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333화 (332/508)

333.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들

콰장창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집무실의 잡기가 부서졌다.

콰앙!

급기야 육중한 소리가 울리더니 집무 책상마저 절반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맹주님! 괜찮으십니까?”

난데없는 소란에 총관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가 황급히 실내를 둘러보다가 책상 너머로 맹주를 발견하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주먹을 콱 말아 쥔 맹주는 분노로 떨고 있었다.

그야말로 맹주실에서 웅크리고 있는 짐승을 보는 것만 같다.

하나 결코 맹수는 아니다.

저 모습은…….

‘상처 입은 짐승.’

총관의 눈엔 딱 그렇게 보였다.

분노와 살기, 그리고 실망감이 뒤 섞인 기운이 실내에 살벌하게 휘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위협적이지 않다.

오히려 맹주에게서는 초조함과 모종의 공포심마저 느껴진다.

거듭된 계획 실패로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하긴 지금껏 맹주를 저렇게까지 궁지로 몰아넣었던 자가 있던가?

물론 오랫동안 맹주를 애먹인 자는 있었다.

바로 남궁천의 친부인 진천랑.

하나 상황이 다르다.

진천랑은 도망자였다.

바로 옆에서 신경을 쓰게 만드는 남궁천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히려 맹주는 진천랑의 도피를 즐길 정도였다.

천라지망을 몇 번이나 뚫고 달아났을 때도 맹주는 저렇게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껄껄 웃으며 다음엔 좀 더 확실하게 계획을 세워보자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래서야 마치 남궁천이 맹주님을 사냥하는 느낌에 가깝군.’

입장이 완전히 바뀐 것 같지 않은가?

“맹주님. 부디 고정을…….”

“총관.”

“예, 맹주님.”

“이젠 어쩌면 좋겠소?”

“…….”

총관이 가만히 묵천악의 눈치를 살폈다.

‘큰일이로군.’

맹주의 눈빛이 탁하다.

길을 잃은 자의 눈이다.

늘 답을 정해두고 질문을 던지는 자가 바로 맹주였다. 그에게 있어서 질문이란, 그저 정해진 답을 검증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한데 지금 질문은 진짜다.

정말 자신의 의견을 묻는 것이다.

총관이 입술을 축이고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맹주님. 아직 남은 수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맹주님의 계획대로 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맹주님을 믿습니다.”

“그렇지. 지금껏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은 적이 없었지. 하지만 이렇게 내 계획대로 안 된 것도 처음이 아닌가?”

“그래도 아직 수가 남아 있으니…….”

“허! 초견파공안이라고 했네. 모용신 단주가 직접 그렇게 말했어.”

“…….”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어째서 그 녀석이 그 재능을 물려받았을 거란 생각을 못했을까?”

“누구라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껏 초견파공안이 대물림된 적이 있다는 기록은 없으니까요. 그리 흔한 재능은 아니지요.”

“하지만 대물림되었잖은가!”

“좀 더 알아보시는 것도…….”

“이만하면 돌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두드려 본 셈이야. 더 알아볼 것도 없네. 초견파공안이 아니고서야 남궁천이 어찌 약관의 나이에 초절정고수를 제압한단 말인가!”

“…….”

총관도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못했다.

맹주의 지적은 타당한 바였으니까.

게다가 모용신 단주가 직접 손을 섞고 나서 초견파공안을 운운했다.

늘 냉정한 이성을 유지하는 모용신이다.

그가 감정에 휩쓸려 헛소리를 했을 가능성은 적다.

다만 문제는 그 사실이 맹주를 더욱 정신적 고립 상태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초견파공안이 대물림됐어. 이건 저주일지도 모르네. 지금껏 죽은 듯이 지냈던 남궁천이 갑자기 신룡이 되었어. 마침 진천랑이 죽고 난 직후부터! 이게 무슨 뜻이겠나?”

“무슨 말씀이신지…….”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 말일세!”

“어떤…….”

“이런 답답한!”

파아앙!

순간 묵천악의 전신에서 다시 한번 기운이 폭사했다.

주변 잡기가 부서진 채로 기풍에 휘날린다. 그중 파편 하나가 총관의 뺨을 스치면서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총관은 미동도 하지 않고 맹주의 말을 기다렸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감정을 다스린 묵천악이 싸늘한 음성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이건 진천랑의 저주란 말이야! 그놈이 내게 원한을 품고 죽은 제 아들 몸으로 빙의라도 한 거란 말일세! 죽은 아들 몸을 빌어 그놈이 환생한 거란 말이야!”

