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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42화 (42/69)

더 큰 세계, 더 많은 꿀(3)

더 큰 세계, 더 많은 꿀(3)

“아, 뭐야. 그런 거였어? 난 또 양봉을 쉽게 보는 애송이인 줄 알고 혼쭐을 낼까 했네. 하하!”

잭은 호탕하게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다.

주먹이 내 머리통만 한 아저씨가 저런 말을 하니까 조금 무섭네.

“일단 출발해서 말하자고. 가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말이야. 마부석 옆에 앉지.”

“아, 네.”

내가 마부석에 앉자, 잭이 고삐를 틀어쥐고 말을 움직이며 말했다.

다그닥, 다그닥.

“그 정도야 알려줄 수 있지. 빌어먹을 말벌 놈들을 죽이는 건데. 여왕벌 퇴치에는 ‘로열젤리’가 적격이야. 놈들이 그걸 엄청나게 좋아하거든. 뒤에서 칼로 찔러 죽여도 모를 정도로 환장하고 먹지.”

“아하하······ 그렇군요.”

표현은 과격하지만, 어마어마한 팁을 얻었다.

로열젤리라······.

이거, 어쩌면 보스 몬스터도 생각보다 쉽게 상대할 수 있겠는데?

잭은 신이 났는지, 크레이지 호넷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천적인 푸른 갈기 곰 때문에 파란색에 민감해. 자네는 눈 색을 보니 다른 지역 사람 같은데, 이 지역 사람들은 종종 눈을 쏘이곤 하지. 붉은색은 당연히 고기인 줄 알고 달려들어.”

와, 씨.

그 거대한 침에 눈을 쏘이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

“그럼, 무슨 색이 제일 좋나요?”

잭은 자신의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회색. 놈들이 회색을 제일 못 봐. 내가 주먹으로 죽어라 패도, 뭐에 맞고 있는지 모르는 놈들이 종종 있을 정도니까.”

그러고 보니, 잭의 옷이 전부 회색이다.

역시 다 이유가 있는 거였구나.

“고마워요. 제 고향 사람들도 크레이지 호넷 때문에 난처한 상황이라······ 아, 혹시 ‘로열젤리’를 구매할 수 있을까요?”

“곳간에 쌓인 게 그건데, 당연히 팔 수 있지. 한 병에 100골드야.”

한 병에 100골드, 약 10만 원 정도······.

포션 가격과 같은 걸 생각하면 조금 비싼가 싶지만, 균열을 저지하고 나면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생각하면 싼 편이지.

게다가, 제대로 싸우면 몇 병을 마시게 될지 모르는 포션과 달리, 한 병으로 사냥을 끝낼 수 있다면 로열젤리가 더 싸게 먹힌다.

“좋아요. 우선 한 병 살게요.”

“좋은 선택 한 거야. 내 꿀과 로열젤리는 귀족 나리들께서도 앞다퉈 사려는 최상품이거든.”

나는 거리낌 없이 100골드를 내고 로열젤리를 구매했다.

백작가 여식, 플로라가 주고 간 5만 골드는 아이템으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여유도 있으니까.

그렇게 1시간을 내달리고 잠시 쉬는 사이.

우리는 간단하게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잭이 꿀물로 끼니를 때우려고 하기에, 나는 컵라면을 꺼냈다.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보답이라기엔 뭐하지만,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할게요. 이번에 도시에 오픈할 식당 메뉴를 간략화한 물건인데, 입에 맞으실까 싶네요.”

보글보글.

끓는 물을 붓고 3분.

오랜만에 정겨운 반응을 볼 수 있었다.

후루룩!

“세상에 이런 맛이 있다니! 도시에 갈 때마다 딱딱한 빵 씹는 게 골치였는데, 해결됐구만!”

“하하 괜찮죠?”

“이 음식보다 맛있는 걸 파는 식당이라고 했지? 이거, 내 친구들도 좋아하겠어! 오픈할 때 말해달라고. 나중에 꼭 같이 갈 테니까.”

