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경상도 남자는 원래 그렇다면서.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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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되기를 간절히 꿈꾸는 사람 중에서, 카메라 울렁증 때문에 배우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끝내 연기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영화 대신에 카메라가 없는 연극무대로 무대를 옮겨 활동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수경 사범 역시 그 비슷한 케이스인 모양이다.
물론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카메라 울렁증이 아닌 마이크 울렁증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수경 사범에게서 느껴지는 재능은, 액션스쿨 사범이라는 틀에 가둬두고 이대로 썩히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 사범님이 아예 대사를 치지 못한다면 모르겠지만, 싸움을 하는 신에서만큼은 아무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대사를 치는 것을 보면, 그 울렁증을 고칠 방법이 아예 없을 것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아무튼 그런 종류의 사람을 내가 직접 보고 만난 것은 하수경 사범이 처음이었고, 또 내가 그것을 치료하는 방법도 몰랐다.
결국 나에게 또 오지랖이라는 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예, 한 배우님. 예나 지금 통화 가능해요. 예나 바꿔드릴게요.”
“아뇨. 김 실장님께 여쭤볼 것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저한테 무슨?”
“액션스쿨 투(鬪)에 하수경 사범님이라고 있거든요. 제가 톡으로 동영상을 하나 보내드릴 테니까, 실장님께서 한번 보시라고요.”
아직 예담기획에서 아는 직원이라곤 예나의 매니저인 김 실장님 말고는 없었기에, 진수에게 찍어달라고 부탁했던 하수경 사범을 찍은 동영상을 김 실장님에게 보냈다.
“이 사람이 액션스쿨의 사범이라고요?”
“예.”
“어디 소속사는 없고요?”
“굳이 따지자면 액션스쿨이 소속인데, 조금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라니요?”
아무리 예나만 전담하는 매니저라고 하지만, 그동안 연예계에서 살아온 짬은 무시하지 못하는 법이다.
내가 톡으로 동영상을 보내고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김 실장님은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나는 하수경 사범이 지닌 약점인 싸울 때 이외에는, 제대로 대사를 치지 못한다는 그 점을 김 실장님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본 적은 있다고 해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혼자서 제법 노력을 해봤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결국 포기하고 액션스쿨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고요.”
“알겠어요. 일단 대표님께 보고를 드려볼 테니까 그리 알고 계세요.”
“예. 고맙습니다.”
“뭘요. 그리고 어차피 이 바닥에서 인맥을 쌓아두면 언제 도움을 받게 될지 모르니, 앞으로 그분하고 가능하면 친하게 지내두시고요.”
내가 하수경 사범에 대해 거들 수 있는 한계는, 딱 여기까지일 것이다.
김 실장님이 선 대표님께 보고하겠다고 하셨으니, 이제 공은 선 대표님에게로 넘어갔다.
그리고 선 대표님이 하수경 사범님의 액션 영상을 보시고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확신한다면, 하 사범님이 가진 그 결점을 치유할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그래서 결점을 개선할 방법은 찾는다면 앞으로 배우로서 길을 걷게 해주시든지, 그랬음에도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포기할 것이니 말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예나는 심심찮게 커피 트럭과 밥차를 양산으로 보냈다,
“어떻게 강수 넌 서울엔 아예 갈 생각조차 않아?”
“서울을 어떻게 다녀옵니까. 촬영 마치면 한밤중이고 새벽이면 출근해야 하는데요.”
“하루쯤은 일정을 조정할 수도 있잖아.”
“에이~ 아직 생짜 신인인 제가 그렇게 했다가는 뒷감당을 어찌하려고요.”
“내가 감독님께 대신 부탁을 해볼까?”
“아뇨! 무슨 그런 큰일 날 말씀을 하십니까.”
양산에서 촬영하는 동안 가깝게 지내게 된 상호 형이, 나와 예나가 너무 오랜 기간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다.
나 역시도 상호 형처럼 걱정되긴 했고, 또 예나도 예나지만 우선 지수 걱정이 앞섰다.
지난번 통화 이후에 지수를 예나가 데려가서 같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여동생을 너무 혼자 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네 안의 야수’ 양산에서의 촬영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양산의 지역조직인 남부시장 파뿐 아니라, 신 양산지역에 있는 소방서 파와 물금 파까지 완전히 접수해서 양산의 유일한 조직으로 거듭나 있었다.
그리고 절치부심하는 마음가짐으로 우리가 처음 이곳 양산으로 내려왔을 때, 내가 이전에 속했던 만구 파의 추격을 따돌렸었던 사송 쪽의 야산을 매입해서 그곳을 우리 아지트로 삼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곳 지역조직을 흡수하면서 거둔 아이들을 훈련시켜서, 서울 바닥에서도 통할만 한 주먹으로 양성하고 있었다.
“굳이 부산 쪽을 건드릴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지금 이 애들로 서울을 접수할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쪽수에서조차 밀리잖아.”
“그래도 은향이 누님이 애들을 빡세게 굴린 덕분인지, 목도뿐 아니라 주먹도 제법 씁니다.”
“1:1로 붙었을 때야 몰라도 집단전이 되면, 쪽수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게임 끝이야.”
“하지만 자칫하면 칠성 쪽 애들하고 부딪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온천장하고 연산로터리 해운대를 동시에 치면 돼. 일단 우리가 치기 전까지 말이 새 나가지 않고, 그쪽을 모두 접수하고 나면 칠성 파 쪽에서도 딱히 우리에게 시비를 걸진 않을 테니까. 그리고 상황이 끝난 후에 칠성 파 쪽하고 이야기해서 우리는 절대 서면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면, 칠성 파 쪽에서도 굳이 우릴 건드릴 일은 없을 거야.”
