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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28화 (28/69)
  • 사업 확장(2)

    사업 확장(2)

    “뭐야 그거······ 가르쳐줘요.”

    아니지, 가르쳐주긴 뭘 가르쳐줘!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위력이 너무 강한 탓에 본능적으로 가르쳐달라고 했지만, 이건 스킬이 아니라 그냥 배드민턴일 뿐이다.

    다만······ 맞으면 죽을 수도 있겠는데?

    쿠르르······.

    제임스는 너덜너덜해져 깃털 몇 개만 남아버린 셔틀콕을 무너진 잔해 사이에서 꺼내 들며 투덜거렸다.

    “재밌을 것 같기는 한데, 이건 대체 뭐로 만든 거길래 이렇게 약한 거야? 한 번 치니까 걸레짝이 되어버렸잖아! 거미줄로 만든 것도 아니고 말이지.”

    대체 어떤 괴물이 셔틀콕으로 울타리를 무너트릴 수 있어서, 거기까지 계산하고 셔틀콕을 만들까?

    나는 어이가 없는 나머지 헛웃음을 지으며 새로운 셔틀콕을 꺼냈다.

    “하, 하하······ 제임스. 셔틀콕 약한 게 아니라, 제임스가 너무 강하게 쳐서 그래요. 가르쳐 드릴게요”

    나는 서브를 주는 법과 힘을 조절하는 법, 대략적인 규칙 설명을 마쳤다.

    “자, 이제 저랑 한 번 게임을 해보죠.”

    “좋아, 정수. 어디 한번 줘보라고.”

    제임스가 자신만만하게 라켓을 쥐고는 자세를 잡았다.

    정말······ 이해한 거 맞겠지?

    나는 긴장하면서도 서브를 날렸다.

    “자, 갑니다!”

    통.

    가볍게 날린 서브.

    이 정도 속도면 여유롭게 받을 수 있겠지.

    제임스는 해맑게 웃으며 셔틀콕을 쫓아가다가 가볍게 뛰어─

    “스매쉬!!”

    콰앙!

    전력으로 셔틀콕을 내리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아까보다 울타리를 부순 것보다 더 세다.

    몇 배는 더 세다.

    저건, 받아치면 죽는다.

    단순히 손목이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죽는다.

    나는 전력을 다해 몸을 던졌고, 한 발자국 차이로 셔틀콕을 피했다.

    방금까지 내가 있던 자리로 셔틀콕이 날아들었다.

    쐐애액!

    셔틀콕이 지나가며 어마어마한 풍압을 만들었고, 그 탓에 옷이 찢기고 생채기가 나 피가 흘렀다.

    찌이익! 핏, 피핏!

    그렇게 나를 스쳐 지나간 셔틀콕이 바닥에 꽂혔다.

    콰아아앙!

    대련장 바닥이 움푹 패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콜록, 콜록!”

    내가 바닥을 뒹굴며 기침을 토해내자, 제임스가 라켓으로 제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뭐야, 정수. 알려준다더니 너도 잘 못 하잖아?”

    “콜록, 콜록! 제임스! 이건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못 피했으면 죽었다구요! 셔틀콕 여분도 많이 없는데 또 터트리면······ 어?”

    셔틀콕이 터졌을 줄 알았는데, 제임스는 움푹 파인 바닥에서 멀쩡한 셔틀콕을 들고 흔들었다.

    “이제 감을 좀 잡았어. 셔틀콕과 라켓이라는 물건에 마나를 불어넣으면 강도가 꽤 쓸만하더군. 마나를 정교하게 다루어야 하니, 훈련에도 도움이 될 거야. 정수, 정말 쓸만한 물건을 가져왔군.”

    훈련용으로 가져온 물건은 아닌데, 제임스가 엉뚱한 활용법을 찾아버렸다.

    하지만, 스킬이 아니더라도 배드민턴으로 마나를 다루는 훈련을 할 수 있단 말이잖아?

    그렇다면······ 휴식 시간에 배드민턴을 치면서도 강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씩 웃으면서 라켓을 들었다.

    “제임스. 그 라켓과 셔틀콕에 마나를 불어넣는 방법, 나한테도 알려주세요.”

    *

    다시 이틀이 흘렀다.

    그동안 검술 연습을 하며 쉬는 시간에는 경비대원들과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고, 제임스의 마법 수업도 다시 시작되었다.

