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360화 (359/508)

360. 똥줄이 탄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맹주가 마교와 손을 잡다니!

어찌나 충격이 큰지 그 많은 사람이 모였음에도 대연무장은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했다.

그야말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무서운 침묵이 한참이나 흘렀다.

총관은 맹주의 최측근이었다.

기나긴 세월, 많은 사람들이 맹주의 측근에 머물다가 떠났다.

수석 호신위도 그랬고, 총군사도 그랬으며, 비선향주와 청랑단주, 적랑단주도 그랬다.

하지만 총관만큼은 아니었다.

묵천악이 맹주로 즉위하고 나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낸 자였다.

그야말로 맹주의 숨결 같은 존재가 바로 총관이었다.

한데 그 총관이 증언을 했다.

맹주가 마교와 손을 잡았다고.

그의 증언은 묵천악으로서도 충격이었는지 입을 딱 벌린 채 미동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관중석에 앉은 양민 중 한 명이었다.

“총, 총관님……? 혹시 실언을 하신 건 아닌지요? 방금 맹주님이 마교와 손을 잡았다고 하셨는데…….”

“그렇소. 사실이오. 맹주님은 그간 마교와 손을 잡았소.”

“그, 그럴 수가……!”

“맙소사……!”

“말도 안 돼!”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부정이었다.

바위처럼 단단했던 신뢰가 깨지는 순간, 가장 먼저 일어나는 반응이다.

그다음으로는 의문이 따른다.

“도대체 왜?”

“맹주님이 왜 마교와 손을 잡았다는 거지?”

“뭔가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술렁거림이 커지자 총관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맹주님은 강호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마교를 이용하신 것입니다.”

“강호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강호 평화를 지키는 데 마교가 왜 필요한 건데?”

“설마 공공의 적을 계속해서 살려두고 내부 결속을 다지겠다는 속셈이었나?”

누군가 제법 정확하게 맹주의 속내를 짚어냈다.

하지만 그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맹주라는 자가 그런 이유로 마교와 손을 잡았다는 게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문에 대한 납득되지 않는 대답.

이건 불의를 마주했을 때 정해진 수순이다.

그 어떤 이유도 정의로운 사회를 갈망하는 양민들한테는 어쭙잖은 변명과 핑계에 불과하다.

부정과 의문 다음으로 따르는 것은 바로 분노.

“강호 평화 좋아하시네! 만약 정말 그런 이유였다면 맹주는 내부 결속 따위가 아니라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마교와 손을 잡은 거겠지! 남몰래 돈을 보내주고 마을 몇 군데를 습격해 달라고 부탁이라도 했다는 것인가?”

“그 말이 사실이라면 맹주는 천벌을 받아야 한다!”

“난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 맹주님이 정말 그러셨다는 거야?”

“총관이 증언했잖아! 총관이 괜히 거짓말을 할 리가 있겠나?”

“이거 정초부터 무슨 날벼락이야?”

사람들의 성난 고함 소리가 귓가에 쟁쟁 울린다.

비틀……!

순간 균형을 잃은 묵천악이 가까스로 발을 디디며 중심을 잡았다. 몸이 흔들리면서 잠시 떠났던 정신이 돌아왔다.

그의 미간에 주름이 새겨졌다.

“이노오오옴. 총과아아아안!”

순간 그가 사자후를 터뜨리더니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파앙!

하지만 그의 신형이 허공을 가로지르기도 전에, 뒤이어 날아오른 남궁천이 손을 뻗어 어깨를 낚아챘다.

“이것 놔라!”

파라라라라!

묵천악이 순간 몸을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일장을 뻗었다. 남궁천이 얼른 왼손으로 장력을 뿜어내며 맞부딪쳤다.

콰아아앙!

“크읏!”

어깨가 빠질 것만 같은 통증에 묵천악이 바닥으로 내려서며 인상을 팍 구겼다.

탁!

단상 위로 가볍게 착지한 남궁천이 묵천악을 빤히 노려보았다.

“비선향주에 이어 총관마저 살인멸구하시려고?”

“갈! 비선향주는 살인멸구하려고 죽인 게 아니다! 향주는 사술에 당해서……! 설마?”

순간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묵천악의 얼굴이 대번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바보같이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남궁천이 진천랑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자신이 아닌가!

하데 어째서 남궁천이 흑무련과 손을 잡았을 거라는 걸 짐작하지 못했을까?

남궁천이 진짜 진천랑이면 가능성이 농후하지 않은가?

평생 무림공적으로 내몰렸던 진천랑이니 사파 무리와 인연을 쌓았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아니, 어쩌면 흑무련도 진천랑이 만든 건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묵천악은 짙은 패배감에 몸서리가 쳐지는 듯했다.

