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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애완동물이 되었다-84화 (84/193)

84화

그나마 세레니티 듀레인이 양언니의 등쌀에 못 이겨 사교계에 두문불출했을 땐 행복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그대로 처박혀나 있을 것이지 황궁으로 기어 들어가?’

힐데가르트가 분노를 참으며 심호흡했다.

‘대놓고 화내면 안 돼.’

웃음거리가 되는 건 세레니티 듀레인이어야만 했다. 겨우 감정을 다스린 힐데가르트는 미아를 바라보았다.

‘일단 눈앞의 이년부터 구워삶아야겠어.’

그사이에 미아는 어느새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인 양 영애들 사이에 섞여들어 있었다.

“미아 님도 단것을 좋아하신다고요?”

“네! 최근엔 코코니의 딸기 크림 케이크를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어요!”

“어머나! 코코니의 케이크는 정말 맛있죠!”

힐데가르트는 차향을 음미하는 척 하며 그들의 대화를 귀담아들었다.

미아 셀레스티얼은 생각보다 기가 세진 않은 듯했다. 오히려 배알도 없이 헤실헤실 웃는 모습이 멍청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힐데가르트가 비웃음 삼키며 미아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미아 님. 미아 님은 듀레인 양과 많이 친하신가 봐요?”

한창 수도의 디저트 가게에 대해 이야기 중이던 미아는 질문을 받고 생기가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네! 말벗이니까요! 같이 지내는 시간도 많고!”

힐데가르트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러나 곧 그 미소에는 안타까움이 스며들었다.

“그렇군요. 저런 아름다운 분과 같이 다니시니 비교 때문에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 말에 미아가 멈칫했다. 잠깐이지만 하얗고 말간 얼굴에 냉정함이 스쳐 지나간 듯도 했다.

“미아 님?”

힐데가르트는 약간 당황했으나, 그녀가 다시 미아를 불렀을 때 미아는 어느새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좀 그런 편이에요! 세레니티 양은 예쁘고, 착하고…….”

“어머.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그치만 세레니티 양은 좋은 사람이니까요!”

미아가 방글방글 웃으며 답했다. 아까의 냉정함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잘못 봤나?’

힐데가르트는 자신이 본 것을 착각으로 치부하고서 다시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외모로 차별을 하다니 정말 너무하네요. 생긴 게 중요한 게 아닌데 말이에요.”

“그러게요!”

“저는 그래서 미아 님이 좋아요. 미아 님은 성격이 정말 좋으신 게 느껴져요. 사람들의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주변의 영애들은 떨떠름하게 찻잔을 들었다.

‘또 시작이네.’

릴레 후작 영애라는 신분 때문에 감히 나무랄 수는 없지만, 힐데가르트는 아주 묘한 화법을 사용했다.

분명 위로인데 듣는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기분이 나쁜 화법이었다. 그렇다고 화내면 이쪽이 더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아 말을 꺼내기도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의 힐데가르트는 대체로 착한 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개발한 화장품을 나눠 주기도 했고, 미용과 유행 관련하여 많은 조언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지적하기 애매했다.

따라서 힐데가르트가 그런 식으로 나올 때 가장 좋은 대처법은 화제를 돌리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아 셀레스티얼은 그걸 깨닫지 못했는지 마냥 감동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힐다 양!”

미아 셀레스티얼이 강아지 같은 순한 눈을 빛내며 하는 말에 힐데가르트는 입꼬리가 솟아 올라가려는 것을 참았다.

‘진짜 쉽네.’

이대로라면 몇 번만 쏘삭거리면 바로 세레니티를 고립시키는 데에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힐데가르트는 비웃음을 참고서 상냥하게 미아에게 팔짱을 꼈다.

“안 그래도 미아 님과 친해지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뵈어서 너무나 기뻐요. 저희 친하게 지내요, 미아 님!”

“좋아요! 힐다 양이랑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후후. 미아 님! 저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비교하는 게 아주 나쁘다고 생각하니까요. 혹시 저랑 다니시다가 남에게 비교당하는 일이 생기면, 꼭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같이 화내드릴게요.”

달리 말하자면 너와 나는 급의 차이가 있고 내가 너보다 잘났다, 는 의미였다.

힐데가르트에게 이 말을 들은 이들은 보통 처음엔 멈칫하지만, 곧 그녀의 상냥한 미소에 아무 말 못 하고 수긍하기만 했다.

그게 지속될수록 상대는 갈수록 자신감을 잃고, 마침내 그녀와의 ‘격’의 차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이게 힐데가르트가 상대를 휘두르는 방식이었다.

힐데가르트는 미아 셀레스티얼 역시 비슷하게 반응하리라 생각했다. 남의 자존감을 뭉개는 것쯤이야 그녀에겐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다음 순간, 미아 셀레스티얼은 감격한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힐다 양!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이, 힐다 양은 정말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고우시네요!”

힐데가르트가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눈치가 얼마나 없길래 방금 그 말을 못 알아들은 걸까?

하지만 찬사 자체는 만족스러웠기에, 힐데가르트는 겸손하게 말했다.

