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3화 〉7. 단서 (83/100)



〈 83화 〉7. 단서

너구리 수인이 어떠한 방식으로 돌연변이들을 조종하고 있는지, 그 증거를 찾아내기 위한 방법은 별다른 시간 소모없이 빠르게 정해졌다. 애초에 너구리 수인은 마을의 일원이자 수뇌부라 할 수 있으니, 외부인인 그들의 입장에서  수 있는 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할  있는 것'의 범주는 태반이 불법적인 일이라 들킨다면 자칫 큰 문제를 야기  수도 있다.



도로스들은 이런 방면의 전문가인 카지트의 조언 아래 그 불법적인 일들  적절히 효과적이고 적절히 안전한 방법을 적절하게 골랐다. 신기하게도 카지트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말수가 적어진 이래로 처음보는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그 덕분이었는지 결국 도로스들은 카지트의 의견을 굽히지 못했다. 그가 원하는 방법대로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방법자체는 매우 단순하다.


너구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카지트가 너구리의 집에서 증거품을 얻어낸다는 방법이다. 야간순찰을 도는 자경대를 피해 유유히 밤산책을 하는 카지트만이 할  있는 방법. 그의 실력으로  때 들킬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도로스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네 정말 괜찮겠나? 너무 자네에게만 짐을 지우는 것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네만."



"..난 괜찮아."


"글쎄, 자네 꼴을 보면 누구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오."


프로바움의 의견에 도로스와 닥터 윌슨도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잠을 자지못한 까닭인지 움푹꺼진 볼과 점점 수척해져가는 몰골은 해골의 그것에 가깝다. 쑥들어간 눈두덩이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냉철한 눈동자만이 그의 결심을 짐작케 했다.




그러나  초췌한 모습에 일행은 걱정을 감출  없었다. 저 상태론 증거를 찾아내기도 전에 먼저 쓰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지트는 한사코 도움이나 다른 방법을 거부했다. 사실  상황에서 그가 생각한 방법만큼 괜찮은 게 없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몇 번을 물어도 같은 대답만이 돌아오니 결국 모두  손 두 발을 들었다. 누가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있단 말인가? 강철보다도 단단한 그 고집에 혀만 내두를 뿐이다.



뮐러와 남은 자경대 대원들이 간략하게 시체를 수습하고 돌연변이들의 전리품을 갈무리하자, 모두는 다시 마을로 향했다. 그러나 그 발걸음은 무겁기 짝이 없었다. 동료의 죽음과 축소된 전력의 탓이다. 그러나 용병에 불과한 도로스들은 그에 관해서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었다.




마을로 돌아가는 길엔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돌연변이는 커녕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않았다. 오로지 어두컴컴한 파이프의 썩은내와 바닥을 나뒹구는 쓰레기들만이 그들을 지켜볼 뿐. 올 때와 같은 파이프임에도 돌아가는 길은 좀  먼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죽은 이들이 그들의 발목을 잡아서 인지도 모른다.

음울한 냄새.

방독면을 끼고 있음에도 도로스는 주위에 밴 그 싸늘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느꼈다. 주위는 조용했다. 모두 말이 없었다. 그 이유가 다들 그처럼 서늘하게 다가오는 사자死者의 내음을 맡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혹시나 있을지 모를 돌연변이들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서인지, 도로스는 확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 앞을 밝힐 정도로만 켜놓은 희미한 광량. 마치 죽어버린 듯한 침묵. 파이프의 맴도는 검은 장막 저 너머에서 무언가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분위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도로스는 무언가 그의 등골을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기분나쁜 것을 넘어 몸을 옥죄는 듯한 불쾌함. 방독면에 가려 보이진 않았지만, 도로스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고민했다. 그러나 모든 설명은 단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도로스는 그것을 입 밖으로 내었다.



"좋지 않은 느낌이 들어요."


도로스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길잡이, 그중에서도 희귀하다는 선천적인 길잡이의 감이다. 거의 반쯤 예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정확성을 가진 그것을 무시  정도로 카지트들은 멍청하지 않았다.



이미 마을에 거의 다다른 상황.

모두는 잔뜩 털을 곤두세우고 경계하며 천천히 마을 쪽으로 향했다. 자칫 돌연변이들을 마을로 끌고 들어갈지도 모르지만, 이미 몇 차례 전투를 거친 후라 그들의 전투력은 그다지 쓸만하지 못했다. 차라리 마을을 경비하는 이들의 힘을 빌리는 편이 좀 더 나으리라.




한층 더 날을 세우고 천천히 행군했기 때문인지 마을에 이르기까진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마을의 바리케이트가 보이고 마을에서 자경대가 마중나올 때까지 돌연변이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뮐러와 그를 따라온 자경대원들은 바리케이트가 보이는 순간 힘이 탁 풀리는 걸 느꼈다. 길잡이의 말을 믿고 그리 경계하며 천천히 왔건만 결국 불필요하게 시간만 지체한 셈이다.

그들은 약간의 짜증을 담아 도로스 쪽을 노려봤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도로스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일행들은 한층 더 표정을 굳혔다. 마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습격이 없기에 더욱 불길했다. 돌연변이들 뒤에서 누군가 그것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 불길함은 한층  구체적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종합해보았을 때, 나오는 결론은 하나다.

마을 단위의 습격.