그 말에, 나보다 더 기뻐한 건 토니였다.

이거, 오픈도 전에 단골이 생기게 생겼네.

컵라면을 국물까지 싹싹 비워버린 잭은 배를 두들기다, 원래 점심으로 마시려던 꿀물을 내밀었다.

“맨입으로 얻어먹긴 그렇지. 이 꿀도 먹어보라고.”

“아, 감사합니다.”

꿀꺽.

나는 꿀물을 받아 마셨고, 눈이 번쩍 떠졌다.

“이 맛은!”

【맛있는 꿀물을 섭취합니다】

─4시간 동안 마나 회복속도가 40% 추가됩니다.

─4시간 동안 자연치유력이 20% 추가됩니다.

─4시간 동안 근력이 20% 추가됩니다.

“허억!”

이건······ 탑에 올라오기 전에 마셨던 등탑자용 에너지 드링크의 효과와 비슷하잖아?

성능은 더 좋아서, 지속시간부터 옵션까지 최소 4배의 수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거, 고층 등탑자들은 얼마를 주든지 사가려고 하겠는데.”

거기다 훌륭한 향에 깔끔한 단맛까지 너무나도 훌륭하다.

설마, 내가 98층의 음식을 먹고 마치 컵라면 처음 먹어본 사람 같은 반응을 할 줄이야.

왜 귀족들이 찾는다고 했는지 알 것 같은 맛이네.

이런 맛이라면, 굳이 성능을 떠나서라도 찾아 마시겠는데?

그리고 요리로 가공한다면 효과가 더 붙을 수도 있고!

내가 꿀물을 더 들이켜자, 잭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어때, 힘이 불끈불끈 솟지?”

“정말 그렇네요.”

나는 꿀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마시며, 머리를 굴렸다.

맛도 없고, 성능도 이 꿀물보다 절반밖에 안 되는데도 한 캔에 5만 원이나 한다던 에너지 드링크.

그 에너지 드링크랑 비교하면, 이 꿀물은 어떨까?

꿀도 로열젤리와 같이 한 병에 10만 원의 가격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효과를 내는 데 필요했던 건, 꿀 세 스푼.

잭에게 들어보니, 한 병에 대략 100병의 꿀물이 나온다고 한다.

10만 원에 꿀 한 병을 사서 꿀물 100병을 만들고, 한 병에 5만 원을 받으면?

총 500만 원. 꿀 한 병당 이윤이 490만 원.

병값 같은 자잘한 비용들을 다 합쳐도, 어마어마하게 남는 장사!

아니, 5만 원보다 비싸게 팔아도 무조건 팔릴 거다.

아무래도, 새로운 거래처를 벌써 찾아버린 것 같다.

촤르르륵.

머릿속에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긴, 돈 쏟아지는 소리지!

나는 잭의 손을 덥석 잡았다.

“사장님. 조만간 꿀을 대량으로 구매할 날이 올 것 같습니다. 꼭 잘 좀 부탁드립니다.”

“꿀을? 나야 뭐, 항상 만드는 게 꿀이고 도시까지 안 가도 되면 편하지. 허허. 그렇지 않아도 꿀통을 조금 늘릴까 했는데, 잘됐네.”

잭과 한바탕 호탕하게 웃고 나니, 윌리엄과 토니가 나를 보며 고개를 젓는 게 보였지만, 체면이 뭐 밥 먹여주나?

도시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게 30분쯤 후.

“고마워요, 잭! 다음에 봐요!”

“좋은 소식 기대하지!”

우리는 도시 ‘윈터우드’에 도착했다.

진짜 톨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데?

도로가 닦여있는 상태나, 성벽을 보니 그 차이가 크게 체감됐다.

여기라면 정말 괜찮은 상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빠르게 가게가 들어갈 만한 자리를 둘러보았고, 몇 시간 만에 토니의 마음에 쏙 드는 목 좋은 곳과 계약할 수 있었다.

“우리는 내일 돌아가려고 하는데, 정수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톨른으로 돌아가서 급하게 해야 할 건 없다.