“맹주님. 부디 이성적으로…….”

“총관! 자네는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는가!”

이제 맹주의 전신에서는 살기에 가까운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총관이 고개를 숙인 채 눈을 지그시 내려 감았다.

‘이래서야…… 틀렸구나.’

사람이 궁지에 몰리게 되면 하늘을 원망하기 마련이다. 그 이후에는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지만, 그마저 통하지 않을 때는 미신에 기대게 된다.

지금 맹주가 딱 그런 상태였다.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젠 미신의 영역으로 생각이 뻗어가고 있었다.

죽은 자가 아들의 몸을 빌어 환생했다니.

당최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물론 마교의 이혼대법(移魂大法) 같은 경우 혼을 다른 이의 몸에 투입할 수도 있다.

하나 그 과정은 굉장히 지난하다.

진천랑은 대법 같은 걸 시전할 시간도 없었다.

무림맹원들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그런 와중에 어찌 영혼이 이탈하여 아들의 몸으로 들어간단 말인가?

‘맹주님의 정서가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구나.’

하지만 이런 생각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이제 맹주는 거의 확신하고 있는 단계였다.

그토록 견고하던 맹주가 이리 무너져 갈 줄이야.

남궁천을 남궁천으로 보지 않는다.

총관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는데, 묵천악이 말을 이어갔다.

“그놈이 나를 노리고 있네. 나는 알 수 있어. 그놈은 내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야. 자신을 죽인 내가 원망스럽겠지! 그래서 죽은 제 아들의 몸을 빌어 내게 온 것일 테지! 그렇다면 역시 초견파공안도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야.”

“그렇다고 해도 이미 맹주님은 진천랑을 한 번 제압하시지 않았습니까? 또 한 번 누르면 그만입니다.”

“과연 그럴까? 죽여도 죽지 않는 그놈을 내가 과연 또 꺾을 수 있을까?”

“…….”

총관이 입을 다물었다.

마땅한 대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때마침 문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맹주님, 남문각주님께서 맹주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남문각주가……?”

순간 묵천악과 총관이 시선을 교환했다.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총관이 얼른 주변을 훑고는 말을 이었다.

“제가 나가서 대접하고 있겠습니다. 맹주님은 천천히 나오시지요. 여기보다는 접객실에서 맞이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겠군. 그럼 자네가 대접하고 있게나.”

“그리고…….”

총관이 말을 꺼내다가 머뭇거리자, 묵천악이 이해한다는 듯 손을 저었다.

“알고 있네. 진천랑의 환생이라는 둥 하는 소리는 하지 않을 걸세. 자네나 되니까 한 말이지. 다른 이들이 들으면 다들 내가 미쳤다고 할 테니.”

“누가 감히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소신은…….”

“됐네. 어서 가보게. 남문각주가 직접 찾아온 것은 또 다른 기회일 수도 있으니.”

총관이 조금은 안도한 표정으로 맹주를 보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모래성처럼 보였는데, 지금 보니 다시 또 냉정한 이성을 되찾은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오랜 세월 무림맹을 이끌어왔으니 무너질 때 무너지더라도 그리 쉽게 주저앉진 않으리라.

총관이 고개를 숙이고는 잰걸음으로 돌아나갔다.

* * *

“어서 오시오. 천 각주.”

“맹주님을 뵙습니다.”

총관과 함께 차를 마시던 천무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포권했다.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은 듯 온화한 미소를 짓는 묵천악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거추장스러운 예는 관둡시다. 내 그러잖아도 천 각주를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소. 이렇게 나를 찾아와 주니 고맙소.”

“별말씀을요. 진작 맹주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그간 불충한 점을 용서하십시오.”

“허허, 별말씀을.”

간단한 인사치레를 끝낸 묵천악은 마주 앉아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패력궁 천무류의 눈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래, 천 각주께서 어인 일로 나를 찾아오셨소?”

“흐음. 남궁천에 대해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천무류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내자 묵천악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그렇군. 그러잖아도 그 문제로 천 각주를 만나보고 싶었소.”

“남궁천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요?”

