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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63화 (163/193)

163화

“너 꼭 우리가 엄청 못된 것처럼 말하네?”

“언니,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이번 일은 정말로 언니의 말실수잖아요.”

“왜? 걔네 엄마 일찍 죽은 거 맞잖아.”

“언니!”

세레니티가 비명을 내질렀다.

방에는 그들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저도 모르게 주변을 살폈다.

“대체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말이 누군가에겐 정말로 상처일 수도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미아는 애정 결핍이 아니라 그냥 남에게 베풀 줄 아는 거예요!”

세레니티의 말에 베티가 아니꼽게 그녀를 노려보더니 픽 웃었다.

“알았다. 너 우리도 걔랑 친해지면 네가 밀려날까 봐 그러지? 너 혼자 출세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세상에! 정말 그런 거야? 어떻게 사람이 그래?”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같은 핏줄 아니라고 사람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아니면, 좀 예쁘다고 우리 무시하는 거야? 진짜 못됐다. 걔는 너 이런 애인 거 아니?”

들을 생각도 없는 그 모습에 세레니티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는 자기들은 일부러 자신에게 가짜 초대장을 줘서 무도회 코앞에서 쫓겨나게 한 적도 있지 않은가.

그뿐이랴. 듀레인 저택에서뿐만 아니라 살롱에 가서도 늘 은근히 자신을 괴롭히곤 했다.

그러면서 교묘하게 자신들은 피해자인 것처럼, 세레니티를 가해자인 것처럼 말하곤 했다.

그래서 세레니티는 최대한 그녀들의 행동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애썼다. 정말로 그들의 말대로 자신이 실수하거나 은연중에 차별하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오늘 일은 그런 게 아니었다.

“……미아에게 사과하세요.”

자신을 욕하는 건 괜찮지만 미아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세레니티의 눈빛이 깊어졌다.

“저를 괴롭히는 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미아에게는 꼭 사과하세요.”

“꼭 우리를 그렇게 쓰레기로 만들어야겠다는 거야?”

“그럼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죠!”

“하? 이게!?”

베티가 우격다짐으로 세레니티의 머리채에 손을 뻗으려던 찰나.

“무슨 일이니. 저택이 무너지겠구나.”

방문 밖에서 깐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잉그리드 듀레인 남작 부인이었다. 그녀는 오늘 미아에게 받은 목걸이를 아직 풀지도 않고 있었다.

“어머니! 세레니티는 정말 저희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나 봐요. 오늘 일로 제게 나대지 말라고…….”

“세레니티가 제게도 그랬어요!”

베티 듀레인과 셜리 듀레인이 쪼르르 그런 잉그리드 듀레인 남작 부인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세레니티. 가족들이랑 잘 지내야지. 언니들에게 무슨 망언이니?”

“어머니, 하지만 오늘…….”

잉그리드 듀레인이 손을 들어 세레니티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냉엄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세레니티? 네 모습을 보렴. 기껏 언니들이 총애받으려고 하는데 꼴사납게 질투나 할 셈이니?”

“……!”

세레니티가 충격을 받을 찰나,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여기 있었군. 여보. 다음 무도회에 갈 땐 우리도 좀 더 좋은 마차를…….”

“…….”

여자 셋의 시선이 에밀 듀레인에게 향했다. 그는 잔뜩 경직된 분위기에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여자끼리 단란한 가족회의 중이었나 보군. 하하, 남자는 이만 빠지도록 할까?”

“아버지!”

세레니티의 부름에도 에밀 듀레인은 남인 양 그대로 걸어가 버렸다. 세레니티는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아버지는 늘 그랬다. 자신을 교집합으로 모인 새 가족인데도, 가족의 화목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한번 보인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그냥 ‘남들 보기에 번듯한 가족’이 필요한 것만 같았다.

“나가 주세요.”

이윽고 세레니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계모와 언니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방 밖으로 밀어 버렸다.

쾅!

“너 그딴 식으로 살지 마! 얼굴만 믿고 남 무시하면……!”

밖에서 왁왁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세레니티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침대에 몸을 던지고 울기 시작했다.

뭔가가 뚝 끊어져, 다시는 이어붙일 수 없으리란 느낌이 들었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싶었어.’

일찍 어머니를 여읜 세레니티는 새로 생긴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려고 애썼다.

‘좋은 가족이 되고 싶었어…….’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에게 세레니티는 계모와 의붓언니를 차별하는 못된 여동생이었다.

세레니티는 정말로 그게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그들을 차별하고 있는 걸까? 내가 그런 나쁜 사람인 걸까?’

겁먹고 움츠러들었다. 봉사에 힘썼다. 가족의 말에 토 달지 않았다.

