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죽음을 보는 소년-1
끼룩대는 갈매기 소리가 들려오는 항구에는 늘 짠내가 진동했다. 바닷가에 사는 이들의 숙명처럼, 태어나면서부터 맡게 되는 짠내는 항구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냄새기 마련이다.
조그마한 소년의 가장 첫 번째 기억 역시 바다에서 불어오는 그 소금기 짙은 냄새였다.
하지만 바다의 짠내는 바다에서부터 몰려오는 것이고, 따라서 코앞에서 맡는 다른 냄새에 얼마든지 가려질 수 있다.
그래서 짧지도 길지도 않은 생을 살아온 소년에겐 바다 내음보다 더 인상 깊고 선호하는 냄새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맡을 수 없지만 오직 소년이 맡을 수 있으며 향기와 같은, 죽음의 냄새 말이다.
***
대충 만든 나무판자나 돌을 가지고 지은 판잣집들이 마구 뭉친 실뭉치처럼 모인 빈민가.
그 가난이 짙게 내려앉은 터전에서 횃불을 든 이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몰려다니고 있었다. 모두가 잠들 법한 밤이었지만 그들은 뜬 눈으로 판자촌 거리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들의 심장이 두방망이질치고 시퍼렇게 뜬 눈이 사방을 훑는다.
무언가 넘어지는 요란한 소리와, 단단한 무언가가 바닥과 마주하는 요란한 소리, 수없이 겹치는 터벅거리는 발소리들과, 쇳소리에 가까운 걸걸한 목소리가 마구 뒤섞이며 모든 게 부족한 곳에서 잠마저 빼앗아가겠다는 듯이 모두를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찾았어!”
“뭐! 찾았다고!”
“아니, 찾았냐고!”
목이 쉬기 일보직전의 외침은 의문문을 제대로 구별하지도 못하게 했다.
우락부락한 몸이라 말 그대로 깡패라고 불릴 법한 이들이 한 손엔 횃불을, 한 손엔 몽둥이 혹은 뭉툭한 단검을 들고 우르르 돌아다니는 것이 마치 조직끼리의 판자촌 내 구역다툼을 벌이는 것으로만 보였다. 거친 숨결과 악의에 찬 눈동자가 판자촌의 빈민들을 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허나, 그들의 목적은 서로 싸우는 게 아니었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어두침침한 골목에 횃불을 들이대 쥐를 놀라 도망가게 하고, 사람이 숨을 법한 곳은 마구 뒤지며 먼지를 일으키는 것이 명백한 수색이었다.
“......”
한 낮은 판잣집의 지붕 위. 항구에서 사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바다 짠내에 익숙한 조그만 체구의 남자아이가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렇게나 지어진 지붕이 불편한지 소년이 자세를 계속 바꾸었고 그 때마다 지붕에서는 당장이라도 내려앉을 듯이 끽끽거리는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말 그대로 꼬마아이라 할 수 있는 소년의 눈동자에, 거미줄처럼 마구 얽힌 좁고 복잡한 판잣집 가득한 빈민가가 주황빛의 빛무리로 가득 찬 광경이 들어왔다.
그건 마치 저 멀리, 판자촌 사람들이 소위 ‘잘 사는 것들’이라 부르는 족속들이 사는 곳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다만 색은 달랐다. 잘 사는 것들의 거리는 대충 만든 나무횃불이 아니라 금속으로 만든 길쭉한 등불이 거리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서 있고, 저런 따스한 빛이 아니라 차가운 하얀 빛을 내뿜는다.
소년이 잘 사는 것들의 거리에 접근할 수 있을 때는 금속 등불을 일일이 끄고 켜는 가로등지기였나 하는 사람이 불을 끄러 돌아다닐 때뿐이었다. 그 시각은 새벽이라 빈민가에 사는 남루한 아이가 접근해도 그걸 아는 이가 없으니까. 하지만 거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밤낮없이 돌아다니는 경비들에게 저지당했다.
