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황후는 악 그 자체입니다2022.01.27.
라이트 자작부인은 나긋나긋한 어조로 말했다.
“이 빛을 보시면, 이 예언기록이 위조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아시겠지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이러한 빛, 오색으로 빛나는 표지의 문양, 내부 페이지의 양식들……. 그것은 아무리 막대한 성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위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던 기자들은 침만을 삼켰다. 계속해서 부정해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눈앞에 닥쳐오고 있었다. 바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황후는 빙의자였다’는 진실이.
“여, 여기까지는 잘 알겠습니다만……. 이제 정말로 궁금한 부분입니다.”
한 기자가 자신감 없는 태도로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이렇게 위험한 일을 수행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대체 왜, 예언기록을 절도하면서까지 황후 폐하께서 빙의자라는 사실을 폭로하고자 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자작부인에게 얼마나 큰 처벌로 돌아올지 모르진 않으셨을 텐데요. 그렇게까지 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보통은 신관들의 대화로 다른 사람이 빙의자임을 알게 되어도 그것을 중죄를 저지르면서까지 폭로하려 하진 않지요.”
기자들의 질문에, 자작부인은 부드럽게,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미소 지었다. 마치 제일 기다리던 질문이 눈앞에 나타났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것은, 제가 황후 폐하에 대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곳에 계신 그 누구보다도 잘 알지요.”
“무슨 뜻입니까?”
“황후 폐하를 만나 뵌 적이 있으십니까?”
“그렇습니다. 황후 폐하께서는 절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분명 황후 폐하를 만나 뵈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었지요.”
라이트 자작부인은 온화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말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듯,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저와 황후 폐하의 인연은 다른 세계에서의 일입니다. 저는 이 세계에서, 황후 폐하의 다른 세계에서의 모습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설마…….”
“부족한 몸이지만, 저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이 자리를 열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황후 폐하를 사랑하고 계시지요.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하시지요. 하지만 그것은 모두 틀렸습니다.”
그녀의 입꼬리는 높이 올라가 있었으나, 그녀의 두 눈은…… 뜨겁고 어두운 감정으로 들끓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였다. 자신의 심장을 불사르고, 이윽고 몸마저 전부 살라먹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분노. 마침내 이 사실을 알리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 그녀는 말했다.
“여러분은 속고 계십니다. 그녀는 그야말로 악, 그 자체입니다.”
***
“악이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십쇼!”
이미 기자들의 머릿속에서 라이트 자작부인의 신뢰도는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충격적인 발언에 기자들은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그럴 생각이니 자리에 앉아주세요.”
자작부인은 나긋한 어조로 말했다.
“황후 폐하와 저는 어린 시절, 같은 학교에 다니던 동문이었습니다. 다른 세계에서는 아카데미 제도가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학교에 다녔지요.”
기자들의 열띤 눈길들 앞에서 자작부인은 조금도 기죽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저 세계에서 황후 폐하는 일종의 파벌을 형성해서 자신을 따르는 급우들을 몰고 다녔습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교우관계였지요. 믿어지지 않으신다고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제 손에는 이렇게 예언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가요. 제가 목숨마저 걸고 예언기록을 훔쳐 왔는데 이 한 번뿐인 기회에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그,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네, 그곳에서 저와 황후 폐하는 꽤 사이가 좋은 친우 관계였습니다. 저는 그분을 가족만큼이나 굳게 믿었지요. 그런데 저와 폐하는 공교롭게도 같은 사내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그 남성의 선택을 받은 것은 제가 되었죠.”
자작부인은 예언기록을 마치 과시라도 하듯이 들고 있었다. 예언기록 표지의 문양이 신비스러운 오색으로 번쩍였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황후 폐하께서는……. 벗이었던 저희의 우정을 배반하고, 다른 학우들을 상대로 저에 대해 추잡한 소문을 꾸며냈습니다. 제가 우정을 배신하고, 폐하께서 먼저 고백하려 하셨던 남자를 육체적으로 꼬드겨내었다고요. 그렇게 하여 저는 학교에서 가장 비천한 여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끊임없는 폭력과 헛소문이 저를 괴롭혔고, 저의 수학 생활은 지옥이 되었지요.”
“그렇게 비참한 생활이었다면, 어째서 아카데미를 다니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셨습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 세계와 이 세계의 아카데미의 역할은 꽤나 다릅니다. 저 세계에서 아카데미는 젊은이들의 필수적인 통과의례나 마찬가지였기에, 저는 차마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기자들의 펜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음습한 호기심이 어렸다.
“구체적으로 어떤 폭력을 당하셨습니까?”
“그 세계에서의 황후 폐하와 자작부인의 계급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모든 폭력의 배후에는 황후 폐하께서 있으셨단 말씀이십니까?”
