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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45화 (45/69)
  • 더 큰 세계, 더 많은 꿀(6)

    더 큰 세계, 더 많은 꿀(6)

    태산 길드의 본사.

    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회의실에 길드의 요인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 모두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등탑자들이었건만, 무슨 일인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을 긴급 호출한 것은 태산 길드의 마스터이자 국내 랭킹 3위.

    아시아 최고의 브루저로 뽑히는 거산(巨山) 강태산이었으니까.

    물론 그는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왕의 위엄은 빈 왕좌에서도 존재하는 법.

    쾅──!

    태산 길드의 부마스터, 서재석이 험악한 표정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다들 정신 못 차려? 마스터께서 랭킹 1위 탈환에 집중하고 계시는 중에, 이런 데까지 신경을 쓰시게 만들어야겠어?”

    임원들의 고개가 한층 더 굽혀졌다.

    서재석은 태산 길드의 2인자이자 강태산의 대리인.

    그가 하는 말은 곧 강태산의 말이었다.

    “미키 마우스인지, 데스 마우스인지 그거 당장 수급 안 하고 뭣들 하는 거야! 진짜 약초 창고 동나는 꼴 보고 싶어? 사이 좋게 등탑 산업 때려치우고, 다 같이 길거리에 나앉아볼까?”

    그의 분노에 다들 침묵할 때, 한 임원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자세를 바꾸다가 입을 열었다.

    “그게······ 데스 마우스를 공급한 기업에서 우리의 모든 연락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차단선 구축에 필요한 물량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공급을 거절했고요.”

    “그뿐만 아니라, 그 차단선 때문에 사실상 우리의 약초 플랜트는 고립된 모양새입니다.”

    “정부 쪽에서는 피해를 최대한 막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할 희생이라고 하지마는······ 아무리 봐도 불순한 의도 같습니다.”

    임원들의 보고에 서재석의 얼굴이 층층이 붉어져 갔다.

    “감히 태산의 연락을 무시한다고? 우리 뒤에 태산 기업이 있는 걸 알고도? 회사 정보 가져와 봐.”

    서류뭉치를 건네받은 서재석은 빠르게 몇 장을 읽어내리더니, 서류뭉치를 내던졌다.

    “씨발! 이거, 딱 봐도 페이퍼컴퍼니야. 거기에다가 우리 플랜트를 제외하고 차단선을 짠 모양새?”

    “누군가, 우리를 고립시키려는 의도 같습니다.”

    “······이런 개새끼들이 뒷공작을 쳐? 무슨 심산인지는 모르겠지만,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봐.”

    그렇게 말한 뒤 이마를 짚고 있던 서재석은, 아직도 자리에 앉아있는 임원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뭐 해, 이 새끼들아! 페이퍼컴퍼니 캐란 말 못 들었어? 월급은 괜히 주는 줄 알아? 이번 거 해결 못 하면 싹 다 모가지야! 빨리 움직여, 이 무능한 새끼들아!”

    서재석이 물건을 내던지기 시작하자, 임원들이 그 분노를 피하려 회의실을 나갔다.

    빠득, 빠드득.

    손에 쥔 스마트폰을 부수어버리며 이를 바득바득 갈던 서재석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대놓고 작업을 들어와? 깡그리 모아다가 오우거 밥으로 던져주지.”

    *

    “우리 약초들 잘 잘도 자란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네.

    나는 약초밭을 둘러보며 절로 나오는 흐뭇한 미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슬슬 재배할 때가 왔지.”

    나는 약초밭의 재배를 위해 한수 형에게 연락했지만, 한솔이가 전화를 대신 받았다.

    한수 형은 팀을 이끌고 탑에 올라갔다고.

    물론, 마스터 대리에 앉아있는 한솔이었기에 계획에 문제는 없었다.

    한솔이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곧장 약초밭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설산이 된 뒷산을 확인한 한솔이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미친······.”

    “안 춥냐? 여기 기온이 영하로 유지되거든. 그래서 패딩 가져오라고 한 거야.”

    “미친놈······ 너 뭐냐?”

    한솔이가 나를 노려봤다.

    그럴 만도 하다.

    6월에 설산의 약초밭이라니,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마법적인 일이다.

    물론 현시대는 마법이 뉴노멀이 되었다지만, 일개 등탑자 혼자서 구현할 만한 장면은 절대 아니었다.

