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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55화 (55/69)
  • < 맛집(3) >

    맛집(3)

    나는 백작과 다니엘을 VIP룸으로 안내했다.

    “먼 길을 온 데다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배가 고프군. 이야기를 듣기 전, 식사부터 하지. 어디, 자신 있는 거로 내보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백작을 감동하게 할 기회가.

    98층에서 K라면은 백전백승이라고!

    “예! 금방 내오겠습니다! 토니! 여기 특제라면 두 그릇 있어요!”

    “예! 금방 나갑니다!”

    5분도 되지 않는 시간.

    맛있는 냄새가 퍼지며 라면이 나오자, 백작이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이런 짧은 시간에 요리를 낼 수 있다고? 모양새와 냄새는 그럴싸하지만······ 미덥지 않군.”

    백작이 포크로 라면을 뒤적거렸다.

    이러다 입에도 안 대는 거 아니야?

    그때, 포크를 들고 면을 말아서 들어 올리던 다니엘의 지원사격이 있었다.

    “그래도, 제가 생전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는 음식입니다, 제 식욕을 찾아준 고마운 음식이기도 하지요. 백작님의 입맛에도 분명 맞을 겁니다.”

    “흠. 그렇다면 한 번 먹어보지.”

    나이스, 다니엘!

    다니엘이 나에게 몰래 윙크하는 사이, 백작은 다니엘처럼 포크에 라면을 말아 입에 넣었다.

    그 순간, 백작의 눈이 커졌다.

    “세상에······.”

    백작은 고개를 내젓더니 한 입을 더 먹었다.

    “구, 국물 한 번 드셔보시지요.”

    내 말에 백작이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국물 한 스푼을 마시는 순간.

    “이런 맛이 다 있나! 스읍, 조금 매운 것도 같지만 훌륭한 맛이야! 멈출 수가 없군!”

    후루룩, 후루룩!

    백작은 순식간에 면을 흡입하며, 숟가락으로 연신 국물을 떠먹었다.

    다시 5분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땡그랑.

    숟가락과 포크가 빈 그릇을 향해 떨어졌고, 정신을 차린 백작이 멋쩍게 헛기침했다.

    “크흠! 큼. 식사를 너무 빨리 끝내버렸군. 흠. 어쨌든, 잘 먹었네. 꽤 맛있었어. 아, 오늘 먹은 음식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물건이 있다고 했었나?”

    “예. 물을 끓여 붓기만 하면 되는 물건입니다.”

    “그럼 그걸 몇 개 구매할 수 있나? 내일 ‘디멘션 울프’ 토벌이 예정되어 있는데, 이걸 가져가면 든든하게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아 말이야.”

    디멘션 울프 토벌? 사냥인가?

    좋아, 원래 등산이나 낚시처럼, 야외 활동 때 먹는 라면이 최고긴 하지.

    “물론이죠.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좋아. 시종에게 건네주고 값을 받게. 그 귀찮은 놈들이 주기적으로 나와서 골치란 말이야. 그래도 기사단장, 자네가 이리 솔선수범하여 사냥을 나서니 나로선 든든하네.”

    “과찬이십니다.”

    고개를 살짝 숙인 다니엘을 보며 미소 짓던 백작은, 잠시 빈 그릇을 바라보며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확실히, 기사단장의 말대로 이런 신비한 물건들을 턱하고 꺼내놓을 정도라면, 고양이들을 부릴 방법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군.”

    이번에도 역시, 라면으로 신뢰를 샀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려가는데?

    그보다, 생각해보니 식사 전에 고양이를 길들일 방법에 관해 물어봤었지?

    이렇게까지 고양이를 길들이는 방법에 집착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

    차마 묻지 못하고 있었는데, 백작이 먼저 이야기를 풀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지. 내가 고양이를 길들여야 하는 이유부터 설명하는 게 편하겠군.”

    백작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듣자 하니, 불같이 사랑했던 아내를 잃었단다.

