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확장(1)
사업 확장(1)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나는 머릿속으로 ‘균열’을 막아낼 경우,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계산했다.
우선 마나 스톤.
아이템을 제작하거나 강화할 때 꼭 필요한 마나 덩어리.
그 농도에 따라서 가격이 책정되는데 탑의 황금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고 몬스터 사체에 대한 권한.
몬스터 사체는 연구 대상인 동시에 재료 덩어리다.
탑에서 잡은 몬스터를 밖으로 가지고 오는 건, 무게 제한 탓에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해체한 뒤, 소분하여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운반해야 한다.
그런고로 지구상에 등장한 몬스터는 재난인 동시에 보물이기도 했다.
즉, 균열 한 번을 독식한다면······.
“······못 해도 수십억.”
침이 저절로 넘어가네.
혼자서 균열을 막기 힘들다면, 한수 형과 투견 길드를 끌어들이는 방법도 있겠지.
균열에서 나올 몬스터와 수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면 판단을 빠르게 할 수 있을 텐데······.
지구로 돌아가면 균열에 접근해봐야겠다. 어쩌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윌리엄은 가방을 고쳐 매며 말했다.
“뭐, 모쪼록 고향에 큰일이 없길 바라네. 난 이만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 말이야.”
“아,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래. 아, 정수. 이따 우리 집에 들를 수 있겠는가? 소개할 사람이 있어서 말일세.”
윌리엄이 소개할 사람이라니······ 누굴까?
당장 탑에서 급하게 할 일은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이따 오후에 들를게요.”
“알았네. 그때 보세나.”
나는 방에 대충 던져놓은 짐을 정리한 뒤, 윌리엄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오두막 근처에 다가가자, 평소 조용하던 윌리엄의 오두막에서 말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고통에 찬 신음도 들리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찾아온 타이밍이 좋지 않았나?
나는 문을 두드리려다 관두고, 열린 창문으로 조심스럽게 안쪽의 상황을 살폈다.
“으으윽, 크윽······ 허억, 허억.”
오두막 안에는, 한 젊은 남자가 가슴을 부여잡은 채 가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 앞에 선 윌리엄이 걱정스레 상태를 살폈으나,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보였다.
“토니, 괜찮은 게냐?”
“괘, 괜찮아요. 외삼촌. 잠시 식칼이 보여서······.”
외삼촌?
그러고 보니, 윌리엄에게 조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정체불명의 미식가 ‘셰프 슬레이어’에게 탈탈 털리고 정신이 피폐해져 고향으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던 조카 말이지.
어쩐지, 윌리엄을 빼닮았더라니.
윌리엄은 측은한 눈으로 토니를 바라보며, 등을 쓸어주었다.
“미안하다, 토니.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구나.”
“전······ 전 괜찮아요. 으으윽!”
말과는 달리, 토니는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윌리엄은 토니를 침대에 눕히며 말했다.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이 마을에서 편안하게 지내거라. 불쌍한 녀석.”
토니는 잠시 윌리엄을 보다가, 팔로 눈을 가리며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그러기는 힘들 것 같아요.”
“대체 왜?”
“사실······ 제가 도망친 이유는 셰프 슬레이어 뿐만이 아니에요.”
“그럼, 다른 이유가 있단 말이냐?”
“레스토랑을 처음 열 때, 무리하게 욕심을 내다보니 쌓인 빚이 꽤 많아요······ 그걸 갚지 못하고 왔으니, 여기 계속 있다간 삼촌께도 피해가 생길 거에요. 갈 곳을 찾으면, 바로 나갈게요.”
토니는 눈을 가린 채 훌쩍이고 있었다.
윌리엄은 그런 토니를 잠시 바라보다가 살포시 안아주었다.
“토니. 넌 내 유일한 혈육이야. 고작 그런 이유로 너를 내치지는 않을 거다. 빚이야 착실하게 일해서 갚으면 될 일이지. 마음 편하게 얼마든지 머물 거라.”
