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등하불명(燈下不明)
불명회.
그 이름처럼이나 어두침침한 놈들이다.
하나 무림맹에 관한 정보라면 이들이 천하제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과장 좀 보태서 맹주 그 영감탱이가 오늘 오줌을 몇 번이나 쌌는지, 방귀는 몇 번을 뀌었으며, 밥 먹고 트림은 몇 번 했는지까지 알 수 있는 곳.
그래, 과장 좀 많이 보탠 거다.
어쨌거나 그 정도로 무림맹에 대해 잘 아는 곳.
그리고 그 정보들을 흑도인들에게 알려주는 집단.
다만 아쉬운 한 가지.
‘공짜가 아니란 거지.’
게다가 정보 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것.
남궁천이 떠올린 생각을 귀왕이 그대로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공짜가 아니라서 아쉽지만요. 그 녀석들은 무림맹에 관한 정보라면 빠삭하지요.”
“그렇군. 무한은 관심 밖이다 보니 불명회를 까맣게 잊고 있었어.”
남궁천이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불명회라는 조직은 확실히 독특한 곳이다.
그들은 오로지 무림맹에 관련된 정보만 수집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흑도인들과 관계가 깊다.
물론, 모든 흑도인들이 불명회를 알고 있진 않다.
정보 값이 굉장히 비싼데다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으로 겨우 접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름난 흑도인들은 무림맹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불명회가 수집한 정보는 비싼 값에 팔려나간다.
그래서 늘 돈과 정보가 넘치는 곳.
돈 대신 기물이나 영단을 받기도 한다니까 어찌 보면 무한의 보고나 다름없다.
‘진정한 맛집은 따로 있었네.’
남궁천이 입맛을 다시며 히죽 웃자, 옆에 선 귀왕이 왠지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넌지시 물었다.
“저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감히 여쭈어 봐도…….”
“안 돼.”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귀왕이 바짝 얼어붙어서 대꾸했다.
남궁천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계속 생각했다.
‘일단 불명회를 찾아가야 한다는 건 확실하고.’
문제는 정보를 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건데.
이 빌어먹을 것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돈이 없다.
갑자기 짜증이 일어난 남궁천이 다시 귀왕의 뒤통수를 또 후려쳤다.
딱!
“아윽! 왜…… 왜……?”
“왜?”
“헤헤. 제 뒤통수가 차진 느낌이 일품이지요. 필요하시면 언제든 이용하십시오. 때리시기 편하도록 대기하겠습니다요.”
“불명회 접선 장소는 알아낼 수 있어?”
“그걸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알아내도 당장 돈이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
“묻는 말에만 대답해.”
“아, 예. 그건 내일까지 알아오겠습니다요.”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명회에 접선하려면 장소를 알아야 하는데, 그 장소가 계속 바뀐다.
무한 어딘가에서 접선할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길면 일 년 단위로, 짧으면 칠주야 단위로 접선 장소가 바뀌곤 한다.
사실 남궁천은 불명회와 그리 좋은 기억이 없다.
‘이 빌어먹을 것들이 나한테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지.’
당시 대가를 지불할 만한 여건이 아니었는데, 절대로 외상은 불가하다나? 결국 성질대로 졸개 하나를 실컷 두드려 패주고는 돌아 나왔다.
그 바람에 불명회는 오히려 내 정보를 무림맹 측에다가 흘렸고, 근 삼 개월을 뒈질 고생을 했지만.
이렇게 갑질을 해대는 녀석들임에도 불명회는 제거하기 어렵다.
그만큼 그들의 정보력은 우수하고 흑도인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아마 누군가 불명회를 없애 버리면 흑도인들의 표적이 되는 건 시간문제리라.
“그놈들은 어떻게 그리 무림맹 정보를 빠삭하게 알고 있을까?”
“그야 자금력이죠.”
“그럼 그 자금력은 어디서 생겼을까?”
“그야 정보를 팔아서 생긴 거죠.”
“그럼 정보는 어떻게 모았을까?”
“그야 자금력이죠…….”
딱!
“크윽!”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그건…… 닭이 먼저 아닐까요? 닭이 달걀을 낳으니까…….”
“그럼 닭은 어디서 나오고?”
“에…… 닭은 아마도 훔쳤을 겁니다.”
이건 남궁천도 예상치 못한 대답이라 입만 벌어졌다.
‘저 머릿속을 헤집어 보고 싶군. 그나저나 닭은 훔쳤을 거라니…….’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른다.
