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처맞을 준비는 됐고?
퍽! 퍽! 퍽퍽!
거친 타격음이 연신 들린다.
처음에는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들도 이제는 어딘지 안쓰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본다.
퍼억!
“커억!”
발길질에 만신창이가 된 도지백이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정말이지 살벌한 현장.
이래서야 싸움인지 일방적인 구타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어이없게도 제 손목을 잘라 버린 도지백은 남궁천에게 어떠한 위협도 되지 못했다.
남궁천의 말대로 그냥 처맞는 게 전부였다.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하던 채선일도 나중에는 직접 나서서 남궁천을 말릴 정도였다.
“소, 소협. 이제 그만하면 됐네. 나는 괜찮으니…….”
“아닙니다! 이놈이 감히 단주님을 위협해서 우리의 편안한 휴식을 방해했으니 죽어 마땅하지요!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중간에서 농간질을 해서! 이렇게 손이 가게 만드나? 엉?”
퍽! 퍽! 퍽!
남궁천이 쓰러진 도지백을 다시 밟아댄다.
뜯어 말리던 채선일이 다시 핼쑥한 표정이 되어서는 넌지시 물러났다.
‘어째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은데…… 끄응.’
아닌 게 아니라, 남궁천은 도지백을 연신 밟아대면서도 속에 담은 말을 아낌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네놈이 농간질을 하는 바람에!”
퍼억!
“단주님이 진실을 보지도 못하고!”
빠악!
“엄한 우리만 들들 볶아서!”
퍽!
“먼 길을 온 내가 쉬지도 못하고!”
퍼억!
“이 개고생을 하고 있잖아!”
뻐억!
“커억!”
이제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도지백이 한참이나 튕겨 나가더니 걸레처럼 축 널브러지고 말았다.
도지백이 쓰러진 곳에는 칼을 뽑아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강상도가 있었다.
그는 도지백이 제 손목을 베는 순간 너무 놀라서 멈칫거렸고, 이후에는 남궁천의 무시무시한 폭력을 보면서 돌처럼 굳은 상황이었다.
오죽하면 생도들과 다른 무인들이 도지백을 보며 안쓰럽다고 여겼을까?
물론,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보는 이도 있었다.
‘부럽다. 너무 좋겠다. 정말 축복받은 자다.’
백무극만큼은 한없이 부러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어쨌거나 상황이 꼬이자 강상도는 어쩔 줄을 모른 채 도지백과 남궁천을 번갈아 보았다.
화끈하게 싸우자니 적이 너무 많다.
그래, 적이 많은 게 문제다.
결코 남궁천의 거친 폭력을 보고 기가 죽은 게 아니다.
‘절대 그건 아니지!’
지금까지 흑산채는 수적 열세에서 싸워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늘 인해전술이 기본 바탕이었다.
한데 지금은 반대의 상황.
적은 다수지만, 자신은 혼자다.
인질도 놓쳤으니 무턱대고 싸우면 피를 보게 되리라.
마침 강상도와 눈이 마주친 남궁천이 이맛살을 잔뜩 구기고는 묻는다.
“넌 뭐야?”
“예? 아, 저는…… 수행인입니다. 그저 장문인께서 시키는 대로 하는…….”
“그래서 지금은 뭘 할 건데?”
강상도가 쓰러진 도지백을 힐끔 보더니 칼을 도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철컥.
“얌전히 돌아가겠습니다.”
“네 주인 안 챙기고?”
“장문인께서는 도의를 저 버리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맹의 뇌옥에 수감되어 개과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호오, 뚫린 입이라고 제법 바른 말을 할 줄 아는구나.”
“감사합니다.”
강상도가 자존심마저 버린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어쩔 수 없다.
차후에 저놈을 다시 만나면 반드시 죽일 테지만, 지금은 일단 몸부터 사려야 하지 않겠나?
다행히 분위기가 좋게 흐른…….
“내가 말이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을 살면서 눈칫밥을 참 많이 먹었단 말이지.”
“……?”
남궁천이 저벅저벅 다가오며 강상도를 빤히 본다.
