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110화 (110/508)

110. 절대 말이 안 되는데

남궁현도가 얼른 달려가 쓰러지는 아들을 부축했다.

“끄으으읍!”

“진아! 괜찮으냐?”

“아, 아버지…….”

남궁진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남궁현도를 보았다.

순간 남궁현도의 마음에 불길이 일었다.

그가 발끈해서 벌떡 일어나려는데, 어느새 다가온 남궁원이 가만히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남궁현도가 멈칫거리고 바라보자, 남궁원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정당한 비무였다.

게다가 만인이 지켜보는 자리.

적수공권의 상대로 진검까지 뽑아 들고 이 정도 했으면 더 이상 변명할 거리는 없으리라.

게다가 상대는 분하지만 남궁세가보다 권세를 누리는 황산윤가가 아닌가?

명분으로나 명성으로나 체면을 세우기가 쉽지 않은 상황.

남궁현도가 어금니를 뿌득 가는데, 마침 윤종승이 황망한 표정으로 달려와 물었다.

“이런! 괜찮소?”

빈정거리는 말투였다면 꼬투리라도 잡겠건만, 윤종승은 진심 어린 표정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의외의 결과와 반응에 사람들 모두 윤종승을 다시 보는 순간이었다.

“윤종승이 황산윤가의 망나니라는 게 진짜야?”

“글쎄. 저리 봐서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은데?”

“하여튼 소문이라는 건 믿을 게 못 되는구먼.”

“아니, 나는 분명히 비열한 짓을 하는 것도 봤었는데…… 어째 사람이 변한 것 같으이.”

“허참, 모를 일이로군.”

웅성임 속에서 남궁진이 어금니를 뿌득 갈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가 힘겹게 포권을 취했다.

“내가…… 졌소. 과연 무연회 팔 강에 오르실 만한 실력이오. 오늘날 황산윤가가 어찌 그리 명성을 떨치는지 이해가 되오.”

“과찬이오. 나야말로 남궁 형께 한 수 배웠소. 사정을 봐주셔서 감사드리오.”

윤종승이 의젓한 태도로 답례했다.

이쯤 되자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저마다 감탄을 터뜨리며 박수를 보냈다.

그야말로 돈 주고도 보기 힘든 비무를 우연찮게 구경한 셈이 아닌가?

윤종승이 기고만장하지 않고 나름의 예를 다하자, 가슴에 불길이 일었던 남궁현도도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남궁진이 여전히 통증을 느끼는지 인상을 한 번 푹 찡그리더니 곧 찬탄을 이어갔다.

“빈말이 아니라 윤 형의 무공 수위가 이토록 고강할 줄은 미처 몰랐소. 만약 대진운이 좋았더라면 무연회의 우승은 윤 형이 되었을 것이오.”

상대를 칭찬하면서도 교묘하게 자신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 화법이었다.

하나 넙죽 받아들일 줄 알았던 윤종승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엉뚱한 말을 뱉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과찬이오. 오히려 내가 팔 강에 오른 게 운이 좋았을 뿐이오. 귀가의 남궁천이야말로 신룡이라 불릴 만한 자격이 있었소이다.”

언뜻 들으면 남궁세가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말이었지만, 남궁원을 비롯한 이들은 현재 가장 원치 않는 소리이기도 했다.

남궁천이 신룡이라니.

“하하! 윤 형은 무공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겸손한…….”

“겸손이 아니오. 남궁천은 진짜 신룡이오.”

순간 윤종승이 정색을 하며 대꾸하자 다시금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워낙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니 남궁진도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가만히 지켜보던 남궁원이 한 걸음 나서며 물었다.

“본 가의 남궁천이 그리 대단하다면, 자네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의 수준인가?”

“저하고요?”

“그렇네.”

윤종승이 피식 웃었다.

남궁원이 미간을 찡그리자, 윤종승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하고는 비교될 수도 없지요. 굳이 비교하자면…… 제가 반딧불이라면 남궁천은 보름달입니다.”

표현 지렸다.

윤종승은 자신의 말에 스스로 감탄했다.

그 옛날 서서가 제갈량과 자신을 비교하며 했던 말이 아니던가?

왠지 이 순간 서서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이래서 사람은 배우고 봐야 한다니까.

어째 뻔뻔함이 점점 남궁천을 닮아가는 윤종승이었지만, 그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윤종승의 그 표현 덕분에 남궁원은 제대로 똥 씹은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 사생아 놈이 그 정도라고……?’

