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긴장 @AW
“엄마가 퇴원하자마자 다시 출퇴근한다고 난리야. 병원에서도 자꾸만 일하려고 해서 간신히 말렸는데, 퇴원하고 일한다 하는 거까진 못 말리겠더라고.”
“좀 쉬셔도 될걸.”
“이게 다 선배 때문이야.”
“응?”
“선배가 너무 대단한 일을 벌여놔서 엄마도 설레나 봐. 선배가 이뤄놓은 성과 때문에 엄마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거지.”
선아가 보이에 도진과 현숙 두 사람은 사업 감이 굉장히 좋았다.
자신은 한번 살아보고 난 후에야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졌는데, 이전 삶의 도진이나 그런 도진을 알아본 엄마는 자신의 감 하나를 믿고 큰 성공을 이루었다.
“엄마는 이번 기회로 회사가 한 번 더 도약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 봐. 근데 있잖아, 선배. 나는 엄마가 당분간 일도 쉬고, 운전 같은 것도 안 했으면 좋겠어.”
현숙은 이전 삶에서 차가 강으로 빠지는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예전 그 사고 말이야. 운전하다가 뇌출혈이 일어난 게 아닐까 싶어.”
그렇지 않고서는 잘 달리던 차가 갑자기 차에 빠질 일이 없다.
엄마는 졸음운전을 할 사람도 아니었고, 술을 좋아하긴 해도 술을 마시고는 절대로 운전대를 잡지 않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엄마 뇌에 문제가 생겼던 걸 안 이상, 과거처럼 운전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게 딸의 마음이었다.
뇌출혈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고, 코일 색전술을 했다고 하나 뇌동맥류가 재발하는 예도 있다고 하니 당분간은 엄마를 조심시키고 싶었다.
운전기사를 고용하자고 해도 엄마 성격에 안 할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미래 일을 늘어놓으면서 엄마를 설득할 수도 없으니 자신이 차를 몰아 아침 출근을 함께하고, 퇴근 시간이 어긋날 땐 새아빠에게 데리고 오라고 할 생각이었다.
“선배 말대로 삶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잖아. 이전 삶에 사로잡혀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변하는 게 없을 테니까. 운전도 다시 하고 이렇게 조금씩 더 노력해보려고.”
“근데 굳이 운전 연수를 받아야 해?”
“일단은 조수석에도 브레이크가 있으니까 내가 실수해도 어떻게든 될 것 같아서. 실은 근데 모르는 사람이랑 단둘이 차 안에 있는 게 조금 걱정되기도 해.”
이전 삶에서 벗어나고 있고, 더 나은 삶을 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죽던 순간에 대한 공포는 떨쳐지지 않는다.
자살로 위장이 되긴 했지만, 선아는 분명 살해를 당했다. 그것도 자신이 살던 집에 침입한 괴한에 의해서 말이다.
집은 선아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괴한이 숨어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다.
그랬기에 밀폐된 곳에서 낯선 사람과 단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이제는 희진에게 청부 살인을 할 만한 돈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럼 내 차 끌어볼래?”
“선배 차?”
도진의 제안에 선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배 차는 좀 큰데.”
도진의 차는 세단 중에서도 높은 트림에 속했다.
“큰 차 안 몰아본 것도 아니잖아.”
물론 그의 말대로 이전 삶에선 선아는 도진의 차와 동급인 차를 몰았다.
“사실 그때는 처음부터 어떻게 그런 큰 세단을 몰았는지 잘 기억이 안 나.”
아이를 태워야 한다는 생각에 안전하다고 이름난 무거운 차를 산 것이고, 당장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오가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운전이 몸에 뱄다.
“근데, 선배. 나 정말 운전할 수 있겠지?”
“그럼. 지금껏 다 잘해왔잖아. 일도 그렇고, 결혼식에서 깽판 놓은 것도 그렇고.”
“뭐야. 진짜.”
“지금껏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란 소리야.”
믿음은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든다.
지난 삶에서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던 선아는 자신을 의지하는 아이가 있어서 엄마로서 성장할 수 있었고, 처음 해보는 엄마 역할도 해낼 수 있었다.
