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239화 (238/508)

239. 늦었어, 이 새끼야

혈영신마가 눈을 꿈틀거리고는 남궁천을 노려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무심결에 도를 들어 올리려다가 뒤늦게 자신의 팔이 잘려 나간 사실을 또 한 번 인식했다.

“읏……!”

탁탁탁!

얼른 자신의 몸을 점혈한 혈영신마가 재빨리 허리춤에서 한 자 정도 되는 검을 뽑아 들었다.

애초에 붉은 빛깔의 혈염도는 우수로, 지금 뽑아 든 단검은 좌수로 사용했기에 어색할 건 없었다.

혈영신마가 검신을 핥으며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과연 강호신룡이야. 세간의 명성이 허명은 아닌 모양이군.”

“그러고도 꽤 담담한 게 놀랍네. 다리도 하나 자를 걸 그랬나?”

“혓바닥이 잘도 여물었구나.”

혈영신마가 조소를 지으며 중얼거리자, 남궁천이 입매를 치켜 올렸다.

“한창 성장기니까. 어디든 잘 여물어야지.”

“우선 그 세 치 혀부터 뽑아주마!”

파밧!

쉬이이익!

혈영신마가 지체 없이 단검을 내질러갔다.

일격필살의 각오였다.

원래 손속이 잔인한 그는 최대한 상대를 유린하며 죽이는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상대의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만큼 남궁천의 무위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한데 다음 순간 혈영신마는 눈을 찢을 듯 부릅뜨고는 꿈쩍도 할 수 없었다.

탁!

놀랍게도 그가 내지른 단검이 남궁천의 손바닥에 막혀서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이 무슨……?”

너무 황당한 일이 벌어지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내지른 검을 맨손으로 막아?

그런데 검신을 타고 전해지는 감각은 손바닥을 찌른 느낌이 아니다. 마치 단단한 쇳덩이를 때린 느낌이다.

남궁천이 천천히 손바닥을 오므리면서 단검의 칼날을 움켜쥐었다.

‘호오, 강령신단 효과 좋은데?’

그랬다.

남궁천이 맨손으로도 단검을 잡아챌 수 있는 것은 진주언가가 내어준 강령신단을 복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혈영신마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 어린 나이에 도검불침지체라도 된단 말인가!’

혈영신마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사이 남궁천이 손에 힘을 주자 단검이 뚝 하고 부러졌다.

혈영신마가 다시 한번 눈자위를 꿈틀거렸다.

‘이런!’

쒸이이익, 푸욱!

다음 순간 부러진 칼날이 혈영신마의 눈알에 깊숙이 박혔다.

“끄아아아악!”

시종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던 혈영신마도 이번만큼은 처절한 비명을 터뜨리면서 몸을 비틀었다. 곧이어 그는 아랫배에 날아드는 묵직한 고통을 느꼈다.

퍼억!

슈우우웃, 콰다앙!

혈영신마가 한쪽 벽으로 날아가 그대로 부딪치면서 고꾸라졌다.

남궁천이 저벅저벅 걸어가서는 혈영신마의 정수리를 발로 꾹 밟았다.

“이번엔 어디를 조져줄까?”

“……!”

“뭐라고 했더라? 아, 아침햇살을 보는 즐거움이 어쩌고저쩌고 했지? 역시 그럼 남은 눈부터 도려낼까?”

남궁천이 벽라검을 들어 혈영신마의 눈을 겨눴다.

그 순간 안마당에 남아 있던 흑의인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저 새끼 막앗!”

“멈춰랏!”

파바밧!

검은 옷을 입은 무인들이 박쥐 떼처럼 날아드는 순간,

쒸아아아앙!

파공성에 이어 커다란 도가 날아오더니 흑의인의 몸을 그대로 갈라 버리면서 벽에 처박혔다.

콰작!

쿠당탕탕!

상하반신이 끔찍하게 갈라진 흑의인이 그대로 곤두박질치며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그 바람에 뒤를 이어 달려들던 흑의인들도 급히 멈춰 서며 주변을 경계했다.

곧이어 담벼락을 뛰어넘으며 팽수혁과 유현이 나타났다.

제일 먼저 도착한 팽수혁이 벽에 박힌 도를 뽑아 들고는 목을 우두둑 꺾었다.

“누가 감히 내 동료를 건드려?”

다음 순간 팽수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콱 뒈지려고.”

그 흉흉한 기세에 흑의인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팽수혁에 이어 도착한 유현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팽 소협, 그건 아까 남궁 소협이 말한…….”

“유현 도장.”

“네?”

“조용히 좀 해줄래? 지금 분위기 타고 있으니까.”

“그러지요.”

