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야! 이 XXX야!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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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가 서울역까지 태워다주기로 했기에, 나는 조수석에 앉아 우선 지수 학교부터 가기로 했다.
“지금 문자 보내놓으면 되겠네.”
“안 돼.”
“응?”
“야간자율학습 마치는 시간까지는, 휴대전화 제출하잖아.”
“그럼 어떻게 연락해?”
“교무실에 전화를 걸어, 지수에게 말을 전달해달라고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야지.”
진수 말 대로 교무실에 전화를 걸어, 지수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지수 오빠 되는 한강수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전 지수 담임을 맡은 김민희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빠가 양산에 계신다고 하던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제가 일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길에 지수 얼굴이나 잠시 보고 갈까 싶어서요.”
“언제든지 오시면 됩니다. 저녁식사시간 끝이 나면, 그때부터는 자율학습시간이니까요.”
“지금 학교 교문 앞에 있습니다.”
“그럼 들어오시면 됩니다.”
“제가요?”
그냥 교문 앞으로 잠시 내보내 달라고 했는데, 지수의 담임선생님이 굳이 2층 교무실로 찾아오라고 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선생님이 들어오라고 하셨으면 들어가 봐야지.”
“아무런 준비도 하질 않았는데.......”
“요즘 선생님들 선물 같은 것 안 받아. 괜히 몇 푼 되지도 않는 것 받았다가 연금까지 날아갈 판인데, 누가 선물 같은 것을 받아.”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빈손으로 담임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이 마음이 편하질 않았기에, 학교 주변 빵집을 찾아 케이크를 하나 샀다.
“방금 전화를 드렸던 지수 오빠입니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이네요.”
“예? 참, 이거....... 제가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고 와서요.”
일단 손에 든 케이크부터 건넸다.
오랜만이라는 말에 순간 흠칫하고 놀라긴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배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 중에서, 텔레비전이나 스크린에서의 모습을 두고도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강수 배우님, 저 모르시겠어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자기를 모르겠느냐고 하니, 나로서는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얼굴을 보니 대충 우리 나이 또래인 것은 맞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김민희라는 이름을 가진 선생님은 없었다.
“정말 기억하지 못하시나 보다. 한강수 배우님 후암동에 있는 C 초등학교 졸업하지 않으셨어요?”
“맞습니다. C 초등학교 65회 졸업입니다.”
“정말 제 얼굴 기억나지 않아요? 6학년 3반 김민주.”
“김민주? 혹시 중국집? 중국집 그 까불이?”
“이제 기억나나 보네.”
“그런데 이름이 왜 김민희라고?”
“민주라는 이름이 촌스럽기도 하고, 또 나하고 잘 맞지 않는다고 그래서 개명했지.”
이것도 인연인 것인지, 지수 담임을 맡은 선생이 초등학교 동기였다.
그것도 당시에 제법 친하게 지냈던....... 아니 이 친구 아버지가 당시 중국음식점을 하셨기에, 자장면 한 그릇 얻어먹기 위해서 친한척할 수밖에 없었던 친구였었다.
“그런데 얼굴 엄청 예뻐졌다.”
“정말이야?”
“응. 정말 많이 예뻐졌어.”
“나, 네가 그런 말을 했다고, 다른 선생님들에게 얘기해도 돼?”
“인마, 예뻐졌으니 예뻐졌다고 하는데 그게 뭐 어때서.”
“대한민국 최고 미인을 와이프로 둔 남자에게 예쁘단 소릴 들었는데, 그게 아무렇지도 않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 아니야?”
지수를 만나 얼굴이나 보고 내려가려고 학교에 들렀다가, 엉뚱하게도 초등학교 동창인 민주를 만난 반가움에 지수에 대한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똑!’ ‘똑!’
“어! 한강수 배우님 아니세요?”
“예. 반갑습니다. 배우 한강수입니다.”
“그런데 여길 어떻게?”
“어! 박 선생, 강수가 내 초등학교 친구야.”
“정말이야? 와 김 선생은 좋겠다. 그럼 한강수 배우님이, 자길 만나러 학교에 오셨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 강수 얘 동생이 우리 반 지수거든.”
“뭐? 한지수가 한 배우님 동생이었다고?”
“예. 맞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
그러는 사이에도 종례를 마친 선생님들이 하나둘씩 교무실로 들어오시고, 나는 그때마다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느라 바빴다.
선생님들은 아예 퇴근할 생각조차 없으신 것인지, 내 옆에 붙어서 이것저것 평소 연예계에 관해 궁금한 것들과 예나에 대한 질문으로, 혼을 쏙 빼놓았다.
“그런데 지난번 마지막 황후 때, 대역이 아니라 정말 한 배우님이 직접 연기하신 것이었어요?”
“예. 제가 직접 연기를 했습니다.”
“와~ 정말 대단하시다. 그럼 따로 무술을 배우신 거예요?”
“물론 액션스쿨에 가서 강습을 받기도 했지만, 어릴 때부터 몇 가지 무술을 배웠었습니다.”
“그럼 뉴스에 나온 것처럼, 태권도 유도 합기도 검도 합해서 12단이라는 것 맞으세요?”
아직 신인 티도 제대로 벗질 못했는데, 방금 질문하신 선생님은 나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알고 계셨다.
“그럼 당분간 활동계획은 없으시겠네요. 결혼을 하신 지가 얼마 되지 않으셨으니.”
“일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조만간 영화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정말이요? 어떤 영화인데요?”
“황우 감독님 작품인데, 마약반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그럼 거기서 형사로 나오세요?”
“아마도요. 조만간 공식 발표가 있을 겁니다.”