    아내를 잃은 백작은 큰 상실감에 한동안 칩거했고, 백작가의 분위기는 냉랭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백작은 가문의 주인으로서 사라진 안주인의 몫까지 대신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다시 밖으로 나왔다고.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는 일 중 하나는 아내가 분신처럼 여기던 고양이지만, 말썽을 부리는 ‘루시’라는 고양이를 길들이는 거라나?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참 힘든 일이었네. 어미를 잃고 방에 틀어박힌 자식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그래. 아직도 우리 가족은 아내가 살아 있을 때만큼 단란하지 않네. 아내가 루시를 돌보는 걸 다 같이 구경하던 행복했던 시절······ 난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 그래서 루시를 길들이려는 거네.”

    모든 방법을 다 써서 길들여보려고 했지만, 녀석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고민이 깊어지던 중, 길고양이들이 주인처럼 따르는 나를 본 거고.

    이 아저씨 얼마나 고양이를 귀찮게 했으면 손등이고 얼굴이고 안 긁힌 데가 없네.

    “그런 사연이 있어 고양이랑 친해질 방법이 궁금하신 거군요?”

    “그래. 내 살던 중, 고양이들을, 그것도 이렇게 주인 없이 떠도는 거친 야생 고양이들을 잘 다루는 사람은 처음 봤네. 내가 보기에는 수도의 동물 사육사 이상이야.”

    백작이 강렬한 눈빛을 보내며, 내 쪽으로 얼굴을 쭉 내밀었다.

    “그러니, 부디 나에게 그 비결을 알려주게. 효과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내어주지.”

    이거, 좀 부담스러운데.

    하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에게는 야생의 고양이들과 친해진 경험뿐만 아니라, 이틀 전에 탑을 내려갔다 올 때 동네 고양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들고 왔으니까.

    먼저, 팁부터 줘야겠다.

    아무리 필살기가 있다고 한들, 고양이 다루는 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법이니까.

    “하하하······ 진정하시죠. 사실, 고양이와 친해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고양이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고, 좋아하는 걸 주면 그만이죠.”

    “그럼, 고양이가 싫어하는 건 뭐고, 좋아하는 건 대체 뭔가? 그 속내를 알 수가 있어야지.”

    “우선, 고양이의 꼬리를 유심히 보셔야 합니다. 그 녀석들은 기분이 꼬리로 나타나거든요.”

    나는 백작에게 고양이의 꼬리를 보고 기분을 파악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녀석들이 만지길 싫어하는 부위나 따뜻하고 좁은 곳을 좋아한다는 정보도.

    현대에서는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전수 받을 수 있는 정보라지만, 그렇지 않다면 솔직히 이런 걸 누가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한평생 고양이를 관찰해야지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흠······ 정말 그런 쉬운 방법으로 녀석들과 친해질 수 있는 건가?”

    백작은 미덥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로 들으면 쉬워 보이지만, 막상 직접 해보시면 꽤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허어. 그럼, 이 방법들이 통하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럴 땐, 이 물건들을 써보십시오.”

    나는 품에서 비장의 무기들을 꺼냈다.

    츄르와 캣닙.

    이 두 개면, 게임은 끝이다.

    그 두 가지를 받아 든 백작이 물었다.

    “이게······ 다 뭔가?”

    “하나는 고양이에게 주는 간식으로 츄르라는 물건이며, 하나는 고양이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기에 좋아하는 식물인 캣닙입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이건 어떻게 써야 하는가?”

    “간식은 너무 많이 주지 마시고, 식물은 향이 퍼질 수 있는 주머니에 넣은 뒤 줄에 묶어 낚시하듯 놀아주시면 고양이 루시 양의 마음을 홀딱 훔쳐 올 수 있을 겁니다.”

    백작의 눈이 흥분으로 가득 찼다.