    “너······ 요즘 나 빼놓고 형이랑 뭘 하고 다니나 싶었더니, 너 뭐야! 언제 이런 걸 만든 거야? 그, 그리고 6월 초에 어떻게 눈이 내리고 있는 거냐?”

    나는 피식 웃으면서 본론을 꺼냈다.

    “이거 꽤 돈 될 것 같지?”

    “······말이라고 하냐, 그걸?”

    “그런데 나 혼자서는 버겁다. 원장님은 이제 나이가 있으시고 애들도 아직 어리고. 또 내가 사업에 대한 건 잘 몰라서 그런데······ 네가 좀 직원을 고용하고 관리해줄 수 있겠냐?”

    “너 이 자식, 도와달라고 생전 사지도 않던 밥까지 살 땐 언제고, 이제는 날 고용하려고 하네.”

    “내 주변에서 제일 쓸만한 인재니까.”

    “허, 얼마 전까진 불우이웃돕기 송금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는데······ 이젠 그 불우이웃에게 월급을 받게 생겼네. 너 대체 얼마나 갑부가 되려고 이러는 거냐?”

    그렇게 말하면서도 씩 웃는 걸 보니, 한솔이 녀석도 벌써 어떻게 사업을 굴려야 하는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는 게 틀림없다.

    녀석도 이 사업을 굴리면, 돈이 얼마나 들어올지 알고 있어서겠지.

    한참이나 밭을 둘러보던 한솔이가 잠시 미간을 좁히더니 물었다.

    “그런데, 사업 자금은? 약초 재배, 관리, 유통, 영업, 돈이 얼마나 필요한데?”

    “그렇겠지?”

    “그거 할 사람 구하느라 인건비는 또 얼마나 필요하고? 한 푼도 없이 사업 시작하려는 거 아니지?”

    “지금은 별로 없긴 해. 정부에 공급한 데스 마우스 대금도 아직 지급이 안 돼서.”

    지금까지 데스 마우스 씨앗을 450개 넘겼다. 그 금액만 4억 5천만 원.

    효과가 입증되면 20% 인센티브를 붙여서 추가로 700개 납품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적지 않은 포상금도 준다고 했고.

    그런데 아직은 내 수중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급하게 데스 마우스를 키워 자이언트 로커스트 떼를 막으면서 페이퍼 컴퍼니를 굴리고, 최근 늘어나는 균열 대응에 약초 판매 루트까지······.

    인력 부족으로 서류 처리가 늦어 지급이 지연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걱정하지 마라. 방법이 있어.”

    방법이 있다는 말에, 한솔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법?”

    “그래. 나 자금 확보 좀 하러 갔다 올게.”

    “설마 대출받으려고? 요즘 국내 등탑계 상황이 이래저래 안 좋아서 금리가 치솟았다. 대출에 잘못 손 대면 지갑에 구멍 뚫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나에게는 드워프제 아이템이 있거든.

    하지만, 이번 건 투견 길드를 통해 처분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한 번 풀리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드워프 장인의 수제작.

    대형 길드들이 냄새를 맡아서 달려들면, 투견이 버틸 재간이 없거든.

    그러느니, 내가 직접 처분하는 게 안전할 수 있다.

    언제까지고 투견에 의지할 수만도 없는 일이고.

    거기다, 이 정도 사이즈의 물건이라면, 이제 정체를 숨기고 파는 방법이 있다.

    나는 서울에 중심가에 있는 ‘경매장 거리’로 향했다.

    등탑자가 탑에서 얻어온 아이템을 경매하려면 ‘탑 부산물 취급에 대한 세계 협약’에 따라 운영되는 경매 회사에 회원 등록을 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회원제로 운영되는 경매장에서도 경매대행시스템 ‘I-브릿지’를 이용하기로 했다.

    “I-브릿지는 등급제로 운영되는데, VIP가 되면 일 처리가 훨씬 쉽다고 했었지.”

    VIP 등급으로 회원 등록을 하면 개인 매니저가 붙는다.

    이 매니저가 금융 업무 대리 처리는 물론이고 아이템의 감정부터 최적의 가격을 측정해주고, 추가로 신분을 절대 비밀 보장해주는 등 꽤 많은 서비스가 따라온다.

    그중에서도 I-브릿지는 세계 등탑자 협회에서 운영하는 곳이라서, 웬만한 대형 길드가 간섭할 틈이 없는 확실한 서비스다.

