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공검제-100화 (100/508)

100. 중검 대 중검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해일이 덮친다? 아니, 그걸로는 부족하다. 태산이 덮쳐온다? 그것도 뭔가 부족하다. 하늘이 휘몰아쳐온다고 해야 하나?

역시 뭔가 아쉽다.

아무튼 남궁천이 달려드는 순간, 운경은 세상의 모든 것이 정지한 것처럼 느꼈다.

마치 시간이 멈춘 세상에서 남궁천만이 미치도록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남궁천이 마지막에 뱉은 말 때문일까?

그의 검에 실린 수많은 목숨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기분.

또 한편으로는 그의 검에 스러져 간 수많은 목숨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섬뜩한 감각.

살기 위해 검을 들어 올렸다.

상대는 분명 살기를 뿜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투기만 드러냈을 뿐이다.

하나 수많은 삶과 죽음들이 검첨에 실려 자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그 위기감에 저도 모르게 민첩한 반응으로 검을 들어 막았다.

스스로도 놀랐다.

이렇게 빠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하나 그 뒤에 이어질 놀라움은 그 이상이었다.

쩌어어어엉!

고막이 그대로 터져 나갈 것만 같은 폭음이 울리면서 운경은 그대로 튕겨 날아가 버렸다.

발끝에 공력을 실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장외 실격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웃긴 소리!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렇게 말하는 놈이 있다면 멱살 잡고 끌고 와서 남궁천의 일격을 받아보라고 하고 싶다.

추풍낙엽이 되어 날아가는 그 순간에는 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세상으로부터 튕겨 나간 낙오자일 뿐.

운경은 그렇게 화살 같은 속도로 비무대 밖으로 날아갔다.

슈우우우우욱! 꽈아앙!

그대로 관전석 벽면에 부딪힌 운경이 대자로 뻗은 채 검을 놓쳤다.

뎅그렁!

검이 먼저 떨어지고, 한참 후에 운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콰당!

거미집처럼 균열이 생겨 버린 벽면에서 돌 부스러기가 투둑 떨어져 내린다.

“…….”

“…….”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대연무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귀빈석에 앉아 있던 종남파 장로는 어느새 벌떡 일어나 있었고, 맹주는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문 채 남궁천을 노려보고 있었다.

남궁화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그렁거리는 눈으로 지켜보았고, 남궁검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입매를 살짝 틀어 올렸다.

남궁천이 사용한 초식은 기본 중에서도 가장 기본.

창궁검법의 제일초, 창궁일시(蒼穹一矢)!

세 살 아기에게도 작대기 쥐여 주며 시킨다는 그 검초가 이리 강맹한 힘을 발휘할 줄 누가 알았을까?

그야말로 제왕의 힘이 아닌가!

이번에도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남궁천이었다.

“저기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모용신이 흠칫거리고는 남궁천을 돌아보았다.

남궁천이 턱짓으로 장외에 널브러진 운경을 가리켰다.

“제가 뭘 더 해야 해요?”

“흠. 아니다.”

만인이 주목하는 가운데 모용신이 여전히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손을 들어 선언했다.

“남궁천…… 승!”

“우와아아아아앗!”

“신룡의 기적이다!”

“남궁천 만세! 남궁천 만세!”

“엄청난 비무였다! 대단하다, 남궁천!”

“너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영웅! 남궁천!”

그야말로 하늘이 떨쳐 울릴 정도의 함성이 대연무장에 가득 차올랐다.

“아…… 아버지!”

남궁화가 감격에 겨워 소리치자, 남궁검이 나직이 읊조렸다.

“제법 괜찮구나.”

정말이지 건조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지만, 남궁화는 알고 있었다. 이건 아버지가 보인 최고의 칭찬이라는 것을.

한편 팽수혁은 두 주먹을 꽉 쥔 채 전율을 일으켰다.

“방금 저게…… 뭐로 보였소?”

“마지막에 남궁천 소협의 일격 말씀입니까?”

