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166화 (166/508)

165. 아니, 왜 안 나타나!

백무극은 그야말로 신들린 사람처럼 싸웠다.

결코 깔끔하다고 할 수 없는 도술.

전신을 난자한 다음에는 머리를 내려쳐 죽인다.

잔악하기 짝이 없다.

이런 패도적인 모습 때문에 백무극을 에워싼 적들은 모종의 분노와 공포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저 미친놈……!”

“저 새끼가 정말 생도 맞아?”

“요즘 생도는 죄다 저 모양인가?”

누구에게 던지는 질문인지 모를 말들이 적들의 입에서 차례로 흘러나온다.

그런 적들을 멍하니 둘러보는 백무극.

“남궁천이 안 보이네.”

그런데 스스로 뱉은 말에 대꾸라도 하듯 다시 버럭 소리친다.

“이 병신아, 그 새끼는 아까부터 왜 자꾸 찾아!”

“상관하지 마.”

“어떻게 상관을 안 하냐? 싸움에 집중을 안 하는데?”

“어차피 네가 싸우잖아.”

“너랑 정신이 이어져 있잖아! 네 잡념이 자꾸 흘러들어온단 말이다!”

“신경 꺼.”

“그럼 미친놈처럼 혼자 중얼거리질 말던가!”

“내 맘이야.”

“에잇, 병신 새끼!”

뭐에 홀린 사람처럼 백무극이 혼잣말을 연신 떠들어댄다.

이를 지켜보던 무인들이 입을 척 벌리고는 서로 눈치를 살폈다.

“뭐지? 진짜 미친놈인가?”

“그러게. 왜 계속 혼잣말을……?”

“저 새끼, 괜히 저러는 거야. 겁주려는 속셈이겠지!”

백무극의 괴상한 반응에 적들의 의견도 분분해진다.

다음 순간,

“이 얼빠진 새끼야! 연극하지 말고 내 창이나 받아라앗!”

백무극의 배후를 노리고 달려든 무인이 쾌속하게 창을 내질렀다.

푸욱!

‘됐다!’

그가 내심 쾌재를 부르다가 이내 뻣뻣하게 굳었다.

“어……?”

다시 보니 그가 내지른 창은 백무극의 옆구리를 지나쳐 손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닌가?

“어, 어떻게……?”

분명 심장을 노리고 내질렀는데 어느새 방향이 틀어져 옆구리에 잡혀 있다니!

물론 이는 백무극이 뒤로 돌아서는 순간 서로 눈이 마주치면서 환술에 걸린 효과지만, 그로서는 이런 내막을 결코 알 수 없었다.

휙!

순간 백무극이 창을 확 잡아당기자, 사내가 헛바람을 삼키며 끌려갔다.

“허억!”

쉬이이잇, 푸욱!

“끅, 끄아아아아악!”

순간 처절한 비명이 공기를 찢어발겼다.

백무극이 가차 없이 휘두른 칼날이 사내의 옆구리를 절반이나 파고든 탓이다.

촤아아악!

주르르륵!

백무극이 무심히 칼을 뽑아내자 시뻘건 핏물과 함께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우욱!”

“크읏!”

지켜보던 동료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견습생이라는 놈의 손속이 어찌 저리도 잔인하단 말인가?

양민들의 등을 처먹고 사는 산채 무인들이 할 만한 생각은 아님에도 그들은 백무극이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처럼 느껴졌다.

백무극이 다시 혼잣말을 시작했다.

“역시 이 느낌이 아니야.”

“또 뭔 개소리야, 병신아.”

“느낌이 달라.”

“아, 그러니까 뭔 소리냐고!”

“너는 이해 못 해.”

“하여튼 병신 새끼, 지랄을 해요.”

백무극의 혼잣말에 주춤거리던 무인들이 이를 빠득 갈았다.

“저 미친놈이 우리를 놀리는 모양이군!”

“저놈 밟아 버려!”

“가자! 한꺼번에 덤벼!”

순간 무인들이 살기를 한껏 끌어 오리고는 백무극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백무극의 눈빛에 광기가 스며들었다.

“키햐! 불나방들! 좋구나, 좋아!”

혀까지 길게 빼문 백무극이 광기에 가득 찬 조소를 지으며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슈파파팟! 슈컥!

“크아아악!”

“으악!”