그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가족보다 더한 애정을 준 건 피붙이도 무엇도 아닌 생판 남인 미아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올곧은 애정에 심장이 간질거릴 정도였다.

그런 미아가 자신과 관계된 이들 때문에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윽……. 흐윽…….”

세레니티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녀는 깨닫고 만 것이다.

가족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따위는 없다는 걸. 있다면 그건 그들이 그만한 애정을 자신에게 주고 있어서라는 걸.

반대로 말하면, 가족보다 더한 애정을 주고 있는 미아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미아……. 미안해요…….”

들리지 않을 사죄를 반복하며 세레니티는 다짐했다.

더는 허울뿐인 관계에 휘둘리지 않으리라.

그리고 허울뿐인 관계 때문에 정말로 자신을 아껴 주는 사람을 잃지 않으리라.

* * *

며칠 뒤, 라쉬트 평야의 반역 진압을 축하하는 무도회가 열렸다. 셀레스티얼 백작의 반역을 진압했을 때와 같은 방식이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가장 먼저 아딜로트는 혼자 먼저 앞서 나가지 않았다. 그는 미아의 손을 잡고 함께 입장했다.

‘이래도 되는 건가.’

미아는 끙하고 그런 생각을 했지만, 무도회장에 들어서자마자 깨달았다.

더는 귀족들이 자신을 경멸하듯 보지 않았다.

반은 그녀에게 호의적이었고, 나머지는 그녀에게 호의는 없더라도 미아에게 여기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했다.

“…….”

미아는 잠시 멍하니 서서 눈을 깜빡였다. 그 모습에 아딜로트가 물어 왔다.

“왜?”

“그냥……. 전에는 되게 적대적이었던 것 같은데.”

“네가 만든 자리야.”

그 말에 미아가 멈칫했다.

“그런가……. 그런가!”

그리고는 이내 함박웃음을 지으며 무도회장을 가로질렀다.

달라진 점 두 번째.

황제 옆에 있는 의자가 전처럼 작고 옹졸한 ‘애완동물’용 의자가 아니었다. 미아는 의자를 보자마자 눈을 게슴츠레 떴다.

“황후용 아닌가, 저거? 생긴 게 황제 의자랑 너무 비슷한데?”

“궁에 남는 의자가 없대.”

미아가 눈을 흘겼지만 아딜로트는 능청스럽게 눈썹만 으쓱거렸다.

‘잘생겼으니까 봐준다.’

미아가 자리에 앉아 아딜로트도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곧 무도회가 시작되었고, 얼마 안 있어 번듯하게 차려입은 지로티 공작이 다가왔다.

“자네, 괜찮나?”

“네?”

“흠, 흠!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면서.”

“응? 그게 거기까지 퍼졌어요?”

“고트샬크가 폐하에게 불같이 화를 내지 뭔가. 그런 놈들이 떵떵대고 다닌다고. 나는 고트샬크가 그렇게 화내는 건 처음 들었네.”

미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안 그래도 제인은 그날 듀레인 일가를 보낸 뒤로 다시는 그들과 만나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근데 정말 괜찮아요! 저 그런 걸로 상처 안 받아요!”

미아는 샐쭉 웃으며 지로티 공작을 안심시켰다.

‘애초에 진짜 어머니는 다른 세계에서 잘 살고 계실 텐데, 뭐!’

애정 결핍 어쩌고 하는 얘기도 있었지만, 애정 결핍이 뭐 어때서?

그런 미아를 지로티 공작은 묘한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자네 강심장인 거야 익히 알고 있었다만, 이젠 존경스러울 지경이구만.”

“으힝.”

“그래서 자네 친구는 빼 올 수 있을 것 같나?”

미아가 팔짱을 끼고 무도회장을 돌아보았다. 분명 세레니티도 어딘가에 와 있을 텐데, 사람이 많아서 보이지가 않았다.

“그건 모르겠어요! 좀 더 상황을 만들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상황?”

“가족이라고 꼭 붙잡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닫게 해 주고 싶어서요.”

“냉정한 말을 하는구만.”

“저는 자기가 선택한 인연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미아가 그렇게 말하고서 지로티 공작을 향해 실실 웃었다.

“저랑 할아버지처럼!?”

“……자넨 정치를 해야 해. 말 한마디로 홀랑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니 말일세.”

“그럴까요!?”

미아가 다시 까르르 웃었다. 따라 미소 짓던 지로티 공작은 이내 인파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렵지 않겠나? 어쨌든 한 핏줄이잖나.”

“그래서 좀 더 계획을…….”

“그만 좀 해, 세레니티!”

그때였다. 새된 고함과 함께 음악이 멈췄다. 지로티 공작과 미아의 고개가 동시에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갔다.

베티 듀레인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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