유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자, 팽수혁이 태도를 어깨에 척 걸치고 입매를 비틀었다.

“유현 도장.”

“예.”

“이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은 이제 마음껏 죽여도 돼. 참지 말라고.”

“저는 살생을 즐기지 않습니다.”

“음…… 그, 그래……? 그런데 종승이는?”

“글쎄요. 아버지를 찾아보겠다면서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그렇군. 뭐 어찌 됐든…….”

팽수혁이 흑의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먹은 게 있으니 약값 하자고!”

말을 마친 팽수혁이 바닥을 차며 흑의인 무리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 뒷모습을 보던 남궁천이 다시 혈영신마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차차, 미안. 내가 잠시 정신을 딴 곳에 두고 있었군. 혹시나 사고 치는 놈이 있을까 해서.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주접떨지 말고 죽여라.”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다음 순간 말을 마친 남궁천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혈영신마의 목을 그어 버렸다.

츄아아아아!

순간 피를 분수처럼 터뜨린 혈영신마가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남궁천이 몸을 돌려 남궁표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소가주…….”

남궁표는 그토록 기다리던 소가주가 눈앞에 나타나자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었다.

“소가주…… 와주었구나.”

“와야죠. 제 집인데.”

“그렇지. 여긴 자네 집이지. 쿨럭, 쿨럭!”

남궁표가 기침을 하자 선지피가 토해졌다.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남궁표가 남궁천의 손을 잡았다.

“내 그동안 자네를 오해했네. 후우, 후우…… 부디 나를 용서하게. 나, 나는 비록 이렇게 가지만…… 본 가를 잘…… 부탁하겠…… 쿨럭! 쿠웨에엑!”

다시 피를 한 바가지 토한 남궁표가 희미하게 웃었다. 전신에서 기력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걸로 됐다.

소가주가 오지 않았나?

한때는 그렇게 미웠던 소가주가 이리 든든할 줄이야.

이젠 편히 눈을 감아도 되겠…….

“어어? 이대로 눈 감으면 안 돼요. 자, 뜨세요. 얼른!”

“응……?”

남궁표가 황당한 표정으로 남궁천을 보았다.

자꾸만 감기는 눈을 남궁천이 억지로 손가락으로 벌리는 게 아닌가? 그 바람에 하나 남은 눈알이 시큰거릴 지경이었다.

“소가주…… 나는 이제 가망이…….”

“에헤이, 아직 창창하신데 무슨 그런 말씀을. 자, 이거부터 드시죠.”

남궁천이 품에서 단환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이, 이건……?”

“죽은 사람도 벌떡 일으킨다는 초혼단입니다. 진주언가에서 직접 가져온 거니까 효능은 믿으셔도 됩니다.”

“소가주……!”

남궁표는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그가 목이 매여 말을 잇지 못하자,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알아. 오늘 좀 멋있죠. 나 자신.”

“고맙네. 자네가 날 살리다니. 그보다 어서 가주님을 도와야 하는데…….”

“걱정 마시고 약 드시고 좀 쉬고 계세요. 최대한 빨리 정리해 볼 테니.”

남궁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초혼단을 입에 털어 넣었다. 왠지 톡 쏘는 듯한 약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잠시 후 남궁표의 전신 혈맥이 단단해지면서 공력이 빠르게 회전하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편안한…… 으응?’

뭔가 이상하다.

혈맥을 따라 흐르는 공력이 갑자기 폭주하는 게 아닌가?

“컥! 쿨럭! 쿠웨에엑!”

다시 선지피를 토한 남궁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보았다.

검이 박혔던 어깨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넘쳤고, 손발이 사정없이 떨렸다.

“어? 이상한데……?”

남궁천도 남궁표의 반응이 뜻밖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물었다.

“심신이 좀 편해지지 않았어요?”

“아닌데? 막 흥분되는데? 막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싶고. 막 소리 지르고 싶은데?”

“응? 왜 그러지? 아, 이런! 단환을 착각했네요. 아오, 아깝게 백령단 하나 날렸네. 여기 이걸로 드세요.”

남궁천이 뒤늦게 다른 단환을 꺼내서 내밀었다. 죽어가는 자에게 백령단을 먹였으니 공력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출혈도 심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 초혼단이었다.

남궁표가 얼른 단환을 입에 털어 넣자 그제야 조금씩 심신이 평안을 되찾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폭주하려던 공력도 차츰 안정을 취해갔다.

그제야 남궁천이 식은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휴우, 하마터면 황천길로 보내 버릴 뻔했네.”

위기를 넘긴 남궁표가 편안히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저 새끼…… 진짜 믿어도 되겠지?’