    그 덕에, 검술의 숙련도는 45%, 썬더 볼트는 55%라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슬슬 시작해도 되겠지.”

    제임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나를 성장시킨 아카식 트레이닝.

    그 두 번째 훈련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나는 약초를 캐러 간다고 한 뒤, 숲의 동굴로 갔다.

    처음 봤을 때는 무섭게만 느껴졌던 벽화였는데, 그래도 두 번째라고 익숙하게 느껴지네.

    복도를 통과하여 트레이닝 룸에 도착했다.

    【현재, 2단계 트레이닝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트레이닝을 시작하시겠습니까?】

    【YES】【NO】

    “하지만······ 뼈가 부러지도록 맞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단 말이지.”

    나는 심호흡을 몇 번 한 뒤,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트레이닝을 시작합니다】

    쿵!

    이번에도 외형이 똑같은 목각인형이 떨어졌다.

    하지만, 외형만 같을 뿐 저번보다 더 힘든 수련이 될 것 같다.

    【Lv.49 허접한 수련용 목각인형】

    1단계의 목각인형이 나와 레벨 5 차이.

    이번에는 레벨이 10이나 차이 나는 놈이 튀어나와 버렸다.

    거기다, 방패까지 들고 있는 게 공격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트레이닝이 몇 단계까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거겠지.

    나는 손을 앞으로 뻗으며, 자기력을 발동했다.

    우우웅.

    등에 멘 검이 뽑혀 나왔고, 천천히 허공을 부유해 내 손에 잡혔다.

    역시 유용해.

    “1단계 보상이 이 정도인데, 2단계 보상은 어떨지 한번 보자고!”

    나는 씩 웃으며, 목각인형을 향해 달려 나갔다.

    지구에서 강자들과 두 번이나 맞부딪치면서 느낀 건, 내가 생각보다 더 강해졌다는 것.

    그 덕에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어쩌면, 저번보다 더 쉽게 끝날지 모르지.

    그러나 호기롭게 뛰쳐나간 것 치고, 결과는 저번과 다른 바가 없었다.

    우드득―!

    “끄아악!”

    발목이 돌아가며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

    나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워리어의 치명적인 부상을 확인, 트레이닝을 종료합니다】

    【워리어의 치료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수십, 수백 번을 반복했다.

    도무지 셀 수 없을 정도로 2단계 트레이닝에 도전했을 무렵.

    나는 다시 한번 우득, 소리를 내며 돌아간 발목을 붙잡고 고꾸라졌다.

    “끄으, 끄윽.”

    이번에도 치료는 순식간에 끝났으나, 괜히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아 발목을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부러진 이빨들이 내 등을 찔러댔다.

    바닥에 떨어진 이빨은, 과장 조금 보태서 족히 백 개는 될 것 같다.

    내 모든 이가 적어도 세 번은 뽑혔다는 소리잖아?

    내가 상어도 아닌데, 이빨이 뽑히면 나고 뽑히면 나고······.

    “끄흐······ 무슨 팝콘 쏟은 것도 아니고, 진짜 서러워 죽겠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이빨을 주워 살피다가 멀리 내던지곤 아플 리 없는 턱을 매만졌다.

    2단계 트레이닝.

    그건, 1단계보다 더 악랄하고 지독한 훈련이었다.

    “발목은 52번 돌아가고, 골절은 68회에 강냉이는 100개쯤 털린 데다······ 응? 잠깐만.”

    나는 열심히 턱을 매만졌다.

    분명, 이쪽 이빨은 부정교합이 있었는데?

    “이빨이······ 예쁘게 났네? 턱주가리를 처맞아서 그런지 턱도 좀 날렵해진 것 같기도 하고······ 이게 그 환골탈태인가 뭔가 하는 그런 건가?”

    그러고 보니, 충치 때문에 앓던 이도 깨끗하게 나아서 아프지 않았다.

    이거, 병원 가서 비싼 돈을 내고도 며칠이나 끙끙 앓는 치료랑 차원이 다르잖아?

    “오히려 좋아.”

    나는 씩 웃으면서 트레이닝을 다시 시작했다.

    쿵!

    목각인형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검을 꽉 쥔 채로 달려나갔다.

    “의사 선생님, 안 아프게 살살 부탁드립니다!”

    빠각! 빡!

    그렇게 얼마나 더 처맞았을까?

    【워리어의 치명적인 부상을 확인, 트레이닝을 종료합니다】

    【워리어의 치료를 시작합니다】

    우우웅.