“삼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토니가 윌리엄을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다.
대충 사연은 알겠다.
빚까지 끌어다 쓰면서 레스토랑을 오픈했는데, 셰프 슬레이어에게 당해 망해버렸으니······.
정말, 이처럼 피눈물이 나는 상황이 있을까?
나도 얼마 전까지 빚쟁이에게 시달린 신세니, 남 일 같지 않네.
두 사람은 감정을 금방 추슬렀다.
그리고, 문득 윌리엄이 무언가를 느낀 듯 소리쳤다.
“밖에 누군가!”
이크, 들켰나?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며 인사했다.
“하하······ 윌리엄, 저 왔어요.”
“아, 정수! 자네였구만.”
“네. 제가 혹시 좋지 않은 타이밍에 왔나요?”
“아닐세. 마침 하던 이야기가 끝난 참이거든. 아, 소개해줄 사람이 있다고 했지? 인사하게. 여긴 내 조카 토니일세. 토니, 이쪽은 정수라고 해. 내 제자지.”
토니와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외삼촌께 얘기는 들었습니다. 마법을 배우고 계신다고요?”
“아, 네. 이제 걸음마를 하는 수준이지만요.”
“그래도 마법사라니, 대단합니다. 재능이 있어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윌리엄이 입을 열었다.
“정수, 내 조카는 요리사가 꿈이었으나, 셰프 슬레이어에게 당했네.”
윌리엄의 말에, 토니는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그놈이 제 요리를 먹고 했던 폭언과 그 싸늘한 눈빛이······ 도무지 잊히지 않습니다. 그 뒤로 칼만 보면 호흡이 가빠지는 탓에 도무지 요리를 다시 할 수가······ 윽, 크흑!”
토니의 호흡이 다시 거칠어질 기미가 보이자, 윌리엄이 토니의 등을 두드리며 진정시켰다.
진짜 PTSD 수준인데.
“아, 네······ 저번에 윌리엄에게 대충 들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대체 어떤 존재길래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저런 공포감을 선사한단 말인가?
“그래. 오늘 자네에게 조카를 소개한 건, 그 일과 연관이 있네.”
셰프 슬레이어에게 당한 것과 나에게 조카를 소개한 게 관련이 있다니, 대체 무슨 일이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윌리엄이 말을 이었다.
“정수, 자네는 요리를 잘하지 않나. 그래서 토니를 소개했네. 자네의 요리라면 셰프 슬레이어도 인정할 맛일 게 분명해! 무리한 부탁일지도 모르겠네만, 조카의 꿈을 모른척할 수가 없어. 언젠가 토니에게 요리를 가르쳐주길 이렇게 부탁하네.”
“요리요?”
이것 참, 곤란하게 됐다.
라면은 요리가 아니긴 한데······.
그러나 갑자기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자연스럽게 두들겨졌다.
내가 지구에서 투견 길드를 통해 정체를 숨기고 아이템을 판매하듯이, 98층에서도 정체를 숨긴 채 누군가를 통해 물건을 유통한다면?
그러니까, 지금처럼 보따리 장사로 그칠 게 아니라 대대적으로 사업을 하는 거지.
모르긴 몰라도, 지금보다 더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은 들고 올 수 있는 물건의 한계가 10kg로 정해져 있지만, 레벨이 오를수록 점점 늘어나게 될 테니까.
그 많은 물건을 다 소비하려면, 거래처를 더 만들어놓는 것도 좋겠지.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해보죠. 나중에 상황이 되면, 다시 말씀드릴게요.”
“그게 정말인가? 고맙네! 정수! 정말 고마워!”
윌리엄이 내 손을 잡고 흔들며 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 통에 조금 곤란했지만, 위층에서 두 사람이 더 내려오며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위층에서 내려온 건, 토니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여자 한 명과 어린 여자아이였다.
“어머, 손님이 와 계셨네요?”
