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집 막내아들 (2)2021.11.02.
이게 뭐지? 동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은 틀림없이 나의 아버지와 비서실장인 고태욱이다. 합성의 흔적도, 조작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영상. 20이라는 보낸 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실제로 나눈 대화임에는 틀림없었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이 동영상을 찍어 내게 보내 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상황이 꿈이 아니라면, 나는 아직까지 수능을 보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영상 속에서 등장하는 ‘대학 자유이용권’이라는 단어는 써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아니, 애초에 아버지께서 수능과 모의고사 성적표를 구분하지 못하실 리도 없고. 아무래도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들었지만. -재생 목록이 없습니다. 동영상은 사라져 있었다. 아니, 문자 자체가 사라져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전송된 일이 없었던 것처럼. 누군가가 장난을 친 건가? 아니지, 그럴 리는 없다. 내 휴대폰 번호를 아는 건 청와대 내부자들 혹은 학교 담임선생 정도가 전부다. 그중에서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인물이 아니라면, 감히 대통령의 아들인 나한테 이런 거짓 동영상을 보냈을 리도 없을 터. 보안팀을 통해서 충분히 추적이 가능할 테니까. 문득 내가 환각을 보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리 없을 테고. 혹여 누군가가 내 휴대폰에 바이러스 어플을 깔았을 가능성에 대해 반추했지만, 실현될 리 없는 일이었다. 도청 혹은 감시를 방지하기 위하여 청와대 보안 시스템을 이용해 휴대폰은 일주일에 한 번씩 검사를 하니까. 젠장.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보낸 사람은 누구고, 또 아버지가 했던 말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수험생들이 하나둘씩 쏟아져 들어왔으니까. 시험 시간이 임박했다는 뜻일 터. 일생일대에 단 한 번 있는 수능이다. 문자고 뭐고, 이번 시험에서 미끄러지면 끝이다. 일단 동영상 내용은 머릿속에서 제쳐 두고 수능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대에 들어가야만 아버지의 신임을 얻을 수 있으니까. 반드시 좋은 성적을 얻어내야만 한다. * * * “종료 10분 전입니다.” 시험 감독관의 목소리에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1교시 국어 시험. 이미 문제는 모두 풀었고, OMR 카드에 옮겨 적어 두었다. 모든 정답을 맞힐 수 있다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 내가 틀렸던 국어 문제는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남아서였을까. 시험 시작 전에 보았던 동영상이 머릿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불현듯 떠오르는 아버지의 목소리. -정작 본인은 수능에서 하나를 틀려서 아쉬워하는 눈치라니까. 그리고 이번 수능에서 킬러였다는 국어 30번. 지금까지의 모의고사에서 단 한 번도 다시 검토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를 직감에 나는 어느새 시험지를 펼치고 있었다. 비문학 문제. 나는 다시금 지문과 문제를 살폈다. 그리고 한 순간,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잠깐만. 이 문장에서 내포한 바를 이렇게 해석하면 안 되는 건데. 이게 문학 문제가 아니라, 비문학 문제기에 내 판단을 따르면 안 된다. 지금까지 봐 왔던 모의고사와는 격을 달리하는 문제. 그렇게 하면 답은……. 내가 원래 선택했던 2번이 아니라, 5번이 된다.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쥐어졌다. 고쳐야 하나? 내 판단이 맞다면 고치는 게 정답일 터. “후우.”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수정테이프를 들어올렸다. * * * “도련님, 시험은 잘 보셨습니까?” “응, 쉬웠어.” “다행입니다.” 운전기사는 미소를 지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바로 출발할까요?” “어.” 창문 사이로 수많은 수험생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누군가는 홀가분하게 웃고 있었고, 다른 이는 긴가민가한 표정, 또 어떤 이들은 절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진 못했다. 시험이 끝나기 무섭게 아침에 보았던 동영상이 떠올라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까. 분명 합성이나 누군가의 장난질은 아니다. 애초에 그걸 나한테 보낼 이유도 없고. 아무리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한들, 나는 이제 겨우 수능을 본 19살 학생이다. 우리 집안 6남매의 권력 다툼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기에 견제를 할 만한 대상조차 아니었으니까.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나 동영상에서 본 아버지의 한 마디는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막내 녀석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긴 해. 하지만 첫째 녀석은 아니더라도, 우리 유교 사회에서 위에 형이 4명에 누나까지 한 명 있는데 이들을 전부 물리고 막내를 밀어주는 건 조금 그렇잖아? 이것도 문제지만, 심각한 건 따로 있었다. -어차피 막둥이는 잘 가 봤자 한국대 법대 들어가서 둘째 뒤를 따라가는 게 최선이니까. 이 말은 내 숨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잘 가 봤자, 둘째 형의 뒤를 따라가는 것. 다시 말해 암만 기어 봤자 아버지의 후계자는 둘째 형이라는 것. 나도 이를 전혀 생각지 않았던 건 아니다. 둘째 형인 최지원은 수능에서 전국에서 50등 안에 들었고 한국대 법대에 당당하게 합격했다. 그것도 모자라 판사 임용에 합격한 걸 넘어 젊은 나이에 벌써 부장판사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내가 수석으로 입학해 봤자, 본전치기밖에 안 된다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이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유교 질서가 자리 잡은 사회라고 한들, 몇 년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빼앗기기에는 너무나도 억울하니까. 