    나는 트레이닝룸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 숨을 골랐다.

    “허억, 헉. 이, 이제 못해. 차라리 죽여!”

    이곳에 들어오기 전, 제임스에게 빌려온 모래시계.

    2시간짜리라고 했는데, 그걸 12번 뒤집었으니 벌써 하루가 꼬박 지났다.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꼬박 하루를 싸웠음에도, 이번에는 결국 이기지 못했다.

    5레벨 차이까지는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었는데, 10레벨은 역시 너무 격차가 큰 건가?

    “하지만, 다음에 들어올 땐 뒤졌다.”

    이기지 못했을 뿐,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목각인형의 팔 하나를 자르는 데 성공하며, 보상이 주어졌으니.

    【레벨이 올랐습니다】

    【40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물건 반입 한계가 10kg 증가합니다】

    드디어, 40레벨을 달성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고블린 하나 잡는 데 끙끙거렸던 내가 말이지.

    그 쾌감만 해도 장난이 아닌데, 물건 반입 한계 10kg이 20kg으로 늘어났다.

    앞으로는 물건을 탑으로 들고 올 때나, 탑에서 가지고 나갈 때 두 배의 무게를 나를 수 있다는 것.

    한마디로, 여태 벌던 돈의 두 배는 벌 수 있다는 말씀이지!

    고통은 길었지만, 앞으로 벌 돈을 생각하니 괜히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돌아가야겠다.”

    하루만 나갔다 오겠다고 했으니, 더 시간을 끌었다간 경비원들이 걱정할 수도 있으니까.

    1단계 트레이닝을 클리어할 때, 시간도 모르고 싸우느라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그 사태로, 마을에서 처음 마주친 제임스의 덤덤한 반응과는 달리, 경비대원들은 난리가 났었단다.

    소중한 요리사를 죽게 둘 수 없다나?

    클라크는 내가 하루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대대적인 수색을 할 거라고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시간을 지킬 필요가 있다.

    이 공간을 들키는 것도 그다지 유쾌한 상황일 것 같진 않고.

    나는 비척비척 일어나 경비대원들의 소초로 돌아왔다.

    그런데, 오늘따라 소초가 이상하게 부산스러운데? 또 무슨 행사가 있나?

    “클라크, 무슨 일이에요?”

    “아, 정수! 마침 잘 왔네! 근데, 꼴이 그게 뭔가? 빨리 씻고 옷 좀 갈아입게!”

    클라크의 재촉에,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서둘러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다시 소초 밖으로 나와서 클라크를 찾으려는데, 연무장 쪽에 고풍스러운 마차 한 대가 보였다.

    그 옆에 햇빛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었고 마치 귀족 아가씨처럼 화려한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한 여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기사단장 다니엘이잖아?

    마치 호위기사처럼 뒤에 붙어 다니는 걸 보니, 확실히 귀족가의 아가씨가 맞는 것 같네.

    다니엘과 눈을 마주쳐 가볍게 손을 흔들자, 아가씨에게 무어라 말을 하던 다니엘이 부리나케 뛰어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정수! 오랜만이네. 저분은 백작가의 여식이신 플로라 라이언이시네. 자네를 찾아오셨지. 예를 지키게.”

    “아, 알겠어요.”

    역시, 아가씨의 정체는 다니엘이 섬기고 있는 백작가의 여식이었다.

    그런 여자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 묻고 싶었지만, 타이밍이 아닌 듯했다.

    플로라는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도도하게 걸어와 물었다.

    “혹시, 그쪽이 정수인가요?”

    “아, 네. 제가 김정수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플로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뜬금없는 말을 해댔다.

    “저는······ 맡고야 말았어요.”

    대체 뭘 맡았다는 거야?

    다니엘을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러더니, 백작가 사람들은 목적어를 생략하는 게 습관인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말거나, 플로라는 황홀하다는 표정을 짓고, 하늘을 향해 한쪽 손을 올리며 말했다.

    “처음에는 씁쓸한 맛이 별로였어요. 하지만, 그 향과 천상의 단맛에 반하고야 말았죠. 나중에는, 그 쓴맛마저 천상의 맛을 내기 위한 감미료였다는 걸 깨닫고 말았답니다!”

    쓰고 단맛이 나고 향이 좋은 게 뭐지?

    내가 다니엘을 바라보자, 다니엘이 쭈뼛쭈뼛 다가와 중얼거렸다.

