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 누가 누굴 도와?
“헤헤. 공자님, 따끈따끈한 뱀탕입니다. 아주 푹 고아서 국물이 끝내줍니다요. 어서 드십시오.”
귀왕이 헤실헤실 웃으며 요리를 내왔다.
남궁천이 탁자에 잔뜩 차려진 진수성찬을 시큰둥하게 바라보다 물었다.
“나는 뱀탕을 끓여 오라고 했는데…….”
“예, 예. 여기 뱀탕입니다요! 이놈이 어떤 놈이냐면…….”
“아니, 뱀탕에 왜 뱀이 없지?”
“예?”
“여기 들어가야 할 뱀이 내 앞에서 처웃고 있네? 말도 하고. 이런 게 바로 영물 아닌가?”
남궁천이 눈을 말똥말똥 뜨고 귀왕을 쳐다보았다.
귀왕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손을 저었다.
“크하하! 공자님도 참 재미있으셔.”
“귀왕아.”
“예…… 공자님.”
“내가 죽으면 어쩐다고?”
“아이고, 공자님이 죽긴 왜 죽습니까요? 저희들의 은인이신 공자님이 돌아가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요!”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하던데?”
“그, 그것은…….”
“오히려 내가 어디 가서 콱 죽길 바라는 것 같더라?”
“오, 오해십니다!”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공, 공자님…….”
귀왕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데, 남궁천이 마주 앉은 흑선을 보며 말했다.
“회주.”
“예, 주군.”
“그거 이리 줘봐.”
“그거라고 하시면…….”
“내가 써둔 지분 계약서.”
“아, 예.”
흑선이 품을 뒤적이더니 이내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옆에서 굽실거리던 귀왕은 그저 눈만 멀뚱멀뚱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남궁천이 서류를 한 번 훑어보더니 귀왕에게 아무렇게나 던졌다.
“읽어봐라.”
“엇. 예, 옛!”
귀왕이 서류를 받아 들고는 열심히 눈알을 굴렸다.
이따금씩 눈알에 힘을 주기도 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침음을 흘리기도 했다. 한참이나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귀왕이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훌륭하십니다.”
“뭐, 이 새끼야?”
“예?”
따악!
순간 귀왕의 뒤통수에 불이 났다.
반사적으로 눈알을 부라리던 귀왕이 남궁천의 서슬 퍼런 표정을 보고는 곧장 꼬리를 내렸다.
‘어우씨, 나이도 어린 놈이……!’
물론 남궁천의 실제 나이는 귀왕보다 많았지만,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상황.
억울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는데, 남궁천이 정곡을 찔러왔다.
“너 글 못 읽지?”
“끄응. 아주 기본적인 것만…….”
“그럼 말을 해야지. 왜 아는 척을 해?”
“죄송합니다.”
“흑선. 내용 알려줘.”
남궁천이 턱짓을 하자, 흑선이 빙그레 웃고는 귀왕에게 말했다.
“주군께서 지분을 나눠 주고자 하시오.”
“지분이라면…… 귀왕객잔의 지분 말이오?”
“그렇소.”
“누구에게?”
“그야 귀왕과 귀소이들에게.”
“그럴 리가…….”
귀왕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을 얼른 주워 담았다.
“커흠! 흠!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오? 지분이라니?”
“애초에 주군께서도 여러분들의 노고를 알고 계셨소. 그간 무한에서 잘 성장해 준 덕분에 적지 않은 자금을 모을 수 있었으니.”
“그, 그래서 지분을 나눠 주기로 했다는 거요?”
귀왕은 가슴이 뛰었다.
사실 귀왕객잔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어마어마했다.
일 할의 지분만 받는다고 해도 반평생 놀고먹으며 살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아니, 일 할도 욕심이 큰가?
그래, 저 짠돌이 공자라면 오 푼의 지분이라도 어딘가?
애초에 오 할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생각했던 귀왕이었지만, 몇 차례 정신교육을 당하고 나니 오 푼도 과분하게만 느껴진다.
흑선이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렇소. 주군께선 당신들에게 이미 지분을 나눠 줄 생각을 하고 계셨다오.”
“허어…… 그, 그게 얼마나……?”
“어디 보자…… 아, 여기 있구려. 귀왕에게는 다음 달부터는 귀왕객잔의 수익 지분 오 할을 지급하겠다고 적혀 있구려.”
“오, 오, 오 하아아알?”
귀왕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잘못 본 것 아니고? 진짜로 오 할이오?”
“그렇소. 틀림없이 오 할이라고 적혀 있소.”
“그럴 리가! 이 짠돌이가 오 할…… 아, 아니. 그러니까 이 짠돌이는 나를 말한 거요. 나 같은 짠돌이에게 오 할이라는 거액을 준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말이오.”