심지어 도로스마저 같은 결론을 마음 속으로 내놓았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서로 눈길을 주고 받는 것으로 일행은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도로스들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그들을 마중나온 이들 중엔 당연하게도 너구리 수인이  있었는데, 그 표정이 심상찮았기 때문이다. 아마 사정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이 봤을 때,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은 사망한 이들에 대한 슬픔과 돌연변이에 대한 증오 때문이라고 생각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로스들은  수 있었다.


사실 그것이 정 반대라는 것을.

갈무리 된 고깃덩이를 보는 그 눈길에선 이유모를 아쉬움과 착잡함이, 그리고 뮐러들과 도로스들을 바라볼 땐 적의와 경멸 따위를 찾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름대로 숨긴다고 숨겼지만, 눈썰미 좋은 프로바움과 카지트에겐 소용없었다.

"쯧, 그 녀석 눈빛을 보아하니 조만간 크게 일을 벌일 것만 같군 그래."


프로바움의 나지막한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펼친 작전 회의엔 심각한 분위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이대,로 라면 분명 돌연변이들이 마을을 공격 할 것 같습니다.  규모는.. 잘 몰라도 무시 못할 정도일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어째서 지금에서야 나선 건지 알 수 없네. 진작에 마을을 덮칠 수 있을 규모였다면 우리가 이 조그만 촌락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끝이 나있었을 텐데."


"그것도 그렇네요. 사실 이런 조그만 마을 쯤은 사냥 했던 돌연변이들 두 세 무리가 같이 왔다면 끝났을 거에요. 음..아마 저희들 때문에 화가 난게 아닐까요?"


왠지모르게 설득력 있었다. 특히 마을로 돌아왔을 때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담아 그들을 노려보고 있던 그 모습을 떠올린다면야. 어찌됐건 상대가 멍청하다면 그들에겐 호재였다. 머리좋은 적 많큼 골치아픈 것은 드무니까.

"그래서, 다들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카지트 자네는?"

카지트는 무언가 생각해둔 것이 있는듯 했지만 대답하길 망설였다. 자신감의 결여다. 북부의 유적에서 옛 동료를 만난 이후 줄곧 보여주는 모습. 프로바움은 조용하게 응시하며 그를 달랬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카지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로 마을을 떠났으면 해."



"뭐, 그게 현재로썬 제일 낫겠지."

"저도 동의합,니다. 남은 탄약,이나  마을의 전력을 고,려해볼 때, 어찌어,찌 막을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좀 더 안,전한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닥터 윌슨의 타당한 의견에 프로바움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도로스의 차례. 장내 모든 이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셋이서 비슷한 의견을 모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길잡이의 의견이다. 도로스는 제가 가진 생각이 일행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고 말을 더듬었다.


"어..그, 저기."



"왜 그러나? 말해보게."


"그...저는 남아서 도와주고 싶어요. 아무래도 조그만 마을이라 그런가..고향 생각도 나고.."



도로스는 말하는 내내 일행들의 눈치를 보았다. 제가 하는 말이 말도안되는 부탁이란 것 쯤을 잘 알고 있는 모습이다. 프로바움은 피식 웃고는 파이프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폐부를 넘어  속 톱니바퀴 하나 하나까지 스며드는 연기는 따듯한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우리 길잡이께서 그리 말하신다면야. 나는 상관없네. 그러고보면 이미 마을 주변에 돌연변이들이 진을 치고 있다는 가능성도 있겠군."


"으음..도로스가 그렇게 말,한다는 건 전투를 벌여도 괜,찮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찬성,입니다."



도로스는 당황하며 재빨리 감을 확인했다. 싸워도 될까? 으음, 되겠지? 될거야 아마. 경고는 울리지 않았다. 부정적인 느낌은 다소있지만 그 정도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도로스는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군. 그럼 카지트, 자네는?"


카지트는 침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잡이는 도로스이니 도로스의 판단을 따른다는 것이다. 프로바움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갑자기 태도를 바꾼 동료들의 모습에 도로스는 어안이 벙벙했다. 방금전까지 마을을 떠나야한다고 말했던 이들은 어디갔단 말인가?



도로스는 이들이 그를 배려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뭐, 그렇게 되었네.  줏대없어 보이긴 해도 길잡이의 의견을 무시 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네. 자넨 그중에서도 제일 정확할 테니. 뭐, 동정심에서 나온 발언이란  알지만 그래도 자네니까 뭔가 생각이 있겠지."


감으로 따진다면 어찌어찌 할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동료들이 그를 따라줘야하는 법.



도로스는 좋은 동료들을 두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침묵했다. 가끔은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은 일도 있는 법이다. 대신 그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럼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전해줄까요?"



"..아니. 이야기해도 어차피 믿지 않을거야. 마을에 도착 할 때까지 돌연변이가 나타나지않았으니 뮐러녀석들의 눈초리가 그리 곱진 않았거든."

"맞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전한다면 필연,적으로 너구리에게,까지 이야기가 흘러,들어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비슷한 의견일세. 마을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우리끼리 조용히 준비하는 편이 낫겠지. 괜한 변수는 줄일 필요가 있네. 내가 너구리였다면 길잡이의 경고를 듣는 즉시 침공을 멈출 거라오.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사냥을 나갔을 때, 우리에게 총공세를 가하겠지. 마을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머릿수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테니, 그땐 정말 끝장이겠군."



뭐, 지금까지 하는 짓을 보면 그다지 머리가 뛰어나지 않은  같지만. 프로바움은 카이저 콧수염을 매만지며 클클 웃었다.

카지트는 벽에 기댄 채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인공조명의 밝기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밤이 오고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마을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들은 거대한 광란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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