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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시 (4) (124/200)

효시 (4)2022.03.04.

“이런, 제기랄…….” 뉴스를 확인한 전상국 의원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일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는데, 김태원 기자까지 꼬일 줄은 몰랐네.” 정황 증거는 있더라도, 확증이 없었기에 최지훈의 범죄 사실을 물고 늘어져도 선거에서 사퇴시키는 것까지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단순히 구속되는 것만으로도 이미지 타격을 줄 수 있었고, 이는 격차를 더 벌려 줄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허나, 팩트체커에서 터진 기사는 전혀 대비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에 전상국 의원 자신이 최일그룹과 이형운 차장검사를 만난 걸 포착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으니까. 아무리 국민들을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정황이 드러났으면 그들도 모를 리 없었다. 검찰이 순수하게 움직인 게 아니라는 것을. 당연히 최지훈에게 혐의점이 있다는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기에 구속이 되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러나 그 배후가 선거 경쟁자인 전상국 의원임을 알게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모함일 가능성이 굉장히 커진다는 뜻이지. 충분히 그럴 만하다. “여론은 어때?” “반반입니다. 절반은 최지훈이 일단 구속은 되었으니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있지만, 나머지는 그가 함정 혹은 모함에 빠졌다는 의견입니다.” “나에 대한 의견은?” “좋지 않습니다.” 김한오 보좌관은 솔직하게 말했다. “최지훈에게 실제로 혐의가 있든, 없든 간에 이번 일의 배후에는 의원님이 있다는 증거는 드러났으니까요.” 애초에 그가 엮이지 않았으면 전혀 문제가 없다. 비서실장을 통했으면 차라리 꼬리 자르기라도 가능했겠지만, 상황이 너무 다급하기도 했고 또 큰 건수라는 생각에 안일하게 판단해 전상국 의원이 직접 움직인 게 화근이었다. 재벌과 은밀하게 접촉했다는 증거는 정경유착에 대한 유력한 의혹을 품게 하며. 그가 선거 경쟁자를 찍어 누르기 위해 검찰을 움직인 건 검찰을 조종할 수 있다는 의심을 품게 하니까. 수면 밑에서 움직이며 정재계의 다른 인사와 접촉하는 행위는 자연스레 청렴하지 않은 이미지로 이어진다. 전상국에게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현재 지지율은?” “62대 38입니다.” 최지훈이 구속되며 순식간에 다시금 차이를 벌리는 데 성공했다. 허나, 이 수치는 절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김태원 기자가 자신에 대한 의혹 기사를 터뜨리기 전에 조사된 수치다. 즉, 구속 직후 여론이 흔들리는 시기에 확인된 지지율이며 팩트체커의 기사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뜻. “내일 예측은?” “아마 58대 42 정도로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번 기사가 퍼질 테고, 점점 최지훈의 지지율도 다시 회복될 테니까요.” “……흐음. 구속 기간 연장은 힘들지?” “예. 추가 없이 48시간만 채우고 풀려날 것 같습니다.” 일찍이 나올수록 최지훈은 오히려 결백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역으로 전상국은 반대로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이지. 청렴한 최지훈을 엿먹이려고 모함한 것처럼 보일 테니까. “아마 55대 45까지는 금방 쫓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추가 카드가 없으면 그 선에서 저지할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후우…….” 그는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알았어, 일단 나가 봐.” “예.” 김한오 보좌관이 빠져나간 뒤, 전상국 의원은 휴대폰을 들었다. 이대로 있으면, 위험할 수도 있기에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했으니까. 전화를 건 상대는 이형운 차장검사. -네, 의원님. 