비명이 여기저기에서 마구 터져 나온다.

날아드는 무기를 피하고, 다시 검을 내뻗고, 다시 피하고, 발로 복부를 내지른다.

그 일련의 과정이 무척이나 깔끔하지만 손속은 잔인하기 짝이 없어서 당한 이의 몰골이 결코 평범하진 않다.

늑골이 부서진 채 등뼈가 튀어나온 상태로 절명한 자, 얼굴이 등까지 돌아간 자, 팔다리가 잘려 나가거나 반대로 꺾인 자, 상반신이 사선으로 양분된 자.

그야말로 피의 향연!

그 와중에도 계속되는 혼잣말.

“키키킥! 덤벼! 덤벼라, 이 개자식들아!”

“일극, 욕 좀 하지 마.”

“닥쳐, 이 새끼야! 오랜만에 살풀이하는데 흥 깨지 마라!”

“이러니까 우리보고 미친놈이라고 하잖아.”

“우리 미친놈 맞아, 병신아!”

“조용히 좀 싸워.”

“싫은데? 킬킬!”

마침 백무극 뒤를 한 명의 적이 파고들었다.

타다닷!

“이 미친 새끼! 뒈져라아앗!”

쉬이이이익!

하나 그는 앞서 동료가 그랬던 것처럼 엉뚱한 곳을 내지르고 말았다.

츄핏!

분명 심장을 향했던 검이 백무극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간 것!

백무극이 예의 그 사악한 미소를 짓더니 혀로 입술을 핥는다.

“약해빠진 새끼.”

“이, 이익……!”

쉬이이이잇, 슈컹!

다음 순간 사내는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걸 보았다.

한참이나 돌던 세상이 얼굴을 때렸다. 그리고 천천히 넘어가는 자신의 몸을 바닥에서 올려다보았다.

‘목이…… 잘린……?’

거기까지였다.

머리를 잃은 몸은 피를 분수처럼 터뜨리며 넘어갔고, 두 눈을 부릅뜬 얼굴은 생기를 완전히 잃었다.

그 후로도 백무극은 베고, 찌르기를 반복했다.

“역시 이게 아니야.”

쉬이이잇, 촤아악!

“이게 아니야.”

푹! 푹! 푹!

“커억……!”

“이것도 아니야.”

결국 참다못한 일극이 버럭 폭발했다.

“아니, 뭐가 아니냐고, 이 병신 새끼야!”

“알 것 없어.”

그때였다.

등 뒤에서 서늘한 감각이 올라와서 휙 돌아섰더니 화살 한 자루가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게 아닌가?

이번엔 막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따아아앙!

청명한 금속성이 울리더니 바로 앞에 모용강이 홀연히 나타났다.

“어……?”

백무극이 멍청하게 서 있는데, 모용강이 뒤를 힐끔거리고는 차갑게 일렀다.

“미친놈처럼 혼잣말 씨불이지 말고 잘 좀 둘러봐라.”

“킥킥. 팔 강에서 떨어진 병신 새끼가 누구한테 훈수를 두는 거냐?”

“뭐, 이 새끼야?”

모용강이 눈에 불을 켜고는 돌아보자, 백무극이 언제 그랬냐는 듯 멍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말한다.

“그거 내가 한 말 아냐. 일극이야.”

“이 새끼…….”

모용강이 눈매를 파르르 떨었다.

백무극의 인격이 여러 개라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직접 대면하니 적응이 안 된다.

문득 백무극이 묻는다.

“화나지?”

“뭐?”

“화나면 전력으로 나 좀 패줄 수 있어?”

말을 뱉은 백무극의 표정이 순간순간 마구 바뀐다. 아무래도 일극이라는 녀석과 내면에서 싸우는 중인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용강은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미간을 푹 찡그렸다.

“적하고 싸우다 말고 뭔 개소리냐?”

“됐어. 너로서는 힘들겠지.”

백무극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저…… 미친 새끼가 기껏 구해줬더니 뭐라는 거야?”

모용강이 살기까지 끌어 올리며 뺨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백무극은 이미 안개 너머로 사라진 후였다.

한편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저벅저벅 걷던 백무극이 불쑥 입을 열었다.

“무극! 방금 그게 뭔 소리야? 병신아. 때려달라니? 미쳤어?”

“알 것 없다니까.”