강상도가 그 시선을 마주하다가 슬그머니 눈을 깔고 외면했다. 그럼에도 남궁천은 집요하리만치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밥 한 숟가락을 먹을 때도 여기에 독이 들어 있진 않을까? 초면인 녀석을 마주할 때도 혹시 내가 본 놈은 아니었나? 심지어 오줌을 쌀 때는 내 그림자를 보고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단 말이야.”
전생에 관한 이야기다.
정말이지 그때는 스치는 바람결에도 감각이 곤두서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윤종승은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남궁천. 넌 우리에게 그렇게까지 시달렸구나.’
남궁천이 이젠 아예 강상도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서서는 얼굴을 빤히 보았다.
“그런데 요즘은 좀 살 만해졌거든? 그래서 내 감각이 좀 무뎌졌나, 싶을 때가 있더라고.”
“…….”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무슨 말씀인지…….”
“위장을 하려면 적어도 목소리 변조까지 하는 정성을 보이던가, 이 도적 새끼야.”
“……!”
강상도가 순간 바닥을 탁 차고 물러나는데, 그보다 남궁천의 손길이 더 빨랐다.
찌이이이익!
순식간에 뻗어나간 남궁천의 손이 강상도의 뺨을 낚아채자, 피부가 아교처럼 끈끈하게 늘어지더니 주욱 찢어지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너무 괴이해서 보는 이들이 절로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저, 저게……?”
“앗! 저놈은!”
연추량과 이사흠이 경악해서 소리쳤다.
인피면구가 벗겨진 얼굴은 다름 아닌 흑산채주 강상도가 아닌가?
강상도가 혀를 차며 표독스럽게 쏘아 붙였다.
“치잇! 어린놈이 눈치가 제법이구나!”
“말했잖아? 눈칫밥만 수십 년 먹었다니까.”
“흥! 허세도 정도껏 부려라. 약관도 지나지 않았을 놈이 수십 년은…….”
“아, 그럼 십수 년으로 정정. 아니, 근데 이 새끼가 지금 그게 중요…… 엇?”
순간 강상도가 몸을 비틀더니 경공을 펼쳐 달아나는 게 아닌가?
어차피 이곳에서 싸워봐야 승산이 없다는 걸 안 강상도가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이래 봬도 야산에서 추격전을 펼쳐가며 약탈을 일삼던 경공 실력이다!’
모두가 놀란 틈을 타서 재빨리 담벼락으로 달려가 몸을 날린다면 장원을 벗어나는 건 일도 아닐…….
“헉!”
순간 강상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남궁천을 보고는 기겁하며 멈췄다.
슈우우웃, 콰앙!
“크윽!”
촤르르르륵!
양손을 교차하면서 발뒤꿈치를 막아낸 강상도가 한참이나 미끄러졌다.
욱신욱신.
손목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부어올랐다.
‘이, 이게 강호신룡의 무위인가?’
이미 남궁천의 무위에 대해서는 대략이나마 알고 있었다.
협곡에서 전투가 일어났을 때, 남궁천이 보인 신위는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한데 직접 손을 섞어 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무시할 수 없다가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는 쪽에 더 가깝다.
남궁천이 목을 우두둑 꺾었다.
“내가 자랑은 아니지만, 이래 봬도 무연회 경공 대회에서 일 등이었단 말씀.”
자랑 맞잖아?
강상도가 슬금슬금 물러나면서 주변을 훑었다.
주변인들 모두 하나같이 강상도의 미래를 예견한 듯 연민에 찬 표정을 짓는다.
‘이 새끼들이……!’
자존심이 상한 강상도가 어금니를 뿌득 갈고는 기합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이야아아아압!”
“……!”
촤아아악!
남궁천과 부딪치기 직전 그가 급히 생각을 바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쿠웅!
“잘못했습니다!”
“와 씨, 놀래라. 잘못한 새끼가 왜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달려들어?”
따악!
남궁천이 뒤통수를 후려치자 강상도가 어금니를 꽉 씹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 비굴하지만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도지백처럼 되고 싶진 않다.
한편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상도의 선택에 내심 박수를 보냈다.
