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톱스타가 정치도 잘한다-72화 (72/132)

〈 72화 〉 영화 동아리 장산곶매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학교생활은 순탄했다.

처음엔 내가 배우라는 이유로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도 제법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학생들 사이에 자연히 녹아들어가, 그냥 정치외교학과의 예비역 아저씨 정도로 인식되었을 정도였다.

“정말 계속 고집을 피울 거야?”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란 것은, 자기도 잘 알고 있잖아.”

“나중에 후회하게 될 수도 있어.”

“그 일을 가지고, 내가 왜 후회를 해?”

“자칫하다가 당신 연기 인생이, 완전히 끝이 날 수도 있다고.”

“꼭 내가 연기를 계속해야 할 이유도 없잖아.”

학교생활은 평탄했지만, 예나와 내 사이에서는, 한 가지 일로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내 욕심만 채울 생각이라면 예나의 고집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상의 결과겠지만, 예나를 생각하자면 그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란 것 때문이었다.

“자기도 생각을 해봐. 이제 곧 있으면 나도 30대야. 그럼 노산이란 소릴 듣는다고.”

“요즘은 30대 중반에도 첫아기 가지는 부부들 많아.”

“하지만 난 빨리 우리 아기를 갖고 싶단 말이야.”

“임신하게 되면 1년 그리고 그놈을 어린이집에 보낼 때까지를 생각하면, 당신이 몇 년을 아기에게 잡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해?”

“우리 아기를 낳고 기르는 것이, 어떻게 잡혀 사는 것이야?”

“당신이 좋아하는 연기를 아예 할 수가 없으니, 내가 이럴 수밖에 없는 거지.”

“난 연기보다는 우리 아기를 낳고 기르는 것이 훨씬 더 좋아. 연기야 그다음에 해도 되잖아.”

“그러다가 나중에 당신 찾아주는 감독님이나 작가님이 없으면?”

“그럼 그냥 아이 키우며 살면 되지. 아니면 자기 후배들하고 독립영화를 찍어도 되고.”

나도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예나는 지금이 한창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시기이고,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작사에서 심심찮게 캐스팅 제안이 들어오는 상황이었기에, 아기 때문에 예나에게 찾아온 기회를 포기하게 하긴 싫었다.

물론 아기를 낳아 키우고 싶은 부부가, 경제적인 이유 아니면 출산과 육아 때문에 생기는 경력 단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 낳는 것을 포기하는 부부들에겐, 이런 우리 부부의 실랑이가 배부른 고민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기, 내 꿈이 뭔지 알아?”

“세계에서 제일가는 Top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서?”

“그건 자길 만나기 이전까지의 꿈이었고.”

세계에서 제일가는 Top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것은, 예나가 아역배우로 활동했을 당시 인터뷰 기사에서 봤던 것이다.

그리고 예나는 지금까지 잠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그 꿈을 위해 달려왔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을 벗어나, 드디어 세계라는 무대에 발걸음을 디디려는 이 시점에 연기활동을 중단하고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면, 예나가 지닌 지금 위치로 다시 돌아오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은 확실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강하게 반대를 하는 것이다.

“내가 자길 만나기 전에 어땠는지는, 자기도 알지?”

“뭘 말이야?”

“낯선 남자가 곁에 오기만 해도, 나도 모르게 내 몸이 굳어지던 것 말이야.”

“당연히 알지.”

“그런 상황에서 내가 결혼을 하거나 아기를 가진다는 것을, 꿈이나 꿀 수 있었겠어?”

“.......”

“그러니 내 꿈이 어릴 때 그대로였을 뿐이었던 것이야. 나로선 배우로 성공하는 것 이외에 나를 증명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젠 그 꿈이 바뀐 것이고.”

“당신 그 말이 진심이야?”

“응, 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환호하는 배우로 살기보다는, 자기의 아내로 또 태어날 우리 아기의 엄마로 살고 싶어.”

예나의 말이 은근히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예나가 하는 말이, 100% 진심인지 그것을 알 수는 없었다.

결국 조금 더 고민을 해보고 다시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보자는 것으로, 우선 그 이야기는 접어 두었다.

“그런데 지난번 찍은 작품은, 언제 결과가 나온다고 해?”

“다음 주말이나 되어야, 대충 결과가 나오게 될 걸.”

“그래? 어떻게 보면 별 대수로운 것도 아닌데, 은근히 긴장되네.”

영화 동아리 장산곶매 회원들이 돌아간 후에 갑작스러운 결정대로, 우리 부부는 장산곶매 동아리 회원들의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작품을 단편영화제 공모전에 출품하고, 지금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예. 실장님.”

“제부 어떻게 잘 지내요?”

“예,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음....... 별 특별한 것은 아니고, 제부하고 예나하고 같이 광고를 하나 찍어볼 생각 없어요?”

“광고라고요?”

예나의 매니저 겸 이종사촌 언니인, 김 실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뜬금없이 광고 제안이 들어왔다는 소식이었다.

“어떤 광고입니까?”

“아파트 광고에요. 단가는 제법 센 편이고.”

“일단 집사람에게 물어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예나야 웬만한 광고는 모두 찍어봤지만, 나는 아직 광고라고 할 만한 것을 찍은 적이 없었다.

기껏 찍은 것이라고 해봐야, 독도 홍보영상과 학교 홍보영상을 찍었던 것이 전부였으니까.

“언니는 왜 나한테 직접 전화하지 자기에게 했대?”

“당신하고 나하고 같이 출연하는 것이 조건이라네.”

“자기하고 같이?”

“응.”

“어떤 광고라는데?”

“아파트 광고.”

“자긴 찍고 싶어?”

“일단 아파트 광고는 돈은 되잖아.”