전화를 바로 받긴 했으나, 그의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구속 연장은 힘들다면서?” -예. 김한오 보좌관에게 전달했는데, 들으셨습니까? “방금 들었어.” -죄송합니다. 저희 쪽에서도 최대한 노력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방법이 없더라고요. “어쩔 수 없지. 아직 그래도 충분히 유리해.” 전상국 의원은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요하게 파고들자고.” 그는 사악하게 눈을 빛냈다. “어차피 최지훈 그놈이 구속된 전적이 생긴 건 사실이잖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으리라는 걸 보여주는 거지.” 이 또한 사실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유권자가 보기에 피선거인이 구속되었다는 건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이 차장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 HIT Investment를 계속 수사해서 지치게 만들라고. 그쪽에서 먼저 두 손을 들면 승산이 있어.” 그러면 전상국 의원이 다시금 승기를 잡을 수 있다. 검찰을 조종한 게 아니라, 상대 후보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조사를 부탁한 것이라고 해명할 수 있게 되니까. 최지훈에 대한 의혹이 짙어지면, 오히려 전상국 의원에 대한 먼지가 걷힐 수밖에 없는 구도이기 때문. “그놈들 조지다 보면 뭐라도 나올 거 아니야? 어차피 돈놀이하는 회사치고 깨끗한 놈들 없으니 몇 번이고 노리다 보면…….” -죄송하지만, 힘들 것 같습니다. “……뭐?” 전상국 의원은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 “급할 거 없어. 아직 선거까지 한 달 넘게 남았어. 선거 끝나기 전까지만 성과 내면 돼.” -그러니까 그게 힘들 것 같습니다. 이형운 차장검사는 곤란한 말투를 숨길 수 없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힘들다니.” -HIT 인베스트먼트 뒤에 생각보다 거물이 있더라고요. “그게 누군데?” 전상국 의원은 콧방귀를 끼며 신경질 섞인 목소리를 냈다. “어지간한 인간들은 내 선에서 처리 가능해. 민국당이어도 마찬가지고. 그냥 나 믿고 진행하라니까?” -의원님 선에서도 아마 커버가 힘들 것 같습니다. 전상국은 불쾌한 심정을 대놓고 드러냈다. 본인은 무려 대한당 당 대표다. 자신의 권위를 얕본다고 느꼈으니까. “대체 누군데 그래?” -그게……. 휴대폰 너머 이형운 차장 검사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고 실장입니다. “……뭐?” -청와대 고태욱 비서실장님이요. 아무래도 HIT 인베스트먼트와 연관이 있으신 것 같아요. 오늘 그쪽에서 직통 라인으로 전화 받았습니다. 함부로 건들지 말라고요. 그는 입을 쩍 벌렸다. 예상치도 못한 인물이었다. 고태욱 비서실장이라니. “그게 말이 돼?” 전상국 의원은 당황한 속내를 숨기지 못했다. “피라미들 싸움하는데 갑자기 그 인간이 왜 나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까지는 눈감고 모른 척 넘어가는데 HIT 인베스트먼트는 깨끗한 곳이니 더 건드리면 감찰부에서 움직일 거라고……. “……이런 미친.” -죄송합니다. 제가 다음에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뚜우우-. 그 말을 끝으로 이형운 차장검사는 일방적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전상국 의원은 허망한 얼굴로 멍하니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조졌네.” * * * 철커덕. 끼이익-. 큰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귀를 긁었다. 밖으로 나오자, 눈부신 태양이 눈을 자극했다. 고작 이틀 구치소에 있었는데, 햇빛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걷기도 잠시. “나오셨습니까, 후보님.” 마돈나가 꾸벅 인사를 하며 나를 반겼다. 기자들은 없었다. 일부러 페이크를 줬다. 이후 시간대에 다른 출구로 나온다고. 구치소에서 나온다는 이미지 자체가 구속되었다는 전적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애초에 사진을 찍히지 않고 싶었으니까. 반대쪽 출구에서는 강선우 보좌관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척 어그로를 끌고 있는 상태. “가자고.” “그 전에.” 마돈나는 나를 붙잡으며 품에서 봉지 하나를 꺼내 건넸다. “이거 드셔야죠.” 