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성국과 자작부인이 한 패인게 분명해요2022.02.03.
로벨리아는 귀족이 아닌 백성들, 그리고 귀족 중에는 젊은 여성들에게서 지지도가 높았다. 나이가 많고 세력이 강한 귀족일수록 파격적인 행보를 걷는 로벨리아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곤 했다. 그런 귀족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을 좋은 기회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군요. 이는 모든 여성들의 귀감이 되는 황후라는 직위에 어울리지 않는 행실입니다.”
“이것을 기회로 황후의 지지도를 낮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개를 쳐들던 그 권세를 꺾을 수 있다면 이만큼 바라던 바도 없지요.”
그러한 대귀족들의 입김으로 인해 그녀를 소리 높여 비난하는 언론사에는 비밀리의 후원이 이어졌고, 바람잡이까지 고용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평소 그녀를 지지하던 평민들, 그리고 젊은 여성들은 라이트 자작부인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허튼 소리! 귀족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중상모략 따위를 믿는단 말인가?”
“우리 장남도 그분의 후원 덕분에 계속 공부할 수 있었고, 옆집 가장도 황후 폐하의 이름을 딴 재단 덕에 일자리를 얻었다고. 그렇게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께서 고작 투기심 따위에 눈이 멀어 약자를 괴롭혔다고? 말도 안 되지.”
“예언기록이고 뭐고 난 그런 거 관심 없고 안 믿어. 나는 내가 겪은 황후 폐하의 인품을 믿겠어.”
“황후 폐하를 시기하는 이들로 인한 누명이 분명해요. 언론사와 자작부인에게 항의의 편지를 보내는 게 좋겠어요.”
“이 신문들을 보이콧하고 내일 오전 10시에 광장에서 항의 집회를 열죠!”
“황후 폐하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을 보여줍시다!”
평민들 중에는 로벨리아를 지지하는 자가 많았으나, 그들의 힘은 크지 않았고, 귀족들 중에는 자작부인을 믿는 이가 많았다. 게다가 그저 이 거대한 이슈가 즐거워서 박쥐처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논란을 가중시키는 호사가들까지. 그날, 수도의 밤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한편, 로벨리아는 귀족들이 자신들을 비난하는 것만 예상했을 뿐 평민들이 여전히 자신을 믿고 지지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만일 자작부인의 신성력이 거짓이라면, 그녀의 증언은 대들보부터 무너지고 말지.’
그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자작부인의 신성력이 거짓인지 아닌지 알아내기 위해, 대지의 정령석을 믿을 만한 상단에 주문해야겠어. 4~5일 안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겠지.’
‘대지의 정령석’은 신성력에 강하게 반응하는 광석으로, 일종의 ‘신성력 리트머스지’라고 볼 수 있었다. 광석에 함유된 불순물이 적어 순수성이 높을수록 정확도가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생산지는 제국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신대륙이지만, 로벨리아는 자신이 가진 인맥과 수완을 최대한 동원하여 ‘대지의 정령석’을 입수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루트를 뚫은 것이다.
‘자작부인의 신성력의 존재 여부는 이번 이슈에서 가장 큰 논점이 될 거야. 그 진실을 밝혀줄 정령석이 늦지 않아야 할 텐데.’
*** 뜨거운 여론과 고위귀족들의 비밀스러운 후원에 힘입어, 다음 날 아침에도 후속기사는 쏟아졌다.
“빙의자, 그 신비스러운 존재들에 대한 미스터리를 ‘데일리 포스트’가 밝혀드리겠습니다!”
“특종이요, 특종! 황후 폐하의 비밀스런 악행에 대한 이번 ‘뉴트럴 트리뷴’의 특집 기사를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신이 난 것은 언론뿐만이 아니었다. 오로지 이때만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라이트 자작부인은 최대한 많은 인터뷰에 응하며 기사거리를 늘려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자작부인. 저희 ‘엠파이어 타임스’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세계에서 황후 폐하께서 저지르신 악행들에 대한 더욱 생생한 고발을 약속해주셨는데요. 지난 번 기자회견에서 말씀하신 것 외에도 새로운 정보가 남아 있나요?”
“물론입니다. 어제 오후 기자회견에서 제가 말씀드린 것은 빙하의 일각에 불과하답니다. 황후 폐하께서 제게 행하신 극악무도한 악행들은 차마 제가 입으로 말하기에 수치스러울 정도니까요.”
엠파이어 타임스의 기자들은 수첩에 불이 붙도록 그녀의 말을 받아적고, 화가들은 자작부인이 눈물을 찍어내는 모습을 최대한 애처로워 보이도록 그려냈다.
“황후 폐하는 몹시 훌륭한 퍼스트 레이디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간 정말 심적 고통이 크셨겠습니다.”
“그럼요. 신문에서 그분의 가증스럽게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치가 떨렸답니다.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제가 진실을 모두에게 알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저희 엠파이어 타임스가 자작부인의 억울함을 낱낱이 밝혀드리겠습니다.”
기자의 말에 라이트 자작부인은 부채 뒤에서 은밀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말 한 마디에 황후라는 대단한 존재의 명성이 상승했다가, 곤두박질쳤다가 하다니. 살면서 이렇게나 큰 영향력은 발휘해본 적도, 손에 넣어본 적도 없었다. 오늘 새벽에는 일찌감치 일어나 신문 가판대에 자신의 기자회견이 헤드라인으로 실린 신문들이 진열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상상 이상으로 큰 희열이었다.
