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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비상사태에 빠졌다.
이유는 다름 아닌 국제 길드 ‘클라우드’의 급작스러운 차원석 수출 중단.
이에 대한민국의 등탑계의 고층 공략팀은 등탑을 사실상 절반도 되지 않는 횟수로 감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사상 초유의 사태에 드물게도 정부와 길드가 연합하며 국제 길드 연맹에 협상단 파견을 결정했다.
강무진은 청장실에 앉아 뉴스를 확인했다.
“대한민국, 등탑 사실상 일시 정지상태 이대로 괜찮은가, 라······.”
강무진은 스마트폰 화면을 슥슥 넘겨 뉴스 몇 개를 더 확인했다.
─자이언트 로커스트 사태 해결의 주역, 균열감시대응청장 강무진의 사실상 침묵.
─강무진 청장의 인터뷰 거절, 사실상 퇴출당한 대한민국 등탑계?
─한국 등탑계, 이대로 무너지나. 해외자본, 관련 산업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 포착.
강무진은 스마트폰을 던져놓고, 턱을 괸 채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지. 대형 길드들은 이미 40층 이상을 안정적으로 공략하며 50층을 넘보는데, 임시 아공간 주머니 수급이 안 되니 사실상 끝이라고 볼 수밖에.”
40층 이상은 임시 아공간 주머니 없이는 공략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고립되어 며칠이나 전투를 치러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1kg의 물자는 사람의 목숨값보다도 비싸지는 법이니까.
강무진은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다시 뉴스를 확인했다.
─국제 길드 ‘클라우드’의 불합리한 폭거, 이유는? ‘절대자 드래곤 마스크에 대한 견제’
강무진은 자신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강력한 광역 마법과 차원을 달리하는 마법 이해도를 가진 드래곤 마스크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절대자라. 틀린 말은 아니군.”
현재 98층 공략자로 추정되고 있는 드래곤 마스크는 절대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만큼, 그가 보여준 모습은 압도적이었으니까.
과연, 지금은 세계 랭킹 2위로 밀려버린 전 세계 랭킹 1위 드웨인 스미스가 전력을 다한다고 한들, 그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확신한 강무진은 고개를 저으며 뉴스를 확인했다.
─대한민국 등탑계 이대로 꺾이나?
이에 달린 댓글은 이랬다.
─그래도 드래곤 마스크가 98층에 있으면, 해결할 수 있지 않겠냐? 차원석이 디멘션 몽키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공감한다. 탑은 위로 갈수록 더 몬스터 부산물과 관련된 자원이 풍족해지는데, 98층이면 차원석이 쌓여 있지 않을까? 드래곤 마스크가 그렇게 대단하면, 해결할 수 있겠지.
“그렇게 대단하면 해결할 거라니······ 지나친 낙관이군.”
강무진이 드래곤 마스크에게 도움을 청하긴 했지만, 그도 반신반의하는 실정이었다.
차원석은 그만큼 귀한 물건이었으니까.
그리고 강무진의 의견은, 정확히 그 밑에 달린 댓글과 같았다.
└그건 너무 낙관적이지. 그리고, 쌓여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소비하는 차원석이 대체 몇 kg인데? 혼자서 그걸 다 수급하는 건 무리지.
└ 존나 모르는 소리하넼ㅋㅋㅋ 그래서 62층까지 클리어한 지금도 30층 디멘션 몽키에 의존하고 있냐? 30층에서 62층까지 디멘션 몽키 대체할만한 게 안 나왔는데 희망회로는 ㅉㅉ
└맞다. 무게 제한이 있잖아. 아무리 아공간 주머니를 많이 만들어서 들고 내려온다고 해도, 혼자서 그걸 감당하긴 힘들지. 클라우드는 30층용 짐꾼만 2천 명이라던데.
└ㅋㅋㅋㅋ아직도 98층 믿는 놈들이 있네. 세계 랭킹 1위랑 3위가 있는 22인 파티가 62층에 있는데 무슨 수로 혼자서 98층을 가냐?
└ 3위 탈퇴함.
강무진은 고개를 저었다.
“자이언트 로커스트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큰일이야.”
그런데 이번에도, 그 자이언트 로커스트를 해결한 녀석이 답을 가져오겠다고, 자신감 넘치게 말했었다.
“······김정수.”
한낱 애송이에 불과하거늘, 이상하게도 최강자와 커넥션이 있는 녀석.
강무진은 그놈의 당돌함과 신비함 속에서는, 합리적이지 않은 행운과 기운을 느꼈다.
그래서, 표현은 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도 작은 기대를 걸어보고 있었다.
그 녀석이, 해결 방법이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으니까.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청장님. 협상단 출발에 맞추시려면, 지금 나가셔야 합니다.”
“금방 나가지.”
그는 외투를 챙기고 청장실을 나섰다.
김정수가 실패할 때를 대비해서, 협상에 참여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협상에는 큰 의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절대 타협하지 않을 거라는 것과 협상이 결렬되어도 상관없다는 두 가지 면에서 전부.