거기다, 꿀이라는 아이템을 찾긴 했지만······ 아임 스틸 헝그리.

지구에 가서 팔 물건을 찾아야 한다.

“저도 내일 돌아가죠, 뭐. 도시에 나온 김에, 조금 둘러볼게요.”

“그래. 여관 위치를 알려줄 테니, 이따 거기로 오게.”

여관 위치를 듣고 난 뒤, 나는 곧바로 발을 옮겼다.

그 중,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무기점.

토니와 가게를 보러 다니면서 점찍어두었던 곳이지.

딸랑딸랑.

“어서옵쇼.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신가?”

“아, 아뇨, 그냥 좀 둘러보려고요.”

손을 비비면서 나를 반기는 주인장을 뒤로한 채, 나는 무기 먼저 살폈다.

아무래도, 무기가 가장 값이 나가기 마련이니까.

【오우거 이빨 단검(C+)】

【붉은 강철 장검(D+)】

“와······ 하나 같이 품질이 좋은 것들이네.”

“하하! 젊은 친구가 물건 좀 볼 줄 아는구만!”

여태 보상으로 받은 것들은 대부분 일반 등급이다.

그것을 구분하는 건, 등급 뒤에 붙어 있는 +등급.

이건, 같은 등급의 아이템들의 평균적인 성능보다 더 좋은 성능을 가졌다는 것을 뜻한다.

기사단장이 준 양손 검도 A급이긴 하지만 A급이라는 틀을 벗어나진 못했지.

+등급 중에서는 희귀한 스킬이나 특성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 당연히 같은 등급의 아이템보다 비싸다.

특히, 돈 많은 콜렉터들 사이에서 +등급은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아이템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가격이 곱절로 뛸 때도 있지.

그리고 여기에 있는 물건 중 절반은 +가 붙어 있으니, 그야말로 보물창고가 따로 없다.

말은 제주로, 사람을 서울로 보내라고 했던가?

역시, 도시로 나오니까 돈벌이가 될만한 것들이 보이네.

그런데, 가게 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던 노인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렇게 허접한 물건을 보고 품질이 좋다고? 눈깔은 장식이구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허접한 물건이라고요?”

이 정도 아이템이면 사기템이라기엔 무리가 있어도, 허접하다고 할 수는 없을 텐데?

못해도 20층 이상 등탑자들이 쓸만한 무기다.

내가 노인을 향해 묻자, 무기점 주인이 다급하게 앞을 막으며 영감님을 향해 속삭였다.

“영감님! 간만의 손님인데 초 치지 좀 마세요.”

그러나, 노인은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 그건 내 제자가 만든 허접한 물건들이지. 이 도시 최고의 장인은 따로 있어.”

“아, 영강님이 진짜! 가게 물려주고 은퇴하셨으면 방해는 하지 마세요!”

이런 물건을 만든 대장장이도 아니고 그 스승이 인정한 도시 최고 장인이라······.

그게 대체 누굴까?

나는 맡아버리고 말았다.

돈 냄새를 말이지.

“그게 누구죠?”

“동쪽 거리, 직물 판매상 옆에 있는 대장간, ‘동트는 새벽’. 그 가게의 주인장이 만드는 물건이 진짜다. 자네가 살 수 있을진 모르지만, 구경이라도 해서 눈이라도 높여보라고.”

“감사합니다!”

가게를 박차고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노인의 충고가 들려왔다.

“하지만, 깐깐한 양반이야. 열에 한 명, 아니, 백에 한 명만 손님을 받는 양반이니까. 거기서 못 사면 여기로 오라고.”

영감님은 뭐가 즐거운지, 껄껄 웃어댔다.

나는 영감님이 알려준 대로, 동쪽 거리로 발을 옮겼다.

“어디 보자······ 동트는 새벽······ 동트는······ 아, 여기다.”

굴뚝을 통해 계속해서 매캐한 연기가 새어 나오고 망치 소리가 계속 울리는 곳이었다.

