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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107화 (107/193)

107화

앞을 보자 어느새 대화를 멈춘 아딜로트, 요아힘, 페르디안이 묘한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

미아의 귀 끝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아니! 제가 머으려는 게 아이라!”

“너 먹으라고 둔 건데 왜 그래?”

“그럼요. 괜찮습니다. 보기 좋으신데요.”

“…….”

페르디안은 말없이 실소를 흘렸다. 미아는 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하려 들었지만, 아직 입안에 커다란 사탕 두 개가 있었다.

“나 머으 께 아니라! 에므라랑!”

“예. 그러시군요. 괜찮습니다.”

“아니라고여!”

“네. 아닙니다. 아니죠.”

요아힘이 특유의 ‘일단 말해 봐. 들어는 줄게. 들어만.’ 화법으로 답했다.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지짜 그언 거 아닌데…….”

울상을 짓는 미아를 보고 요아힘이 부드럽게 웃었다.

“이쯤 쉬었다 하는 게 더 능률에 도움이 되겠군요. 어떠실까요, 폐하?”

“그러지.”

아딜로트와 페르디안도 당연하다는 듯이 서류를 정리했다. 그리고 미아가 늘어져 있는 소파에 와서 자리를 잡았다.

아딜로트는 가장 익숙한 미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페르디안은 미아의 대각선 반대편에 앉았고, 요아힘은 신기하게도 아딜로트가 아니라 미아의 오른쪽에 있는 1인용 소파에 앉았다.

‘보통은…… 제일 윗사람을 둘러싸고 앉지 않나?’

묘한 구도였다. 뭔가 호랑이 사이에 낀 토끼 같은…….

‘아니, 내가 토끼는 아닌데……. 자의식 과잉 같은 생각은 그만 좀 하자.’

미아가 사탕을 씹으며 생각했다. 그동안 아딜로트는 뭔가 기특하다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단 게 모자라?”

“아니라구요. 그 이상 말했다간 아딜이어도 화낼 거예요.”

미아가 눈을 흘기며 답하고선 화제를 바꿨다.

“그보다 제가 방해한 거예요? 나중에 와도 되는데…….”

“원래 쉬려고 했어.”

거짓말하지 마. 너 안 쉬잖아.

아딜로트의 태연한 대답에 미아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눈을 흘기는 사이, 아딜로트는 집무실 밖의 올리버를 불렀다.

“단 거.”

올리버는 유능한 수석 시종답게 즉각 온갖 디저트를 내왔다. 아예 대기하고 있던 수준의 스피드였다.

시간을 계산하면…… 자신이 딱 집무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준비했다면 이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치만 이 시간에 3단 케이크?’

미아가 산처럼 쌓이는 디저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걸 누가 다 먹으라고.

그때 미아가 얼굴에 꽂히는 시선을 느꼈다. 돌아보니 세 남자가 묘하게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하. 내가 다 먹으라고.

“같이 드시죠!?”

미아가 잽싸게 포크를 분배했으나 모두 손가락을 포크 걸이로만 사용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단 건 별로야.”

“저는 남 앞에서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불균형한 식사는 건강에 해가 된다.”

차례대로 아딜로트, 요아힘, 페르디안이었다.

앞의 둘은 이해가 가는데 페르디안은 뭔지 모르겠다. 안 좋으니 너 다 처먹고 뒤지란 걸까?

그리고 세 남자는 다시 묘하게, 미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먹으란 거야?’

“뭐가 마음에 안 들어?”

미아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자 아딜로트가 약간 걱정스럽게 물었다. 지나가듯 묻는 말투와 달리 시선은 진중했다.

‘윽, 아딜 몰래 나갔던 죄가 있어서 자꾸 양심이…….’

결국, 미아는 파들파들 입꼬리를 떨며 포크를 들었다. 그리고 애써 미소를 유지한 채 휘낭시에를 목구멍으로 밀어넣었다.

“마, 맛있당…….”

말과 달리 얼굴이 울상이었다.

하지만 세 남자는 흐뭇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귀여워.’

‘잘 먹는 건 보기 좋네요.’

‘단 걸 정말 좋아하나 보군.’

‘신종 고문인가?’

그 사이에서, 미아만 괴로움에 파들거리고 있었다.

* * *

“그래서 무슨 일이야?”

아딜로트가 차를 마시며 물었다.

“곧 호흐실트 후작 각하께서 무도회를 연다고 들었거든요! 저도 초대장 받았어요!”

“그랬던가?”

아딜로트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확실히 그는 사교 행사 쪽은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대신 요아힘이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호흐실트 후작이 일주일 동안 휴가를 냈습니다. 그는 사교계에서 이름이 높으니까요.”

“그래서 거기 가고 싶다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후작 각하 얼굴도 뵙고 싶고요.”

“그러고 보니 미아 님은 아직 공식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군요.”

요아힘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슬슬 정식으로 소개해 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신분이야 나중에 적당히 사건을 만들어서 복권시키면 되니, 일단은 추후 미아 님이 황후가 되었을 때…….”

그때 미아가 잔을 탁 내려놓으며 명랑하게 말했다.

“근데 저 황후 안 할 건데!?”

“…….”

“…….”

