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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진짜 임신 맞아? (31/100)

33. 진짜 임신 맞아?2021.12.25.

공항에 도착한 민후는 비즈니스 라운지에서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고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의 이름을 보자 민후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16551887820376.jpg“일어났어?”

16551887820382.jpg[언제 나갔어요? 깨우지 그랬어요.]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16551887820376.jpg“자는 사람 깨우기 그래서 그냥 나왔어.”

16551887820382.jpg[배웅도 못 하고 미안해요.]

16551887820376.jpg“아냐. 미안하긴. 어제 내가 못 자게 괴롭혔는데 푹 자게 조용히 나와야지.”

아내가 말이 없었다. 민후는 어제 제 욕심을 채우느라 늦은 밤까지 아내를 연달아 두 번이나 안은 것이 조금 신경 쓰였다. 아침이 되어 이성을 찾고 보니 어제 좀 과했나? 아내가 부담스러웠을까? 걱정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16551887820376.jpg“몸은? 괜찮아?”

어제 좀 과격했던 것 같기도 해서 걱정되었다. 며칠 못 본다는 생각에 조급했던 것 같다.

16551887820382.jpg[……네.]

아내는 안 괜찮아도 늘 괜찮다고 말하는 성격이라 민후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6551887820376.jpg“잘 때 문단속 잘하고.”

16551887820382.jpg[네. 잘 다녀와요.]

전화를 끊고 민후는 곧 탑승을 시작한다는 안내방송에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출장 가는 인원은 해외사업부 팀장과 부장, 민후 세 사람이었다. . . . 일등석에 탑승하고 비행기는 곧 이륙했다. 미팅할 자료를 보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16551887820423.jpg“어머, 강 전무님 아니세요?”

민후가 설마 하며 시선을 들었다. 익숙했던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 불쾌한 스토커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16551887820423.jpg“강 전무님 맞으시네.”

스토커 이선주가 민후를 보며 활짝 웃었다. 웃는 얼굴을 보는데 화가 치밀었다. 했던 짓을 생각하면 구속되어야 마땅한데 집행유예로 이렇게 사회에 활보하고 다니는 것이 짜증 났다. 딱히 출국 금지 조치도 없던 터라 집행유예 중에도 해외에 다닐 수 있다는 것도 못마땅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사람을 비행기 안에서 마주쳤을 때의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상당했다. 민후는 선주를 보고는 무시하듯이 고개를 돌렸다.

16551887820423.jpg“상해에 출장 가시나 봐요?”

선주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민후가 보던 서류를 보며 말했다. 민후가 서류를 못 보게 하며 인상을 썼다.

16551887820376.jpg“뭐 하는 겁니까! 가까이 오지 말아요.”

짜증 섞인 얼굴로 노려보자 선주가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16551887820423.jpg“아, 저 접근한 거 아니에요.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탄 것뿐이에요.”

왜 하필 저 여자와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지. 3천 미터 상공을 나는 비행기에서 내릴 수도 없고.

16551887820423.jpg“전 여행가는 길이거든요. 처음 혼자 가는 여행이라 좀 두려웠는데 비행기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니 반가워서 그랬어요. 그럼, 전 이만.”

알고 싶지도 않은 자신의 상황을 얘기하고는 선주가 자리로 돌아갔다. 선주는 민후와 그리 떨어지지 않은 같은 일등석 자리에 앉았다. 일등석이라 민후는 의아했다. 예전 선주에 관해 보고를 받을 때 대학가 원룸촌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들었다. 경제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일등석 티켓을 샀다고? 의아했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상해에 도착하고 민후는 회사에서 준비해준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할 때 선주가 택시를 타려고 줄을 선 모습을 지나치며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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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근 후 은조는 혼자서 저녁을 차려 먹었다. 남편도 없는데 혼자 간단히 식사하려고 도우미도 일찍 퇴근하라고 했다. 간단하게 샐러드로 저녁을 대신했다. 식탁의 빈 앞자리를 보면서 은조는 허전함을 느꼈다. 전에는 혼자서 저녁을 먹는 것이 흔했는데 이상하게 어색했다. 근래에는 남편과 함께 식사한 일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남편이 출장 간 지 아직 하루도 안 되었는데 벌써 보고 싶었다. 아침에 가는 것을 못 봐서 더 아쉬운 것 같았다.

16551887820382.jpg‘벌써 이렇게 보고 싶은데 며칠을 어떻게 견디지?’

시무룩한 얼굴로 저녁을 먹고 뒷정리를 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은조가 미간을 구겼다. 예지였다. 별로 받고 싶지가 않았다. 안 받으면 집요하게 전화할 것이 뻔해 전화를 받았다.

16551887820382.jpg“여보세요.”

