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세계정부 설립 이전, 구세계의 패권국이었던 한 나라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마천루.
이제는 사도의 개인 소유가 되어버린 그곳에서 리처드 카이만은 분노하고 있었다.
“감히 버러지 주제에!”
그는 기념식에 직접 참석하는 대신 분신체를 보내 조종하고 있었다.
수천 킬로미터 바깥에서 조종하고 있었다곤 하나, 분신체에 담긴 힘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습격자는 가볍게 그를 제압했다.
버러지나 다름없는 평범한 인간이.
성좌의 선택을 받은 자신을 말이다.
“내 앞에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아니 제발 죽여달라고 빌게 만들어주마. 반드시!”
리처드는 사도의 권한을 발휘해 군을 움직였다.
세계정부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현대에서 사람 하나 알아보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대상이 탑의 내부로 들어가 더 이상은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콰아앙!
그날 마천루에서 일어난 폭발사건을 수많은 뉴욕 시민들이 보았으나, 그 어떤 보도 기관도 관련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 * *
[탑에 입장하셨습니다.]
[플레이어 자격이 주어집니다.]
[1레벨 플레이어 주성진.]
[오류 발생!]
[도전자의 상세정보를 식별할 수 없습니다.]
[일부 기능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관리자에게 문의하십시오.]
심상치 않은 메시지와 함께 그가 도착한 곳은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
게임 속에서 맵 바깥으로 나갔을 때나 볼 법한 그곳은 바로 탑의 첫 번째 스테이지.
시험의 장이었다.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예상은 했다만.’
스테이지 진행 자체가 막히면 사실 그로서도 방법이 막막했다.
다만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스킬창이나 인벤토리 등만 닫혀 있을 뿐, 기본 정보가 표시된 메인 상태창은 떴다.
즉, 진행은 가능하다는 것.
‘일단은 진행하면서 힘의 회복을 우선해야겠군.’
성진이 가진 힘은 너무나 거대하여 그걸 모두 가지고 차원을 넘어올 순 없었다.
그리하여 성진은 청동망치를 아공간에 넣어두고, 가진 마력도 전부 버리고서야 지구로 넘어올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 가진 것은 그간의 싸움으로 강화된 몸뚱어리뿐.
옷가지라도 함께 이동된 게 다행인 정도라, 태평양 한가운데의 인공섬도 ‘해저를 걸어서’ 도달했던 참이었다.
‘게다가 사도의 분신체를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다. 마력이 없으니 불편하군.’
신화 속 로키나 제우스 같은 신들이 변신을 통해 속고 속이던 일들이 지금은 대강 이해가 갔다.
순수 인간인 자신은 마법의 보조가 없으면 간단한 문제도 훨씬 어렵게 처리해야 했다.
‘최소한 아공간을 열 수 있는 마력은 빠르게 확보해야겠지.’
상태창 확인을 끝낸 성진은 고개를 들어 수호거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퍼억.
일격에 거상의 핵이 박살 났다.
[스테이지 클리어.]
[퍼펙트 클리어!]
[기여도 순위]
- 100%
(소수점 이하의 기여도는 표기되지 않습니다.)
[기여도 보상을 추가 지급합니다.]
[스킬 포인트를 추가 지급합니다.]
어차피 스킬창이 열리지도 않는 성진에게는 의미 없는 메시지였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무슨 일인가요? 에러 메시지가 떠서 와보니 수호거상이 부서져 있다니.
날개와 천사의 고리가 달린 아기.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아기천사의 모습을 한 존재가 스테이지에 강림했다.
“처, 천사?”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남태수는 천사의 강림에 전율했다.
성좌라는 신성존재의 실존이 증명된 지도 30년.
그러나 성좌의 존재를 직접 접한 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사도를 비롯한 극소수의 플레이어들뿐이었다.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탑을 관리하는 천사의 존재를 통해 성좌의 존재를 실감했다.
그들에게 상상 속 천사의 모습을 쏙 빼닮은 천상의 주민들은 고귀하고 신성한 존재였다.
반면 성진에게는 그저 벌레와도 같은 역겨운 의태에 불과했다.
‘관리자.’
온갖 차원에 배포된 수천, 수만의 탑을 성좌들이 일일이 관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천상의 노예종족에게 탑을 맡겨놓고 결과물만을 취했다.
밥솥 안의 사정까지 일일이 관심을 가지는 주인은 없으니까.
그들이 움직이는 건 관리자를 통해 규격 외의 식재료를 찾았을 때뿐.
‘즉, 놈들이 보고를 올리지 않으면 성좌는 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른다.’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인간! 천상의 존재인 저 아자키엘의 앞에 무릎 꿇으세요!
아기천사의 말에 남태수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며 바닥에 처박혔다.