끼이익, 후욱!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뜨거운 공기가 세차게 내 전신을 때렸다.

쇠 타는 냄새와 규칙적인 망치 소리.

왠지 모를 고양감이 느껴지는 곳이네.

나는 조심스럽게 가게 안으로 발을 들이며 물었다.

“계십니까?”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망치 소리와 풀무 소리뿐이었다.

캉, 캉! 후욱, 후우욱!

여긴 손님이 와도 작업만 하네.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손님이 와도 신경도 쓰지 못할 정도로 작업에 집중하는 진짜 장인이라는 뜻일 테니까.

나는 주인장을 보기 전에, 벽에 걸려 있는 무기를 확인했다.

그리고. 내 기대가 적중했다.

【트롤 힘줄 장궁(B++)】

“헉! B++!”

나는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더블 플러스, 보통 DP라고 부르는 이 등급은, 위 등급의 아이템에 비해 재료가 아쉬웠을 뿐, 거의 같은 성능을 낼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평가된다.

다시 말해, 이 트롤 힘줄 장궁은 사실상 A등급 아이템이라는 거지.

그리고 지구의 장인 중에서는 아직 아무도 더블 플러스를 만들어낸 적이 없다지?

즉, 오로지 등탑 보상으로만, 극한의 확률을 뚫고 얻을 수 있는 등급이다.

실제로 만드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건지, 추측만 무성했는데, 내가 등탑자 중 최초로 장인 중의 장인을 만나보게 생겼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이 혹시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가슴에 손을 꼭 올린 채 안으로 들어갔다.

캉, 캉!

상의를 탈의한 등만 보이지만, 우락부락한 등과 가까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이 붙을 것 같은 뜨거운 실내, 그리고 짙은 땀내.

그리고 무엇보다······ 신장이 작고 수염을 가슴께까지 기른 게, 사람이 아니라 드워프다.

불과 함께 태어나 쇠와 함께 죽는다는 장인의 종족, 드워프!

틀림없다, 이 사람, 아니, 드워프는 진짜다.

나는 장인이 망치질을 멈추고, 만들던 무기를 살필 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이 대장간의 주인 맞으시죠? 혹시, 제작 의뢰를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드워프는 만들던 검에 시선을 고정한 채 으르렁거리는 말투로 읊조렸다.

“예약이 100년은 밀렸어. 너 같은 애송이에게 만들어줄 시간은 없다. 꺼져. 중요한 순간이니까.”

꺼지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깐깐한 성격까지 갖췄다면, 완벽하게 물건을 잘 만드는 드워프 장인의 클리셰니까.

나는 드워프가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작업 과정을 구경했다.

확실히, 드워프가 살피는 검날은 붉게 달아오른 상태임에도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보라색을 풍기는 게,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좋아, 정했다.

나에게 안 판다고 하면, 물건을 만들어준다고 할 때까지 드러눕는 수밖에.

장인정신이 이길지, 상인 정신이 이길지 한번 해보자고!

캉, 캉.

한참이나 쇠를 두들기던 장인은 두들기던 쇠를 던져버리고는 욕을 뱉으며 돌아섰다.

“썅! 실패구만. 뭐야, 아직도 안 갔어? 그런다고 내가 만들어줄 것 같으냐? 별놈 다 보겠군.”

나와 눈이 마주친 드워프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콧방귀를 뀌고는 탁자 한쪽에 올려놓은 컵을 쥐고 내용물을 마셨다.

꿀꺽, 꿀꺽.

“푸후읍! 에이, 씨! 맥주가 다 식었구만.”

맥주를 몇 모금 넘기다 입에 남은 걸 뱉어버린 드워프가 잔을 멀리 내던졌다.

······잠깐만. 맥주?

나는 은근슬쩍 드워프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하하. 그러지 마시고, 시원하고 괜찮은 맥주가 있는데, 한 잔 마시면서 얘기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나는 아공간 속 아이스박스, 그 안에 들어있는 차가운 캔맥주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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