“네 이놈! 이게 전부 네놈의 짓이었구나! 진천랑! 네놈이 나를 죽이려고 함정을 팠구나! 이 때려죽일 놈!”

“맹주님. 이제 그만하시지요? 아무리 제 아버지가 밉다고 해도 이렇게 저까지 내모십니까?”

“닥쳐라!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네놈이 바로 진천랑이라는 것을! 오냐, 내가 오늘 반드시 네놈을 죽이고야 말겠다, 진천랑!”

“하아…….”

남궁천이 난감한 기색으로 한숨을 쉬는 사이, 묵천악이 바닥을 차고는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쉬이이이잇!

슈카앙!

검신이 그어지면서 벽라검과 부딪쳤다.

후아아아앙!

기풍이 사방으로 불어나가면서 관중석 양민들의 머리카락을 세차게 휘날렸다.

묵천악은 재빨리 몸을 빼내는 것과 동시에 다시금 검을 휘둘러 갔다.

까가가강! 깡! 깡!

연신 불꽃이 터지면서 눈으로 좇기 힘들 만큼 빠른 검격이 이어진다.

하지만 남궁천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모든 검을 막아냈다.

사실 이제 와서는 묵천악이 남궁천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쩌엉!

쿠콰콰콰콰콰……!

마침내 벽라검이 회심의 일격을 날리자, 묵천악이 대리석 바닥을 파헤치며 주르륵 미끄러졌다.

“헉,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쉰 묵천악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는 소리쳤다.

“진천랑! 네놈이 정녕 나를 죽이려드는구나!”

“맹주님. 왜 이렇게 자꾸 절 아버지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혹시 아버지께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요?”

“닥쳐라! 진천랑! 내가 네놈을 모를 줄 아느냐!”

파밧!

쒸아아아앙!

묵천악이 화살처럼 달려가자, 남궁천이 거의 똑같은 수법으로 마주쳐 달려왔다.

쩌엉!

마침내 검을 맞댄 상태에서 남궁천이 히죽 입매를 치켜 올렸다.

“영감, 하나만 묻자.”

“크읍……! 무슨……!”

“나를 왜 대살성으로 만든 건가? 설마 내 재능이 두려웠던 것인가?”

“역시 네놈은 진천랑…….”

“아아, 뭐 다 아는 사이에 새삼스러운 말은 그만하자고. 그럼 내가 진천랑이 아니면 누구겠나? 그건 영감도 잘 알잖아? 아니면 영감이 미친 건가?”

“닥쳐라…… 미치긴 누가 미쳤다고!”

카차앙!

묵천악이 휘두른 검에 벽라검이 밀려났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벽라검이 밀려난 게 아니라, 남궁천이 한 걸음 물러난 것이다.

순간 중심을 잃은 묵천악이 휘청거리는 사이 남궁천이 옆으로 돌아가서는 귓가에 속삭였다.

“클클클. 영감, 날 죽이면 다 끝날 줄 알았나?”

콰득!

남궁천이 광기 서린 미소를 짓더니 묵천악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크윽!”

졸지에 머리채를 휘어잡힌 묵천악이 치욕스러운 자세로 고개를 꺾어들고는 관중석을 보았다.

남궁천이 여전히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자아, 보라고. 영감을 보는 저 눈빛들을. 경멸 어린 눈빛들이지 않은가? 어떤가? 당신이 주무르던 세상이 당신에게 반항하는 느낌은? 똑똑히 기억해 둬. 저 표정과 시선들을.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이 순간을.”

“닥, 닥쳐라. 네놈은…… 죽었어야 했다.”

“그러니까 왜?”

“그거야 당연히……!”

일순 남궁천의 손아귀에서 힘이 풀리자, 묵천악이 일갈을 터뜨리며 돌아섰다.

“네놈이 초견파공안을 지녔기 때문이다!”

쒸아아아앙!

검강이 솟구치면서 그대로 남궁천의 허리를 가를 듯 들어온다.

남궁천이 바닥을 툭 찍어 차자,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간 검강이 이번엔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동시에 눈이 뒤집힌 묵천악이 급기야 내뱉어선 안 될 말까지 쏟아냈다.

“보아라! 네놈은 초견파공안으로 금세 내 무공을 복사하지 않았더냐? 그러니 네놈은 공공의 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네놈이 무림공적이 아니면 누가 무림공적이란 말이더냐!”

쩌엉!

다시금 묵천악의 검신이 벽라검과 부딪치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터뜨렸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관중석에 앉은 사람들이 귀를 틀어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남궁천이 묵천악을 보며 입매를 히죽 말아 올렸다.