16551887834177.jpg[동서, 지금 뭐 해?]

16551887820382.jpg“그냥 쉬고 있어요.”

16551887834177.jpg[나 근처 왔다가 동서 생각나서 임신 축하 선물 하나 샀는데 이거 좀 전해줄까 하고. 잠깐 들어가도 돼?]

16551887820382.jpg“네? 갑자기…… 연락도 없이.”

은조는 집에 온다는 말이 반갑지가 않았다.

16551887834177.jpg[선물만 전달해주고 갈 거야. 몇 동 몇 호지?]

은조는 예지가 집에 오는 것이 달갑지 않았지만, 근처까지 왔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집 호수를 알려주었다. 얼마 있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다.

16551887820382.jpg“어서 오세요, 형님.”

반갑지 않았지만 예의상 인사하며 예지를 맞았다.

16551887834177.jpg“자, 이거 선물.”

예지가 들어서자마자 선물 상자를 내밀었다. 웬 임신선물? 은조는 예지가 임신을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선물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절대 순수한 의도는 아닐 것이 분명했다.

16551887820382.jpg“고마워요. 형님.”

16551887834177.jpg“임신했다는 얘기 듣고도 내가 선물 하나 못 챙겨줬더라고. 내가 이번에 시험관 아기 시술에 실패해서 마음에 여유가 없었어. 이해해줘.”

예지를 쳐다보며 은조는 이게 진심인가, 아니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가 헷갈렸다. 예지는 집으로 들어오며 구경하듯이 집 안을 살폈다.

16551887834177.jpg“인테리어 깔끔하네. 나도 이런 화이트톤으로 바꿀까 봐.”

예지는 집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16551887834177.jpg“가구는 다 어디 제품이야? 이태리제야? 프랑스?”

16551887820382.jpg“잘 모르겠어요. 민후 씨가 원래 쓰던 물건이어서.”

예지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16551887834177.jpg“아, 맞다. 동서 결혼할 때 혼수를 하나도 안 해왔었지.”

결혼 당시 은조가 혼수를 하나도 안 해온 것을 두고 예지는 두고두고 문제 삼았었다. 자신이 억대의 혼수를 해온 것과 비교하며 은조를 후려쳤었다.

16551887834177.jpg“우리 서방님이 너무 검소하셔서 동서는 땡잡았지. 무슨 복이야, 대체.”

3년간만 살다 헤어질 계약 결혼이기에 민후가 혼수고 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었다.

16551887834177.jpg“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침대 하나 달랑 들고 결혼을 하냐?”

예전 레퍼토리가 또 시작되었다.

16551887834177.jpg“나는 12자 장롱에 서랍장 2개, 장식장 2개, 킹사이즈 침대에 기현 씨 서재에 들어가는 책장하고 책상, 의자, 또 뭐 있었지? 식탁, 의자. 가구만 1억이 넘었어. 다 이탈리아 거였거든. 그뿐이야? 가전제품도 최고 사양으로 싹 다 해갔지.”

네, 네. 장하십니다. 은조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혼수 자랑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16551887834177.jpg“나만큼은 못 해도 최소한의 혼수는 하는 게 예의지. 아무리 서방님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어도. 서방님도 속으로는 그래도 몇 가지는 하겠지, 생각했을걸?”

예전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말을 했다. 예지가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며 말했다.

16551887834177.jpg“어머, 이건 유명한 폴란드 화가 그림이지? 어디서 구했어?”

16551887820382.jpg“민후 씨가 경매에서 낙찰받은 거래요.”

집 구경하는 예지 뒤를 따라가며 은조가 마음에 들지 않은 얼굴로 쳐다보았다. 선물만 전해주고 간다더니? 안 갈 생각이야?

16551887820382.jpg“뭐 마실 거라도 드려요?”

빨리 가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예의상 물었다.

16551887834177.jpg“응. 주스 있으면 좀 줄래?”

선물만 주고 간다는 말은 빈말이었나 보다. 은조는 실망한 티는 내지 않고 주방으로 갔다.

16551887834177.jpg“나 유기농 착즙 주스 아니면 안 먹는 거 알지?”

냉장고에서 음료수병을 꺼내려던 은조가 멈칫했다. 지금 즙을 내달라고? 은조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숨기고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냈다. 주서기에 주스를 즙을 내 가져다주니 예지가 냉큼 받았다. 잔을 들고 은조를 보며 물었다.

16551887834177.jpg“뭐 이상한 거 넣은 건 아니겠지?”

16551887820382.jpg“예?”

은조가 턱을 당기며 인상을 썼다.

16551887834177.jpg“아니야.”

예지는 자신처럼 침이라도 뱉었나 싶었는지 의심하면서 주스를 마셨다. 바로 곁에서 즙을 내서 침을 뱉을 수가 없었다.

