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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파란집 막내아들 (1) (1/200)

프롤로그+파란집 막내아들 (1)2021.11.01.

파란집. 서울시 종로구 중심부에 있는 나의 집을 시민들은 파란집이라고 불렀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붕이 파란색 기와로 덮여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아버지를 ‘각하’라고 불렀다. 그 덕분에 나는.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했고. 상상 이상의 것을 누리며. 남부럽지 않은. 아니,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인생을 살았다. -보낸 이: 20 -동영상 정체불명의 문자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 * *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5년 단임제로 한다.’ 현대 사회 시험에 나온다면 오답으로 처리된다. 5년간의 대통령 임기를 마친 아버지는 한 번 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랐고. 국민들 또한 아버지를 원했다. 결국 아버지는 자신의 심복 임철하를 대통령 자리에 올린 뒤, 개헌안을 발의하게 만들었고. “대한민국 대통령 제도로 4년 중임제가 채택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아버지의 심복들은 이를 실현시켰다. 권좌를 따뜻하게 데워 두었던 임철하는 아버지를 국무총리에 임명하고는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대통령직을 물려받아 15대 대통령이 되셨고. 이후 16대 대선에서도 당선되며 벌써 12년째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중이시다. 아버지는 슬하에 5남 1녀를 두셨다. 그중 나는 막둥이이자, 늦둥이로 막내 형과 무려 10살 차이가 난다. 이제 겨우 19살. 한창 수능을 준비할 나이다. “또 지훈이가 1등이야?” “진짜 압도적이네.” “사람 맞아?” “고등학교 들어온 뒤로 모든 시험에서 한 문제도 틀리지 않았다는 게 말이나 돼?” “혹시 시험지를 미리 유출…….” “쉿. 말조심해.” “아닐 거야. 내가 저번에 시험지 걷다가 봤는데 풀이 완전 깔끔하더라.” 같은 반 친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아무래도 지난 모의고사 성적이 발표된 모양. 아니, ‘친구’들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그렇다. 정확히는 나이만 같은 ‘학우’들이라고 봐야지. 그들과 유의미한 대화는 한 마디도 섞어 본 적이 없으니까. 대통령 집안이라는 신분 때문이냐고? 그것도 영향이 있긴 하겠지만, 100%는 아니다. 그저 내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쪼개어서 공부에 할애하고 있는 거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맏형과의 나이 터울만 무려 18년이다. 유교 문화를 중시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나이는 절대적인 수치. 아직 어린 내가 아버지께 나를 증명하는 방법은 오로지 시험 성적이 전부였으니까. 대통령인 아버지는 학벌에 관심이 많으셨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 정도로는 정확한 표현이 되지 않았다. 목을 맨다고 봐야할 정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심할 정도로 말이다. 그 이유는 어렸을 적, 막내 형에게 들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지방대학교 나오셨잖아?” “응. 국립대학교 졸업하셨다고 들었어.” 물론, 아버지에게 들은 건 아니다. 그분은 본인의 학력에 관한 이야기를 절대 하고 싶어 하지 않으시니까. “맞아. 하지만 아버지가 검사 출신이시잖아?” “그렇지.” “그런데 검사들은 학벌을 엄청나게 따지거든. 다른 직업보다도 훨씬 더. 한국대냐 아니냐부터 시작해서 신촌이냐 안암이냐 등 하나하나 분자 단위로 쪼개서 본다더라고.” “그게 어때서?” “아버지는 지방대학교 출신이시잖아. 그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버티시면서 엄청나게 무시를 당하셨나 봐. 그래서 학벌에 사무친 그런 게 있으셔.” 막내 형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을 덧붙였다. “뭐, 그 덕분에 한국대학교 출신은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피해서 지금 자리까지 올라오신 거긴 하지만 정작 본인은 또 다르시거든.” 이러한 이유로 아버지 눈에 들기 위해서는 한국대를 가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막내 형의 설명이 없어도 집안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첫째 형은 신촌. 둘째 형은 한국대 법대. 이란성 쌍둥이인 셋째 형은 안암, 누나는 여대의 꽃. 그들은 모두 일반인들이 꿈꾸는 명문대의 화려한 학과로 진학했다. 허나, 다른 형제들과 달리, 넷째 형은 꿈이 있다며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다. 아버지는 넷째 형을 아들로도 대하지 않고 버린 자식으로 취급했다. 그리고 나머지 남매들 사이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건 둘째 형. 한국대 법대 출신으로 남들이 군대를 가냐, 마냐 고민할 나이에 당당하게 사법고시에 패스해 판사로 임용된 엘리트 중의 엘리트. 검찰 출신이신 아버지가. 그것도 학벌제일주의인 아버지가 둘째 형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막둥아, 너는 둘째 지원이처럼 꼭 한국대에 들어가야 한다.”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하셨다. 나랑 둘째 형은 무려 16살 터울.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둘째 형 이야기만 들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 이러한 사정들로 인해 내 인생은 오로지 공부뿐이었다. 덕분에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도 만점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충분히 한국대에 갈 수 있다. 그저 아버지에게 예쁨 받기 위해서, 사랑을 받기 위해서 이토록 노력하는 게 아니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아야 그분이 누리고 계신 ‘권력’을 이어받을 수 있으니까.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죽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대통령은 나의 아버지시다. 모든 권력은 아버지에게 있으며, 그가 원하는 일은 모두 실현된다. 