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 정화 작업
‘대가리를…… 박아?’
뭐, 이런…….
위종악이 얼굴을 푹 찡그리고는 남궁천을 바라보았다.
이런 인간이 정말 최근 무림맹을 발칵 뒤집어놓았다는 그 적랑단주라고?
이렇게만 봐선 그저 뒷골목 파락호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품위고 나발이고, 그저 암흑 속에서 거칠게만 살아온 하류 인생의 결정체를 보는 것만 같다.
남궁세가와도 어울리지 않는 언행이며, 적랑단주와도 어울리지 않는 언행이다. 당연히 강호신룡이라는 별호와는 일절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저 자세는 또 뭔가?
짝다리를 짚은 채로 주둥이에 육포를 문 것인지 연신 질겅질겅 턱을 움직이면서 껄렁하게 군다. 가래침만 뱉지 않았을 뿐,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게 분명하다.
살다 살다 별…….
“뭐 하세요?”
“뭐요?”
“대가리 안 박을 거예요?”
“진심이오?”
이쯤 되자 위종악도 은근한 분노가 일어나서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그래도 강호에서 구를 만큼 구른 그였다.
어지간한 격장지계에는 넘어가지 않을 정도의 수양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저 육포 씹는 주둥이를 보니 뱃속에서부터 욱하는 심정이 치민다.
남궁천이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말을 잇는다.
“그럼? 진심이 아니면 농담으로 보여요? 이런 엄중한 시기에?”
“…….”
위종악의 표정이 이젠 거무죽죽하게 물들었다.
칼만 뽑지 않았을 뿐이지, 살심이 무럭무럭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기로 드러내진 않았다. 아직은 그 정도의 분별력은 있었다.
“과연. 확실히 치안을 잘 다스리지 못한 책임은 져야 할지도 모르겠소. 하나 그건 맹주님을 뵙고 말씀드릴 일. 어째서 내가 단주 앞에서 벌을 받아야 하는 거요?”
“그야 내가 맹주님 대리로 온 것이니까.”
남궁천이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더니 위종악에게 휙 집어 던졌다. 얼른 손을 뻗어 서신을 낚아챈 위종악이 글씨를 차근차근 읽어갔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신무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적랑단을 파견하니, 지단주는 적랑단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사건을 해결하라는 지령이었다.
위종악이 피식 웃고는 서신을 접었다.
“협력하란 말은 있으나, 단주를 맹주님 취급하라는 말은 없소만?”
“흐음. 그래서 대가리를 안 박으시겠다?”
“못하겠다면?”
“어…… 그럼 처맞아야 하는데.”
아니, 뭐 이런 개새끼가……!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자 위종악의 뺨이 연신 씰룩였다.
이 꼴통 같은 새끼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이지 적랑단주만 아니었다면 진즉 반병신을 만들어 버렸을 것 같은데.
“후우. 단주, 이런 식으로 나오면 본 지단은 적랑단에 협조하기가 힘드오. 신무 지역에서는 불가항력에 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소. 그야말로 기이한 현상이오. 오죽하면 관에서도 나서지 않겠소?”
“에이, 말은 바로 하셔야죠. 관에서는 관할 밖의 문제니까 나서지 않는 것이고. 무림맹이 이곳에 지단을 세운 것은 신무 지역까지 담당하란 뜻인데. 그걸 거기에 갖다 붙이면 쓰나?”
“보시오. 본 지단에 병력이 얼마나 되는 것 같소? 신무 지역을 순찰하는 청운대(靑雲隊)가 오십, 백옥현의 치안을 담당하는 백운대(白雲隊)가 삼십, 그리고 본 지단에 상시 주둔하는 수문조가 이십이오. 딱 백 명이지. 그에 반해 신무 지역이 얼마나 넓은지는 아시오?”
“그런데 신기하게도 청운대 오십 명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줄지 않았군요? 아주 안전하게 지내셨나 봐요?”
“수하들을 잘 지켜낸 것도 문제란 말이외까?”
“뭐, 길게 말할 것 없죠. 대가리를 안 박으시겠다니까 처맞는 수밖에.”
말을 마친 남궁천이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지켜만 보던 당예설은 봉목을 부릅뜨고는 남궁천을 보았다.
‘진짜로 때리려고?’
그녀가 어리둥절하는 사이, 위종악도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단주! 이런 경우가 어디에 있소? 당장 멈추지 않으면……!”