“…….”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미아에게 꽂혔다. 미아는 까르륵 웃었다.

“요아힘도 듣지 않으셨어요? 제가 황후 후보인 척 하는 건 그냥 중요한 시기에 폐하 주변에 귀족들이 꼬이는 게 좋지 않으니까 그렇게 하기로 합의한 거예요!”

“듣긴…… 들었습니다만.”

진짜로 그럴 줄은 몰랐지.

요아힘이 굉장히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는 아딜로트를 흘낏한 뒤, 난처함을 숨기고 미소 지었다.

“그럼, 혹시 만약 정말 황후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제가요?”

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거고…….”

“으음…….”

잠깐 고민하던 미아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역시 황후는 좀!”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미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서 시큰둥한 얼굴을 했다.

“좀 별로 같아요…….”

“…….”

주어가 없는 문장 덕에 집무실에 묘하게 싸늘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모두 그 앞에 들어갈 말을 떠올렸다.

(아딜로트가) 별로 같아요.

(폐하랑 결혼은) 별로 같아요.

(얘랑 사는 게) 별로 같아요…….

정답은 (황후 되면 일만 하고 살 텐데 그건 진짜) 별로 같아요 였지만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별로는 아닐걸.”

가만히 있던 아딜로트가 조금 발끈한 어조로 말했으나 미아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진짜 별로일 듯!”

“…….”

미아가 ‘너 맨날 일만 하잖아!’ 하는 의미로 눈을 홉떴다.

그 말을 ‘너 진짜 별로니까 개수작 부리지 마라!’로 받아들인 아딜로트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요아힘은 갈수록 진창에 처박히는 대화의 흐름을 어떻게든 구출하기 위해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 현재는 마땅한 황후감도 없고, 폐하를 정말로 위해 주시는 분이어야만 해서…….”

“찾아보면 있을걸요? 게다가 ‘마땅한 황후감’이 중요한 거면 저는 더 안 되죠! 반역자의 딸이 무슨?”

아딜로트는 긁어 부스럼을 만든 요아힘을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쏘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내내 조용히 있던 페르디안이 입을 열었다.

“권력이 탐나진 않나? 돈이라든가.”

페르디안의 물음에 미아가 짧게 고민한 뒤 대답했다.

“권력욕이 있으면 이런 얘긴 안 하겠죠? 전 소시민이라……. 그리고 돈은!”

미아가 엄지로 가슴을 척 가리켰다.

“제가 벌면 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딜로트는 몹시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너무 멋있는데. 근데 그만 멋있어도 되는데.

결국 그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이 얼굴 보다가 밖에 나가서 괜찮을 것 같아? 너 눈 높다며.”

“그치만 오르퀘니나는 미남 많던데요! 그리고 제가 눈이 높긴 하지만, 어차피 얼굴은 취향이니까!”

“네 취향이 뭔데?”

“앗. 흐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에 미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은 흑발 북부 대공을 제일 좋아하긴 하지?’

그게 자기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치자면 사람들이 제일 만만하게 좋아하는 건 페르디안일 터였다.

“…….”

그 순간, 미아의 시선이 스르르 페르디안으로 향한 것을 세 남자는 놓치지 않았다.

집무실의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참담해졌고, 페르디안이 헛기침과 함께 나직하게 말했다.

“자꾸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내는군. 폐하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마라.”

“……제가 말한 것도 아니고 물어본 거에 대답한 건데요!”

“그보다, 그럼 호흐실트 후작 각하의 무도회에 가고 싶으시다는 뜻이군요.”

미아가 불퉁하게 대답했을 때 요아힘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로서는 더는 이 주제를 이어 가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폐하께서도 시간이 될 듯합니다.”

그 말에 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아딜이 같이 가요?”

고개를 돌린 채 침묵하던 아딜로트가 멈칫했다. 말없이 포도를 따 먹고 있던 그는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럼 나 말고 누구랑 가는데?”

“갈 사람이 있는 건 아닌데……. 굳이 바쁜 아딜을 데리고 가야 하나 싶어서요. 오르퀘니나는 혼자 무도회 출입이 가능하잖아요!”

“내가 바빠서?”

“네!”

“나랑 가는 게 별로라서는 아니고?”

아딜로트가 턱을 괴고 지나가듯이 물었다.

그 말에 미아는 오히려 뚱한 표정으로 아딜로트를 바라보았다.

“내가 왜? 난 아딜 엄청 좋아하는데.”

“…….”

“아직도 내가 의심스러워? 내가 아딜 좋아하는 거 안 느껴져?”

이거 은근히 말하면서 상처 받네.

시무룩한 미아의 모습에 당황한 아딜로트는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

“…….”

“농담이야.”

“……진짜?”

“진짜지.”

“흐음……?”

“의심할 거면 진작 했겠지.”

“했잖아.”

“…….”

뾰로통하게 눈을 흘기는 미아와 무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아딜로트.

그 모습을 지켜보며 요아힘은 감탄하고야 말았다.

아딜로트 겐첸 슈뢰더를 이 정도로 갖고 놀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리라곤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방금 굉장히 자연스럽게 황제에게 반말했는데도 페르디안 키토 후작마저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페르디안은 오히려 우묵한 잿빛 눈에 많은 생각을 담은 채 미아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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