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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51화 (151/193)

151화

몇 시간 뒤. 크라우스 공작가의 주방.

홀로 주방을 살피고 있던 주방장 잔나는 갑작스러운 방문객을 받았다.

황제의 기사 네 명이었다.

“에구머니! 뭔 일이래요?”

잔나의 질문에 기사 한 명이 차갑게 답했다.

“폐하의 명으로 크라우스 공작가의 주방을 빌릴 것이다. 요리는 기사들이 할 것이니 물러나도록. 재료 역시 기사들이 기미를 볼 것이다.”

“아이구야. 얼마든지요.”

잔나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불안하게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우리 주방은 좀 복잡한데…… 도구나 재료를 잘 찾을 수 있으시겠어요?”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래요? 아이구…….”

불안한 얼굴로 물러나며 잔나는 속으로 코웃음쳤다.

‘흥. 어차피 곧 요청하게 될걸.’

그나저나 정말로 기사들이 찾아오다니.

‘릴리벳 아가씨가 혜안이 있으시네.’

잔나는 집사 에른스트가 남몰래 찾아와 한 말을 떠올렸다.

‘황제나 기사는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환자는 보살펴야 할 터. 기사들이 찾아오면 남몰래 이걸 섞도록 하게.’

그렇게 말하며 그가 내민 것은 새끼손톱보다 작은 알약이었다. 잔나가 소맷부리에 숨긴 그것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이런 일은 내 전문이지.’

그사이 기사들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

“냄비는 이걸 쓰면 됩니까?”

“물과 기름으로 닦아 내라. 뭐가 묻어 있을지 모르니까.”

잔나는 옆에서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슬쩍 끼어들었다.

“아이고. 아픈 사람한테 기름 먹이면 안 되는데…….”

“……잘 닦아 내라.”

“예. 일단, 어……. 뭘 만들어야 하죠?”

“수프 같은 묽은 게 좋을 테니 버터를…….”

“아이고오……. 부이용이 더 나을 텐데…….”

“…….”

그러다 한 기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냄비를 떨어뜨렸다.

“아이고! 살림살이 다 부서지겠네!”

그 순간, 잔나가 참다 참다 못 봐 주겠다는 듯이 나섰다.

“기사님들. 내가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그러는데, 혼잣말 좀 해도 되겠어요?”

“안 된…….”

“냄비는 그쪽 거 말고 저기 둥근 것을 쓰셔요. 예, 그거요. 그리고 칼은 더 큰 거로 쓰셔야지. 손도 큰 분이! 감자랑 양파는 갖다 드릴…….”

“주제넘게 굴지 마라.”

“아이고. 그렇지요, 참. 내 정신 좀 봐. 아무튼 식료품 창고를 안내해 드릴게요. 기미하실 거죠?”

경계 태세긴 해도 기사들은 어느새 저도 모르게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더는 끼어들지 마라.”

그러나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경계 태세를 취하고는, 내온 재료를 이것저것 맛보기 시작했다. 잔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남몰래 콧방귀를 뀌었다.

‘어디 열심히 해 봐라. 독이 나오나!’

30분이 지나도 몸에 변화가 없자 기사들은 곧 요리를 시작했다.

그때 잔나도 슬쩍 불 앞에 서서 냄비를 맡은 기사 옆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나도 좀 출출하네. 뭐 좀 만들어도 되겠어요? 방해는 안 할게요. 그런데 기사님. 물이 너무 많으네요.”

“아?”

기사가 쩔쩔매는 동안 잔나는 재빨리 스튜 재료를 가져와 끓이기 시작했다.

황제의 기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그런 잔나를 감시했다.

하지만 주방에 따뜻한 공기가 가득 차고 고소한 냄새가 풍기자, 옆에서 스튜가 끓는 것을 훔쳐보던 기사 한 명이 침을 꿀꺽 삼켰다.

“좀 자시겠어요?”

잔나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인심 좋게 웃으며 말했다.

“예? 아닙니다.”

“그러지 말고 자셔요. 일부러 많이 만들었으니까.”

잔나는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에게 음식을 권했다. 물론, 독이 들지 않은 음식이었다.

그러나 기사들은 움찔했을 뿐 반응이 없었다. 그 모습에 잔나가 보란 듯이 크게 한숨 쉬었다.

“아휴. 너무 딱딱하네, 이분들! 윗분들이 무슨 사이든 아랫사람도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

“그래요. 대답은 안 해 줘도 돼요. 그쪽 사정도 있을 테니……. 그냥 이거나 먹고 일해요. 응?”

잔나는 그렇게 말하며 대접에 끓이던 스튜를 덜어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스튜는 깍둑썬 고기와 채소가 적당히 뭉그러져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아닌 척 하지만, 기사들의 시선이 계속해서 스튜에 달라붙었다.

“뜨거울 때 자셔요. 비밀로 해드릴게. 응? 내가 아들 같아서 그래.”