16551887834177.jpg“이거 유기농 맞지?”

예지가 한 모금 마신 주스 잔을 들며 물었다.

16551887820382.jpg“네.”

16551887834177.jpg“난 유기농 아니면 피부 트러블 나거든.”

은조는 속으로 말했다. 유기농 아니지롱. 주스를 다 마신 예지가 선물 상자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16551887834177.jpg“선물 풀어 봐.”

은조는 선물 상자를 열었다. 아기 내복과 손 싸개, 발싸개가 들어 있었다.

16551887820382.jpg“예뻐라. 고마워요.”

은조는 형식적인 미소로 고맙다고 했다.

16551887834177.jpg“동서 지금 몇 주차지?”

은조는 다소 당황했다. 가짜 임신이기에 지금이 몇 주차인지 계산을 미처 해두지 못했다. 빠르게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지난번 가족 식사 때가 3주 전이니까.

16551887820382.jpg“7주요.”

16551887834177.jpg“그것밖에 안 됐어?”

예지가 의심의 눈으로 보며 물었다.

16551887834177.jpg“아기 초음파 사진 좀 보여줘 봐. 보고 싶어.”

16551887820382.jpg“전에 봤잖아요.”

16551887834177.jpg“그 후로 또 안 찍었어?”

16551887820382.jpg“네.”

16551887834177.jpg“다른 임신부들은 자주 찍던데.”

예지가 떠보듯이 말했다.

16551887834177.jpg“아기 수첩도 있지? 보여주면 안 돼?”

은조가 불쾌한 얼굴로 예지를 보았다.

16551887820382.jpg“그건 왜요?”

16551887834177.jpg“그냥. 궁금해서.”

예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16551887820382.jpg“개인정보가 들어 있어서요. 일기처럼 메모해둔 것도 있어서 보여주기 좀 그래요.”

적당히 둘러댔지만 예지가 임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16551887834177.jpg“그래. 알았어.”

예지는 일단 한 발 물러났다. 그러고는 팔을 뻗어 은조의 아랫배를 만졌다.

16551887834177.jpg“임신하면 느낌 어때? 뭔가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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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배에 손을 대자 은조가 깜짝 놀라며 예지 손을 떼어냈다.

16551887820382.jpg“왜 이래요?”

16551887834177.jpg“임신 기운 좀 얻어가려고 그러지.”

예지는 은조의 임신이 아무래도 의심되어 슬쩍슬쩍 떠보고 있었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긴가민가했다.

16551887834177.jpg“좋겠다. 아버님이 지분도 주셨다면서?”

예지는 은근슬쩍 속내도 드러냈다.

16551887834177.jpg“서방님이 경영권 쥐게 될지도 모르는데 기분이 어때?”

16551887820382.jpg“전 그런 건 잘 몰라요. 민후 씨가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직급에 있든 상관없어요.”

16551887834177.jpg“왜 상관이 없어. 회장님 사모님이 되는 건데.”

예지는 자신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도 저렇게 말하는 은조가 얄미웠다.

16551887834177.jpg“상관없으면 받은 지분 다시 반납하라고 하든지.”

16551887820382.jpg“회사 일에 제가 관여할 생각 없어요.”

예지가 코웃음을 흘렸다.

16551887834177.jpg“쳇, 빠져나가기는. 속으론 좋으면서.”

예지가 그만 가려는지 핸드백을 들고 일어났다.

16551887834177.jpg“서방님 출장 갔다며?”

16551887820382.jpg“어떻게 알았어요?”

16551887834177.jpg“나 원래 회사 일에 관심 많잖아. 기현 씨한테 들었지.”

현관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16551887834177.jpg“동서 그거 알아?”

구두에 발을 끼워 넣으며 말을 이었다.

16551887834177.jpg“남자들이 출장 가면 해방감을 느끼나 봐. 아내 몰래 자유롭게 놀고 그러나 보더라.”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서 저러는 걸까? 은조는 예지를 빤히 응시했다.

16551887834177.jpg“와이프가 임신하면 더 그런 충동이 인다고도 하더라고.”

16551887820382.jpg“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요?”

16551887834177.jpg“아니, 출장 갔다니까 그냥 생각나서. 에이, 설마 서방님은 그러지 않겠지, 뭐.”

예지는 얄밉게 말하고 손을 흔들었다.

16551887834177.jpg“나 그만 갈게. 잘 지내.”

현관문이 닫히고 은조는 어이가 없는 웃음을 흘렸다.

16551887820382.jpg“허, 왜 저래, 진짜.”

은조가 돌아서며 입을 삐죽였다.

16551887820382.jpg“유기농 아니면 피부 트러블 난다더니, 주스 먹고 뇌에 트러블이라도 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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