“그럼 결국 나는 천살성이 아니었단 소린가? 영감? 그렇다면 이제부터 영감을 무림공적 일 호로 만들어주지.”

“뭔 개소리를……!”

“사흘.”

“뭣이?”

“앞으로 딱 사흘 남았다. 그때까진 살려 드릴게. 무림공적이 되어서 도망쳐 봐, 영감.”

“무, 무슨……!”

“말했잖아. 내가 당한 방식 똑같이 돌려주겠다고.”

“이익……!”

카차앙!

순간 검신이 서로 지나치면서 남궁천이 품에서 단검을 뽑아 휘둘렀다.

촤악!

예리한 소리와 함께 핏줄기가 튀었다.

묵천악이 분노를 터뜨리며 소리쳤다.

“닥쳐라! 무림공적은 네놈이다! 네놈을 무림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천하대살성이 아니라,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곧 강호의 평화를 위해서……!”

툭!

마침 어디선가 날아온 계란이 묵천악으로부터 두어 장 떨어진 곳에서 깨졌다.

묵천악이 꿈틀거리고는 돌아보는데, 갑자기 수많은 사람이 계란과 만두 따위를 던지는 게 아닌가?

툭! 투투툭! 투두두두둑!

“맹주! 그만하시오! 보기 역겹소!”

“천하대살성 진천랑이 그럼 사실은 천살성을 타고난 게 아니란 말이잖아!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서 강호 평화 때문이라니! 사람이 어찌 저리 뻔뻔하단 말인가!”

“우리가 그동안 바보같이 속았다! 맹주의 진짜 속내가 밝혀졌다!”

“무엇보다 마교와 손을 잡다니! 네가 인간이냐!”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는 너다! 왜 애먼 강호신룡을 탓하는 것이냐?”

“미쳐도 곱게 미쳐라!”

“남궁천을 보고 진천랑이라니! 억울하게 죽은 신룡의 아버지에게 미안하지도 않은가!”

“꺼져라! 맹주! 아니, 묵천악! 꺼져라!”

“꺼져라! 꺼져라!”

그야말로 성난 군중의 파도 같은 고함소리였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묵천악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렸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향해 환호와 찬사를 보내던 이들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하나같이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며 화를 내고 있다.

‘감히…… 나에게……?’

이 개돼지 같은 것들이 감히 나에게!

까드득!

어금니를 간 묵천악이 두 눈이 시뻘개져서 소리쳤다.

“갈! 이 개돼지만도 못한 것들이 그간 누구 덕에 평화를 누린 줄 알고……!”

툭! 투두두둑! 투두두두둑!

말을 마저 잇기도 전에 다시 온갖 잡기가 날아든다.

먹다 남은 과일, 씹다 뱉은 만두, 동강난 옥수수, 날계란, 양파나 당근 등.

“꺼져라! 맹주!”

“맹주를 옥에 가둬라! 강호의 수치다!”

“가둬라! 가둬라!”

이쯤 되자 염라단주도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남궁검이 그런 염라단주를 향해 나직이 일렀다.

“자네의 충성은 맹주에게 있는가? 맹에 있는가? 아니면 강호에 있는가?”

“……!”

느낀 바가 있었는지 염라단주가 흠칫거리고는 결심을 굳힌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맹주를…… 생포하라!”

“단, 단주님……?”

“뭣들 하느냐! 맹주를 생포하라!”

“존, 존명!”

대답을 마친 염라단원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고는 관중석 난간을 타고 넘으며 뛰어내렸다.

그 모습을 본 묵천악은 눈이 뒤집혀서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이 병신들아! 감히 누굴 잡으러 오겠다는 것이냐! 내가 너희들의 주인이다! 내 명을 들으란 말이얏! 저 남궁가 놈들을 조지란 말이다!”

하지만 염라단원들은 멈추지 않고 묵천악을 향해 점차 포위망을 좁혀왔다.

“이익! 이 병신 같은 것들이!”

묵천악이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물러났다.

성난 군중들, 자신에게 점차 다가서는 염라단원들, 그리고 배후에 버티고 선 원수까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압박이다.

사실 염라단원들쯤이야 혼신의 힘을 다한다면 뚫지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묵천악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지독한 소외감.

때문에 평정심마저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당할 수도 없는 노릇.

“진천랑! 두고 보자! 반드시 네놈만은 내 손으로 죽이겠다앗!”

파아앙!

바닥을 찬 묵천악이 쏜살같이 튀어나가면서 염라단원들을 마구 튕겨냈다.

묵천악이 순식간에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지만 남궁천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희미한 웃음을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맹주, 똥줄 타게 달아나라. 온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그 지독한 소외감을 한껏 느껴보라고. 당신 목숨이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아까울 지경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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