부산을 대표하는 조직이면서 전국구 조직으로 대접받는 칠성 파도, 예전과 비교하면 그 성세를 많이 잃었다.
그리고 아무리 칠성 파라고 하더라도 자기들의 직계조직도 아닌, 해운대와 온천장 그리고 연산로터리 파를 쳐서 접수했다고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오진 못한다.
물론 그 전에 해운대나 온천장 또는 연산로터리에서 터를 잡고 활동하는 조직 중에서, 칠성파 쪽에 도움을 요청한다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결국 이번 싸움은 시간 싸움이 되는 것이다.
서로 연락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전광석화처럼 동시에 세 군데를 급습하고, 그들의 항복을 받아낸 후에 그 조직원들을 우리가 흡수해야 한다.
“컷! 오케이!”
“배우님들 이동합니다. 나누어드린 표에 적힌 대로 버스에 탑승하세요.”
드디어 양산에서의 촬영은 모두 마쳤다.
그리고 조감독의 말대로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미리 준비해둔 버스에 올랐다.
이제 부산으로 이동해서 하루의 휴식을 한 후, 촬영허가를 받은 온천장 그리고 연산로터리와 해운대 거리에서 이틀 동안 액션 장면을 찍어야 하는 것이다.
“서울에 올라가지 않을 생각이야?”
“올라가 봐야 뭐해? 어차피 예나도 지금 드라마 촬영 때문에 정신이 없을 텐데.”
“그래도 나중에 촬영을 하루 쉬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엄청 서운해할 텐데. 그리고 너도 한 번쯤은 밥차든 커피 트럭이든 보내주는 것도 예의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예나에게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다.
예나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Top 배우다.
그리고 난 예나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흔하디흔한 돈 안 되는 신인배우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예나가 보내준 밥차와 커피 트럭을 생각하면, 한 번쯤은 진수 말처럼 나도 예나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촬영장에, 밥차가 힘들다면 커피 트럭이라도 보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것이다.
아무리 예나에 대한 내 감정을 나 스스로가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를 해야 했는데, 내가 아직은 별 볼 일 없는 신인배우라는 것과 또 촬영에 바쁘다는 핑계로 아예 보답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진수야, 미안하지만 서울 다녀오자.”
“그래. 그럼 일단 김 실장님에게 물어보고 커피 트럭부터 주문할게.”
그러더니 진수는 김 실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김 실장님이 다시 전화를 걸어와서 조연출과 통화를 한 결과, 내일 일자로는 밥차나 커피 트럭이 예약된 것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하셨다.
김 실장님과 통화를 끝낸 진수는, 밥차를 운영하는 업체와 커피 트럭을 운영하는 업체에 전화를 걸어 예나 이름으로 밥차와 커피 트럭을 주문했고, 김 실장님에게는 그런 사실을 예나에게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했다.
“확실히 집은 집이네.”
“당연한 말을 입 아프게 뭐 하려고 해.”
정말 오랜만에 돌아오는 집이고, 지수조차 예나 집에서 생활했기에 텅 비어 있던 집이지만, 집에 들어온 순간 세상 그 어느 곳보다 포근한 느낌이 든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숍부터 들렀다.
아무리 내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상, 촬영장에 가면서 민낯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얼굴이 왜 이렇게 거칠어졌어?”
“영화 촬영을 하고 있잖아요. 계속 바깥에서 치고받기만 하다가 보니 어쩔 수 없죠.”
“촬영 마치고 팩이라도 할 수 있잖아? 도대체 얼굴이 이게 뭐야.”
“그러게요. 매니저가 제가 잘 때 팩을 해주긴 하는데 자다가 벗겨버리는 모양이어서요......”
숍의 실장님은 거칠어진 피부를 보고 잔뜩 화가 나셨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촬영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면 몸이 녹초가 되어 씻는 것조차 귀찮을 정도이니, 언제 얼굴을 다듬고 할 것인가 말이다.
하지만 잔뜩 골이 난 상태이면서도 실장님은 그 어느 때보다 꼼꼼하게 내 얼굴을 매만졌고, 그 결과물은 실장님의 노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거울에 비친 얼굴은, 내가 봐도 광채가 나는 그런 얼굴로 변해 있었다.
“실장님은 역시!”
“또다시 얼굴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서 오면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알았어요. 실장님 아이 러브 유~”
“그건 예나 씨에게나 하고. 자기가 그렇게 말하면 여자들 ‘심쿵’한다는 것 모르고 그래?”
그렇게 숍에서 관리를 받고, 진수와 나는 예나가 드라마를 촬영하는 현장을 향해 출발했다.
“트럭은 도착했겠지?”
“늦어도 9시에는 도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오더를 냈으니, 지금쯤 도착해 있을 거야. 그런데 예나 씨 많이 놀라겠다.”
“놀랄 일이 뭐가 있어. 당연히 회사에서 보낸 것으로 알겠지.”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그럼?”
“보통 회사에서 보낸다면 사전에 매니저에게 말은 하고 보내잖아. 거기에다 예나 씨가 이런 사소한 것을 이벤트라고 할 급은 이미 넘어섰고.”
“그럼 회사서 통보하는 것을 깜빡한 것으로 생각하겠지.”
그렇게 진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어느새 우리는 예나가 드라마를 촬영하는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