“흐음. 그건 차차 말씀드리도록 하고. 천 각주의 용건이 우선이니 먼저 들어봅시다. 남궁천에 관련하여 무엇이 궁금한지.”

나름 배려하는 것처럼 말하긴 했으나, 실은 천무류의 속내를 한 번 떠보기 위함이었다.

천무류 역시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오늘 남궁천의 비무를 보았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비무가 끝난 후에 모용신 단주의 단전을 폐하는 광경을 지켜보았지요.”

“흐음. 그러셨구려.”

묵천악이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넌지시 천무류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직접 보니 어떠셨소?”

“손속이 잔인하더군요.”

천무류가 딱딱한 음성을 흘렸다.

묵천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먼저 잘못을 저지른 건 모용 단주이긴 했소.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비무가 끝난 상대를 배후에서 급습했으니…….”

“하나 이미 남궁천은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한 상황이었지요. 비록 자신의 배후를 노린 것이 괘씸하다고는 하나 전의를 상실한 상대에게 그리 가혹하게 대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게다가 모용 단주는 본 맹의 인적 자원입니다. 그런 자를 아예 매장해 버린 셈이 아닙니까? 맹주님이라면 좀 더 분노하실 줄 알고 찾아 왔습니다만…….”

“흐음. 사실 나도 그 일로 심란하긴 하오. 하나 생사결을 전제로 한 비무였던지라…….”

“생사결은 어디까지나 비무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사고지요. 하나 이건 전의를 상실한 상대를 고의적으로 영구 불능 상태로 만든 겁니다. 맹으로서도 큰 손실이지요. 게다가 남궁천이 초견파공안의 재능을 물려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순간 맹주의 눈빛이 더욱 매서워졌다.

하나 그는 속내를 숨기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건 좀 더 조사해 볼 일이외다. 하나 모용 단주가 실없는 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면 더욱 걱정되는 것은 과연 남궁천이 초견파공안만 물려받았을 것이냐는 겁니다.”

묵천악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옆에 서 있던 총관 역시 눈을 크게 뜨고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이래서야 가만히 놔둬도 패력궁이 알아서 칼춤을 출 판이 아닌가?

하나 섣불리 건드려서는 안 된다.

이 부분은 몹시 민감한 문제일 테니.

묵천악이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천 각주가 무엇을 염려하는지는 잘 알겠소. 하나 그 부분은 민감할 수 있는 문제요. 지금 남궁천은 강호신룡으로 만인의 추앙을 받고 있소. 한데 만약 천 각주의 말대로…….”

“맹주님. 말씀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하나 저는 확인을 해봐야겠습니다. 이 강호에 두 번 다시 천살성이 나타나서는 안 될 테니까요.”

“무엇을 확인한다는 거요? 설마 남궁천이 천살성이라는 걸…….”

“그런 역사는 많습니다. 오히려 초견파공안을 물려받는 일이 없었지요. 천살성이 천살성을 낳는 것은 흔한 일이지요.”

“하나 그 아이는 지금껏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제 아비의 운명을 보면서 어떻게든 조용히 눌러왔을 수도 있지요. 약을 썼을 수도 있습니다.”

“하면 어떻게 그 천살성을 확인해보겠다는 거요?”

“이번 비무에서 남궁천과 생사결을 하겠습니다.”

“……!”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본성이 드러날 겁니다.”

묵천악은 슬금슬금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눌러 참았다.

패력궁 천무류가 생사결을 벌이겠다면, 그야말로 상대를 죽이겠다고 작심한 게 아닌가?

천무류가 강인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처럼 혼란한 시기에 강호신룡이 천살성이었다는 게 밝혀진다면 백도 무림은 그대로 무너질 겁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확실히 해두어야겠지요.”

“흐음. 실은…… 나도 각주와 같은 생각이긴 하오. 다만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될 테니, 남궁천에 대해 좀 더 조사가 되는 대로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겠소.”

“알겠습니다. 그럼 맹주님의 전언을 기다리도록 하지요.”

천무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묵천악이 마주 일어나며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고맙소, 천 각주. 덕분에 근심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소.”

“별말씀을.”

“참, 천 각주의 다음 상대는 누구요?”

* * *

“조언을 달라고?”

남궁천이 미간을 슬쩍 구기며 돌아보았다.

유현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예, 제 다음 상대가 워낙 만만치 않아서요.”

“누군데?”

“남문각주, 패력궁 천무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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