절대 말이 안 되는데.

남궁천을 본 지는 꽤 오래전이다. 가세가 기울고 나서는 좀처럼 본 가와 왕래가 없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본 게 대략 육칠 년은 됐으려나?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지 않던가?

당시 남궁천을 떠올 려보면 도저히 될성부른 나무가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시들어 죽을 것 같은 나무였다.

그렇게 유약하던 아이가 신룡? 뭐? 보름달?

마침 매제 장원식이 다가와 남궁원에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저 아이가 과장을 하는 모양입니다. 뭐, 본인이 팔 강에서 미끄러졌다고 하니 우승자를 띄울수록 본인으로서도 손해 볼 일은 없겠지요.”

하긴.

소문이란 이런 식으로 부풀게 마련이지.

남궁원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하튼 훌륭한 비무였네. 노부도 덕분에 안목을 넓혔네.”

“하찮은 재주였습니다. 그럼 후배는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윤종승이 깍듯하게 인사하며 돌아섰다.

예의라도 없더라면 흠이라도 잡을 텐데 사람이 너무 반듯하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이 찝찝함.

그래도 어쩌랴.

정당한 비무에서 이겼고, 이렇게 떠나간다는 것을.

반면 윤종승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윤종승은 주먹을 콱 쥐고는 전율했다.

‘나도 강해질 수 있다! 아니, 강해지고 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술김에 비무를 신청한 직후만 해도 후회막급이었는데 이렇게 이겨 버리다니!

문득 걸음을 멈춘 윤종승이 남궁세가 쪽을 돌아보았다.

객점 앞에 남은 이들이 자신의 말을 얼마나 인정할지는 모를 일이다.

마지막까지도 그들은 남궁천에 대한 불신 가득한 눈빛을 지우지 않았으니까.

하나 자신이 할 말은 다 했다.

남궁천은 분명 대단한 녀석이다.

누가 뭐래도.

‘남궁천…… 고맙다!’

* * *

“누가 내 얘길 하나? 귀가 간질간질한데.”

남궁천이 귀를 파며 중얼거리자, 복성이 싱글벙글 웃으며 대꾸했다.

“그야 당연하죠. 세상이 온통 공자님 얘기로 가득할걸요?”

“왜?”

“왜긴요? 정말 몰라서 물으세요? 신룡이잖아요! 무연회 우승자! 크으!”

복성이 자기가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한껏 도취된 표정으로 몸서리를 친다.

남궁천이 피식 웃었다.

“누가 보면 네가 우승한 줄.”

“제가 우승한 것보다 더 기쁩니다요. 흐흐흐.”

“넌 내가 왜 그리 좋은 것이냐?”

“흐음. 글쎄요.”

복성이 턱을 괴고는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저 스스로도 생각해 보니 왜 남궁천을 이렇게까지 좋아하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얼빠진 놈.

남궁천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가부좌를 틀고 운기행공을 하려는데, 복성이 불쑥 입을 열었다.

“솔직히 이런 말씀드리면 왠지 불경한 것 같지만…… 처음엔 공자님이 너무 불쌍해서요.”

“뭐?”

남궁천이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눈을 떴다.

뭔가 심금을 울릴 만한 속사정이라도 있으려나 했더니. 단지 불쌍해서라니?

그런 남궁천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복성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바닥만 보고 말을 이어갔다.

“기억 못하시겠지만…… 제가 공자님을 처음 뵀을 때, 공자님은 동네 파락호들에게 두들겨 맞고 계셨지요. 그래도 남궁세가 사람인데…… 정말 개 패듯 패더라고요. 말리는 사람도 없었고요. 다들 대살성의 자식이라며 오히려 손가락질을 했지요.”

“그래서?”

“일단 나서서 말렸습니다요. 공자님이 잘못한 게 뭐가 있냐고 따지기도 하고요.”

“그러고는?”

“뭐 저도 죽도록 맞았죠. 감히 대살성의 혈통을 편든다고요.”

남궁천이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군. 그때 내가 나서서 다시 널 구했구나. 아니면 구해주려고 했던가?”

“에이, 아니에요.”

“아냐?”

“예. 아니에요.”

“그럼?”

“공자님은 그때 울면서 도망쳤습니다요. 어찌나 빠르신지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습지요.”