아니, 어쩌면 무모한 생각인가?
하지만 무모하면 어떤가?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전생보다는 살 만 할 텐데.
‘난 그 지옥 속에서도 악착같이 버티고 살아남았던 인간이니까.’
남궁천이 떠오른 생각을 열심히 굴리고 있는데, 귀왕이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불명회 녀석들이 무림맹에 연줄을 많이 만들어 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놈들이 직접 맹에 가담하기도 하고요.”
“직접?”
남궁천이 놀라서 돌아보자 귀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몇 놈들은 아예 입맹해서는 정도 무인 행세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요.”
“정확히 말해봐. 그놈들이 입맹한 거야? 아니면 입맹한 놈들이 변절한 거야?”
“둘 다지요. 그놈들, 역용술이 엄청 뛰어나거든요. 그래서 무림맹 곳곳에 녹아든 녀석들도 있고, 실제로 정도 무인을 구슬려 변절시킨 사례도 있다고 들었습니다요.”
“역용술이라…….”
“역용술이면 역시 돈 지랄을 해야 제대로니까요.”
“하긴.”
남궁천이 모처럼 인정하자 귀왕은 기분이 좋아져서 입매를 길게 찢었다.
사실 역용술에는 남궁천도 일가견이 있다.
도망자에게는 필수적인 기술이니까.
역용술이란 말 그대로 외모를 바꾸는 기술인데 무공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고, 인피면구를 뒤집어쓰는 방법도 있다.
물론 두 가지를 병행했을 때는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문제는 역용술 역시 돈이 든다는 점이다.
누군가로 변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과 신발을 사야 하고, 그 사람의 정보를 사야 하며, 그 사람의 인피면구도 구입해야 한다.
여기서 인피면구가 말도 못 하게 비싸다.
물론, 진짜 사람 얼굴 가죽을 벗겨서 덮어쓰는 방법도 있다. 약품 처리만 잘하면 피비린내도 나지 않고 제일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건…….
‘너무 역겹지.’
내가 이렇게 비위가 좀 약하다. 좋게 말하면 이렇게나 인간적이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나는 주로 소가죽으로 된 인피면구를 구입했는데, 이 경우에도 돈이 비쌀수록 정교하다.
‘도망자 신세라 돈이 넘쳐나진 않았으니 늘 중하급용을 썼지만.’
아마 최고급 인피면구는 돈 많은 불명회 같은 놈들이나 사용하겠지.
‘아, 그러고 보니 또 한 명 더 있구나. 최고급 인피면구를 쓰는 사람이…….’
어쨌거나 결국 돈이 문제다.
괜히 성질이 난 남궁천이 귀왕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아얏. 또 왜 그러십니까요?”
“이 정도면 요리도 훌륭한데 왜 돈을 못 모으냐?”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반장이 무림맹에서 거리가 좀 되다 보니…….”
귀왕이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꺼내는데 마침 주렴을 젖히며 한 쌍의 남녀가 들어섰다.
“저어, 계십니까? 식사 되나요?”
남자의 말에 귀왕이 허리를 펴고는 돌아보았다.
“어서 오시지요.”
남자는 어딘지 살벌해 보이는 귀왕의 얼굴을 보고는 슬쩍 질린 표정을 지었다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식, 식사가…… 가능한지…….”
“뭘 그리 당연한 말을. 어디 좋을 대로 앉아 보시지요.”
“아…… 네? 네…….”
“이 밥버러지들아! 손님 왔는데 뭘 멀뚱히 서 있냐! 엉덩이가 무거운 거냐? 네놈들 엉덩이 살을 베어다가 육수를 우려 주랴?”
“갑니다요.”
귀소이 하나가 투덜거리며 걸어가더니 바짝 얼어붙은 남녀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뭘 드시겠습니까요?”
“저어…… 그게…… 뭐, 뭐가 맛있을까요?”
“육수 진하게 우려낸 국수가 일품입니다만?”
귀소이가 한쪽 입매를 치켜 올리며 대꾸하자 남녀의 표정이 샐쭉해졌다.
그렇잖아도 방금 전 엉덩이 살을 우린 육수 이야기를 들었기에 더욱 식욕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다, 다른 건…….”
“다른 것도 있긴 한데 진한 육수가 일품인 국수입니다. 강력 추천입니다만.”
“아하하…… 저어…… 그, 그럼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허겁지겁 인사를 마친 남녀가 얼른 손을 잡고는 후다닥 뛰어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귀소이가 콧잔등을 씰룩이다가 혀를 찼다.