    “오오오! 그럼 당장 그걸······ 큼! 크흠. 사용법까지 꽤 자세하군. 알았네. 내 그리 해보지.”

    체면도 신경 쓰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던 백작은 멋쩍은 헛기침을 흘린 뒤, 츄르와 캣닙을 곱게 품에 넣으며 다니엘에게 말했다.

    “기사단장. 정수에게 물건을 하나 내어주게.”

    “어떤 게 좋겠습니까?”

    “이번 디멘션 울프 토벌을 위해 챙겨온 것 중, 방어 관련 물품 여분이 있었지? 그걸 가져오게.”

    “알겠습니다.”

    다니엘은 곧 마차에서 철제 상자 같은 것을 가지고 왔다.

    “정수. 이건 넓은 범위에 방어막을 칠 수 있는 물건이네. 원래 군용품으로 쓰는 물건이지.”

    나는 눈을 빛냈다.

    개인 방어막은 원코라고 할 만큼 탑에서 여분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

    그중에서도 귀하디 귀한 건, 광역 방어막이다.

    전투 중 목숨을 구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휴식이다.

    휴식 없이 전투만 이어지면, 피로가 누적되어 힘을 온전히 못 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몬스터로 가득한 탑에서 안전 구역을 찾지 못하면 언제 어디서 칼과 창이 찔러 들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떤다.

    그렇기에, 길드 단위 탑 공략에는 필수적으로 여겨지는 것이 광역 방어막.

    특히, 그 범위에 따라 부르는 게 값이 되는데, 내가 받은 건······.

    【백작가의 수호 기둥(A+)】

    ─마법석 소켓 ‘0/4’

    ─스킬

    1) 광역 방어막 : 사용 시, 200m 범위의 충격을 흡수하는 대형 구체 방어막이 작동하여 공격을 막아냅니다.

    2) 마나 요격 : 방어막에 쌓인 충격을 이용해, 투사체를 일부 요격합니다.

    그야말로, 대박이다.

    여태까지 알려진 광역 방어막 중, 가장 넓은 게 50m였지 아마?

    거기에, 단순히 방어막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반격까지 해준다니.

    내 아이템 중, 요정의 팔찌에 아카식 건틀렛에 달린 쇼크 웨이브를 섞어 업그레이드하면 이런 아이템이 나오지 않을까?

    이건, 등탑을 계속하려는 대형 길드라면 눈에 불을 켜고 확보하려는 아이템일 거다.

    아마 수십억을 주고라도 사려고 하겠지.

    나는 상자 안에 들어있던 철제 말뚝처럼 생긴 ‘백작가의 수호 기둥’을 조심스레 받았다.

    “이런 귀중한 물건을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유용하게 사용하겠습니다.”

    “이건 선금에 불과하네. 만약 자네가 준 물건들이 루시에게 효과가 있다면, 자네에게 큰 상을 내리겠어.”

    그렇지. 내가 지금 받은 것도 어마어마한 물건이지만, 진짜는 따로 있다.

    백작의 여식이었던 플로라에게 받은 것도 고가였는데, 백작이 직접 주는 보상은 대체 뭘까?

    생각만 해도 두근대네.

    *

    다시금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라면 장사에 시달리다 탑을 내려왔다.

    이게 벌써 3주 차였다.

    “아, 알바하고 온 기분이네. 어떻게 트레이닝 룸보다 더 빡세냐. 역시 단순노동은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야.”

    나는 쉬지도 못하고 눈을 뜨면 장사 준비, 머리를 대면 기절하듯 잠을 잤던 일주일을 상기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도 내가 없을 때 토니 혼자 죽어 나갈 것을 생각해, 임시 종업원을 두었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

    “어후, 씨. 탑에 들어가면 다시 그렇게 일을 해야 할 텐데······ 다시 탑에 올라갔을 땐 임시 종업원들이 일에 좀 익숙해졌으면 좋겠네.”

