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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52화 (152/193)

152화

에른스트에게 들은 바로는 그리 깊은 흉계를 꾸미진 않은 듯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꾸며냈을 가능성은? 그 황제라면 미리 독을 간파하고 허점을 보였을 수도 있다.”

“황제의 애완동물이 보이는 증상과 아가씨가 사용하신 약효가 완전히 일치합니다. 아시다시피 무슨 약을 쓸지 알고 있는 게 아닌 이상…….”

“……그렇군.”

크라우스 공작이 개운치 못한 마음으로 수긍했다. 황제에게 한심한 마음 역시도 들었다.

‘고작 애완동물이 앓은 일로 평정심이 흐트러졌나.’

그토록 집요하고 냉철하게 굴며 자신을 수도 없이 방해하던 그 아딜로트가 여자 하나에 쩔쩔매는 꼴이라니.

“……뭐, 되었다. 황제란 다 그런 거지.”

크라우스 공작이 생각을 멈추고 팔걸이에 손을 내려놓았다.

“작전은 예정대로 진행한다.”

그 말에 같이 보고를 받고 있던 크라우스 기사단장 발터의 눈이 빛났다.

“각하. 그렇다면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기회가 아닙니까? 지금 급습하면 무조건 황제를 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크라우스 공작이 심드렁히 말을 기사단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랬다간 온전히 반란이 되지 않느냐. 황제를 치는 건 어디까지나 뭇 영주들이어야 한다. 무릇 귀족은 늘…… 품위를 잃어서는 안 되는 법이지.”

그는 무심하게 말하고서 미래를 그렸다.

반란이 성공하면, 영주들은 자신이 오르퀘니나를 다스릴 위인이 되지 못함을 겸허히 시인하고 그에게 황제의 관을 바칠 것이다.

완벽한 각본이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결행 시간은……?”

기사단장의 물음에 크라우스 공작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황제는…… 동이 트자마자 떠날 테지.”

어차피 여기 있어 봐야 미아 셀레스티얼이 죽는 것은 기정사실일 테니, 차라리 빨리 채비해 레벤토르로 떠나는 쪽을 택할 터.

“저라도 그럴 것입니다. 오전이면 비가 잦아든다고도 했으니 말입니다.”

크라우스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20분 정도 마차를 타고 가면…… 라쉬트 평야가 나오지. 공작령을 벗어나는 곳이다. 그곳에서 결행하지.”

“거기라면 지형도 좋으니 해 볼 만할 것입니다. 휘하 영주들에게 미리 알려 두겠습니다.”

기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인 뒤 방을 나섰다.

혼자 남은 크라우스 공작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는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싶은 것처럼 잘도 쏟아졌다.

‘그렇다곤 해도 명성에 걸맞는 기사들이군.’

황제도, 황제의 기사들도.

그들은 전날부터 공작가에서 내어주는 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식수는 빗물로 해결했고, 지정된 자리에 거석처럼 서서 경계 상태를 유지했다. 하룻밤 내내 말이다.

‘암살자 역시…… 힘을 못 썼고.’

각고의 애를 써서 기른 공작가의 암살자들은 황제의 그림자에 의해 추풍낙엽처럼 죽어 나갔다.

아까운 일이었으나 황제와 기사들의 체력을 조금이라도 깎아 놓았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게다가 어쨌든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아 셀레스티얼은 음독당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로감이 상당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무사히 공작령을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때.

황제를 쳐야 했다.

만족스러운 구도에 크라우스 공작의 입가에 얼핏 미소가 떠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수월해.’

분명 모든 것이 잘되고 있는데도 뭔가 석연치가 않았다.

황제는. 더불어 그의 가장 훌륭한 말인 재상 요아힘 키르히는.

그리고 미아 셀레스티얼은 이걸 정말 예측하지 못했을까?

이 비도, 미아 셀레스티얼이 앓기 시작해 저택에서 하루 묵어 가게 된 것도 전부 우연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는 약한 불안감을 느꼈다.

“…….”

대비 정도는 해 놓는 것이 좋겠군.

잠시 눈을 내리깐 크라우스 공작은 탁자 위의 종을 울렸다. 곧 집사 에른스트가 들어왔다.

“지금부터 말하는 것을 준비해 릴리벳의 방에 가져다 놓도록.”

* * *

크라우스 공작령 가장자리의 라쉬트 평야.

본래는 비어 있었어야 할 그곳에 지금은 수많은 병사와 기사가 운집해 있었다. 모두 크라우스 공작가의 가신 가문에서 차출된 병력이었다.

그중 가장 화려한 막사에는 영주들이 모여 있었다.

“갑작스러운 부름인데도 인원이 상당하군요.”

“사실 언젠간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상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결국 때가 온 게지요.”

번쩍거리는 갑옷을 차려입은 영주들이 근엄하게 앉아 차를 마셨다.