모두가 바닥을 기는 그곳에서 성진은 멀쩡히 서서 아기천사를 향해 다가갔다.
성좌에게 나눠받은 힘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모습.
-당신은? 오호라. 당신이 바로 ‘오류’였군요!
놈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초보 플레이어라도 하지 않을 방심을 하고 있었다.
-으음? 제가 무릎 꿇으라 했을 텐데요?
또다시 강력한 압력이 전신을 짓누른다.
“으억!”
바닥에 널브러진 남태수가 고통을 호소했으나 아자키엘은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오직 자신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멀쩡히 걸어오는 성진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거죠?
아자키엘이 손을 뻗자 중력이 증폭되며 성진의 몸을 짓눌렀다.
성진은 그 중력을 온전히 감당하며 걸음을 내디뎠다.
-다, 다가오지 마세요!
아자키엘이 날개를 퍼덕이자 폭풍 같은 바람이 성진을 향해 불어닥쳤다.
성진은 폭풍 속에서 손을 뻗었다.
파앗!
아자키엘의 자그마한 목이 성진의 손아귀에 틀어 잡혔다.
-천사에게 이런 불경한!
“불경? 그 외모까지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주제에 진짜로 뭐라도 된 줄 아나?”
-마, 만들어졌다니요!
아자키엘은 대경실색했다.
-지구의 거짓된 신들과 달리 천상의 성좌께서는 실존하시며, 인류가 사후 천상의 낙원에 들어오는 것까지 허락하신 분들이에요! 그분들의 은혜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망정 어쩜 이리 배은망덕한!
아자키엘은 진심으로 분하고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성진은 그것이 천사의 기만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우드득!
“천사도 목이 부러지면 죽지. 신성한 무언가가 아니라, 일개 생물일 뿐.”
성진은 축 늘어진 아기천사의 시체를 집어 던졌다.
던져진 시체는 남태수의 눈앞으로 굴러갔다.
‘허, 헉!’
지상에 강림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손 한 번 잡아보기 위해 몰려들 천사.
그런 천사가 지금은 그의 눈앞에 목이 뒤틀린 채 굴러다니고 있었다.
남태수는 발작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벌벌 떨었다.
“사, 살려주세요!”
사도도, 천사도 자신의 앞길을 막아서는 존재라면 거침없이 목을 따버리는 악마.
남태수의 눈에 성진은 악마로밖에 안 보였다.
성진은 그것을 보며 지구의 상황을 대강 알 수 있었다.
지구를 통일한 세계정부.
인간에게 호감을 사고 있는 천사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진 뻔했다.
‘놈들이 지구를 뒤에서 지배하고 있나. 마법에 대해 무지한 세상이었으니 각국의 정상들만 정신계열 마법으로 세뇌하면 간단한 일이었겠지.’
일단 통제가 시작되면 일반인들은 여론조작만으로도 충분하다.
문명화된 차원에서 놈들이 흔히 하는 짓 중 하나였다.
-끄으으! 불경한 인간!
아자키엘이 죽은 자리에서 천사의 영혼이 형체를 갖추었다.
-감히 천사에게 손을 대다니!
아자키엘의 영혼이 눈앞에서 떠들어대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남태수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인간은 따로 마법이라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영혼을 볼 수 없었다.
-멍청하네요. 탑의 가호를 받고 있는 이상 천사가 죽지 않는 것도 모르고. 힘은 좀 놀랍지만 그것뿐. 역시 인간은 멍청해요.
아자키엘 또한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여유롭게 성진의 모습을 관찰했다.
-어떻게 이런 육체를 손에 넣었지? 나락으로 보내 좀 뜯어봐야겠네요.
그와 동시에 성진의 눈이 빛났다.
“거기군.”
덥썩!
성진의 손이 아자키엘의 영혼을 붙잡았다.
-뭐, 뭐예요 이건???
“죽음으로 내게서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나?”
마력을 잃은 성진은 영체를 볼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성진을 괴롭혀 줄 생각으로 발생한 미약한 사념.
그 사념 속에 섞인 살기를 느낀 성진은 영혼의 위치를 특정하여 그것을 붙잡았다.
“네놈들이 NPC와 같은 영혼 관리 시스템에 속해 있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탑의 스테이지는 플레이어들이 들어올 때마다 매번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영혼만큼은 새롭게 창조할 수 없어 탑의 NPC들은 실제 영혼을 노예로 부려서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NPC가 죽으면, 영혼들은 다시 탑으로 회귀하여 대기하다가 새로운 NPC로 태어난다.
더 이상 플레이어가 나타나지 않을 때까지 수백, 수천, 수만 번.
또 그러고 나서는 다른 세계의 탑으로 보내져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
영원히.
NPC들은 성좌에게 붙잡혀 영원한 고통에 시달리는 존재였다.