남궁천은 고개를 들어 지붕을 보았다.

‘그럼 가주님한테 가볼까?’

타앗!

다음 순간 남궁천이 바닥을 차고 솟구치자 지붕이 와장창 깨져나가면서 구멍이 뻥 뚫렸다.

한편 내공 대결에 집중하던 곰보 노인은 돌연 남궁검 뒤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불쑥 솟구쳐 올라오자 눈썹을 꿈틀거렸다.

‘뭐지?’

그가 뒤늦게 곁눈질을 해서 연무실 안마당에 벌어진 참상을 보았다. 곳곳에 흑의인들 시체가 한가득 널브러져 있었다.

검을 맞대고 내공 대결에 극도로 집중하다 보니 미처 연무실 안마당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남궁검의 입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소가주가 온 모양이군.”

“소가주라.”

곰보 노인이 중얼거리며 남궁검을 빤히 보았다.

희한한 노릇이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던 남궁검의 표정에 희미한 온기가 서리지 않았나?

이 인간에게 온정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그만큼 소가주라는 존재가 남궁검에게 큰 의미인가?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내공 대결에 섣불리 끼어들 인간은 없을 테니.’

곰보 노인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고수들의 내공 대결에서 제삼자가 개입하게 되면 모두가 위험해진다. 최악의 경우에는 세 사람 모두 죽거나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다.

때문에 결판이 날 때까지 제삼자도 지켜볼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꽤 버티는군.’

밤새 싸워서 공력이 바닥을 드러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공 대결을 유도했다.

한데 남궁검은 의외로 오랫동안 버티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애초에 공력 대결을 펼치지 않았을 것이다.

“본 교의 물건을 빼돌리더니 그 덕을 좀 본 모양이군.”

곰보 노인이 차갑게 말하자, 남궁검이 피식 웃는다.

“주운 사람이 임자 아니겠소? 분명 우리 소가주는 그리 말했을 거요.”

“그놈의 소가주 타령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소가주가 나타나면 뭐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시는가?”

“물론이오. 그 아이는 그럴 수 있는 아이니까.”

곰보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는 사이 ‘그 아이’가 저벅저벅 걸어오며 남궁검 옆에 섰다.

‘저 녀석이 남궁천이군.’

남궁천이 두 사람의 대립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말했다.

“가주님이 불리한 상황이군요.”

곰보 노인이 힐끔거리며 입을 열었다.

“꼬마야, 내공 대결이니까 섣불리 끼어들지 말아라. 괜히 끼어들었다간 너희 가주가 주화입마에 빠져 멍청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영감님도 다치겠죠.”

“물론 나도 내상을 입겠지. 하나 너희 가주만큼 심각한 내상을 입진 않을 게다. 하나 네놈이 끼어들지만 않는다면 너희 가주는 목숨이나마 건질 수 있겠지.”

물론 거짓말이다.

꽤 잘 버티고 있지만, 남궁검은 이제 공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곰보 노인도 그걸 알았다.

이후 내상을 입은 남궁검은 피를 토해낼 것이고, 그 순간 대량의 기운을 밀어붙여 목숨을 앗을 생각이었다.

하나 남궁천은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애송이.

이런 위기에서 그럴싸한 말로 잘 구슬린다면 당연히 믿고 싶은 걸 믿을 수밖에 없…….

“어디서 개수작이야?”

“그래, 개수작…… 응? 뭐?”

곰보 노인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보자, 남궁천이 삐딱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짖어대던가.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내가 호구로 보이시나?”

“아이야, 나는 물건만 찾아서 돌아가면…….”

“개수작 부리지 말라니까.”

어느새 바짝 다가선 남궁천이 얼굴을 들이밀며 으르렁거렸다.

곰보 노인은 일순 노기가 치솟았지만 내공 대결 중이었기에 아무런 짓도 할 수 없었다.

남궁천 역시 함부로 노인을 건드리진 못하고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이 어린 녀석이 신경 쓰이게 하는구나!’

하지만 내공 대결에서는 어디까지나 평정심이 중요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밀어붙인다면 남궁검을 폐인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오냐, 그때까지만 까불어라. 하나 이 대결이 끝나면 네놈은…….’

쪼르르르…….

‘응? 뭔가 뜨뜻한 느낌이……?’

곰보 노인이 미간을 구기고는 눈알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다 하반신에서 뜨뜻하면서도 기분 나쁜 감각을 느끼고는 버럭 소리쳤다.

“노옴! 뭐 하는 짓이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남궁천이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옆으로 돌아 나와서는 히죽 웃었다.

“아, 너무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려왔더니 소변이 급해서요. 마침 이렇게 싸기 좋은 곳도 있고.”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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