“지랄을 한다.”
남궁천이 옆에서 혀를 차자, 귀왕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더니 바닥에 머리를 쿵 찧었다.
“공, 공자님! 공자님의 하해와 같은 배려심을 모르고 헛소리를 지껄인 저를 엄벌하여 주십시오!”
“이제야 네 죄를 알렷다?”
“죽,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흐음. 흑선.”
“예, 주군.”
“어쩔까? 자네 생각은 어때?”
“그래도 이미 작성한 계약서니까 그냥 진행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듣고만 있던 귀왕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인다.
남궁천이 침음을 흘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지. 그럼 그 계약서는 그대로 주도록 해.”
“괜찮으시겠습니까?”
“벌은 다른 식으로 내려도 되는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귀왕은 받으시오.”
흑선이 내미는 계약서를 귀왕이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받아 들었다.
아아,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지난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래, 귀소이들과 되지도 않는 존칭을 써가며 손님 대접을 하다가 화병으로 앓아누운 적도 있지 않던가?
‘오 할이라니…… 오 할……!’
남궁천이 달리 보인다.
뱀탕을 후루룩 마시고, 뱀 고기를 오물오물 씹는 저 입술마저 성스러워 보일 지경이다.
귀왕이 다시 한번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소인! 공자님을 평생 은인으로 모시고 받들겠습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공자님은 제 주인이십니다!”
“남아일언중천금이라 했다.”
“물론입니다! 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제가 말한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내 너의 충심을 높이 사마.”
“감사합니다! 그런데…….”
“뭐야?”
“귀소이들의 지분은…….”
“네게 준 오 할에서 네가 재량껏 배분해라.”
“알겠습니다! 그럼 소인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요!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그래.”
남궁천이 대충 대답하고서는 손을 젓자, 귀왕은 입이 귀까지 벌어져서 걸음을 옮겼다.
흑선이 그 모습을 보다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론 능률이 더 오르겠군요.”
“그건 모를 일이지. 난 원래 사람을 믿지 않거든. 오랜 습관이랄까?”
“그렇습니까?”
“그건 그렇고. 내가 조사하라고 한 건?”
“여기 있습니다.”
이번에도 흑선은 품을 뒤져 제법 두터운 책자를 꺼냈다.
남궁천이 눈살을 슬쩍 구겼다.
“책?”
“중요한 건 앞부분에 다 요약되어 있습니다. 맹주와 한배를 탄 인물들과 중립을 유지하는 쪽, 그리고 맹주와 은근히 대립하는 인물 순으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수고했어. 그런데…….”
책자를 대충 넘겨보던 남궁천이 눈살을 슬쩍 구겼다.
“총군사가 좀 애매하게 표시되었는데?”
“실제로 좀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현재 맹주와 손을 잡고 맹을 위해 일하고 있으나, 두 사람이 속내를 털어놓는 정도의 사이는 아닌 듯합니다.”
“하면 앞으로 어느 쪽으로든 기울 수 있다?”
“예, 만약 맹주가 패망한다면 맹을 떠날 수도 있을 테고요.”
“총군사를 내 사람으로 만들면 좋겠는데.”
“사실 그것과 관련해서도 드릴 말씀이 있긴 한데…….”
말을 꺼내는 흑선이 조금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남궁천을 보았다.
남궁천이 눈살을 구기며 물었다.
“뭔데 그래?”
“총군사와 주군을 연결해 줄 만한 인물이 한 명 있긴 합니다.”
“불명회원인가?”
“그렇습니다.”
“한데?”
“그것이…….”
흑선이 계속해서 말꼬리를 흐리자, 남궁천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혹시 날 인정하지 않아?”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남궁천이 술잔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씨익 웃었다.
예상했던 바다.
불명회는 갑자기 회주가 바뀐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달라진 체계에 반기를 드는 자들이 생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생각을 끄고 상명하복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살수들과는 또 다른 생리가 있을 것이다.
흑선이 불명회에서 잔뼈가 굵은 자이긴 하지만, 단시간에 그 많은 회원들을 정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나마 원래 고위직에도 있었던 흑선이었기에 이만큼 정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얼마나 됐지?”
“사실 제가 회주를 맡고 나서 지속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긴 했습니다. 한데 최근에는 점점 조직적으로 뭉치는 것 같아서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흐음. 이제 보니 회주가 잔꾀를 부리는군.”
“예?”
남궁천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직의 골칫거리를 지금 내게 떠넘기는 것 아닌가? 총군사를 회유할 빌미로.”
“그, 그건…….”
흑선이 차마 부정은 하지 못했다.
사실 그로서는 반발을 가진 자들을 하루빨리 평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한데 남궁천에게도 도움이 될 일이니 겸사겸사 말을 꺼낸 것이 사실이었다.
