장관을 지켜보기만 하면 될 일.”

남궁천의 입매가 묘하게 비틀렸다.

* * *

어두운 밤.

지단주의 집무실 후원에 세 사람이 은밀하게 모였다.

바로 지단주 위종악과 남궁천의 호신위 두 명이었다.

위종악이 호신위 두 명을 보고 나직이 일렀다.

“아무래도 남궁천이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다. 그렇다면 차라리 오늘 밤에 처리해 버리도록.”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 내일이면 지단을 떠나 용취곡으로 가게 생겼는데, 뭘 더 지켜봐? 바로 실행해.”

“알겠습니다. 하면 백묘는…….”

“진짜 배신인지 아닌지 내가 파악한 후에 알아서 하겠다. 너희들은 너희들이 할 일이나 해라.”

“복명!”

다음 순간 호신위 두 명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본 위종악은 곧 뇌옥을 향해 잰걸음을 놀렸다.

‘백묘, 당신이 정말 본 교를 배신했다면 용서치 않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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