“아니에요. 예쁘긴요. 이렇게 귀여우신 분께 그런 칭찬을 들으니 부끄럽네요……. 저보단 미아 님이 더 어여쁘신걸요?”

말을 마치고 힐데가르트는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아니에요, 힐데가르트 양이 더 예뻐요!’ 같은 말이 나오겠지.

매일 듣는 말이지만 예쁘다는 말은 도무지 질리지가 않는다. 힐데가르트가 이어질 칭송을 기다리며 대답을 미리 혀끝에 올려놓은 순간이었다.

“그래요? 그렇구나!”

“부끄럽……, 네?”

미아가 꺄르륵 웃으며 하는 말에 힐데가르트가 당황해 멈칫했다.

그녀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동안, 미아는 그녀의 손을 잡고 신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힐다 양도 저랑 다니면서 누구랑 비교당하면 꼭 말씀해 주세요! 제가 같이 화내드릴게요!”

“……풋!”

“킥킥…….”

차를 마시던 같은 테이블의 영애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뒤늦게 미아의 말을 이해한 힐데가르트의 미소가 일그러졌다.

“미아 님? 그게 무슨 의미죠?”

“네? 의미요?”

미아가 분홍색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보며 힐데가르트는 긴가민가한 채 일그러진 미소만 유지했다.

‘날 놀리는 건가?’

하지만 멍청하게 눈을 깜빡이는 걸 보면 그런 의도인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힐데가르트는 미아의 눈치가 더럽게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분통이 터지려는 것을 억누르며 파들거리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 렇네요. 네에……. 꼭, 말씀드릴게요…….”

“네! 외모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중요하지…… 않죠. 네.”

“저도 힐다 양이 착해서 너무 좋아요! 사람들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아셨죠?”

미아는 힐데가르트의 손을 몹시도 소중하다는 듯이 꼭 쥐기까지 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약간 안쓰러운 기색마저 섞여 있었다.

멍한 얼굴을 했던 것도 잠시. 힐데가르트는 분노로 머리가 뜨거워지고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얘 지금 나 동정하는 거야?’

힐데가르트가 어금니를 악문 채 빙긋 웃었다.

“음, 하지마 미아 님? 너무 걱정해 주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어디 가서 그런…… 비교나 당하고 다닐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래. 세레니티 듀레인과 비교당하는 너랑은 다르게 말이야!

하지만 미아는 그 말에 오히려 더 감동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힐다 양은 정말 아름다우니까요! 절대로 비교당한다고 자신을 낮추면 안 돼요! 아셨죠?”

“……하! 아하. 아하하! 하……!”

힐데가르트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내지 않기 위해 웃기라도 해야 했다.

‘미친 거 아냐? 날 응원하는 거야, 지금!? 네가? 날!? 내가 너 따위에게 응원받을 급이라고 생각해!?’

특히 가장 돌아 버릴 것 같은 점은 그렇게 말하는 미아의 눈빛에 한 점 거짓도 없다는 부분이었다.

그러니까 눈앞의 이 계집애는, 진짜로 자신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저딴 식으로 말하고 있는 거였다.

‘이 멍청한 게! 얼마나 찌질하게 살았으면 그냥 하는 말도 못 알아들어!? 이럴 땐 네가 더 예쁘다고 해 줘야 하는 거라고!!’

힐데가르트는 고함을 내지르고 싶은 것을 눌러 참으며 미아의 손을 피해 찻잔을 들었다. 피부가 닿고 있는 것조차 짜증스러웠던 것이다.

멍청한 미아 셀레스티얼은 고개를 갸웃하고선 다시 방긋 웃었다.

“위로가 됐나요?”

빠득.

“……네, 에! 무…… 척이나요!”

힐데가르트가 어금니를 악문 채 대답했다.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니 같은 테이블의 영애들은 은근히 이쪽을 바라보며 두 사람의 대화를 구경 중이었다.

‘도와주진 못할망정!’

원래 자신의 미모를 부각시키기 위해 데리고 다녔을 뿐이지만, 간사하기 짝이 없는 그 모습에 신경질이 확 솟구쳤다.

“모두 일단 차를…… 마실까요?”

힐데가르트가 파르르 떠는 입꼬리로 겨우 미소 비슷한 것을 지은 채 말했다.

그 말을 끝으로 테이블 위에는 더는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힐데가르트는 옆에서 연신 “맛있당!”하고 외치는 미아 셀레스티얼을 흘끗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감히 자신을 동정하고, 응원까지 하다니.

생전 겪어 보지 못한 굴욕이었다.

‘안 되겠어…….’

탁.

힐데가르트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미아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미아 님. 이것도 인연인데 릴레 후작저에서 저와 함께 티 타임을 가지시지 않겠어요?”

‘세레니티 듀레인은 잠시 내버려두고 눈앞의 벌레부터 밟아야겠어.’

속을 숨기고 환히 웃는 힐데가르트를 보며,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던 미아 역시도 이내 화사하게 웃었다.

“너무 좋아요!”

‘그래. 어디 한번 개겨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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