삐뚤어진 사상이 아니다.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청와대에 살면서 직접 겪으며 뼈저리게 느낀 이게 현실이다. 혹자들이 말하고는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곧 힘이라고. 그렇게 말한 인간들은 제대로 된 권력을 쥐어 본 적이 없다는 데 내 불알 두 쪽을 모두 걸 수 있다. 주옥그룹의 임종주? 한별그룹의 유귀옥? 전부 우리 아버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손 비비기에 바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트럭에 담아 청와대로 실어 날랐을 것이다. 권력은 그 정도의 힘이 있다. 아니, 권력은 곧 힘이고.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걸 가능케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반드시 한국대에 가야만 했다. 그곳에 가서 아버지의 총애를 한 몸에 안아야 한다. 그것만이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니까. * * *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수능 날. 제일 먼저 고사장에 도착해 시험 준비를 했다. 떨리지 않았다. 긴장감? 전혀 없었다. 그런 건 제대로 준비를 끝내지 못한 사람들이나 갖는 한심한 감정이지. 난 이미 모든 문제에 정답을 맞힐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수십 명의 1타 강사. 수백 권의 기출문제집. 수천 시간의 강의. 수만 개의 문제들. 틀릴 자신이 없다. 아니, 틀릴 수가 없다. 나는 오늘 수능에서 모든 정답을 맞히고 한국대에 간다. 그것만이 내가 알 수 있는 확실한 미래다. “후우.” 텅 빈 교실에서 홀로 머릿속에 찬란한 미래를 그렸다.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얼마나 지났을까. 지이잉.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아마도 어머니의 응원 메시지겠거니 생각하며 휴대폰을 들었는데. -보낸 이: 20 -동영상 처음 보는 문자였다. 발신인도 제대로 적혀 있지 않은 문자. 내 번호를 아는 건 청와대 관계자나 학교 관계자가 전부. 그런데 발신번호를 바꿔서 보내다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각하, 축하드립니다! 제일 먼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이건 아마도……. 이내 휴대폰의 화면이 밝혀지며 두 인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맙네. 고 실장. 역시나 고태욱 비서실장. 아버지의 최측근이자, 오른팔이며 지금까지 모든 대소사를 함께 한 인물. 어머니보다 더 신뢰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물론, 그 맞은편에서 대화를 하는 건 나의 아버지, 최준석이었고. 고태욱은 환하게 웃으며 쌍엄지를 치켜들었다. -아드님이 두 분이나 한국대에 가시다니요. 집안에 이런 경사가 어디 있습니까? 역시 각하십니다. -하하핫! 그게 어디 내 덕인가, 애들이 열심히 한 덕분이지. 아버지는 세상 모든 걸 가진 듯이 환하게 웃고 계셨다. -막내 도련님도 한국대 법대에 가신답니까? -그럴 것 같네. 조만간 정시 원서 넣는다는데, 아무래도 그쪽이 낫지 않겠나? 그는 웃으며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아, 참. 저번에 아들이 수능 성적표 가져와서 뭐라고 했는지 아나?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버지, 이게 대학 자유이용권입니다.’라고 하더군. -와하하핫. 역시 막내 도련님 유머 감각은 장난이 아니시군요. -그렇다니까. 애가 두뇌는 물론이고 내 센스까지 이어받아서 재미있다니까. 고태욱 비서실장은 혀를 내두르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전국 수석이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공부를 잘하신다는 건 알았지만, 전국 1등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작 본인은 수능에서 하나를 틀려서 아쉬워하는 눈치라니까. -국어 30번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 -그게 이번 수능에서 제일 어려웠다잖습니까? 오지선다에서 정답률이 무려 10%도 안 된다는데 킬러 중의 킬러 문제니 틀리는 게 오히려 인간미 있죠. -그렇긴 하지. 뭐, 하나 틀렸어도 전국 차석과 무려 3문제나 차이 나니까. -듣고 나니 또 한 번 감탄이 나오네요. 진짜 대단합니다. 그렇게 한바탕 칭찬 타임이 지나간 뒤, 서서히 웃음이 잦아들었을 때. 고태욱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각하. 그나저나 다음 후계자는 결정하셨습니까? 이렇게 막내 도련님이 치고 올라오시면……. -그것 때문에 나도 고민은 했는데……. 나의 아버지, 최준석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으셨다. -막둥이는 너무 어리잖아? -예. 이제 겨우 20살이시죠. -게다가 둘째 지원이는 겨우 34살에 벌써 부장판사를 달았어. 나이 차이도 있는 데다가 사회적 지위도 있으니, 그쪽으로 밀어주는 게 낫지 않겠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막내 녀석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긴 해. 하지만 첫째 녀석은 아니더라도, 우리 유교 사회에서 위에 형만 4명에다가 누나까지 한 명 있는데 이들을 전부 물리고 막내를 밀어주는 건 조금 그렇잖아? -맞습니다. -하지만 둘째라면 다른 남매들도 어느 정도 수긍할 테고. -막내 도련님이 아쉬워하실 것 같긴 하지만…… 전체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 받아들이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 어차피 막둥이는 잘 가 봤자 한국대 법대 들어가서 둘째 뒤를 따라가는 게 최선이니까. 고태욱 비서실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러면 지원 도련님한테 밀어주겠다고 이야기할까요? -아니, 그건 아니지. 아버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셨다. -일단 지켜봐. 잠정적으로 결정한 거지, 확정은 아니니까.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이대로 가고. 아직까지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고태욱의 대답을 들은 아버지는 팔짱을 끼고는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혹시 알아? 나머지 녀석들 중 누군가가 재미있는 변화를 일으킬지도 모르잖아. 나의 아버지, 최준석은 눈을 반짝이며 여유롭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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