‘그래도 사람 볼 줄을 아는군.’
‘산채는 아무나 이끄는 게 아니구나.’
다소 이상한 부분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 * *
휘이이이잉!
협곡에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결에는 피비린내가 잔뜩 묻어났다.
무너진 암벽과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들.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인지 시신의 훼손 상태는 꽤 심했다.
까아아악!
까마귀 한 마리가 한 차례 울음을 터뜨리고는 협곡 아래로 내려가 시체를 쪼았다. 한데 자세히 보면 녀석의 눈동자가 어딘지 기이하다.
마치 옥을 박아 넣은 듯 녹색으로 빛난다.
강호에서는 보기 드문 영물.
옥안영오(玉眼靈烏)다.
어느 순간 옥안영오가 고개를 쳐들더니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잠시 후 푸드득 소리를 내며 날아오른 녀석이 창공을 한 바퀴 배회했다. 날개를 활짝 펼치니 흡사 검은 독수리를 보는 듯하다.
후드드득!
한참을 날던 까마귀가 암벽 위에 홀로 우뚝 선 사내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까마귀를 닮은 듯 칠흑처럼 검은 머리카락에 또렷한 흑안이 인상적인 사내. 그의 얼굴에는 기다란 흉터가 사선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가 어깨에 앉은 까마귀의 등을 쓰다듬다가 탁한 목소리를 흘렸다.
“배는 채웠느냐?”
까아악!
사내가 피식 웃더니 곧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는 바위와 돌덩이가 무너져 내려앉은 땅을 물끄러미 보았다. 바로 남궁천 일행이 왕릉에서 탈출하면서 빠져나온 출구였다.
“쯧…… 한심한.”
사내가 얕은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스윽 뻗었다.
다음 순간,
파아아앙!
응축된 기가 손바닥에서 쏘아지면서 지면에 부딪치는 순간 요란한 폭음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앙!
무너졌던 바위와 돌덩이가 마구 부서지면서 사방으로 튀었다.
한차례 뿌연 먼지가 일어났다가 가라앉을 때쯤 놀랍게도 구멍이 생긴 바닥에서 사람들이 기침을 해대며 올라왔다.
“쿨럭, 쿨럭!”
“크윽! 이제야……!”
비척거리면서 땅위로 올라선 자들은 다름 아닌 흑도인들.
흑선자와 적노파파, 그리고 옥소공자였다.
겨우 바닥으로 올라선 그들은 눈앞에 선 사내를 보더니 이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부곡주님……!”
세 명이 동시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부곡주라 불린 사내가 냉랭하기 짝이 없는 시선으로 세 사람을 응시했다.
“변명.”
“죄, 죄송합니다! 비량은 마단곡에 들어오지 않았고, 남궁천이라는 생도가 변수로…….”
“생도?”
말을 하던 흑선자가 흠칫거리고는 부곡주의 눈치를 살폈다.
부곡주가 눈살을 구겼다.
“지금 생도라고 했나?”
“죄송합니다!”
부곡주의 표정에 가소로움이 스친다.
“생도라니. 심지어 비량은 관여도 하지 않았다? 한데 생도가 변수였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신다면…….”
“기회는 기회. 책임은 책임. 너희들 중 책임자가 누구였지?”
흑선자가 입술을 꾹 씹다가 대꾸했다.
“접니다.”
“그래서?”
“책임지겠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말을 마친 흑선자가 돌연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더니 가차 없이 자신의 왼팔을 잘라 버렸다.
촤아아악!
탁탁탁.
곧바로 혈을 점해 지혈한 흑선자가 지독한 통증을 참느라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부곡주가 무심한 눈길로 떨어져 나간 팔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적노.”
“예, 부곡주님.”
“이제부터 책임자다.”
“명심하겠습니다.”
“마단곡 영단을 찾을 방법은?”
“견습생도인 남궁천이 가져갔습니다. 표행에 참여했으니 돌아오는 길목을 노릴 수 있습니다.”
“거사가 코앞이다.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말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이번엔 내가 직접 지켜보지.”
적노파파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그녀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