    몸서리를 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잊고 있었던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배짱도 좋군. 그날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은 것도 모자라서 연락도 무시하다니. 탑을 나오면 다시 만나지.

    강무진으로부터 도착한 문자.

    “좆됐다.”

    소름이 끼쳐 올랐다.

    생각해보니, 강무진이 갑자기 약속을 잡았었지.

    균열을 막아낸 뒤, 처리할 일이 너무 많아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강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청장님. 제가 그날은······.”

    ─됐다. 얼굴 보고 이야기하지. 장소는 내가 찍어주지. 한 시간 뒤에 도착한다.

    강무진은 특유의 무미건조한 말투로 본론만 전한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 인간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나를 찾아온다는 거지?

    이런 사람이 두 번이나 나를 직접 만나기 위해 찾아올 일이 있나?

    그렇게 가슴을 졸이며 강무진이 찍어준 주소를 찾아가자, 균열감시대응청의 한 지부가 있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방음 장치가 되어 있는 방으로 안내해준 거지?

    잔뜩 긴장한 바람에 그 한 시간 동안 화장실을 몇 번이나 갔는지 모르겠네.

    정확히 한 시간 뒤, 강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 청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번에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겨서······.”

    “됐으니까, 앉지.”

    강무진은 자리에 앉자마자 턱을 괴고 잠시 침묵했다.

    테이블을 하나 놓고 이렇게 있으니까, 취조라도 당하는 것 같네.

    긴장감이 맴돌고, 참지 못한 내가 먼저 부른 이유를 물어보려던 차, 강무진이 입을 열었다.

    “김정수. 다 알고 왔다.”

    “네? 대체 뭘······.”

    “드래곤 마스크.”

    뭐?

    심장이 멎는 것 같다.

    젠장, 그렇게 정체를 노출하지 않게 노력했는데, 설마 들켰나?

    어떻게?

    식은땀이 흐르고,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게 대답하려는데, 강무진이 말을 이었다.

    “······와 커넥션이 있다는 사실을.”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눈을 끔뻑거리며 강무진을 쳐다보자, 강무진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이건, 네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은 날. 즉, 세 개의 균열이 동시에 터졌던 그날의 영상이다. 현재는 정부가 확보한 영상을 제외하고는 전부 지워서 정부 요인만 가지고 있지.”

    스마트폰 속 영상에서는 내가, 정확히는 드래곤 아머를 장착한 내가 크레이지 호넷 퀸과 전투를 이어가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강무진이 한 장면에서 영상을 멈췄다.

    “여기.”

    강무진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나를 향해 오러를 씌운 그림자 암수를 던지는 분신이 찍혀 있었다.

    “분명히, 두 명이 하나의 스킬을 연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마나 붐을 사용하려면 분신과 연계를 해야 한다.

    분신은 드래곤 아머를 복제하지 못해서, 그날 내가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이거 때문에 나와 내 분신이 별개의 인물이고, 내가 드래곤 마스크와 함께 착각한 건가?

    “그때, 널 만나 물어볼 게 있었지. 그것도 이 일과 관련이 있을 것 같더군.”

    “네? 어떤······.”

    “아무리 탑이 넓다고는 하지만, 그 많은 양의 식충식물 하며, 상등품의 약초들······ 도저히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그 배후를 묻고자 했는데, 대충 나온 것 같군.”

    내 뒤에 드래곤 마스크가 있다고 생각한다라······.

    그래서, 나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는 이유가 뭘까?

    당연히 무언가 원하는 게 있어서겠지.

    “그래서, 이 영상을 보여주시는 이유가 뭔가요?”

    강무진은 등받이에 기대듯이 앉아 잠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대체 뭘 원하길래 이렇게 부담스럽게 보는 거야?

    “역시 눈치가 빠르군. 마음에 들어. 본론만 하지. 부탁이 있다.”

    “어떤 부탁이요?”

    “정부, 아니 국가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등탑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오직 드래곤 마스크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와 다리를 놔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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