“학용품을 망가뜨리고, 머리에 우유를 붓고, 반드시 전달해야 할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 그 내용을 모두 설명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이 세계와 달리 저 세계에는 계급이 없어 저와 황후 폐하는 동등한 관계였습니다. 네, 저는 그 모든 일의 배후에 황후 폐하께서 있으셨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기자들의 흥미본위의 자극적인 질문에 지치지도 않는 듯 차례차례 대답을 마친 자작부인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제가 목숨을 걸고 예언기록을 훔쳐내어 황후 폐하께서 빙의자임을 증명하려 한 이유를 아시겠지요? 저의 동기는 복수입니다. 수년이나 이어진 지옥을 선사해주신 황후 폐하께서 이곳에서는 현자와 같이 현명하며 여신과 같이 자비로운, 현숙한 황후로 불린다는 사실에 저는 큰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속고 계신다는 사실을, 황후 폐하의 본모습을 알리기 위해 저는 그 모든 일들을 한 것입니다.”
“그럼 이제 복수를 마치셨으니 여한 없이 성국의 처벌을 기다릴 예정이십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제게 지옥을 선사해주신 분의 몰락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군요. 그럴 수만 있다면 저는 어떤 벌을 받건 간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합니다.”
자작부인의 폭로는 충격적이기 그지없었다. 그 훌륭하고 널리 사랑받는 황후가 빙의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우며 온갖 언론지에 대서특필될 일인데. 심지어 이전의 세계에서는 투기심에 눈이 멀어 우정을 배반하고, 오랜 벗을 몇 년 동안이나 학대하고 괴롭히다니!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추악한 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이것은 반드시 널리 알려야만 해요.”
“맞습니다. 설령 황실로부터 제재를 받는다고 해도 좋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기사로 낼 수만 있다면 영업 중단 정도의 조치는 겸허히 받겠습니다.”
“하지만…… 과연 저 말이 진짜일까요?”
한 명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기자들 중 제일 어린 신입이었다.
“자작부인과 황후 폐하께서 빙의자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물증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전의 세계에서 두 분이 아는 사이였고 심지어 황후 폐하께서 자작부인을 배반하고 학대했다는 건 조금도 물증이 없지 않습니까?”
“이 녀석아, 아무렴 저 정도의 성력을 가진 사람이, 게다가 목숨을 걸고 예언기록을 훔쳐내기까지 한 사람이 유언비어로 남의 평판에 흠집을 내려 들겠냐.”
“그래. 저게 거짓말이라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잖아. 이래서 초짜란.”
선배 기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내 베테랑 기자로서의 감이 말하고 있다고. 자작부인의 말은 진실이고, 우린 여태까지 황후에게 속고 있었던 거야. 만일 내 감이 틀렸다면 난 오늘부로 펜 꺾는다.”
“동의.”
선배들의 단호한 말에 신입 기자의 등이 쳐졌다. 그 모습을 본 선배들 중 한 명이 킬킬거리더니 신입의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 그 부분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 어쨌든 자작부인이 예언기록을 가지고 있는 건 진실이고, 황후는 다른 세계에서 물증을 가져올 수 없어. 어찌해도 자작부인의 주장을 뒤집기는 어렵다 이거지.”
“설마…….”
“그래. 어차피 기사란 건 자극적일수록 좋아. 우린 이것만 벌면 된다 이거야.”
선배 기자는 검지와 엄지로 원을 만들어 보였다.
“그리고 독자들은 선하고 훌륭하고 위대한 자의 몰락을 사랑하지.”
신입 기자의 충격받은 듯한 얼굴을 선배들은 키들거리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지나쳤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자작부인조차 떠난 자작저의 홀에, 남아 있는 사람은 신입 기자 단 한 사람뿐이었다. ***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눈이 있었다. 그건 바로 로벨리아였다.
‘흐음, 그래. 그런 주장이란 말이지.’
로벨리아는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낡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시녀들은 그녀의 모습에 기함했지만, 덕분에 그녀는 부산스러운 분위기에 섞여 기자들 중 한 명인 척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기자회견의 중간쯤에 도착했지만, 기자들이 나누는 대화에도 귀를 기울인 끝에 기자회견의 내용을 대부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케일럽도 있었다. 케일럽은 기자의 조수인 척 분장을 하고 있었다. 푼돈을 받고 일하는 조수인 척하기엔 그 잘생긴 얼굴이 너무나 눈에 띄기 때문에 화장으로 미모를 가린 상태였다. 신입을 포함하여 모든 기자들이 자작저에서 빠져나가자, 케일럽이 로벨리아의 귀에 속삭였다.
“폐하! 대체 어째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셨던 건가요? 저 미친 여자가…… 아니, 정신이 혼미한 듯한 여인이 폐하에 대해 온갖 헛소리를 입에 담았는데도요.”
케일럽은 순간 너무나 흥분해 다정하고 유약한 성격을 연기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저녁이 되면 이 기자회견의 내용이 담긴 석간신문이 줄을 이을 거예요! 어째서 기자회견을 중지시키지 않으셨던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