그래서 소년은 가로등이 화려하게 켜진 밤거리를 직접적으로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하얀 빛무리만을 보아왔을 뿐이었다. 그건 판자촌보다 높은 건물들의 그림자와 겹쳐 참으로 동경할 만한 모습이었다.
누군가를 쫓기 위해 잔뜩 횃불을 밝혀 밤에도 밝아진 판자촌은 잘 사는 것들이 사는 거리의 빛무리와 닮아 있어 약간이나마 잘 사는 것들과 가까워진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렇지만 소년이 이 상황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착각 때문이 아니었다.
“흐음, 좋다.”
소년이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공기가 폐부를 채우기 전에 코를 먼저 스치며 기분 좋은 냄새를 느끼게 해주었다.
짙은 향이었다.
바다에서 몰려오는 비린내는 아니었다. 가장 처음 기억은 바다 내음이었으나 그 냄새는 오래 맡아 보니 너무 익숙해진 지 오래다. 밤이면 피어오르는 빈민가 뒤편 야산에서 내려오는 안개의 촉촉한 습기 냄새 역시 아니었다.
소년이 좋아하는 이 향들은 특이했다.
언제 맡아도 늘 새롭고 질리지 않으며, 수없이 다양한 종류를 자랑한다. 그래서 소년에게 이곳 빈민가는 수많은 종류의 꽃이 만개한 동산과도 같았다. 실제로 꽃이 가득한 곳의 냄새를 맡은 적은 없기에, 그저 빈민가 뒤편 산에 핀 꽃의 향기를 우연히 맡았을 때 생각해낸 상상의 표현일 뿐이지만.
“이럴 때가 정말 좋아.”
소년이 히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누군가와 대화할 기회가 적어 평소에 말수가 적은 편인 소년은 이럴 때만큼은 한껏 고양되어 웃음을 짓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소년의 짙고 검은 시선이 빈민가를 쭉 훑었다. 횃불의 빛에 밀려난 빈민가를 둘러싼 어둠이 그 시선에 움찔거리는 듯했다.
소년의 눈에 보이는 듯했다. 횃불의 빛이 미치지 않는 어둑한 곳에서 벌어지는 힘없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소년의 귀에 들리는 듯했다. 누군가를 쫓아다니는 이들의 거친 고함 사이로, 빛을 받지 못하는 이들의 신음과 비명이.
왜냐하면 코를 부드럽게 매만지고 사라지는 냄새들이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눈독들이던 여자의 집에 침입한 괴한에게 당하는 여인의 두려움에 떠는 숨결. 이때다 하고 물건을 훔치는 이의 저열한 쾌감에 찬 호흡. 남을 때리고 죽이는 이들에게 희생당하는 이들의 마지막 단말마와 같은 헛숨. 자신을 쫓는 횃불을 피해 도주하는 누군가의 공포에 가득 찬 날숨.
모두 은은한 꿀 냄새와도 같았다. 실제로 꿀을 맛본 적은 없지만 잘 사는 것들의 거리와 빈민가 사이에서 구걸하던 거지 노인의 말에 따르면, 꿀 향은 꽃향기와 비슷하지만 좀 더 진하다고 했다.
소년이 맡는 각종 숨결 역시 꽃향기보다 더 달달했다. 아마 그게 꿀 냄새가 아닐까, 하고 소년은 생각했다.
빈민가에서 풍기는 것들 중 소년이 가장 최상으로 치는 향기는 바로 누군가가 죽을 때의 향이었다.
미운 자의 등판에 칼을 꽂고, 물건을 뺏기 위해 머리를 내려치고, 그냥 죽이는 게 좋아서 혹은 실수로 남의 숨을 끊은 결과물들.
법과 경비병이 있는 잘 사는 것들의 거리보다 빈민가가 더 죽음이 흔했기에, 소년은 빈민가의 온갖 단점에도 이곳을 좋아할 이유를 한 가지는 만들 수 있었다.