    “미안하네. 이번에는 내가 들켜버리고 말았네. 그, 커피 말일세.”

    나는 이마를 짚었다.

    결국, 귀족에게까지 들켜버리고 말았구나.

    “······기사단장님. 제가 분명히 최대한 적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고 했잖아요.”

    “물론 나도 알고 있어서 주의를 기울였네. 하지만, 아가씨가 밤 산책을 다니시다가, 큼, 내가 창가에서 책을 읽으며 마시고 있는 걸 보시곤 캐묻는 통에 그만······.”

    우리가 속삭이며 얘기하는 사이, 플로라는 무언가에 홀린 듯 10분이나 커피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아아! 그 고혹적인 향! 천상의 맛! 그건, 분명히 신께서 지상에 내린 축복임에 틀림이 없어요. 하지만, 저는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슬픈 이야기를 들어버리고야 말았답니다.”

    플로라가 눈물을 닦는 시늉을 했고, 나는 눈짓으로 다니엘에게 해석을 요구했다.

    “아가씨가 우리 몰래 커피를 가져가시는 통에, 분배한 커피가 생각보다 일찍 떨어져서 말이야. 커피를 한 박스 더 받을 수 있겠나?”

    “다니엘! 그런 신의 축복을 독점하려고 하다니, 거기서부터 잘못된 거 아닌가요? 어떻게 백작가에 충성을 맹세한 자가 그런 불경한 짓을 할 수 있는 거죠?”

    플로라가 다니엘을 째려보자, 다니엘은 어쩔 줄을 모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일종의 전략물자였기에······.”

    이제야 다니엘이 왜 백작가의 여식을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저 아가씨, 사람 구워삶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구만?

    아마 이런 식으로 다니엘을 협박해서 나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을 게 틀림없었다.

    “뭐, 고향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커피가 있긴 해요. 드릴 수는 있지만 ······.”

    “고맙네, 정수! 값은 걱정하지 말게! 아가씨께서 평소보다 더 비싼 값을 치러 주시기로 약조하셨으니 말이야!”

    다니엘이 내 손을 붙잡고 흔들어대는 통에 속이 울렁거려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입단속을 확실히 시켜야겠어.

    이렇게 입소문이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하면, 언젠가 곤란한 상황이 올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나는 다니엘이 손을 놓자마자 매스꺼운 속을 달래며 외쳤다.

    “다니엘! 저야 비싼 값을 받으면 좋지만, 이번에는 진짜 조심해주셔야 해요. 플로라 아가씨께도 부탁드릴게요.”

    “알았네. 앞으로 자네에게 얻은 물건을 사용할 땐 더 주의하도록 하지.”

    “알았어요. 백작가의 여식인 내 이름을 걸고 약조하죠.”

    그래, 설마 백작가 따님의 약속까지 받았는데 문제가 더 생기겠어?

    당장은 커피값을 올려 받을 수 있을 테니, 이익에만 집중하기로 하자.

    플로라는 내가 가방에서 꺼낸 커피 상자를 받아서 들자마자 보물이라도 다루듯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상자부터가 너무 아름답군요! 고풍스러운 잔에 커피가 담겨 있는 그림까지 그려져 있다니!”

    그냥 공산품 상자인데······ 이들의 눈으로는 정말 잘 만든 공예품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네.

    그녀는 커피 상자를 품에 끌어안은 채 뜨거운 물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뜨거운 물은 어디 있죠? 어서 커피를 마셔야겠어요. 벌써 사흘이나 입에 대지도 못했답니다.”

    나는 눈을 빛냈다.

    여기서 한 발 더 가면, 값을 더쳐줄지 모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윤은 극대화하는 게 옳지 않겠어?

    나는 플로라에게 다가가 물었다.

    “잠시만요, 아가씨. 혹시, 커피를 더 맛있게 즐길 방법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커피를 더 맛있게 즐길 방법이요? 그런 게 있나요?”

    “물론이죠.”

    나는 웃으면서, 비장의 아이템을 꺼냈다.

    바로, 스티로폼 박스.

    익숙한 물건의 등장에 다니엘이 경악했다.

    “저, 정수! 그건!”

    “네. 아이스크림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이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른 녀석이죠.”

    가방에서 꺼낸 스티로폼 박스를 열자, 드라이아이스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가 흘러나온다.

    그 장면을 본 플로라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욱 크게 만들며 상자를 향해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이건 도대체······ 마법인가요? 아니, 마법보다 더 신기한 것 같기도 하고······.”