“그런데 크라우스 공작 각하는 언제 오신답니까?”

누군가의 물음에 가장 세가 강한 페나트 백작이 답했다.

“그분이 바로 참여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늦게 출발해서 마지막에 당도하시기로 했소.”

그의 말에 영주 중 한 명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건…… 만약 이 반란이 실패하면 저희 탓으로만 돌아가는 게 아닙니까?”

“큼!”

“어허, 마이어 자작!”

페나트 백작이 호통쳤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이오! 거사 전에 불길한 소리를 하다니!”

“그렇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황제가 그 자랑하는 기사들을 아주 소수만 데리고 내려왔다는 건 우리 모두 아는 사실 아닙니까?”

“그렇기야 하지만…….”

“간밤에는 하도 비가 많이 와서 매가 날기도 어려웠습니다. 이제 와서 눈치챘다고 해도 황실의 군대가 도착했을 땐 모두 끝나 있을 겁니다.”

“그 말이 맞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크라우스 공작 각하께서 얼마나 신중한 분이신지는 모두 알지 않소?”

마이어 자작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막사를 나왔다.

그때, 누군가 성큼성큼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이보십시오, 영주님들!”

한쪽 눈에 안대를 끼고 오른 다리에 의족을 낀 중년 남자였다. 그는 몹시 화가 난 얼굴이었다.

“정말로 이 미친 계획을 따르겠다는 겁니까?”

“이, 이보게. 벤야민!”

마이어 자작이 대경실색하며 그를 말렸다. 페나트 백작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저자는 누군가?”

“아. 저희 군의 참모입니다. 유일하게 전쟁을 겪어 본 이라서…….”

“젠장! 그 겪어 본 이가 말이 안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벤야민이 외쳤다. 다급한 태도였다.

“당신들이 황제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자는 미쳤다고요! 전쟁의 신이래도 그자만큼 날뛰진 못할 겁니다! 분명 이것도 그자의 손바닥 안일 게 분명합니다!”

“벤야민! 말이 심하지 않나! 자네 아비의 공이 있다지만……!”

“나도 내 아버지가 자작 각하께 신세를 진 게 아니면 벌써 도망갔을 겁니다!”

벤야민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바닥에 침을 뱉었다.

“게다가 이딴 오합지졸로 대체 뭘 하겠다고……. 군수야 주변 지역에서 끌어온다지만 정찰병이 풀 밟은 자국도 볼 줄 모르질 않나, 막사 치는 법도 몰라서 알려 줘야……!”

그때, 페나트 백작이 거만하게 손을 들었다.

“그래서 자네는 이 일이 성사되지 않을 것이다?”

“당연합니다!”

벤야민이 침까지 튀기며 외치고는 마이어 자작을 휙 돌아보았다.

“마이어 자작 각하. 제가 정말 마지막 정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당장 여기서 군대를 물리십시오!”

“어, 어허!”

“재밌군.”

페나트 백작은 비웃음을 지었다.

“매도 띄울 수 없는 이 폭풍우 치는 날씨에, 대체 황제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전쟁에 좀 참여했기로서니 망상이 지나치군.”

그 말에 벤야민이 지금까지 성을 내던 것이 무색하게 한탄을 흘렸다.

“당신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듣자 듣자 하니 천것이……!”

“당신들, 바레란 전투에 대해서는 압니까? 황제의 군대가 사흘 만에 86마일을 주파해서 라지푸트의 군대를 쓸어버린 전투 말입니다.”

“…….”

벤야민의 말에 영주들은 갑자기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벤야민이 혀를 찼다.

“그게 라지푸트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분수령이었다는 건 알기나 합니까?”

“…….”

“커, 커흠.”

영주들이 슬슬 시선을 피했다.

그딴 게 뭔지 알게 뭐란 말인가?

라지푸트 전이 한창일 때 아딜로트는 고작 황자에 불과했고, 사실상 죽으라고 전선에 보내진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크리소르 황태후는 아딜로트가 공을 세우는 것을 매우 싫어했기에 귀족들 역시도 라지푸트와의 전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그런 게 있었던 것도 같은데 내가 그때 신문을 잘 안 봐서…….”

“그, 86마일이 그렇게…… 먼 건 아니지 않나? 우리 병사도 그 정도는…….”

벤야민은 아예 할 말을 잃은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좋소이다. 마음대로 하십쇼. 어차피 내 말은 안 들을 게 뻔하니.”

“이, 이봐! 벤야민! 어디 가나!”

마이어 자작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병사는 장대비를 헤치고 어디론가 걸어가 버렸다.

“허, 참. 허, 원래 저 정도로 혈기 넘치는 사람이 아닌데…….”

“크흠. 아랫사람을 잘 단속해야겠소.”

“죄, 죄송합니다…….”

마이어 자작이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문득 평야 먼 곳에서 아지랑이 같은 것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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