그랬기에 이번에도 역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럼 운전 연수 좀 부탁할게, 선배.”
주차장으로 내려온 도진은 선아에게 차 키를 넘겼다.
“신발은…….”
신발은 뭘 신었냐고 물어보려던 도진은 선아의 발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출퇴근 시간마다 병원에 들르는 선아는 구두가 아닌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병원이 큰 터라 구두 신고 왔다 갔다 하기 힘든 까닭이었다.
“오늘부터 운전할 줄은 몰랐는데, 운동화 신고 오길 잘한 거 같아.”
선아는 운전석 차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발을 브레이크에 가져다 댄 상태에서 차 키를 키 박스에 꽂았다.
8년 후 대부분 차가 스마트키를 쓰지만, 현재는 키를 꽂아야만 시동이 걸리는 차가 더 많았다.
지금보다도 3, 4년 전에 출시된 도진의 차도 키를 꽂아야지만 시동을 걸 수 있는 모델이었다.
차에 시동을 걸자 시동음과 함께 차가 낮게 떨리기 시작했다.
선아는 브레이크 페달을 발로 밟은 채 운전석 시트의 위치를 조정했다.
운전석 시트를 몸에 맞게 조정한 그녀는 안전띠를 맸다.
긴장 때문인지 조잘조잘 말이 흘러나왔다.
“선배가 묶어준 끈 말이야.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풀렸어. 리본을 한 번 더 꽉 묶은 거뿐인데 되게 단단하게 묶였나 봐. 이렇게 묶는 방법을 진작 알았으면 쭉 이렇게 묶었을 것 같아.”
선아는 자신의 손에 땀이 배어나고 있는 걸 느끼곤 입을 다물었다.
교통사고가 크게 났던 사람 중 일부는 다시는 운전대를 잡지 못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선아는 자신이 몰던 차에서 자식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운전했을 때, 사고를 당하며 세빈이가 죽었다.
선아가 긴장한 듯 보이자 그녀의 옆좌석에 앉은 도진은 차분하게 선아가 해야 할 것을 지시했다.
“전에 네가 끌던 차는 기어노브가 핸들 뒤에 있었잖아.”
“응.”
“이 차는 운전석 옆에 있어. 일단은 브레이크 밟은 상태에서 기어 작동법만 익혀봐.”
“응.”
“긴장 안 해도 돼.”
그렇게 말하는 도진의 목소리 또한 평소와 다르게 낮게 깔려 있었다.
기어를 드라이브에서 중립으로 옮겨둔 선아는 도진 쪽을 바라보았다.
“근데 어쩐지 나보다 선배가 더 긴장하는 거 같다?”
“응?”
선아의 모든 것을 보아온 이가 그였다. 세빈이를 누구보다 예뻐해 주었고, 세빈이를 잃은 순간 함께 눈물을 흘렸던 이가 이이이다.
그러니 도진이 긴장하는 게 당연했고, 그 긴장감의 농도가 저보다 낮지 않을 터였다.
선아는 경직된 분위기를 누그러트리고자 슬쩍 농을 건넸다.
“내가 저 벽에라도 꼬라박을까 봐 그러는 거야?”
“그런 걱정도 없잖아 있긴 하지.”
도진이 맞장구에 선아가 낮게 웃었다.
도진은 단순한 지인이 아니었다. 그는 선아의 두 번의 삶을 함께했던 사람이자 그녀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이였다.
“있잖아. 선배. 실은 이전 삶에서 난 내가 어떻게 운전을 배웠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 세빈이를 낳고 나서 운전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해야만 했으니까 했던 거거든.”
“…….”
“아이가 시간을 정해놓고 아픈 게 아니더라고. 특히 네 살 이전까지는 열 경기 할 때도 많았는데, 응급차를 부르거나 택시를 불러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운전을 시작했어.”
“나를 부르지.”
도진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선아는 다시 자세를 바로잡으며 앞 유리를 바라보았다.
세상 어디에서 이렇게 저를 이해해주고 걱정해주는 이를 만날까.