    “마법, 그 이상의 마법을 보게 되실 겁니다.”

    역시, 이 동네 사람들한텐 이런 연출이 먹힌다니까.

    나는 씩 웃으며, 박스 안에서 통에 담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정말 내가 먹어본 것과 다르게 생겼군. 먹는 방식도 다른 건가?”

    “맞습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작고 움푹한 그릇에 조금 옮겨 담은 뒤, 숟가락과 함께 내밀었다.

    “자, 소개합니다! 디저트, ‘아포가토’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아이스크림 위에 조금 진하게 탄 커피 믹스를 부었다.

    커피에 아이스크림이 조금 녹으며, 섞여 들어갔다.

    이게 바로 고아원에서 자주 먹던 초간편 아포가토다!

    진짜 아포가토와 비교하면 부족하겠지만, 충분히 훌륭한 맛.

    한 번 먹어본 아이들이 하도 졸라대서 매주 주말마다 만들었던 디저트지.

    그러나, 아이스크림이 녹아가는 모습을 본 다니엘이 경악했다.

    “아니, 정수! 그 귀한 아이스크림을 어찌 녹인단 말인가! 커피의 향도 죽어 버리지 않나!”

    확실히, 커피가 아이스크림과 만나 식으며 향이 좀 죽었다.

    하지만 아포가토의 진가는 입에 넣었을 때 드러나는 법.

    “진정하세요, 다니엘. 다 녹기 전에 먹는 디저트니까요. 아가씨, 드셔보시죠.”

    고개를 끄덕인 플로라는 숟가락을 들고 조심스럽게 아포가토를 떠먹었다.

    플로라는 입에 숟가락을 문 채, 무언가가 불만인 듯 잠시 말없이 아포가토를 노려보았고, 다니엘이 한숨을 흘렸다.

    “하아, 정수. 자네가 훌륭한 요리사인 건 나도 아는 사실이네만, 역시 아가씨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건 까다로운······.”

    다니엘의 말이 끝나기 전.

    숟가락을 입에 넣은 채 아포가토를 노려보던 플로라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똑, 또옥.

    ······대체 왜 눈물을 흘리는 거지?

    당황스러워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고 하는데, 화들짝 놀란 다니엘이 먼저 고함을 질러댔다.

    “아가씨, 무슨 일이십니까! 괜찮으십니까? 정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설마, 몸에 해로운 거라도 넣은 건 아니겠지!”

    다니엘은 검이라도 뽑을 기세로 불같이 화를 냈다.

    “제, 제가 그런 걸 왜 넣겠어요!”

    “그럼 아가씨가 왜 저러시는 건가!”

    다니엘은 아예 마나까지 끌어올려 위협을 시작했다.

    나는 감히 대적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다니엘은 레벨 100이 넘는 강자니까.

    사나이 김정수, 22세의 꽃다운 나이로 여기서 이렇게 죽는 건가?

    주마등을 보기 전, 플로라의 입이 열렸다.

    “다니엘, 그만.”

    “아,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플로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불렀다.

    “정수.”

    “네, 아가씨.”

    “나는 분해요.”

    나는 지금 목이 달아나게 생겼는데, 이 아가씨가 또 목적어를 빼시네.

    대체 뭐가 분하다는 거야?

    “어떤 게 분하다고 하시는 겁니까?”

    “이런······ 이런 훌륭한 음식을 이제야 맛보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 분해요!”

    “······예?”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니엘! 당신은 이미 이 음식을 먹어본 거죠? 어떻게 이런 음식을 나에게 숨길 수 있나요! 내가 단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

    “그, 그럴 리가요!”

    그렇게 된 거였나?

    그 얘기를 듣던 나도 어이가 없었지만, 다니엘은 마나를 뿜어내던 것도 까먹은 채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아, 아가씨! 그게 아니라, 그건 제가 먹은 것과는 다른······.”

    다니엘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손사래를 쳐댔다.

    기사단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곤란해하는 건 처음 보네.

    “아니긴 뭐가 아니라는 거죠? 다니엘, 이 이야기는 돌아가서 하겠어요.”

    “정말로 제가 먹었던 것과는 다른 음식인데······.”

    “됐어요! 일단, 정수에게 마땅한 보상을 주어야죠.”

    “무엇을, 말씀입니까?”

    “상자를 통째로 가져다주세요.”

    좋아, 큰 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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