잔나가 그렇게 말하며 푸근하게 웃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난 결혼도 안 했고 아들도 없지만, 이런 뚱뚱한 아줌마 주방장을 누가 의심하겠어?’

아니나 다를까 슬쩍 눈치를 보던 기사 한 명이 말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켄달 경!”

다른 한 명의 기사가 당장 눈살을 찌푸렸으나, 켄달 경이라 불린 기사가 능청스레 말했다.

“슈라이어 경. 경도 좀 힘들지 않습니까? 여기가 라지푸트도 아닌데 말입니다.”

“1급 경계 태세를 취하란 게 폐하의 명이었네.”

“하지만 말마따나 그건 윗사람들 이야기 아닙니까.”

“맞아요, 맞아. 슈라이어 경? 경도 좀 앉아서 드세요. 비밀로 해드린다니까. 응?”

잔나까지 거들며 나서자 슈라이어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결국, 얼마 안 있어 기사들은 사용인 식탁에 앉아 스튜를 뜨게 되었다. 가장 먼저 스튜를 한입 먹은 켄달 경이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이거 정말 맛있군요! 솜씨가 좋으십니다!”

“아이구. 고마워요. 더 있으니 들어요.”

“예!”

켄달이라는 기사는 꼬리를 흔드는 개처럼 금세 경계를 풀었다. 슈라이어라는 기사 역시도 말은 없었지만 점점 긴장을 푸는 게 보였다.

다른 두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곧 넘어오겠어.’

잔나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비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스튜를 더 떠 오기 위해 움직이는 척 하다가, 옆 냄비의 부이용을 보며 놀란 척 했다.

“아이고, 기사님? 요거 더 끓이면 쓴맛이 날 텐데. 제가 할까요?”

“……!”

그제야 기사들이 부랴부랴 얼굴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대지 말아라. 우리가 하겠다.”

“예. 제가 하겠습니다.”

“그게 낫겠지요?”

잔나가 슬쩍 물러났다.

하지만 이미 손가락 사이에 숨겨놓았던 독은 부이용 안으로 흘러 들어간 뒤였다. 뚱뚱한 몸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성공이다.’

기사들이 씻어 놓은 스푼까지 미리 해독제를 발라 둔 것으로 바꿔치기하자, 잔나는 정말로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다들 정말 고생이 많죠? 힘내요.”

그렇게 부이용이 완성되었다.

“저…… 맛있게 먹었습니다. 상냥하시네요.”

제일 먼저 스튜를 먹었던 켄달 경은 주방을 나가며 꾸벅 인사까지 했다.

“뭘요. 다 돕고 사는 거지.”

잔나는 마지막까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 * *

그로부터 삼십여 분이 흐른 뒤.

황제의 방 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해!”

“……가 안 됩니다……!”

밤잠도 못 이룬 채 방 안에서 서성이고 있던 릴리벳은 바로 그것을 눈치챘다.

똑똑.

곧 노크와 함께 하녀 한 명이 유령처럼 스르르 들어왔다. 집사 에른스트가 붙여 준 하녀였다.

“아가씨. 기사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릴리벳이 잡아먹을 듯 급하게 외쳤다. 하녀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기사들이 갑자기 구토약을 찾고 대량의 빗물을 항아리째 날랐다고 합니다. 경계 태세도 흐려졌고 부산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죽었대?”

하녀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죽진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매우 위중한 상태인 듯합니다.”

“안 죽었다고? 아직도?”

릴리벳의 얼굴에 실망감이 퍼졌다. 정말 짜증날 정도로 명줄이 긴 여자였다.

‘하지만 이 상황에선 약도 구할 수 없을 테고, 수도로 돌아갈 때까지 버틸 수 있을 리 없어.’

그 말은 즉, 자신이 미아를 음독시키는 데에 성공했단 뜻이었다.

‘이제 공작 각하도 나를 내치지 못하시겠지. 미아가 없어지면 다음 황후는 나니까.’

안도감이 밀려오니 뒤늦게 슬픔이 찾아왔다.

“알았어. 나가 봐. 내일 있을 티 타임에 신경 쓰고.”

“예.”

하녀를 내보낸 릴리벳이 창가로 다가갔다. 그녀의 참담한 심정을 대변하듯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 하지만…… 고결한 뜻만으로는 사람들을 이끌 수 없어.’

부디 미아가 그것을 이해해 주기를.

적어도 그녀가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며 릴리벳은 가만히 여신께 기도했다.

* * *

반면, 소식을 들은 크라우스 공작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미아 셀레스티얼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예. 확실합니다. 그들이 무명천을 요청하기에 가져다준 하녀가 안쪽의 상황을 염탐했다고 합니다.”

“황제와 키토 후작도 거기 있다던가.”

“예. 안쪽에서 황제의 급박한 목소리를 들었으며, 긴 흑발을 보았다고 합니다.”

“…….”

주변 영주들과의 소통 때문에 여태 깨어 있던 크라우스 공작은 가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릴리벳이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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