“김정수. 이번에도 해결책을 들고 올 수 있을지 기대해보지.”
*
그 시각.
서울 도심의 어느 빌딩.
마천루가 마주 보이는 고층의 집무실에서 두 명의 남자가 대면 중이었다.
“그래. 사절단을 보낸다지?”
그렇게 물은 것은 장강혁.
한국 소속이지만, 외국 자본으로 움직이고 있는 ‘골드코인’ 길드의 마스터였다.
그의 부하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미 손을 써두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클라우드 쪽에, 드래곤 마스크의 정체를 밝히는 것 외에는, 협상하지 않기로 약조 받았습니다.”
“고생했군.”
장강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짝이는 금화 모양의 길드 마크가 박혀 있는 서류철을 건네받았다.
“그래. 로비에 들어간 금액은? 우리 ‘골드코인’의 이름이 노출되는 일은 없었겠지? 상인 길드가 한 번 그렇게 노출되면, 앞으로 거래는 끝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1,000억 원으로, 몇 번의 세탁을 거쳐 스위스 은행으로 빼놓았던 길드 비자금입니다. 아이템으로 바꾸어서 길드 ‘클라우드’에 후원 형식으로 넣었으니, 아무도 관계를 의심하지 못할 겁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강수는 클라우드 쪽도 원하는 바일 테니까요.”
그렇다.
국제 길드 연합 ‘클라우드’가 대한민국을 압박하기 시작한 건, 이들이 주도한 계획이었다.
장강혁은 작게 미소를 짓다가, 이내 얼굴을 굳혔다.
“좋아. 그 정도면 큰 손해는 아니군. 드래곤 마스크라······ 어디서 갑자기 그런 놈이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의 정체를 파악해야만 한다. 디아블로 컴퍼니. 본사에서 그걸 원하시니까. 우리 한국지부의 역할은 거기서 끝이다.”
디아블로 컴퍼니.
그들은 경기도 광주시에 무려 세 개의 균열을 동시다발적으로 열어서, 대규모의 인명 피해를 낼 생각이었다.
탑 꼭대기에서 온 퀘스트에 필요한 재물을 바치기 위해서.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자이언트 로커스트도 그들이 일으킨 일이었고, 그로부터 1년 전에 일어난 제주도행 항공기가 와이번에게 공격당해서 249명이 죽은 사건도 그들이 벌인 일이었다.
지금껏 모든 작전이 성공했는데······.
“······하필이면, 우리가 핸들링한 작전이 무너지다니.”
디아블로 컴퍼니 본사가 아닌, 한국지부······ 즉, 골드코인이 주도한 ‘크레이지 호넷’ 작전이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드래곤 마스크.
여태 지구에 등장한 적 없던 그 초월적인 힘을 가진 강자의 등장 때문에.
이해할 수 없지만, 해결 방안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들은 세상이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은밀하게 세상을 장악해나가고 있었으니까.
“차원석이 없다면 이 작은 국가는 도태되어 멸망할 것이 자명한 일. 드래곤 마스크의 정체가 까발려지면 추적해 살해한다는 계획은 정말 완벽합니다!”
“그래도 아직 방심하지 마라. 성공하기 전까지는 성공한 것이 아니다. 이번 세 개의 균열 때도 그랬으니까.”
“알겠습니다. 신중에 신중, 또 신중을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부하가 고개를 조아리자, 의자에 앉아있던 장강혁이 씩 웃으며 작은 수정을 검지와 엄지로 잡아 살폈다.
“크크. 이 작은 광물에 들어있는 힘으로 한 나라를 헤집어 놓는 게 가능하다니,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그 손톱만 한 게 1,200만 원짜리이지 않습니까. 비싸도 계속해서 소비해야 하는 필수재의 특성상, 한 나라를 흔들기에 충분하지요.”
그 말에 만족스럽게 웃던 장강혁이 중얼거렸다.
“그놈만 없으면 한국을 제물로 바치는 건 일도 아니다. 드래곤 마스크······ 이래도 기어 나오지 않을 수 있나 한 번 보지.”
*
정신없이 가게를 운영하던 중.
나는 백작이 온다는 전령을 받고 종일 긴장한 채 일했다.
그리고, 백작이 오기로 약속한 오후 늦은 시간.
“라이언 백작령의 주인이신 라이언 백작님께 예를 표하시오!”
백작이 도착했다.
“자, 다들 예를 갖춰서 대하세요. 앞으로 우리 가게의 미래를 좌우하실 수 있는 분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모두가 살짝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라이언 백작이 가게로 들어왔다.
“백작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이네.”
“안에 드셔서 이야기하시지요. 식사도 하시겠습니까?”
“좋지. 특제 라면으로 부탁하네.”
토니가 서둘러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고, 나는 백작을 VIP룸으로 인도했다.
분명히 오늘은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러 왔을 텐데, 백작의 표정을 읽기 쉽지 않다.
