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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91화 (191/193)

191화

미아의 반응에 되레 제인이 놀라 눈을 깜빡였다.

“설마 폐하께서 아직 청혼을 안 하신……?”

“그, 그건 아니에요!”

제인이 당장이라도 아딜로트에게 달려갈 것 같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기에 미아가 재빨리 답했다.

‘크리우스 공작령에서 뭔가…… 비슷한 말을 듣긴 했지.’

미아의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어……. 바, 받긴 한 것 같기도…….”

머뭇거리는 미아의 태도에 제인의 얼굴은 보다 심각해졌다.

“아니면 혹시 폐하가 마음에 안 드시는……?”

“그, 그건 아닌데…….”

“그럼 다른 분을 마음에……?”

“그, 그것도 아니에요!”

행여나 아딜로트의 귀에 들어갈까 미아가 급히 변명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미아를 바라보던 제인은 이내 우아하게 미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미아 님. 지금 한순간만…… 미아 님의 시녀가 아닌,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해드려도 될까요?”

제인은 그렇게 말하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제인처럼 프로 의식이 강한 사람이 그걸 내려놓고 조언해 주려 한다니.

정말로 자신을 생각해 주는 것이 느껴져서 미아는 감동했다.

“제인 씨…….”

“미아 님. 제가 폐하를 키우다시피 해서가 아니라 폐하는 정말 좋은 분이세요.”

“맞아요…….”

“무엇보다 잘생기셨지요.”

“……?”

갑자기 감동이 와장창 났다.

“미아 님은 아직 어리시니, 연애만 하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자고로 연애는 잘생긴 남자랑 해야 하는 법이에요.”

“…….”

“제국의 어딜 가도 폐하만큼 용모가 뛰어난 분은 찾으실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미아 님은 그런 폐하의 용안을 오래도록 보아 오셨으니…….”

“다른 남자들로는 만족 못 할 거라는 뜻인가요…….”

미아가 흐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영민하십니다. 과연 오르퀘니나의 국모가 되실 분.”

“……그게 국모랑 무슨 관계가…….”

작게 중얼거리는 미아를 두고 제인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싱긋 웃었다.

“이 제인, 앞으로 성심성의껏 보필할 테니 걱정은 놓으셔요. 그리고…….”

제인이 말하다 말고 멈칫했다.

“……?”

의아한 얼굴을 미아를 바라보며 제인은 곧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레아 황비 전하의 명예를 되찾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미아는 눈을 크게 뜨고서 그런 제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곱게 맞잡은 제인의 양손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제인 씨…….’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끼며 미아는 덥석 제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놀란 제인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

잠시 제인의 눈이 떨렸으나, 그녀는 이내 모든 근심을 털어 낸 사람처럼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미아 님.”

“천만에요!”

“그럼 황후 자리를 받아들이신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

* * *

제인과 대화를 나눈 뒤 미아는 아딜로트가 있을 중앙궁의 집무실로 향했다. 잠든 동안 있던 일을 묻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중앙궁으로 향할수록 미아는 당황했다.

“미아 님께 인사 올립니다.”

“셀레스티얼 공작 각하……, 아니, 미래의 황후 폐하께 영광 있기를!”

궁인을 포함해 기사와 귀족까지.

그녀와 마주친 모든 사람이 미아에게 깍듯이 인사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기로 피난 오신 건가요?”

“으으. 바쁜데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미아를 재무부 안쪽에 마련된 방으로 안내하며 요아힘이 중얼거렸다.

“오히려 조금 기쁠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미아가 반문했으나 요아힘은 태연하게 차를 우렸다.

‘잘못 들었나?’

미아가 고개를 갸웃하고서 유리로 된 벽 너머의 재무부를 살폈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역시 어수선해 보이네……. 괜히 찾아왔나?’

미아와 면식이 있는 아르민 역시 짧게 인사하고는 바로 다시 일에 몰두했을 정도니 말이다.

‘요아힘이라면 냉정하게 상황을 봐줄 것 같아서 온 건데.’

요아힘이 내준 차를 받으며 미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일이 바쁜가요?”

“생각 외로 괜찮습니다. 그냥 재산을 몰수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재무부의 일원이라면 신나 하지 않을 수 없죠.”

“아하…….”

아딜로트는 감히 황제를 멸시한 귀족들을 전부 죽이지는 않았다.

‘그대들의 성의에 따라 관용과 불관용을 결정할 테니, 얼만큼의 성의를 보일지는 재상과 이야기하도록.’

아딜로트가 그렇게 말했을 때 요아힘은 그 뒤에서 싱그럽게 미소 지었고, 그 미소를 본 귀족들은 차라리 죽을까 고민했다는 풍문은 미아 역시도 이미 들은 바 있었다.

“조만간 재무부에서 미아 님을 재물의 신으로 추앙할지도 모르니 미리 대비해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와……. 막 대리석으로 신상도 세워 주고?”

“원하신다면요.”

요아힘이 살짝 미소 지었다. 그리고 숨을 살짝 들이켠 그는, 잠시 뒤 짧게 묵례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게 미아 님 덕분입니다.”

“제 덕이긴요!”

“아뇨. 미아 님 덕에 폐하의 집권을 방해하던 걸림돌이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가장 처리하기 어려웠던 신전 역시도 협조적이고요.”