“이 병신 새끼. 뭘 또 혼자 다 아는 척하고 지랄이야?”

“마음대로 생각해.”

백무극이 시큰둥하게 대꾸하고는 연무 너머의 어딘가를 보았다.

마침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저 너머에 비량으로 보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혹시 비량 교관이라면 가능할까?”

“그러니까 뭐가! 뭐가! 뭐가아아!”

“조용히 좀 해!”

정말 조용해지고 싶다.

사실 백무극이 원하는 건 바로 그것이었다.

제발 조용해지는 것.

무연회 결승전 때 남궁천에게 얻어터지면서 느꼈던 그 고요함.

그때의 적막한 평온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이건 일극은 절대 이해 못 할 것이다.

그 순간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무극뿐이었으므로.

무극은 가끔 생각했다.

자신과 일극, 이극, 삼극…… 등.

그들 중 누가 진짜 자신일까?

늘 생각했지만 언제나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그날.

무연회에서 정말 정신없이 얻어터지던 순간.

그래, 정신없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정말 자신의 정신이 없어졌다.

머릿속이 깨끗하게 비워지면서 오롯이 진정한 자아만 남았던 그때.

일극도 이극도 다른 인격도 더 이상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평온 그 자체.

무극은 생각했다.

아, 내가 진짜구나.

그 고요함 속에서 오로지 사고하는 것은 자신뿐이었으니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것은 깊은 깨달음이었다.

무공의 성취에 있어서도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한데…….

‘그때뿐이었어.’

일극이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씩 이극도 나타났다.

달라진 건 없었다.

그래서 다시 고요해지고 싶었다.

격한 싸움을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한데 아무도 그 고요함을 다시 찾아주지 못했다.

‘남궁천. 결국 남궁천이 있어야 하나?’

비량 교관도 어쩌면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역시 검증된 남궁천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데…… 남궁천은 어디에 있는 거지?

* * *

그 시각 백무극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남궁천은 열심히 땅바닥을 쑤시고 있었다.

푹! 푹! 푸푹!

‘젠장! 없어! 여기도 아니고, 여기도 아니잖아!’

벌써 얼마나 땅바닥을 찔러댔는지 모를 지경이다. 혹시 몰라서 암벽도 찔러보고 생난리를 쳤지만 마단곡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티잉!

이번에도 단단한 바위에 막혀 검기가 튕겨 나오자 남궁천이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이런 젠장, 도절귀 이 썩을 놈! 알려주려면 확실히 입구까지 말해줬어야지! 이거 일부러 나 엿 먹이려고 이런 거지?”

하지만 도절귀의 탓이 아닐 수도 있다.

지도 자체가 입구까지 상세히 나와 있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래도 지도 덕분에 이만큼이나마 범위를 좁힐 수 있지 않았나?

‘일단은 바닥과 암벽 틈에 입구가 있다고 했으니 부지런히 찔러보는 수밖에.’

그렇게 얼마나 바닥을 더 쑤셔댔을까?

“아오! 귀한 칼날 다 상하겠네!”

남궁천이 벽라검을 들어 검신을 호호 불어 먼지를 날렸다.

그래도 보검이라 그런지 이가 나가거나 검신이 닳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옆에서 기척을 느낀 남궁천이 반사적으로 벽라검을 휘둘렀다.

쒸이이익!

빛살처럼 날아간 벽라검이 상대의 목젖에 정확히 멈추자, 차무진이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헛바람을 삼켰다.

“으헉, 저, 접니다! 주군!”

“뭐야? 부대주였어?”

“예! 후우, 죽을 뻔했네.”

“그러게. 죽일 뻔했잖아. 왜 갑자기 말없이 나타나고 난리야.”

안도의 숨을 내쉰 차무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찾았습니다.”

“뭘?”

“구멍이요.”

“뭔 구멍? 아……! 찾았어? 그럼 바로 불렀어야지!”

“소리치면 다른 사람도 듣잖아요.”

“아…… 그렇지. 잘했다, 잘했어. 어디야? 가자!”

“안내하겠습니다!”

차무진이 몸을 휙 돌리고 앞장서자, 남궁천이 안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따라갔다.

‘드디어! 마단곡으로 가는구나! 으흐흐!’

비명과 피비린내가 난무하는 전장 속에서 홀로 기대에 찬 웃음을 지우지 못하는 남궁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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