마지막 숨이 넘어가며 뿜어져 나오는 향을 맡으면 소년의 영혼에 기분 좋은 간질임이 느껴지곤 했다. 소년이 단언컨대 그 향은 그 어떤 향보다도 좋은 것이었다. 소년이 지금껏 맡아본 냄새라고 해봤자 항구와 빈민가에서나 흔히 맡을 칙칙한 냄새들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소년은 이런 분위기가 좋았다.
누군가를 쫓는 일이 일어나며 전체적으로 혼란스러워지는 이 때, 그런 향기를 내는 사건들이 평소보다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각종 향들은 냄새로 벌과 나비를 꾀는 꽃처럼, 소년에게 이 빈민가에서 떠나지 않을 명분을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벌과 나비는 더 좋은 꽃향기를 따라 금방 떠나가는 법. 언젠가 빈민가에서 소년이 관심이 멀어지면, 소년은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다.
***
“이 자식, 빨리 와!”
횃불을 든 깡패들이 줄을 끌어당겼다. 손과 목이 밧줄에 묶인 남자가 신음을 내며 끌려왔다. 푸른 외투와 흰 바지가 진흙에 더럽혀진 채였다.
다리가 직직거리며 바닥에 끌리는 걸 보니 힘이 완전히 풀린 모양이었다. 깡패들의 얼굴에는 이 야밤에 뛰어다니게 만든 원흉을 당장 족치고 싶다는 주름이 짙게 그어져 있었다.
판자촌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붉은 불빛이 한자리에 모이니 꽤나 밝아졌다. 빈민가의 짙은 그늘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호기심과 불안감이 뒤섞인 눈을 굴렸다.
깡패들이 공터 한가운데에 끌고 온 남자를 꿇어앉혔다. 이내 인파가 갈라지며 일단의 무리들이 등장했다.
판잣집 위의 소년이 눈을 빛냈다. 끌려온 남자에게서 공포의 향기가 더 짙게 풍기기 시작했다. 그의 눈이 두려움을 품은 채 사방을 훑고 팔다리가 덜덜 떨리며 느끼고 있는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소년이 가장 기대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파를 가르고 나온 무리를 향하는 빈민들의 눈빛 역시 다소 변했다. 그건 두려움과 적대였다.
인파를 헤치고 나온 이들은 빈민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깡패들이 몰고 다니는 허세 섞인 위협과는 다른, 날카로운 삼엄함이 느껴졌다. 그들의 걸음걸이마다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다소 요란하게 들려왔다.
빈민가의 진흙을 착하고 밟는 신발은 흙이 묻어 있었지만 광만 낸다면 꽤나 고급스러울 검은 가죽이었고, 그 위로 다리에 딱 달라붙는 흰 직물 바지가 보였으나 긴 코트자락에 가려져 그리 부각되지는 않았다. 사람의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무르는 상체, 거기에는 상대방의 눈에 강하게 각인될 푸른색의 외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외투에는 여미지도 않을 금빛 단추들이 주렁주렁 두 줄로 달려 있었고 가슴팍에는 용도 모를 화려한 쇠붙이들이 잘랑거렸다. 풀어헤친 앞섶 안으로 얇은 흉갑의 금속성 광택이 횃불의 빛을 받아 불그스름하게 빛났다.
옷깃의 양옆으로 금실로 만든 어깨장식이 어깨를 부각시켰고, 머리 위엔 전체적인 형상이 뒤집은 배처럼 생긴,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챙을 지닌 짙은 남색의 모자가 있어 얼굴보다 모자에 먼저 시선이 가게 만들었다.
모자 밑으로는 니아트리브 귀족 형식으로 돌돌 말린 흰 머리카락이 모자와 더불어 얼굴에 갈 시선을 빼앗았다.
이는 무리의 맨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복식이었다.
빈민가 사람들은 그런 복장의 인물들을 흔히 ‘개자식’, ‘납치범’, ‘여왕의 푸른 악마’라고 불렀다. 당연하겠지만 면전에서는 ‘나으리’, ‘경’, ‘장교님’, ‘징병관님’ 등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존칭을 불러 대했다.