지수를 만나러 왔다가, 졸지에 팬 미팅을 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교무실의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고, 내 주변으로 선생님들이 죽 둘러앉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교무실 창문 밖에는 호기심 많은 여고생들이 유리창에 얼굴을 딱 붙인 채,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쟤, 저건 뭐야?”
“세상에! 언제 저런 걸 준비했대?”
정말 대단한 놈들이었다.
선생님의 황당한 목소리에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강수 오빠, 사랑해요!]란 POP 글씨로 적은 피켓을 들고,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 여학생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 이러다가 제가 아이들 공부하는 것을 방해하겠습니다.”
“아직 저녁 식사 시간이어서 괜찮아. 조금만 더 이야기하다가 가.”
“나중에 바깥에서 만나자. 학생들 공부는 해야 하잖아.”
“그럼 오늘 커피나 한잔 사줄래?”
“자율학습 지켜보지 않아도 괜찮아?”
내 말에 민주가 난감한 표정이었다.
민주 역시 내가 다음이라고 말이야 했지만, 그건 인사치레로 하는 지켜지기 힘이 든 말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약 내가 한 그 말이 진심이라면, 진작 내 휴대전화 번호라도 알려줬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민주의 그 말에 나머지 여선생님들의 눈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고, 선생님들은 내 입에서 다음 말만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난 선생님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학교에 계속 남아 있으면 수업에 지장을 주게 되니까, 야간 자율학습 마치거든 연락해. 선생님들 모시고 나오면, 커피든 맥주든 대접할 테니까.”
“정말이야? 오늘 내려가지 않아도 괜찮아?”
“조금 늦게 출발한다고 전화하면 돼.”
내 말에 민주뿐 아니라 함께 있던 선생님들은 아이들처럼 환호성을 질러댔고, 나는 그런 선생님들을 뒤로하고 학교를 벗어났다.
“어쩌려고 그렇게 했어?”
“좀 늦게 갈 수밖에 없지. 지수 선생님들이기도 하고, 또 민주 걔는 내 초등학교 동창이잖아.”
진수는 못내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나는 예나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자정 전에는 출발할 것이라고 말을 한 후에 전화를 끊었다.
“한강수, 지금 어디 있어?”
“응, 학교에서 200m쯤 떨어진 곳에 커피숍 하나 있네. M 커피숍이라고 혹시 알아?”
“당연히 알지. 지금 바로 그리로 갈게.”
“뭐? 벌써 자율학습 끝이 났어?”
“아니, 가서 설명해줄게.”
내가 학교에서 나온 지 채 1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민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정말 10분도 지나지 않아, 민주는 한 무리의 여선생님들과 함께 커피숍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뽑기를 해서 나눴지. 진 사람이 다른 한 사람 반을 맡아주기로 하고, 이긴 사람들은 먼저 온 거야.”
“그렇게 해도 문제 안 생겨?”
“원래 당직 선생님만 남아도 돼. 혹시 학생들이 질문할 것이 있을까 봐 남아 있는 것이지.”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나로선 믿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또 저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깨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차피 선생님들 역시 배우 한강수란 상품을 사주는 소비자들이니, 나로서는 이런 상황을 오히려 고맙게 느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민주와 함께 먼저 온 선생님들과 커피도 마시고 케이크도 한 점 떼어먹어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야간자율학습을 마칠 시간이 되었고, 나는 진수에게 지수를 집에 데려다주고 올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지수하고 인사를 하지 못해서 어떻게 하니?”
“뭐 어쩔 수 없지. 내일 시간 보고 전화해서 이야기하면 되지. 그리고 알겠지만 얼마 전에 독일까지 같이 다녀왔었잖아.”
“그런데 독일에는 그 영화제 때문에 다녀오셨죠? 드레스덴인가 하는 국제 단편영화제요.”
“예. 맞습니다. 초청을 받긴 했는데, 그냥 박수만 치다가 왔습니다.”
“에이~ 아니죠. 그런 국제적인 영화제에 초청작으로 선정된 것만 해도 어딘데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런 단편영화에 출연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그것도 서예나 배우님하고 같이요.”
아까 학교에서부터 느꼈던 점이지만, 지금 이 선생님은 나에 관한 관심인지 아니면 영화에 관한 관심인지는 몰라도, 그 관심의 정도가 지나친 것이 아닐까 할 정도였다.
은교를 비롯한 장산곶매 회원들이 찍은 영화가 드레스덴 국제 단편영화제에 초청작으로 선정된 것은,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제법 화제가 될 만한 내용이지만 일반 서민들과는 거의 무관하다시피 한 일이다.
물론 그 영화제에서 우리가 찍었던 작품이 수상이라도 했더라면 기자들의 관심거리가 되고, 그 때문에 우리가 귀국하던 때 기자들이 공항에 진을 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하자 기자들조차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정도로, 영화인 이외에는 관심거리가 될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선생님께서는 영화에 관심이 매우 많으신 것 같습니다.”
“딱히 그런 것은 아니고요.”
“드레스덴 영화제까지 아시는 것을 보면, 일반적인 관심 수준은 훨씬 넘으신 것 같으신데요?”
“그건......”
“강수야, 사실 우리 박 선생이 네 팬이라서 그래.”
“응?”
“김 선생 그런 말은.......”
갑자기 민주가 내 앞자리에 앉아서, 가장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격한 반응을 보이던 박 선생님이란 분이, 내 팬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자 당사자인 박 선생님이란 분은, 볼이 발개지면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박 선생님의 그 표정보다는, 아까부터 내 신경을 건드리는 박 선생님의 핸드백 속의 그것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