이러한 윤회 시스템은 탑 안에서 죽은 존재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었다.
관리자의 영혼은 이를 이용해 무한히 부활할 수 있었으며, 플레이어의 영혼은 탑에 갇혀 성좌의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
“영혼이 돌아가지 못하게 붙잡으면 부활도 불가능하지.”
-어, 어떻게 인간이 그걸……?
“걱정 마라. 죽이지는 않을 테니.”
-자, 잠깐! 저를 건드리면 탑이, 아니 전 세계가 당신의 적이 될 거예요!
“적이라.”
성진의 손에 붙잡힌 천사의 영혼이 그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누구든 내 적을 자청하는 자는 모조리 쓸어버릴 뿐이다.”
성진은 목표를 이루기 전까진 절대로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목표인지 따윈 중요치 않았다.
영혼봉인.
[당신의 행동이 영혼의 업(業)으로 쌓입니다!]
[영웅 등급의 카르마를 획득합니다.]
[<천사 살해자(영웅)>를 획득하셨습니다.]
[주의! 카르마 관련 메시지는 카르마를 느낄 수 있는 영혼에게만 제공됩니다.]
[일반 플레이어에게 카르마의 존재를 가르치는 행동은 관리자의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천사를 쓰러뜨리고 카르마를 획득하자 성진이 가지고 있던 힘의 제한이 일부나마 회복되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힘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나, 이걸로 최소한의 마력은 다룰 수 있으리라.
“성좌 놈들, 원래도 쓰레기 같은 놈들이지만 새삼 웃기는군. 사람들한테는 공짜로 힘을 내려주는 척하면서 정작 중요한 카르마에 대한 것은 숨기고 있는 건가.”
카르마를 다루는 문명은 탑을 내려주어 자신들의 의도를 숨기고 천천히 모든 것을 장악해나가는 침략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때문에 성좌들은 탑을 통해 인간들에게 힘을 내려주면서도 정작 중요한 카르마에 대한 것은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일단 나도 힘을 회복하려면 NPC의 영혼들을 해방시켜 가며 진행하는 게 좋겠군.”
노예로 부려 먹히고 있는 만큼 천사의 영혼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대량의 영혼을 흡수하면 그만큼 힘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NPC의 영혼들은 탑을 부숴 버린 후, 나중에 고향 세계에 돌려보내 주면 될 일이었다.
[다음 층으로 진행이 가능합니다.]
[미선택 시 30초 후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진행하겠다.”
[다음 층으로 이동합니다.]
[진행에 따라 레벨이 상승합니다.]
[Lv.1 > Lv.2]
그렇게 성진은 천상을 향해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 * *
“저게 뭐야…….”
성진이 사라진 뒤, 남태수는 한참이 지나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남태수는 겁이 질린 와중에도 성진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리하여 성진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고 있으니 갑자기 허공을 붙잡는 이상한 행동을 놓칠 리가 없었다.
‘뭐라고 한 거지?’
영혼이니 NPC니 하는 단어들이 들리긴 했지만 정확한 내용을 알 순 없었다.
하지만 사도인 리처드를 성좌의 개라고 부른 것도 그렇고, 뭔가 심상치 않은 내용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곧이어 성진은 다음 층으로 사라졌고, 남태수만이 아무것도 없는 1층에 남았다.
[퍼펙트 클리어!]
[기여도 보상을 선택 가능합니다.]
성진의 클리어로 같은 방에 있던 남태수까지 클리어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기여도 보상?”
그의 기여도는 0%였지만, 1등인 성진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덕분에 하나뿐인 그 선택권은 스테이지에 남아 있던 유일한 플레이어인 남태수에게도 돌아왔다.
“먼저 도전했던 사람들은 퍼펙트 클리어가 아니니까 기여도 보상도 못 골랐고? 나랑 그 테러리스트만 퍼펙트 클리어인데 그 남자는 그냥 갔고?”
기여도 보상은 스테이지를 퍼펙트 클리어했을 때만 열리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까지 1층에서 퍼펙트 클리어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층 보상으로 내가 뭘 고를 수 있는데?”
[보상목록]
(기여도 순위에 따라 택1)
-수호거상의 핵
-스킬 포인트 5
-스킬 포인트 3
-스킬 포인트 1
-스킬 포인트 1
…….
[수호거상의 핵]
레전더리 재료 아이템
골렘 소환의 재료로 사용됩니다.
소환 시 골렘에 모든 스탯 +40
소환 시 골렘에 물리 저항력 +800
소환 시 골렘에 속성 저항력 +620
소환 시 골렘에 저주 저항력 +40
(재료의 상태가 온전하지 못해 효과가 저하됩니다. 수리를 권장합니다.)
“맙소사.”
1층부터 전설템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