유현이 되묻자, 팽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저도 잘 모르지만…… 창궁검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시…… 나도 그렇게 보았소. 저게 말이 된다고 보시오?”

창궁검법은 무당의 태극권만큼이나 보편적이면서도 널리 알려진 검법이었다.

굳이 남궁세가 사람이 아니어도 무인이라면 한 번쯤은 흉내 낸다는 검법.

한데 그 흔하디흔한 검법으로 자신이 패한 운경을 단숨에 제압해 버렸다.

명백한 실력차.

압도적인 승리!

유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꾸했다.

“남궁천 소협은 정말 대단하군요.”

“단지 그런 말로 끝날 문제가 아니지 않소!”

팽수혁이 버럭 소리치더니 유현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다.

“보시오! 저 녀석이 압도적인 실력 차로 운경을 제압해 버렸소! 운경은 당신과 비등한 실력자라면서! 한데도 느끼는 것이 없단 말이오? 우리는 목란산에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저,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셔도…….”

유현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애매하게 웃자, 팽수혁이 괜히 신경질을 부리며 휙 돌아섰다.

“제길! 나는 납득할 수 없소! 어째서! 어째서 나는 이렇게 약한 것인지…….”

“그거면 된 것 아닐까요?”

“뭐요?”

팽수혁이 눈썹을 성큼 치켜 올리며 돌아보자, 유현이 조금 전과는 달리 진중한 표정으로 답했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상대의 강함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이라면. 그거면 된 것 아닐까요? 문제를 나에게서 찾고자 한다면 해결도 나로부터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저 역시 느낀 바가 많습니다. 남궁천 소협은 확실히…… 제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분이군요. 그리고 팽 소협은…… 그 질문을 결코 무시해선 안 된다고 경고해 주시고요.”

유현이 빙그레 웃자, 팽수혁은 왠지 맥이 풀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하나 유현의 말대로 문제를 ‘나’에게서 찾는다면 해결책도 ‘나’로부터 나오리라.

‘남궁천! 기다려라! 곧 간다!’

팽수혁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유현이 돌아섰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딜 가는 거요?”

“준비해야지요. 다음은 제가 비무할 차례니까요.”

“아……!”

남궁천에게 모든 의식이 쏠리는 바람에 잠깐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유현의 비무 상대는…….

“진소홍 소저가 기권을 하는 바람에 저도 곧바로 준결승을 치르게 됐습니다. 백무극 생도가 제 상대지요.”

“백무극…….”

팽수혁의 시선이 저만치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백무극에게 향했다.

어딘지 맹해 보이는 생도.

그래서 속을 더 알 수 없는 녀석.

하지만 저 녀석이 윤종승을 처참하게 쓰러뜨렸지.

까득.

친분이 깊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연회를 치르면서 같은 조원으로 나름의 정을 나눈 사이였다.

팽수혁이 주먹을 꾹 말아 쥐고는 유현을 돌아보았다.

“반드시 이기시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현이 부드럽게 답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는 주연화가 응원을 보내는 소리에도 대충 손을 흔들며 걸어갔다.

대연무장 입구로 들어선 유현은 심호흡을 하고는 허리춤의 검파를 손으로 매만졌다.

‘백무극이라…….’

윤종승을 인사불성으로 만든 자.

같은 무맹관 생도지만 아직까지 같은 반에 편성된 적은 없었다.

대체로 구파일방의 제자들로 구성된 무맹관에서는 그 출신이 좀 특이한 편이었던 백무극.

그 바람에 이름을 몇 번 들어본 적 있었으나 딱히 신경 쓴 적은 없다.

한데 비무 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오를 줄이야.

‘모든 건 실력이다.’

사부님이 늘 하신 말씀이다.

세상에 우연으로 강해진 자는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백무극이 운이 좋아서 준결승까지 올랐다고 말하지만 글쎄……?

‘방심하면 토끼에게도 물리는 법.’