“쳇! 경쟁 점포에서 염탐하러 온 건가?”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남궁천이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들 이제 보니 요리 문제가 아니구나.”
“예? 그, 그럼 무슨 문제가…… 아! 설마 가격이 문젭니까요? 역시 너무 싸서…….”
“정신교육을 좀 받아야겠다. 태도가 글러먹었어.”
“에……? 그런데 어딜 가시려는……?”
“닭을 훔칠 생각이다.”
“닭을요? 아! 역시 그런 방법이! 닭을 훔쳐서 육수를 내면 밑천을 많이 아낄 수 있을 겁니다요! 어디부터 털까요? 역시 경쟁 중인 바로 옆집부터…….”
딱!
“아흑!”
귀왕이 다시 뒤통수를 부여잡고는 눈물을 글썽이자, 남궁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달걀을 낳을 닭을 훔칠 거다.”
“예? 그럼…… 달걀 재료를 아끼시려는…… 아닙니다.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봐서 조만간 사람을 보낼 테니 최대한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지내라.”
남궁천이 말을 남기고 떠나자, 귀왕이 시무룩하게 대답하고는 돌아섰다.
그가 귀소이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이 새끼들아! 그러게 재료값을 아끼라고 했잖냐! 앞으론 닭값은 무조건 후려쳐! 알겠냐?”
“존명!”
귀소이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 * *
진소홍은 남궁천을 빤히 바라보면서 두 눈을 끔뻑였다.
갑자기 남궁천이 숙소로 찾아온 것부터 의외였는데, 남궁천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더욱 의외였다.
‘밑도 끝도 없이…….’
하지만 그 밑도 끝도 없는 말이 마치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들려서 더욱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궁천이 진소홍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또 저 눈빛…….’
마치 자신도 모르는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만 같은 눈빛이다. 인생의 굴곡을 다 겪어본 사람이나 가질 만한.
진소홍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물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느닷없이?”
“혹시 실례였나?”
남궁천이 무미건조하게 묻는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
진소홍은 속에서 치민 목소리를 잠재우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냐. 우선 들어와.”
진소홍이 남궁천을 창가의 탁자로 안내했다.
“뭐 좀 마실래?”
“괜찮아. 대답은?”
“굉장히 급하네.”
“갑자기 급해졌거든.”
“일단 내가 궁금한 게 너무 많아.”
“물어봐. 대신 전부 대답해줄 거라는 기대는 말고.”
남궁천의 딱딱한 대답에 진소홍이 잠시 입을 헤 벌리고 있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이런 애가 지난 세월 공식 호구로 지냈다니.
진소홍이 심호흡을 하고는 남궁천을 빤히 보며 물었다.
“먼저 어떻게 알았지?”
“뭘? 네가 돈 많은 집 자제라는 걸? 아니면 역용술을 썼다는 걸?”
“……!”
“둘 다 궁금한가?”
남궁천이 태연하게 묻는 말에 진소홍은 입을 쩍 벌렸다.
보통이 넘는다곤 생각했지만 도대체 이 인간은 뭐지?
머릿속이 혼란하다.
진소홍이 입만 벙긋거리고 있자, 남궁천이 본론만 빠르게 말했다.
“우선 내가 오랫동안 봐야 겨우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인피면구가 정교했어. 그렇다면 역시 최고급 인피면구. 한 장에 전각 한 채 정도 하려나? 그럼 당연히 굉장한 부자여야 하는 것 아닌가?”
“…….”
“거기에 무공까지 사용해서 역용술을 부렸으니…… 실제 무인이라기보다는 강호와 연이 깊은 상단의 자제가 아닐까 싶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네가 흘린 게 많지. 가령, 계산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게 몸에 밴 거라든지, 어려서부터 실리를 철저하게 따지며 자란 티가 난다든지.”
“그렇게…… 티가 나?”
남궁천이 피식 웃었다.
“아마 다른 사람은 모를 거다. 나만 알겠지.”
“넌 어떻게 아는 건데?”
“눈치가 백단이거든.”
안 그러면 진작 죽었을 운명이지. 수십 년간 무림맹의 천라지망을 피해가며 도망 다녀봐라.
눈치가 신의 경지에 오를 테니.
진소홍이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 날 찾아와서 보자마자 최고급 인피면구 한 장을 달라고 한 거야?”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금왕(金王)의 딸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