그러나 실제로 저런 대화가 오갔다면 내가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는 커다란 무언가가 있지 않는 이상, 둘째 형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아 올 수 없다는 건 확실한 사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물론,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동영상 속 아버지는 나에 대해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과정이 어찌 되었건 아버지께서 ‘마음 같아서는 내게도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하셨다. 게다가 ‘잠정적으로 결정한 거지, 확정은 아니니까.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이대로 가고.’라는 말까지 덧붙이셨다. 이를 다시 해석하면 둘째 형을 제외한 나머지들 중 한 명이 특별한 무언가를 보여 주면 바뀔 수도 있다는 것. 즉 내가 아버지의 상식을 뒤흔들 만한 행동을 하면 후계 구도는 바뀔 수도 있다. 그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한다. * * * “가채점 해 봤니?” 어머니의 물음에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예.” 제일 마음에 걸렸던 국어 30번. 바꾼 게 정답이었다. “자신 있는 걸 보니 잘 봤나 보구나.” “한국대는 무조건 합격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아버지는 들고 있던 식기까지 놓으며 외쳤다. “역시 우리 아들이야!”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아버지를 닮았으니 당연한 일이죠.” “하하하하!”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시며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우리가 막둥이 낳기를 아주 잘했다니까.” “맞아요.” 아버지는 다시금 눈을 반짝이며 날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딜 가고 싶니? 법대? 경영대? 아니면 의대?” “여보, 지훈이는 문과라서 의대는 못 가요.” “안 될 게 뭐가 있어. 내가 입시 제도를 바꿔 버리면 그만인데. 안 그래?” 저렇게까지 말하시는 걸 보니 아무래도 흥이 잔뜩 피어오르신 모양. “아직 고민하고 있어요. 의대는 제 적성이 아니라서 굳이 제도까지 바꾸실 필요는 없고요.” “하하하, 그러면 다행이고.” 아버지는 흡족스레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정해지면 말하거라.” “알겠습니다.” 나는 수저를 들며 넌지시 물었다. “그나저나 아버지, 대선은 잘 준비되어 가십니까? 이제 선거까지 한 달도 안 남았을 텐데요.” “준비하고 말 게 뭐가 있어? 민심이 곧 천심인데.” 그는 손을 휘휘 저었다. “애비 걱정할 것 없고 너는 어느 곳에 가서 위대한 사람이 될지나 생각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 * * “제17대 대통령 선거 결과입니다. 기호 1번 최준석 후보가 득표율 87.3%로 당선을 확정지으며 대통령 연임이 결정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가뿐하게 선거에서 당선되셨다. 2등한 후보는 득표율이 겨우 5.5%. 무효표보다 더 적으니 말할 것도 없지. 까놓고 말해서 말이 투표지, 아버지 말대로 걱정하고 말 것도 없었다. 무조건 당선이니까. 물론, 투표 조작을 한다거나 군부 정권 때와 같은 억압이 있는 건 전혀 아니었다.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애초에 내가 먼저 알았을 테지. 그저 국민들이 아버지를 계속해서 원할 뿐. 그게 전부였다. 아버지가 국정을 운영한 뒤로 계속해서 국방력은 올라갔고 세금과 범죄율은 내려갔으며 경제는 안정되었다. 또한 원화 가치까지 끊임없이 올라가는데 그 누가 다른 사람을 원하겠는가? 아마 아버지는 본인이 원하신다면, 영원히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으실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형제들이 아버지의 눈에 띄려는 것이다. 국민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아버지가 후계자를 정해서 밀어준다면, 아버지가 물러나신 이후의 대선에서 승리하는 건 따 놓은 당상이 될 테니까. “당선 축하드립니다, 아버지!” “이야, 우리 막둥이 아들!” 아버지는 나를 와락 껴안으셨다. 70이 다 되어 가시는데도 이토록 정정한 게 감사할 따름. “당선을 기념해 드릴 선물이 있습니다.” “선물?” 나는 주머니에서 수능 성적표를 꺼내 아버지에게 보여 드렸다.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입가엔 더할 나위 없이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는 희열에 가득 찬 얼굴로. “아이고, 우리 막둥이!” 힘차게 외치시며 내 어깨를 꽉 부여잡았다. “잘했다, 우리 아들. 내가 살다 살다 수능 만점을 다 보네.” 수능 만점. 마음에 걸리는 게 없지는 않지만, 조작도 아니고, 누군가의 도움이 있던 것도 아니다. 오직 순수하게 내 실력. 시험장에서 찍어 놓고 행운의 신에게 비는 요행 따위는 바라지 않았다. 모든 게 준비되어 있으면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문득, 머릿속에 수능 날의 동영상에서 본 단어가 떠올라 곧장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버지, 이게 바로 대학 자유이용권입니다.” “으하하하하핫!” 아버지는 이마를 탁 치시며 껄껄 웃음을 터뜨리셨다. “그래, 맞지. 자유이용권. 전국 1등인데 어딘들 못 가겠어?”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연신 수능 성적표를 바라보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고는 내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 막둥이 어느 학과 갈지는 정했나? 학교는 당연히 한국대일 테고.” “예, 정했습니다.” 오랜 심사숙고 끝에 결정했다. 단순히 문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둘째 형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단순히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나 또한 오랜 생각 끝에 깨달았으니까. 둘째 형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뛰어넘어야’ 한다. 그래야만 아버지의 눈에 들 수 있다. “그곳이 어디니?” 아버지는 두 눈을 빛내며 물으셨다. 그리고 나는 수능 직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고민했고. 장고 끝에 나온 최선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아버지.” 그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 만한 신의 한 수를. “저는 대학에 가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