유현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마침 대연무장 안으로 막 들어서니, 남궁천이 비무대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유현이 남궁천에게 다가가 포권했다.

“결승 진출을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걱정하게 만들었다면 미안하게 됐소.”

“별말씀을요.”

“무운을 빌겠소.”

“감사합니다.”

“혹시…….”

“예?”

“음. 아무것도 아니오. 그럼.”

남궁천이 손을 젓고는 걸어가자, 유현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바라보았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아니었나?’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유현이 순간 멈칫했다.

가만,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니…….

그러고 보니 목란산에서 어찌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는지를 묻지 않았다. 아니, 그걸 물어볼 만큼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지금 나눈 대화로 미루어 보건대, 어쩌면 목란산에서 있었던 일들이…….

‘남궁천 소협이 만든 상황이란 말인가?’

그러지 않고서야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이유가 무엇일까? 오히려 큰일을 겪었으니 이쪽에서 위로를 해줘야 마땅하거늘.

‘설마. 아니겠지.’

만약 정말 남궁천이 모든 것을 의도하고 진소홍을 구했으며, 적들을 자멸하게 만든 것이라면…….

유현은 문득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 때문에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하나 이미 남궁천은 대연무장을 완전히 벗어나 보이지 않았다.

‘이 와중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그래, 지금은 비무에 집중할 때다.

잡생각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쉽게 본다는 방증이다.

‘안 될 말이지. 집중하자. 백무극은 실력자다.’

유현이 제 뺨을 찰싹 때리고는 천천히 비무대 아래로 다가가서 멈춰 섰다.

마침 사람들의 함성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한편 남궁천은 관전석으로 올라와 비무대 아래에서 대기하는 유현을 가만히 보았다.

‘확실히 될성부른 떡잎이긴 한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

말하자면 근성 쪽이랄까?

사람이 너무 부들부들하단 말이지.

어느 정도는 독기가 있어야 바짝 성장할 때 앞서갈 수 있는데.

어쨌거나 유현은 또래에서 난 놈이 분명하다.

백무극에 대해 조언을 해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혹시라도 그런 걸 어찌 알았냐고 꼬치꼬치 따지고 묻는다면 골치 아플 테니까.

아직은 몸을 좀 사리면서 행동할 필요도 있고.

그렇잖아도 누구 눈엔 가시가 되어 버렸으니.

남궁천이 힐끔 시선을 들어 귀빈석의 맹주를 바라보았다.

‘쯧. 늙은 구렁이 눈알 빠지겠네.’

남궁천이 얼른 시선을 돌려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맹주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남궁천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은 줄만 알았던 남궁천이 강호 영웅이 되어 귀환했으니 얼마나 속이 뒤집힐 노릇이겠나?

게다가 준결승을 더없이 깔끔하게 이겼으니 입에 거품을 물기 직전이리라.

그 짐작 그대로 맹주는 지금 속이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뿌리째 뽑아냈어야 할 독초가 오히려 더욱 깊이 무림맹으로 파고들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 아닌가?

“총관!”

“예, 맹주님.”

총관 역시 안절부절못하며 맹주의 눈치를 살폈다.

맹주가 나직이 속삭였다.

“결승전은 좀 특별해야 하지 않겠나?”

“무슨 말씀이신지…….”

“예를 들자면 비무대라도 좀 특색이 있다든지…….”

“아,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물론 결승전은 특별해야겠지요.”

총관이 허리를 깊이 숙이며 대꾸했다.

그는 눈치가 빠른 자였다.

맹주는 무슨 수를 써서든 남궁천에게 불리한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머리가 복잡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비무대의 정비도 끝나고 마침내 백무극과 유현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다시 사람들의 함성이 차올랐다.

총관은 더 볼 것도 없이 몸을 돌리고서는 귀빈석을 벗어났다.

그로서는 결승전 준비가 우선이었다.

어차피 이번 비무는 백무극이 이길 테니까.

문제는 백무극과 남궁천이 싸울 결승전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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