“줄리아, 인사해. 이쪽은 정수고, 삼촌의 제자셔. 정수, 이쪽은 제 아내 줄리아와 딸인 소피아입니다.”
“안녕하세요. 줄리아입니다. 소피아, 너도 인사해야지.”
소피아는 줄리아의 뒤로 숨어있다가, 고개만 빼꼼 내밀어 푹 숙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
소피아의 나이는 열 살쯤 되었을까?
아무래도 낯을 많이 가리는 타입인 것 같네.
아마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으니, 윌리엄의 가족들과도 빨리 친해지는 게 좋겠지.
그리고 나한테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지.
특히나 어린애들의 환심을 사는 방법이라면은.
“반갑습니다, 줄리아, 소피아. 반갑다는 의미로, 소피아에게 선물을 좀 주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어머, 선물이요? 물론이죠.”
선물이라는 말에 소피아도 궁금해졌는지, 고개를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더 내밀었다.
민희랑 해나 어릴 때가 생각나는 것 같아서 귀엽네.
나는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큼직한 청포도 맛 알사탕을 꺼내 내밀었다.
“포도는 좋아하니? 이건 포도 맛이 나는 건데, 이걸 이렇게 뜯어서 안에 있는 걸 입에 넣고 천천히 녹여 먹는 거야.”
소피아가 잠시 고민하며 우물쭈물하자, 줄리아가 상냥하게 소피아를 이끌었다.
“소피아? 선물을 받았으면 감사 인사를 해야지.”
“감사합니다.”
소피아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사탕을 받아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비닐을 뜯어 사탕만 꺼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잠시 사탕을 입에서 굴리던 소피아의 눈이 커졌다.
“헉! 마시따!”
소피아는 입안을 가득 채운 사탕 때문에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면서도, 열심히 입을 오물거리며 방방 뛰었다.
좋아하는 걸 보니 보기 좋네.
“자. 몇 개 더 줄 테니까, 먹고 싶으면 꼭 식사 후에 먹는 거야. 먹고 나면 꼭 이를 닦아야 하고. 알았지?”
“네! 감사합니다!”
소피아는 꾸벅, 배꼽 인사를 하더니 사탕을 소중한 보물처럼 양손으로 꼭 쥐고 구석에 있는 작은 상자에 넣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윌리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피아가 사탕을 넣은 상자에 고정된 눈과 수염을 타고 흐르는 침.
나는 윌리엄을 흘겨보며 경고했다.
“윌리엄. 절대 뺏어 드시면 안 돼요.”
윌리엄은 화들짝 놀라더니, 짐짓 근엄한 척 헛기침을 해댔다.
“흠, 크흠! 무슨 소리인가! 나는 긍지 높은 마법사야! 아이의 것을 빼앗을 같은가!”
“수염에 묻은 침이나 닦으세요.”
“스읍, 아니 이게 왜······ 크흠, 큼.”
윌리엄이 황급히 수염에 묻은 침을 닦는 모습을 본 소피아가 꺄르르 웃었다.
토니와 줄리아도 그 모습을 보고 웃고 있었으니, 첫 만남의 분위기가 그리 나쁘진 않다고 해도 되겠지.
“윌리엄 것도 나중에 챙겨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헛! 그게 정말인가?”
“그럼요.”
“고맙네, 정수! 자네는 내가 말년에 만난 최고의 복덩이야. 허허!”
“별말씀을.”
앞으로 내 사업을 확장해줄 사람을 데려오셨는데, 그 정도 서비스는 해드려야지.
나는 기쁨에 내 손을 잡고 흔드는 윌리엄을 보며, 씩 웃었다.
*
다음날, 나는 경비대를 찾았다.
최근에는 검술에도 꽤 진척이 있었고, 그 덕에 검술에 다시 재미를 붙였거든.
나는 경비 소초에 도착하자마자 제임스를 찾아가 대련을 시작했다.