“죄송합니다. 제대로 정비를 했어야 했는데…….”
“됐어. 갑자기 일어난 일에 이만큼도 잘한 거다. 난 인정할 건 인정해.”
“송구하고 감사합니다.”
“내가 나서서 해결하는 게 맞긴 하지. 회주에게 반기를 드는 게 아니라, 결국 내게 반기를 드는 셈이니까.”
흑선이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불명회 창설 공신이나 다름없습니다. 좋은 쪽으로 해결해 주신다면 주군께도 도움이 될 인물입니다.”
“만약 설득이 안 되면 죽여도 되나?”
“주군의 뜻입니다.”
흑선이 무감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흑선이 볼 때 꽤나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뜻일 터.
하긴 그러니 이렇게 말을 꺼냈겠지만.
“그래서 그게 누구야?”
“천뇌당의 지각주(地閣主) 이세천입니다.”
총군사가 당주로 있는 천뇌당. 그곳에는 삼각이 존재한다.
천지인(天地人).
그중 지각의 주인이 바로 이세천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만나보지.”
“본선 치르기 전에 말씀입니까?”
“어차피 본선은 칠주야 후에 치러지니까 그 전에 보는 게 좋겠지. 내가 적랑단주가 되면 그자가 꽤 중요해질 테니까.”
“알겠습니다. 저는 모른 척하고 있겠습니다.”
흑선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나 그는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적랑단주가 된다는 걸 거의 기정사실화하다니.’
더 웃긴 것은 그걸 자기가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틈엔가 남궁천에 대한 믿음이 거의 절대적인 수준이 되었다.
하나 분명 그 길이 쉽지만은 않으리라.
당장 패력궁도 어찌 나올지 알 수가 없으니.
생각을 정리한 흑선이 품에서 또 하나의 서류를 꺼냈다.
“뭐가 계속 나오네?”
“이게 마지막입니다. 본선 진출자들에 대한 정보입니다.”
“그새 정리하다니. 과연 빠르군.”
남궁천이 흡족한 표정으로 서류를 훑기 시작했다.
* * *
“크흐흐.”
귀왕이 아침부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형님? 무슨 좋은 일 있으십니까?”
“응? 아니. 그냥 아침 햇살이 참 좋구나.”
“그렇습니까?”
“으이그, 이렇게 매사에 감사한 줄 모르는 녀석 같으니라고. 보아라. 오늘 이렇게 태양이 떠오른다는 게 감사하지 않느냐?”
“흐음. 잘 모르겠는데요.”
따악!
귀왕이 귀소이의 뒤통수를 차지게 후려치고는 중얼거렸다.
“매사에 감사하라고! 좀!”
“아니, 왜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십니까?”
“뭐? 짓?”
“누가 보면 지분이라도 받은 줄 알겠습니다요.”
“지분이라니? 누, 누가 그래?”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일이나 햇!”
“알겠습니다요.”
결국 귀소이가 뚱한 표정으로 걸어갔다.
귀왕이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분이라니. 흥! 제깟 놈들이 한 게 뭐가 있다고 지분 타령이야? 이 지분은 한 푼도 나눌 수 없다.’
사람이란 자고로 측간을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른 법.
지금 귀왕이 딱 그랬다.
남궁천은 지분을 알아서 나누라고 했지만, 그는 수하들과 나눌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너네 뭐 하고 있는 거냐?”
객잔 밖으로 나온 귀왕이 눈살을 슬쩍 구겼다.
웬일인지 아침부터 귀소이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객잔 현판을 내리는 게 아닌가?
“일하라면서요. 보다시피 일하죠.”
“무슨 일?”
“현판 바꾸지요.”
“현판을 왜?”
“어……? 못 들었습니까요?”
“뭘?”
“공자님이 상호명을 바꾼다고 하시던데요? 귀왕객잔이 너무 구리다고요.”
“그래? 그럼 뭐로?”
“신룡객잔으로요.”
“그렇군. 하긴 훨씬 듣기 좋긴 하구나.”
“그렇죠.”
“그래. 역시 귀왕객잔보다는 신룡객잔이…… 가만…… 그럼 귀왕객잔은?”
“사라지는 거죠.”
“그럼 내 지분은?”
“예? 무슨 지분요? 꿈꾸셨어요?”
그제야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간다는 걸 깨달은 귀왕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야…… 그,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어엇! 이이익! 남궁처어어어언!”
* * *
그 시각, 남궁천은 모처럼 늦잠을 자느라 배를 드러낸 채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그가 귀를 후비며 잠꼬대를 했다.
“흐음…… 어디서 처맞고 싶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드르렁…… 쿠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