그에게 보란 듯이 운전도 잘 해내고 싶었다. 선아가 기어노브를 주행 상태로 변경을 하려고 할 때였다.
“잠깐, 선아야. 손 좀 줘볼래?”
“손?”
선아가 도진 쪽으로 오른손을 내밀자, 도진은 서류 가방에서 펭귄 캐릭터가 그려진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처에 붙이는 밴드가 든 상자였다.
“포로로 밴드네. 포로로 밴드 우리 세빈이가 진짜 좋아했던 건데. 맨살에다도 붙이고 다니려고 해서 매번 말리느라 애먹을 정도였다니까.”
도진은 제 무릎 위 서류 가방에 선아의 손을 올려놓고, 빨갛게 부르터 있는 손끝에 노란 밴드를 감았다.
얼마 전 병원 치료를 받아 아문 살을 엄마가 쓰러지는 계기로 다시 깨물기 시작했다.
선아는 말없이 제 손에 꼼꼼하게 밴드를 감는 그를 지켜보았다.
미안하고 또 고마운 이. 그래서 더 소중한 이.
선아에겐 도진이 그런 사람이었다.
도진의 처치가 끝나자 선아는 오른손을 쥐었다 펴 보았다. 흉측하던 손끝이 노란 밴드로 인해 아기자기하게 변했다.
어쩐지 누군가 제 손끝을 꽉 쥐고 있는 것처럼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자, 그럼 출발할게.”
“응.”
어렵고 두렵다 해서 멈추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정말로 변하고자 마음먹었다면, 작은 한 걸음이라도 떼어야 했다.
차는 천천히 움직여 주차장을 벗어났다.
주차장 진입로에서 차를 멈춘 선아는 한참 동안 좌우를 살핀 후에 주차장을 벗어났다.
이번 생에서는 면허 딸 때 외에는 운전을 해본 적 없었고, 당연히 몸에 운전 감각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도진의 차는 그가 운전할 때보다도 확연히 느리게 도시를 가로질렀다.
백미러를 볼 때도, 후진하기 위해 뒤를 돌아봐야 할 때도 몸은 처음인 양 느리고 어색했다.
그럼에도 운전을 한 기억만은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백미러를 확인한 후 방향 지시등을 켜고 끼어들거나 하면서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덜덜 떨면서 오긴 했지만, 첫 운전을 무사히 마쳤다.
선아는 빼고 넣고를 여덟 번쯤 한 끝에 주차선 안에 차를 대었다. 차에서 내린 그녀는 도진에게 차 키를 넘겼다.
그녀의 얼굴에서 기쁨이 감춰지지 않았다.
“선배, 아까 저녁 같이 먹자고 했지?”
남들에겐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자신에겐 중요한 한 걸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밥 살게. 우리 밥 먹자.”
선아는 도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머뭇거리던 도진은 제 팔을 잡아끄는 선아의 손을 내려다보며 저를 이끄는 그녀와 발걸음을 맞추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병원 인근의 수타 우동집이었다.
“선배, 내가 살 건데 비싼 거 먹자.”
“너 차 샀다면서. 돈이 어딨어.”
“차 계약금 10만 원밖에 안 걸었어.”
“출고 후에 목돈 나갈 거잖아.”
“할부할 거거든. 그리고 내가 뭐, 선배한테 밥 살 정도도 안 되는 줄 알아?”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해.”
우동집 앞에선 도진은 큰 손으로 선아의 머리를 흩트렸다.
긴 머리가 머플러 위에서 나풀거렸다. 선아는 멈칫한 채 도진을 바라보았다.
왜일까.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면서 볼을 간지럽히는 그 느낌이 낯설지 않았다.
첫 번째 삶과 두 번째 삶의 기억을 뒤져보아도 도진과는 이보다 더 가까운 적이 없었는데, 도진이 그녀의 손가락에 밴드를 감아준 것도, 또 지금처럼 머리를 흩트리는 것도 언젠가 그와 이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기시감이 들었다.
선아는 기시감을 지울 겸,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우동 먹지 뭐. 실은 나도 긴장한 채 운전한 뒤라 헤비한 거 먹으면 체할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