“커흠. 뭐…… 그건 확실히 부전자전일지도.”

“정말 다행이었지요. 그대로 계속 몰매를 당했으면 큰일이 났을지도 모르는데.”

복성이 속없는 사람처럼 히죽 웃더니 말을 이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공자님을 사람들이 그렇게 매도하는 걸 보니 화가 나더라고요. 어리고 작은 공자님인데 마치 무슨 악귀라도 보는 것처럼 삿대질을 하고 때리고…… 어휴, 정말 공자님이 너무 불쌍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랬군.”

“그렇게 짠한 마음이 들어서 공자님을 챙기다 보니 점점 마음이 가더라고요. 정이 든 거겠죠, 뭐.”

남궁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인지상정이겠지.”

“그러고 보니 특별히 이유가 없네요.”

복성이 다시 뒤통수를 긁적이며 속없이 웃는다.

남궁천은 그런 복성을 보고 피식 웃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진심이 느껴진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네 말대로 불쌍한 놈을 보면 도와주고 싶고, 약한 놈을 보면 보호해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니냐? 그게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겠지.”

“음. 그렇겠죠?”

“그래. 그런데 이 빌어먹을 세상은 네가 보았듯이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 온통 가짜가 판을 치고, 진솔함이 욕먹는 세상이 됐지. 그런 세상에 너는 진짜 사나이다.”

“제가 그 정도로 대단한가요?”

복성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남궁천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암. 그렇고말고.”

사실 처음에는 복성의 입에서 거창한 사연이 나올 줄 알았다.

한데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오히려 더 복성이 마음에 들었다.

사연에 따른 호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희미해지는 기억에 따라 변심할 수도 있고.

하나 복성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호의다.

연민이란 곧 인덕(仁德)에서 나오는 법.

한낱 시종에 불과한 복성의 인덕이 무림맹을 이끄는 어느 능구렁이 영감과는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가?

‘그 능구렁이는 힘없는 아이를 천살성이라 낙인찍어 대살성으로 만들어 버렸지.’

잠시 울분을 삼킨 남궁천이 복성을 보며 말했다.

“너야말로 늙은 구렁이와 정반대의 인간이구나.”

“예? 늙은 구렁이라니요?”

“기특하단 뜻이다.”

“아…… 예.”

복성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충 알아듣는 시늉을 했다.

남궁천이 그런 복성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오늘은 내가 너에게 맛있는 걸 사 주마.”

“갑자기요?”

“그래, 신룡이 된 기념으로 한턱 푸짐하게 쏘마. 따라 나와라.”

“오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요! 아, 먼저 나가시면 후딱 옷 갈아입고 쫓아가겠습니다요!”

복성이 헤실헤실 웃으며 달려가자, 남궁천이 피식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남궁천이 느긋한 걸음으로 대문을 막 나서려고 할 때였다.

마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한데 가슴에 붕대를 친친 감은 청년이 금방이라도 죽어갈 것 같은 기색으로 중년인의 부축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바로 조금 전 윤종승과 비무를 치른 남궁진과 그 일행이었다.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 남궁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긴 의원이 아니오만.”

순간 발끈한 남궁현도가 눈썹을 성큼 치켜 올렸다.

“뭣이?”

“별 뜻은 없소. 사정이 급해 보여서. 잘못 찾아왔으면 얼른 돌아 나가는 게 좋지 않겠소?”

그러자 이번엔 남궁진이 발끈했다.

“이 자식이! 지금 그걸 말이라고 지껄이는 거냐?”

이쯤 되자 남궁천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 처맞고 와서 왜 엄한 곳에 화풀이야? 친절하게 여긴 의원이 아니라고 알려줬건만. 뭐, 본 가가 겉보기엔 좀 허름해서 동네 의원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닥쳐라! 나를 놀리고 싶은 거냐? 그래도 내가 너보다 두 살 형이거늘!”

“형? 네가 누군데?”

“저, 저……! 아주 무연회 우승했다고 기고만장했구나!”

그때였다.

복성이 달려오며 얼른 끼어들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요! 우리 공자님이 기억을 잃으셔서 그러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남궁천이 복성을 돌아보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 처맞고 다니는 놈도 네가 아는 녀석이냐?”

그 처맞고 다닌다는 소리 좀 그만해, 이 미친놈아!

남궁진은 이제 입에 거품을 물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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