캉, 카가강!
연달아 검이 부딪치며, 아이템으로 무장해 보호받아야 할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마치 골드 몽키 길드의 마스터 최진웅이나 주먹과 독을 쓰던 납치범과 싸웠을 때처럼.
제임스는 한 손으로 설렁설렁 검을 휘두르고 있는데도 말이지.
역시 레벨이 깡패인 건가?
그렇게 땀범벅이 되고, 호흡을 가다듬기 힘들어질 때쯤, 대련이 끝났다.
“여기까지.”
“후욱, 후욱. 고마워요, 제임스.”
제임스는 바닥에 주저앉아 호흡을 가다듬는 나에게 다가오며 씩 웃었다.
“내가 봐주지 않을 때도 수련을 열심히 했나 본데? 실력이 훅 늘었어.”
제임스의 말에, 나는 살짝 놀랐다.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겼을 때도, 상대가 토끼라면서 웃기 바쁘던 제임스.
그 정도로 칭찬이 박한 제임스에게 듣는 제대로 된 첫 칭찬이었으니까.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 대신,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목숨 걸고 수련하긴 했죠.”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뼈가 부러지고, 많은 피를 흘려 죽을 뻔했던 아카식 트레이닝 1단계.
그 수행의 효과가 나오는 것 같아 뿌듯하네.
대련을 마친 뒤 간단하게 씻고 나오자, 경비대원들이 몰려다니며 뭔가를 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이, 제임스! 이쪽으로 줘!”
“조지! 뒤로 빠져서 막아!”
차고 있는 건,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공 같은 건가?
모양새를 보니, 축구와 비슷한 놀이를 하는 것 같은데?
하긴, 여기도 일종의 군대라고 볼 수 있으니 저런 운동이 인기 있을 만도 하지.
저번에도 몇 번인가 비슷한 운동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음식 말고 새로운 아이템을 들고 와봤지.
나는 게임을 끝내고, 앉아서 쉬고 있는 제임스에게 다가갔다.
“제임스, 새로운 놀이가 있는데, 한번 해보실래요?”
“새로운 놀이?”
제임스는 그 말에 흥미가 동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로운 거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이런 시골구석에선 할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으니까 말이야.”
“자, 이걸 쥐어보세요.”
내가 내민 것은 배드민턴 라켓이었다.
“흠. 신기하게 생겼군. 그물을 엮어 넣은 건가? 이건 또 깃털을 엮어놓은 공처럼 생겼군.”
제임스는 라켓을 흥미롭게 바라보더니, 몇 번 흔들어보았다.
“그 라켓으로 이 셔틀콕이라는 공을 이렇게 쳐서, 상대가 친 셔틀콕을 받아치는 게임이에요. 상대가 받아치지 못하게 바닥에 떨어트리면 점수를 얻고요.”
셔틀콕을 꺼내 가볍게 치자, 셔틀콕은 가볍게 날아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제임스가 감을 잡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말로만 들으면 어려운데?”
“제가 가르쳐줄 테니까, 천천히 해보죠. 제가 동생들 놀아주느라고 배드민턴 고수거든요.”
지금까지는 제임스에게 배우고 혼나는 역할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가르칠 차례.
그동안 식사 당번을 빼앗긴 제임스의 쫌생이 같은 행동에 당해 서러웠던 만큼, 나도 조금만 갚아줘 볼까?
“좋아. 한 번 해보지.”
제임스는 셔틀콕을 들고 가볍게 라켓을 휘둘렀다.
그러나, 내가 셔틀콕을 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파아앙!
소닉붐이 이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날아간 셔틀콕은 소초 울타리에 박혔다.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한 울타리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고, 셔틀콕이 터져나갔다.
“정수, 이건 놀이가 아니라 무기지 않나? 이렇게 하는 거 맞아?”
나는 멍한 표정으로 제임스와 무너진 담벼락을 번갈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뭐야 그거······ 가르쳐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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