“정말 감사해요. 저도 그에 보답하여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부채 뒤의 찢어질 듯한 미소를 숨긴 채, 그녀는 단정한 태도로 대답했다. 한편, 로벨리아는 라이트 자작부인과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녀는 모든 종류의 인터뷰를 거부했다. 외출도 하지 않고 황후궁에서 모든 일을 처리했다.
“황후 폐하, 이쪽에서도 무언가 성명을 내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작부인은 어제만 해도 6개, 오늘은 4개의 언론사 인터뷰에 응한다고 들었어요. 우리도 어디엔가는 기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자작부인의 주장은 전부 거짓이고 중상모략이라고요.”
“여론전에서 자신의 카드를 꺼내어 보이는 기회의 횟수는 얼핏 보기에는 무한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단다. 대중들의 관심은 한정되어 있고, 그 관심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지.”
로벨리아는 시녀들에게 설명했다.
“자작부인이 많은 수의 인터뷰에 응하는 만큼 더 많이 주목받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녀는 곧 바닥을 드러내고 대중의 신뢰를 잃고 말 거야.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란다.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중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까운 기회를 하나 소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그럼 준비가 충분히 되시면 그땐 성명을 내실 건가요?”
“물론이지. 준비가 충분히 되었고, 또 대중의 관심이 최대한 모였을 때. 그때를 나는 놓치지 않을 것이란다.”
로벨리아의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기사 물량 공세로 인해 자작부인의 순간적인 화제성은 대단했지만 곧 대중들은 그녀의 인터뷰에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센트럴 저널’과 ‘엠파이어 타임스’에서 자작부인이 말한 황후 폐하와의 첫 만남이 다르던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쩐지 기사가 거듭될수록 자작부인의 증언이 점점 더 과장되고 있는 것 같아.”
“자작부인의 인터뷰는 갈수록 더 자극적인 표현만 쓰고 새로울 게 없네.”
“그보다 황후 폐하의 성명은 언제쯤 나오려는 거지? 황후 폐하의 인터뷰가 실린다면 어떤 신문이라도 사볼 텐데.”
하지만 그것은 일부의 의견일 뿐, 여전히 ‘물증’의 힘은 건재해서 다수의 귀족들은 자작부인을 믿었다.
“황제 폐하를 속이고, 자비롭고 어진 황후인 척 국민들마저 속이다니! 다시 없을 악녀로군.”
“악녀에게 직접 가서 항의합시다.”
하지만 로벨리아에게 보내진 항의 편지에는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고, 직접 항의하기에는 그녀가 황후궁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그랬기에 로벨리아에게 항의하려는 계획은 전부 수포로 돌아갔다.
“황후 폐하의 판단이 옳았어요! 오후가 되니까 황궁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귀족들도 결국 돌아가네요.”
“자작부인의 오락가락하는 인터뷰에 실망을 표하고, 황후 폐하의 인터뷰를 원하는 독자 편지가 언론사마다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다고 해요.”
시녀들은 로벨리아의 올바른 판단에 기뻐했다. 하지만 악화된 상황에 섣불리 슬퍼하지 않았듯이, 로벨리아는 이번에도 섣불리 기뻐하지 않았다.
“사안 전체에 비하면 극히 사소한 것일 뿐이란다. 아직 기뻐하기엔 이르구나.”
“하지만 이제 정령석만 무사히 도착하면 자작부인이 신성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고, 그럼 모두가 황후 폐하를 믿을 거 아니에요!”
“황후 폐하의 현명한 판단으로 인해 이번 일도 며칠 안에 마무리 되겠네요.”
시녀들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으나, 로벨리아는 어쩐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과연 대신관이 이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을까? 내가 자작부인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정령석을 구하려고 할 거라는 사실을.’
묘하게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껏 로벨리아가 수집해온 대신관이라는 인물에 대한 크고 작은 정보들이 모여 이루어낸 직관이었다.
‘만일 정령석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그러한 경우에도 이 사건을 헤쳐 나갈 방도를 미리 고민해두어야겠어.’
*** 그리고 로벨리아의 판단은 이번에도 맞아떨어졌다. 바로 그날 저녁, 상단으로부터 정령석을 수입할 수 없다는 연락이 도착했다.
“네에? 항구도시에서의 폭동으로 인해 뱃길이 막혔다고요? 그, 그럼 조금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육로를 통하는 것은……. 네? 산적이 길을 막고 있어요?”
“그, 그럼 다른 상단이라도 연결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희가 정말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라서요. 네, 다른 상단도 전부 안 될 거라고요? 불길한 예언으로 인해 선원들이 신대륙에 가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정령석을 당장 수입해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했다. 황후의 권위를 이용한대도, 최대한 빨리 들여올 수 있는 날짜는…….
“네에? 5월이요!? 그건 반년이나 지난 뒤잖아요!”
이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로벨리아의 시녀들은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 정령석에 모든 기대를 걸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속상한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성국에서 처음으로 성명을 냈다. 「라이트 자작부인이 예언기록을 절도하고 타국으로 유출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중죄로 성국은 이 일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자작부인을 체포하기 위한 신관들을 보냈다」라고.
“그럼 뭐 해요? 신관들이 제국에 오는 데에만 5일은 걸릴 거라잖아요!”
케일럽이 분통을 터뜨렸다.
“예언기록 절도범더러 도망가라고 아주 길을 닦아주라지 그래요. 애초에 성국이 이렇게 정보력이 이렇게 느릴 리가 없는데 만 하루가 넘어서야 성명이 나오다니! 제가 보기에는 성국이 자작부인과 한패인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이럴 리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