그렇지 않으면 ‘징병’되어 저 먼 바다로 팔려갈지 모르니까 말이다.
맨 앞의 남자를 따르는 이들은 장식이나 화려함은 덜했지만 복식이나 색상은 비슷했다.
다만 외투의 광택이 없으며 단추가 적었고 어깨의 장식이 덜 화려했다. 모자도 좌우로 길쭉한 ‘징병관님’에 비해 위와 옆이 다소 납작한 형상이었다. 왼팔에는 언제든지 상대를 겨눌 수 있도록 꼬챙이처럼 뾰족한 총검을 장착한 긴 머스킷을 끼고 있었다.
이들은 군인이고, 동시에 탈영병을 잡으러 온 이들이었다.
“얼굴.”
오만한 인상의 장교가 고개를 내리지 않은 채 뻣뻣한 목으로 눈만을 게슴츠레 내리 깔아 꿇어앉혀진 이를 내려다보았다. 한쪽 손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듯이 허리에 찬 칼의 손잡이 위에 슬쩍 얹었다.
깡패들이 줄에 묶은 남자의 머리채를 잡고 얼굴을 들어올렸다.
“맞군. 스티브, 탈영은 중죄인 걸 알잖나.”
“애초에 강제로 끌고 왔잖, 읍!”
제압될 때 한바탕 싸웠는지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한껏 찡그리는 남자의 얼굴이 바닥에 처박혔다.
“어디서 장교님께!”
호통은 장교의 뒤편 병사들이 아니라 남자를 붙잡고 있던 깡패들에게서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장교의 눈치를 살피며 실실 웃는 것이, 마치 재롱을 떨면 고기 한 점이라도 더 줄 걸 기대하는 개와 닮아 있었다.
“살살 다뤄라. 다시 데려가야 하니까.”
장교의 말에 깡패의 손힘이 다소 약해졌다. 그 말에 판잣집 위의 소년이 혀를 찼다. 검은 모래밭에 뒤섞인 한 줌의 흰 모래처럼 반짝이던 기대감이 쑥 들어가니, 소년의 눈은 다시 칙칙한 검은 눈으로 돌아갔다.
‘죽이는 게 아니었나.’
저번엔 죽이던데. 소년이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죽음의 향기는 무언가 죽는 순간에 가장 강하다. 죽고 난 뒤 남은 잔향도 향기롭긴 매한가지지만 죽는 순간과는 비교할 수 없다. 진창에 떨어진 지 꽤 지난 과일과 방금 가판대에서 가져온 과일의 맛 차이와 같았다.
장교가 고갯짓을 하자 뒤편의 병사들이 남자를 인계받았다. 남자는 저항할 힘도 없는지 포기한 기색으로 터덜터덜 끌려갔다.
깡패 두목으로 보이는 이가 나와 장교에게 조그만 주머니를 건네받고 굽신거리는 것을 끝으로, 그렇게 한밤의 소란은 일단락되었다.
장교를 선두로 다시 군인 무리는 발을 놀려 판자촌을 빠져나갔다. 척척거리는 물에 젖은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모여 있던 횃불들이 하나둘 흩어지고 골목 그늘에서 구경하던 이들도 하나하나 사라져갔다.
‘아쉽다.’
소년은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지붕에 벌렁 누웠다. 그 무게에 엉성하게 만든 누군가의 집 지붕이 끽끽거리며 또 신음소리를 냈다.
이런 구경거리가 없으면 밤중에 소년이 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흥이 깨지기도 했거니와, 오늘은 바로 자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할 일도 없겠다, 머리를 비우고 평소에는 볼 일 없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새카만 하늘에서 별빛이 한낮의 모래가루를 뿌린 듯 반짝였다. 하지만 그 별빛은 소년의 눈에 비치지 못했다.
소년의 눈동자는 너무나 어둡고 차가워, 별빛이 들어가 안착할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