“미안합니다. 내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건 싫어해서!”
쉬이이이이잇!
순간 남궁천이 전광석화와 같이 일장을 뻗어냈다.
지켜만 보던 당예설이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읏!”
당황한 위종악도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내면서 남궁천의 일장을 받아냈다.
뻐어어어어엉!
콰콰콰콰콰콰!
응축된 기운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기풍이 거칠게 불어나갔다.
그 바람에 당예설은 내공을 끌어 올리면서 몸을 보호할 정도였다.
집무 책상에 놓인 책들이 찢겨 날아가고, 탁자에 놓였던 다기도 아무렇게나 날아가 깨졌다.
콰장창창!
반쯤 열려 있던 창문은 기풍을 이기지 못해 완전히 뜯겨 날아갔다.
촤츠츠츠츠츳!
서로의 공력에 떠밀린 두 사람이 바닥에 시커먼 발자국을 남기면서 두어 장 정도 멀어졌다.
위종악이 욱신거리는 팔을 살짝 돌려보고는 버럭 외쳤다.
“단주! 이게 대체 무슨 짓……! 쿨럭!”
한 차례 기침을 토해낸 그가 시커먼 탁혈을 게워냈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그가 소매로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남궁천은 손바닥을 펼쳤다 쥐었다 반복하면서 씨익 웃었다.
“이야, 역시 지단주님이십니다. 공력이 대단하신걸요.”
“이 무슨……!”
위종악은 콧잔등을 팍 일그러뜨리며 남궁천을 노려보았다.
가벼운 내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는 남궁천을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욱 당당한 표정으로 남궁천을 노려보고 있었다.
‘제법 한 수가 있었구나. 하지만…….’
감당 못 할 수준은 아니다.
자신이 짐작한 남궁천의 무위가 오(五) 정도라면, 실제 손을 섞으면서 깨달은 것은 칠(七) 정도에 해당했다.
남궁천이 삼 할의 실력을 숨겼다고 생각해도 십(十)을 넘기진 않는다.
‘조금 밀리는 수준으로 손을 섞으려고 했는데, 내상을 입어버렸군. 그나저나 정말로 다짜고짜 공격을 해올 줄이야.’
사실 위종악은 남궁천이 오기 전에 은밀하게 날아든 전서 한 장을 받았다.
그곳에 적힌 내용 중에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다음과 같았다.
약관의 나이라고 절대 무시하지 말 것.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성격이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사람의 신경을 긁어놓는 특징이 있음.
무위는 상당한 수준으로 무림칠성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
무림칠성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약관의 신룡.
이 부분을 조금 더 유심히 봤어야 했던 걸까?
무림칠성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만큼 떡잎이 보여서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전서에 무림칠성을 이긴 자라고 명시되어 있진 않았으니까.
하긴, 약관의 젊은이가 무림칠성을 이길 수는 없을 테고.
어쨌거나 그럼에도 자신이 방심한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이렇게 내상까지 당한 것을 보면.
한편 남궁천은 손을 탁탁 털더니 위종악에게 다시 성큼성큼 다가왔다.
위종악이 살짝 긴장한 얼굴로 은밀하게 내공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이른 남궁천이 마침내,
척!
느닷없이 포권을 하더니 어딘지 얄밉게 웃는 게 아닌가?
“이거 초면에 결례를 저질렀네요. 사실 맹주님으로부터 은밀한 지령을 받았거든요.”
“은밀한 지령?”
“예, 지단주님이 마교의 간자 즉, 마인이 아닌지 확인해 보라는 지령이 있어서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손을 섞은 것이니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길.”
“…….”
“다행히 지단주님은 마공을 전혀 익히지 않으셨군요? 이렇게 반듯한 지단주님이시니 앞으로는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겠어요.”
“허……!”
위종악이 다소 허탈한 심정으로 헛바람을 뱉자, 남궁천이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느닷없이 손을 직접 섞어야 본능적으로 마공이 나올 것 같아서요. 뭐, 지단주님도 가만히 서 있다가 처맞긴 싫을 테니까.”
“그래서 격장지계까지 펼쳤던 것이오?”
“예,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
남궁천이 배시시 웃는다.
그 모습에 위종악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때마침 문이 벌컥 열리더니 세 사람이 앞다투어 뛰어 들어왔다.
“지단주님! 괜찮으십니까?”