    방해받지 않고 탑을 오르려는 고층 등탑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이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1층을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VIP 등록을 하기에 신뢰도가 충분할지는······ 확신할 수 없네.

    “그래도, 일단은 부딪쳐봐야지.”

    명동의 한가운데 위치한 거대한 타워.

    탑의 미니어처 같은 모양새로 건축된 I-브릿지 건물은 이제 명동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되었다.

    물론, 구름에 걸릴 정도로 거대한 탑에 비해서는 작지만, 탑이 뿜어내는 웅장하고도 묘한 분위기는 그대로 빼다 박았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수십 명은 달라붙었다나?

    외형도 외형이지만, 세계 등탑자 협회가 직접 운영하는 만큼 거래를 위해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 유명해진 것도 있다.

    “후, 내가 여기에 오게 될 줄은 몰랐네.”

    나는 경매장 안으로 들어가, 고객센터를 찾았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저······ VIP 등록하려고요.”

    고객센터 직원은 잠시 당혹스러운 얼굴로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빠르게 훑더니, 다시 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리 명찰을 달고 있는 남자가 나와서 나를 구석진 방으로 안내했다.

    “VIP 등록을 하려고 하신다고요?”

    “예.”

    “흠······ 잠시 등탑자 신원 조회 좀 해보겠습니다. 물론 VIP 등록을 하시면 고객님에 관한 모든 기록이 지워지고 개인 매니저를 통해서 보안 거래를 하실 수 있습니다.”

    “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김정수입니다.”

    잠시 키보드를 타닥거리던 대리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1층에 오르신 지가······ 아직 반년도 안 됐네요? 이런 말씀 실례지만, VIP 등록 조건이 까다로운 건 알고 계시겠죠? 그리고 연회비가 얼마인지는 아시고요?”

    “네.”

    “······아신다고요? 흠, 그래서 고객님께서는 가입이 어려우실 수도 있어요.”

    역시 이렇게 나오는군.

    등탑자에 따라 탑을 오르는 속도가 다를 수는 있어도, 나처럼 98층에 뚝 떨어지는 경우는 당연히 없다.

    당연하게도 등탑을 시작한 지 오래될수록 상위층에 올라갔을 가능성이 크지.

    상위층에서는 당연히 값진 아이템이 나오고, 경매 회사는 그게 확실한 보증수표다.

    경매 회사는 그걸 가장 큰 신뢰로 친다.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내가 돈이 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보여준다면 어떨까?

    나는 작게 웃으며 차원의 틈에서 드워프제 무기를 꺼냈다.

    가장 먼저 꺼내놓은 것은 ‘흑철 전투 도끼’였다.

    쿵!

    B++등급 무기지.

    “어······.”

    대리는 잠시 입을 벌린 채 드워프제 무기와 차원의 틈, 그리고 나를 번갈아 보았다.

    “잠시, 확인을······.”

    그가 흑철 도끼에 손을 얹었다.

    눈앞에 아이템 정보가 떠올랐을 거다.

    【흑철 전투 도끼(B++)】

    ─마법석 소켓 ‘0/4’

    ─스킬

    1) 참수의 일격 : 강력한 참격으로 도끼날보다 넓은 범위를 베어냅니다.

    2) 전장의 광인 : 10분간 근력을 5% 올려줍니다.

    3) 검은 투지 : 10% 확률로 상태 이상을 무시합니다.

    그래, 옵션 죽이지?

    “헉! 더, 더블 플러스······ 더블, 더블! 헉!”

    그가 헉, 하는 소리를 몇 번이고 내뱉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팀장님이 오셔야 할 것 같거든요?”

    대리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면서 방을 나섰다.

    그렇게 5분쯤 기다리자, 팀장이라는 사람이 왔다.

    처음에 주임이 나를 귀찮아했던 것과는 대조되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 고객님. 성심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B++급 무기 한 정 맞으시죠? 이 정도면 VIP등록이 가능하실 것으로 판단되지만, 제가 다시 한번 옵션을······.”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원의 틈에서 흑철 전투 도끼와 마찬가지로 B++등급인 ‘백년 설산목 지팡이’와 ‘오우거 송곳니 단검’을 꺼내놓았다.

    덜그럭, 턱.

    팀장은 아까 나간 대리와 같은 표정으로 세 아이템과 차원의 틈, 그리고 나를 번갈아 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일어났다.

    “······잠시만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지점 매니저님이 오셔야 할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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