“아! 드미트리를 만나셨어요?”

“예. 다행히 말이 통하는 자였습니다.”

요아힘은 아딜로트와 드미트리의 뜻이 다르지 않아 조율이 쉬웠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회담을 통해 앞으로 민생을 복구하는 데에 주력하기로 했다. 물론 신전이 숙이고 들어가는 모양새였다.

“사실, 처음에 미아 님을 죽이라 종용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입니다.”

요아힘의 말에 미아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치만 살았으니까 됐죠!”

요아힘은 지긋이 미아를 응시하다 말했다.

“미아 님은 늘 그 정도에 만족하시는군요.”

“그야…….”

미아가 말하다 말고 멈칫했다.

‘그러네. 이젠 살아남는 게 목적일 필요가 없구나.’

멍하니 그런 생각에 잠겼던 미아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살짝 웃었다.

“그치만…… 이젠 다른 것도 욕심내 보려고요. 그래도 될 것 같아요!”

말하고 나서 미아는 슬쩍 요아힘의 눈치를 보았다.

‘너무 괜한 정보까지 말했나?’

하지만 다행히 요아힘은 오히려 미아가 괜히 쑥스러워질 정도로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재상으로서도, 요아힘 키르히로서도.”

“으응! 고마워요…….”

요아힘이 싱긋 웃었다.

“그럼 미아 님은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요?”

“주말농장에 관심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제가 알아봐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망설이던 미아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요아힘 입장에서는 제가 황후로 남는 게 더 이득 아니에요? 그러면 황실을 위해 일할 테니까…….”

미아의 말에 요아힘이 멈칫했다. 일순 그의 연둣빛 눈이 뭔가를 탐색하듯 미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미아의 얼굴에서 순수한 의문만을 발견하고는,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

“딱히 그쪽이 더 이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앗…….”

미아가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내 일 처리가 별로였나!?’

하지만 어쩐지 자신보다 요아힘의 얼굴이 더 씁쓸해 보여서 미아는 말을 아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안은 고마워요! 그치만 일단은 아딜 옆에 있으려고요!”

“그렇군요.”

요아힘이 담백하게 답했다.

‘뭔가 생각이 많아 보여…….’

역시 바쁜데 방해한 모양이었다.

“그, 그럼 전 이만!”

미아는 잽싸게 인사한 뒤 재무부를 나섰다. 바쁜 게 맞았는지 요아힘은 미아를 잡지 않았다.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다시 쏟아지는 인사에 쓸려 미아가 도착한 곳은 연무장이었다.

‘아무도 없네?’

그렇게 생각한 미아의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지?”

“악!”

미아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았다. 단숨에 그녀의 안색이 밝아졌다.

“페르!”

페르디안이었다. 가볍게라도 경장을 하던 평소와 달리 예복 차림이라서인지 어쩐지 낯설었다.

“와! 어디 좋은 데 다녀오나 봐요!?”

“키토 후작으로서 처리할 일이 좀 있었다. 몸은 다 나았나?”

“네!”

미아가 배시시 웃었다.

“그보다 다행이다! 페르까지도 깍듯해졌으면 도망쳤을지도 몰라요!”

미아의 말에 페르디안이 멈칫했다. 그리고 마치 그런 적이 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황후도 아닌 자에게 굳이 예를 차릴 필요는 없지.”

“흐음! 그치만 이제 셀레스티얼 공작인데!? 내가 페르보다 더 높은 사람인데!?”

미아가 팔짱을 끼고 배를 내민 채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그 모습에 페르디안이 작게 실소하더니, 뜻밖에도 묵례와 함께 말했다.

“그럼 앞으로 셀레스티얼 공작으로 대우하도록 하겠습니다.”

“……취소하겠습니다.”

페르디안에게 존댓말을 듣다니, 역시 너무 이상해.

“그리고 너무 멀어 보이니까!”

“……멀어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멀다고 생각한다만.”

“와! 섭하다.”

미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페르디안은 물끄러미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농담도 치고 괜찮지 않았나?’

덕분에 미아는 어색하게 땀을 삐질 흘렸다. 아무래도 페르디안이 공무를 하다 와서 피곤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페르도 정말 고생이 많았지.’

아딜로트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자 가장 신임받는 기사였으니 말이다.

아딜로트에게 페르디안의 휴가를 제안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미아는 방긋 웃었다.

“그럼 혹시 페르는 하고 싶은 거 없어?”

“하고 싶은 것?”

“응! 이제 정말 다 끝났잖아. 크리소르도 끝장냈고, 크라우스 공작가도 무너졌고. 다른 공작가는 힘을 못 쓸 테고!”

미아가 다시 배를 내밀었다.

“물론 우리 셀레스티얼 공작가는 빼고.”

페르디안이 재차 실소했다.

‘게다가 이번 일로 키토 후작가의 세도 정말 커졌을 테니 말야.’

하지만 페르디안은 그런 정치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지 무심한 얼굴이었다.

“글쎄.”

“…….”

괜히 물었나.

“그, 그럼 원하는 거라도!?”

“…….”

그 순간 페르디안의 눈썹이 꿈틀대더니, 잿빛 눈이 미아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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