“단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들은 바로 부지단주와 남궁천의 호신위들이었다.
특히 남궁천의 호신위들은 이번 여정 중에 합류한 인물들로 잠룡관주의 두 아들이었다.
부지단주는 나이가 서른 줄을 겨우 넘긴 것으로 보였는데, 꽤나 다혈질인지 엉망진창이 된 실내를 보자마자 무작정 검부터 뽑아 들었다.
차아앙!
“이게 무슨 짓이오! 아무리 적랑단주라지만 어찌 이곳에 와서 무례한 짓을 하는 것이오?”
그러자 남궁천의 호신위 두 명도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차차아앙!
두 사람은 일언반구도 없이 그저 팽팽한 살기만 드러내면서 부지단주를 겨누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마침내 위종악이 손을 들어 부지단주를 달랬다.
“됐네. 별일 아닐세. 침착하게.”
“하지만 지단주님이……!”
부지단주는 위종악의 소매가 피에 젖은 것을 보면서 입술을 짓이겼다.
위종악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사로운 오해였을 뿐일세. 이제는 그 오해가 풀린 듯하니 자네도 검을 내리게. 그렇지 않소? 단주.”
“물론이죠. 부지단주님은 노여움을 푸세요. 그저 한 가지 확인 절차가 있었을 뿐이니까.”
“확인 절차라니…….”
“차차 이야기해 드리지요.”
“끄음.”
부지단주가 영 불편한 표정으로 위종악을 보았다.
위종악이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부지단주도 검을 갈무리하고는 호신위 둘을 노려보았다.
이에 위종악이 호신위들을 빤히 보며 말했다.
“자네들은 언제까지 내 방에서 그 흉한 걸 들고 있을 건가? 진정 주인을 지키는 호위라면 무엇보다 분위기 파악을 해야 하지 않겠나?”
이쯤 되자 남궁천이 빙그레 웃으며 나섰다.
“죄송합니다. 제 호신위들이 워낙 유별나죠. 사실 발탁 과정도 좀 유별난 자들이라서.”
“그렇다고 계속 저렇게 시퍼런 칼날 들고 있게 할 거요?”
“물론 그건 아니죠. 그런데 말입니다.”
“뭐요?”
남궁천이 씨익 웃으며 호신위들을 돌아보다가 다시 위종악을 보았다.
“이들이 제 호위라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요? 제가 소개해 드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
“…….”
“후후. 단주께선 날 뭐로 보시오? 이래 봬도 칼밥을 삼십 년 넘게 먹었소. 척 보면 딱이지. 이 상황에서 호신위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달려오겠소?”
“대주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대주는 모두 다섯 명이라고 들었소만. 두 명만 달려온 것을 보고 호신위라 판단했소이다. 내가 틀렸다면 미안하오.”
“하하. 전혀 틀리지 않았습니다. 아주 정확하십니다. 다만 제가 맹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호위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단박에 호위라고 못 박아버리시니까 지단주님의 빠른 눈치에 그저 감복했을 뿐입니다.”
“칭찬으로 듣겠소.”
“물론이죠. 강호에서 칼밥 먹으며 살려면 눈치 백단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남궁천이 너스레를 떨며 웃어댔다.
그러더니 짐짓 엄한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두 호신위를 보며 나무랐다.
“어허, 왜 아직도 그렇게 흉한 걸 들고 서 있나? 어서 거두지 않고!”
“죄송합니다, 단주님!”
뒤늦게 호신위 두 명이 검을 검집에 갈무리했다.
남궁천이 둘을 빤히 바라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으음…….”
“……?”
호신위 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보자, 남궁천이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끙’ 소리를 내더니 위종악을 돌아보았다.
“혹시 얘네들 이름 아세요?”
“뭐라고? 아니, 내가 저치들 이름을 어찌 아오!”
“모르면 모르시지 뭘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
“아니,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단주 호신위 이름을 왜 나한테 묻는 거요?”
“에이, 저는 또 눈치가 겁나게 빠르니까 이름도 눈치껏 맞힐 수 있지 않을까 한 거죠.”
“그래서 이름이 뭐요?”
“음…… 사실 그게 제가 잘 기억이 안 나서요. 하하.”
“거, 무슨…….”
위종악이 미간을 푹 찡그리면서 남궁천을 노려보았다.
도대체 이 새끼 지금 나하고 뭐 하자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