혹시, 효과가 없었나?
일단, 다른 이야기로 운을 조금 띄워봐야겠다.
“요즘 저희 때문에 민원이 폭등하지는 않았습니까? 귀찮은 일들이 많아져 힘드시죠?”
그러나 백작은 고개를 저으며 작게 미소 지었다.
“아닐세. 오히려, 자네들이 온 이후 윈터우드의 세수가 확 늘었어. 이번 달엔 전 년에 비해 10만 골드쯤 늘었더군. 이 가게 소문을 들은 상인들이 유독 백작가로 향하는 길목으로 윈터우드를 선택해서 말이야.”
“네? 10만 골드나요? 저희 가게 때문에 말입니까?”
10만 골드라고? 작년에 비해 한 달 세금이 10만 골드나?
설마 SNS도 없는 세상에서 이렇게까지 소문이 나고 영향력이 있을 줄이야.
“그래. 원래 상인들이 다니는 길목인 데다가 자네 가게에서 나오는 세금뿐만 아니라, 다른 시설 이용이 잦아졌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드디어 성공했네.”
“어떤 게 성공했다는 말씀이신지······?”
“루시가, 드디어 마음을 열어줬다는 말이네.”
백작이 인자하게 웃으며, 그때의 일을 말해주었다.
루시의 꼬리를 보고 심기가 불편하지 않은지 살피고 접근한 일과 츄르와 캣닙을 이용한 길들이기.
다니엘이 오해하는 바람에 루시가 잠시 놀라는 소동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이후로 루시는 캣닙이나 츄르가 없을 때도 곧잘 백작의 무릎 위로 올라온다고 한다.
“이걸로 안주인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하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네. 가면서도 뭐가 그렇게 걱정이 많았는지······ 하지만, 이제 아내도 편히 눈감을 수 있겠지.”
백작의 눈가가 촉촉했다.
백작은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톡톡 두드려 닦더니, 내 손을 잡았다.
“정수. 이번 일은 오롯이 자네 덕이야. 약속대로 보상을 주어야겠지. 자네가 필요한 게 있다면 말만 하게. 내 힘닿는 데까지 구해주지.”
혹시 고양이를 길들이는 데 실패했을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역시 안 통할 리가 없지!
일을 해결했으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상 시간.
그리고, 나는 이미 백작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정해두었다.
“백작님. 얼마 전에 디멘션 울프를 사냥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음? 그렇지. 자네의 가게에 처음 왔던 날, 디멘션 울프 사냥이 있었네. 공간을 넘나들면서 도망 다니는 놈들을 잡으려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 헌데, 디멘션 울프는 왜 그러나?”
“혹시, 그 사체를 인도받을 수 있겠습니까?”
정확히는 디멘션 울프가 품고 있을 차원석.
그걸 가지고 탑 밑으로 내려가면, 현재 강무진이 골치를 앓고 있는 국제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 차원석은 중국을 등에 업고, 드래곤 마스크의 정체를 실토하라며 압박하고 있는 국제 길드 ‘클라우드’에서 공급량의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물건이니까.
98층에서 구할 수 있는 차원석의 양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수출까지 가능하다면 압박에서 벗어나는 건 물론이고, 세게 등탑의 판도를 바꿔놓을 수도 있겠지.
물론, 내가 돈을 왕창 번다는 게 제일 중요하지만.
백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디멘션 울프? 물론 그것들의 사체를 줄 수는 있지만, 대체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건가?”
“꼭 필요한 곳이 있어서 그럽니다. 그렇다고 제가 사냥하기는 힘들다 보니······.”
“뭐, 가져가게. 우리는 놔두면 가축과 사람을 해치기에 사냥했을 뿐이지, 그다지 필요는 없어서 말이야. 아직도 그 시체는 창고에 쌓여 있을 걸세.”
백작의 식사가 끝난 후.
우리는 마을 창고로 이동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흘러나오는 피 냄새.
이 안에, 대체 얼마나 많은 디멘션 울프가 있을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문을 열어젖히고 나니,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와, 세상에······.”
나는 척 봐도 100평이 훌쩍 넘을 창고를 가득 채운 디멘션 울프의 시체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쯧. 북쪽 산맥에서 주기적으로 내려오는 놈들이지.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이지만, 레드문이 뜨고 나면 개체 수가 훅 늘어서 매번 골치야.”
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 내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덩치의 디멘션 울프를 꺼냈다.
그리고, 그림자 암수를 꺼내 배를 갈라보니······.
“대박이다.”
그 안에서, 내 주먹만 한 차원석이 나왔다.
강무진이 이전에 꺼내서 보여준 건, 손톱만 하지 않았던가?
그게 개당 천만 원이 넘는다고 했지, 아마?
그러면 이게······ 대체 얼마짜리야?
쉽게 계산하기도 힘든 액수에 머리를 핑핑 굴리고 있을 때, 백작이 물었다.
“정말 이런 거로 괜찮겠나?”
나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