새하얀 두부가 있었다. 다만, 영화에서 출소할 때나 보던 사각 두부는 아니고, 연두부. “하하하.” 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두부는 뭐야?” “기자들 몰래 사느라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꾸벅이며 뜯어 준 두부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밍밍하니 맛이 없네.” “간장 없으면 다 그렇죠.”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마돈나와 함께 차에 올랐다. 운전석엔 그녀가 탑승했다. 수행비서는 강선우 보좌관과 함께 있었기에 이곳에는 마돈나 한 명만이 왔다. 차도 평소에 쓰지 않는 렌트카. 그렇기에 대기할 때부터 의심받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돈나는 차를 출발시키며 말했다. “불편하셨죠?” “지낼 만했어.” “편하다고 또 들어가진 마시고요.” “당연하지.” 옆좌석을 바라보자, 태블릿 PC가 한 대 놓여 있었다. 마돈나가 나를 기다리면서 내가 나오자마자 볼 수 있도록 주요 기사들을 모아 둔 모양. 천천히 댓글까지 살폈다. 여론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으나, 구속되기 전만큼은 아니었다. “선거까지 며칠 남았지?” “정확히 37일입니다.” “37일…….” 그렇게 넉넉하지도. 또 부족하지도 않은 기간이었다. 내가 충분히 뒤집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고. 전상국 의원 측에서 굳히려면 굳힐 수도 있는 긴 시간. 다행히 이번 턴에는 최지원이 미리 알려준 덕분에 치명상은 피했다. 김태원 기자도 크게 한몫 했고. 다만, 위기를 피했을 뿐이지, 승리하려면 멀었다. 맹렬하게 추격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전상국 의원이 훨씬 더 우세한 상황. 이번에 흔들린 탓에 이기기 위해서는 큰 카드가 하나 필요하다. 어떤 게 좋을까. 종로 시내에 진입할 무렵, 마돈나가 입을 열었다. “진짜 괘씸하네요.” “뭐가?” “전상국 의원이요.” 그녀는 룸미러를 흘긋 보며 말했다. “후보님한테 네거티브 하지 말자고 먼저 제안했잖아요. 그래 놓고 뒤에서 저렇게 음흉한 짓이나 벌이고 있을 줄이야.” “정치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아버지를 봐서라도 최소한 신사다운 예의는 지키려고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 한 마디로 리미트 해제된 거지. 이제 눈치보고 숨기거나 선 넘는 걸 걱정할 필요도 없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문득 익숙한 정경이 시야에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 이 광경 익숙한데. “여기가 어디지?” “홍지동입니다.” “이쪽에 유세 운동 하러 온 적 없지?” “네. 처음입니다.” 동시에 떠올랐다. 이곳을 어디에서 봤는지. 씨익. 입꼬리가 거칠게 휘어졌다. “지현 씨.” “예, 후보님.” “전상국 의원 측에서 함부로 평화 협정을 깼으면 당연히 반격당할 각오를 하고 있겠지?” 칼을 빼들었으면, 그 칼에 베일 각오도 하는 게 당연한 법이니까. “우린 조금 더 자극적으로 가 보자고.” 룸미러로 보이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제가 준비할 게 있겠습니까?” “김치호 비서관 행적 따냈다고 했었지?” “예. 작년 말에 한 번 국내에 들어오려다가 실패해서 저희 레이더에 포착된 이후 지속적으로 추적 중입니다.” “지금 어디에 있다고 했지?” “태국에서 은신 중입니다. 현재 은신처도 파악된 상태고요.” 미래 문자에서 내게 칼을 휘둘렀던 인간. 그만큼 나에 대한 증오가 남아있고. 또 가만히 내버려두면 이번 선거 기간 중에 분명 내 목숨을 위협할 가능성이 농후한 녀석. 덕분에 위기를 기회로 바꿀 만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녀석의 증오가 다시는 피어오를 수 없게 그 싹을 짓밟아 버리면서. 동시에 전상국 의원까지 골로 보내버릴 아주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말이지. “잡으려면 언제든 잡을 수 있습니다. 국정원에 연락할까요?” “아니.” 나는 손끝을 모아 무릎에 얹으며 눈을 빛냈다. “이번 선거에서 그 인간을 한 번 이용해보자고.” 어차피 벌어질 일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게 낫겠지. 자, 반격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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