솔직히 광고라도 찍고 싶었다.

데뷔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결혼하고 또 학교생활을 하느라, 딱히 수입이 없는 나로서는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아무리 예나가 가진 돈이 많다고 하지만 남편인 내가 돈을 벌어오지 못하고 있으니, 마치 내가 예나에게 빌붙어 피를 빨아먹고 사는 모기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 탓이었다.

“봐! 이럴 때 우리 아기라도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아.”

“뭐?”

“나는 소파에 앉아서 뜨개질하고, 자긴 아기에게 우유를 타서 먹이는 그림 좋잖아.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 대부분은,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단 생각이 절로 들지 않겠어?”

기승전결 아기 타령이다.

아무튼 예나는 광고를 찍는 것을 흔쾌히 동의했고, 우린 강의가 없는 금요일과 주말을 이용해서 광고를 찍기로 했다.

“서예나 배우께서는 활동 재개할 때가 되지 않았어요?”

“조금만 더 쉬려고요.”

“서 배우가 활동 중이라면, 이번 개런티도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았을 텐데요.”

“감독님도 알고 계시다시피 제게 돈이 그리 큰 의미가 없잖아요. 아파트 광고라기에 이걸 찍으면 아주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 광고를 보는 시청자들도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찍기로 한 거예요.”

예나도 그렇지만 나도 배우였기에, 촬영하는 데 딱히 시간이 걸리질 않았다.

단지 예나가 요구했던 아기가 제대로 웃지 않는 통에, 예상했던 이상으로 시간을 잡아먹었던 것 이외에는.......

“자기야! 영화제에서 초청작으로 선정되었대.”

“응?”

“영화제에서 초청장이 왔다고!”

“정말이야?”

“여기 봐! 이렇게 은교가 문자를 보내왔잖아.”

예나는 휴대폰 액정화면을 내 쪽으로 돌려서, 예나에게 온 은교의 문자를 확인시켜줬다.

그러자 촬영장에 있던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들도,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눈빛으로 예나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 강수 씨가 다니는 학교에 영화 동아리가 있거든요. 거기 학생들이 얼마 전 단편영화를 찍었는데, 그 작품이 드레스덴 국제 단편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고 하네요.”

“그렇습니까. 그 학생들 지금 난리가 났겠네요.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치! 저희에겐 축하를 안 해주시고요?”

“예?”

“저희가 그 영화의 주인공이거든요.”

“정말이십니까?”

예나의 말에 감독님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나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로 꼽히는 예나가, 단편영화 그것도 대학생 동아리에서 제작한 단편영화에 출연했다고 하니, 그 사실이 믿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예나의 전화뿐 아니라 김 실장님과 진수의 휴대전화에도, 연신 벨이 정신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영화를 찍은 학생들도 학생이지만, 우리 광고주님도 완전히 대박을 맞으셨네.”

“그러게 말입니다. 두 분 배우님, 정말 고맙습니다.”

담당자가 우리 곁으로 다가와 인사를 하려 하자, 감독님이 먼저 생색을 내고 있었다.

솔직히 담당자로서는, 지금 로또에 당첨된 기분일 것이다.

예나와 내가 받는 개런티가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만약 오늘 이 소식이 며칠만 빨랐더라도 개런티를 올려서 책정했어야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로선 계약한 개런티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으니, 그 소식을 듣고서도 별 불만이 없었다.

“제부, 이왕 올라온 김에 인터뷰나 하나 하고 가면 어떨까?”

“인터뷰? 무슨 인터뷰?”

“이번 단편영화 때문에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서......”

“그 인터뷰는 은교하고 영화 동아리 회원들이 해야지.”

단편영화에 나와 예나가 출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예나와 내가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은교를 비롯한 영화 동아리 장산곶매 회원들이 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나와 예나는 김 실장님과 진수에게 기자들에게 그렇게 답변해 주라고 부탁했다.

“영화가 제법 괜찮게 나왔다 싶더니, 초청작으로 선정될 줄은 몰랐네.”

“그러게 말이야. 애들이 엄청 좋아하겠다.”

“그런데 드레스덴 영화제에 초청받았다고 했잖아. 그럼 우리도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니야?”

물론 초청을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독일에서 열리는 영화제에서 수상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초청작으로 선정된 이상 영화제 주최 측에서 항공료와 체류비용 정도는 부담할 것이고, 그 대상에는 영화의 주인공인 우리 둘 역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애들끼리 보내기엔 좀 그러니까, 우리도 같이 갈까?”

“그러다가 상을 하나도 받지 못하면?”

“그게 뭐 어때서? 난 지금까지 독일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독일 여행이나 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자긴 어때?”

“당신이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하자.”

강의에 출석하는 문제는, 영화제 핑계를 대면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영화가 주연배우 중 하나인 예나를 제외하고는, 일체의 외부 지원 없이 오롯이 재학생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학교 관계자들도 대단한 경사라고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다.

거기에다가 예나 또한 학교와 전혀 무관한 외부인으로 치부하기가 힘들기도 하고, 또 학교 당국자들로서도 전혀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을 것이다.

“한 서방, 그 영화는 어떻게 찍게 된 거야?”

“그냥 학생들 하는 짓이 귀여워서 장난삼아 찍게 된 것입니다.”

“학교생활 하고 병행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이번 기회에 작품을 하나 해보는 것은 어때?”

“그러지 않아도 여름방학이 되면, 출연할 작품을 찾아볼 생각이었습니다.”

나로서도 이번이 기회였다.

아무리 단편영화라고 하지만 내가 주연한 영화가 국내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국제 단편영화제로서는 이름이 있는 드레스덴 국제 단편영화제에 초청받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 크다.

그러니 이 기회를 이용해서 나도 몸값을 올려야 하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