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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미발견 지역에서 꿀 빱니다-25화 (25/69)

수면 밑에서(3)

수면 밑에서(3)

자이언트 로커스트라는 재난.

그리고 내가 가져올 수 있는 식충식물.

계획은 간단하다.

98층에 심어진 그 식충식물들이 블루문을 받아 더 강력해진 걸 확인했다.

그것들이 숲에서 날아온 거대 곤충들을 잡아먹는 걸 봤는데, 자이언트 로커스트 정도의 크기라면,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목적도 거대한 곤충을 잡기 위해 심어놓은 거니, 지금 같은 상황에 딱 들어맞는 훌륭한 곤충퇴치제라는 소리.

그걸 가져와서 심을 수 있다면, 재앙을 막을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템이 되지 않을까?

“돈 버는 사업?”

“네, 저한테 돈 되는 아이템이 있거든요.”

한수 형은 잠시 말이 없더니, 꺼림칙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수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네 눈이 점점 장사꾼처럼 변해가는 거 알아? 어째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게, 꼭 금화처럼 보이지?”

내가 그랬나?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짓고는 원장실 책상 위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다니엘에게 커피 믹스를 대단한 물약으로 포장해서 팔아넘길 때도 내게 숨겨진 장사꾼 심보를 한 번 느꼈던바······ 양심이 콕콕 찔렸다.

하지만 돈은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

한평생을 비루하게 살아온바, 나는 돈이란 게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있다.

그리고 고아원 애들을 풍족하게 살게 해주고 싶은 열망도 있고.

그런고로 표정 관리 좀 해야겠다. 성공한 사업가가 되기 위해선.

······내 꿈이 언제부터 사업가였더라?

“크흠! 뭐, 저도 느끼고 있지만, 들어보세요. 저놈들도 랭커까지 투입한 거 보면, 약초밭을 어지간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은데요.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아서요.”

내 말을 들은 한수 형은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이며 씩 웃었다.

“너 이 자식, 또 득템이라도 한 거냐?”

“네. 저만 들어갈 수 있는 히든 필드를 하나 더 찾았거든요.”

“허, 참. 이 녀석은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 남들은 탑을 그렇게 올라도 하나 찾기 힘든 걸, 어떻게 이렇게 계속 비장의 수를 꺼내 오지?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데?”

나는 한수 형에게 식충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호, 그런 식물이 있단 말이지? 말은 되는데······ 정말로 그렇게 효과가 좋을까? 자이언트 로커스트, 적어도 수천 마리는 될 텐데.”

“더 큰 벌레도 잡아먹는 걸 봤어요. 레벨 10도 안 되는 자이언트 로커스트는 새우깡처럼 씹어 먹을걸요?”

“그래?”

“진짜에요.”

“······하지만, 나는 대형길드에 납품하는 건 반대다. 그쪽으로 거래를 뚫어봐야 우리에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을 거야. 오히려 피곤해질 수도 있지.”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대기업, 대형길드 놈들은 깡패다.

자신들의 잇속에 관련된 문제라면 휘둘리기보다는, 어떻게서든 빼앗으려고 들 테지.

그 자식들이 칼을 빼 들면 나는 물론이거니와 한수 형도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뭐,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어요. 그럼 다른 거래처를 생각해보죠.”

사실, 나도 내심 한수 형이 대형길드에 납품하는 걸 반대했으면 했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잘 적용되지 않는 법이지.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식충식물을 공평하게 판매하지 않을 거다.

오히려 이걸 힘으로 휘두를 수 있으면 휘둘러야지.

하지만 식충식물의 존재가 세간에 공개되면, 재난 앞에서는 초당적 협력을 하라고 난리를 칠 거다.

마치 전염병이 창궐할 때, 세상이 제약 회사들에게 백신 무료 공급을 요구하는 것처럼.

하지만 때로는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현재 자이언트 로커스트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산업은 ‘약초’다.

등탑에 있어서 약초는 필수불가결한 존재.

마치 현대 산업의 핵심이 반도체인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때문에, 대형길드인 ‘태산’마저도 손이 벌벌 떨리고 있겠지.

약초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모든 등탑이 올스탑 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골드 몽키 같은 하청 길드도 키울 수 없게 되니까 여러모로 타격이 클 거다.

즉, 약초 농사 균형이 바꾸는 것으로 식충식물을 이용하면 태산을 흔들고 투견 길드가 시장을 선도하게 만들 수 있다.

나와 한수 형은 그러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길이 훤히 뚫려 있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하지만 대형길드에 납품하지 않으면 마땅한 거래처가 없는 것도 사실이야. 그렇다고 무턱대고 넘길 수도 없는 게, 한 번 물건이 잘못 풀리면 우리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거다.”

“놈들이 어떻게든 식충식물을 양산한다면, 오히려 그걸 무기로 시장을 더 쥐고 흔드는 계기가 될 테니까요.”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대형길드를 배제하면서도 충분한 이득을 얻으면서 우리가 주도할 방법이 대체 뭐가 있을까?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고 있을 때, 한수 형이 입을 열었다.

“정수야. 이거, 방법이 없으면 접자. 너도 알겠지만, 녀석들의 눈 밖에 나는 건 위험한 일이기도 해. 녀석들은 가질 수 없으면 위해를 끼칠 힘이 있는 녀석들이니까. 어쩌면, 너까지 피해를 볼 수도 있어.”

한수 형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등탑자인 이상 대형길드들의 횡포를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내가 98층에 있다지만, 녀석들이 언젠가 98층에 올라오는 순간 내 기반은 모두 무너질 테니까.

그 전에, 믿을만하고 듬직한 아군을 만들어야 하고, 나는 그게 투견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형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텐데······.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정말 이번일, 위험해서 그만두고 싶으세요?”

내 물음에, 한수 형이 씩 웃었다.

“위험할 건 아는데, 왜 난 하고 싶지? 그리고······ 생각해보니 대형길드 말고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역시, 한수 형!

대형길드를 엿 먹일 방법이 있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구나.

“그게 누군데요?”

“정부 소속 등탑자. 국내 최강자 중 하나인데, 길드와 협력이 힘들다면 차라리 정부랑 손을 잡자. 제아무리 요즘 길드들이 정부 위에 있다고 하지만, 그쪽 라인과 협력하면 쉽게 건드릴 수는 없을 거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다.

적의 적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법.

길드가 기업화된 상황에서 길드와 손을 잡을 수 없으면 항상 녀석들을 견제해왔던 정부와 손을 잡으면 되는 노릇.

그중에서도 믿을만한 사람이면 더 좋았다.

게다가, 정부는 국가 경영과 행정을 위해 등탑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싶어 하지만, 언제나 어마어마한 자본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길드 세력의 힘이 너무 강해서 방법이 없었다.

이는 탑의 등장 이후에도 민주 정부의 형태를 유지한 모든 국가에서 공통으로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식충식물 거래를 통해 정부가 이권을 잡을 수 있다면?

우리는 정체를 숨긴 채 시장을 뒤흔들 수 있고, 정부는 시장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그야말로 윈윈게임.

정부도 거절할 이유가 없지.

이건 정말, 뼛속까지 대형길드에 대한 혐오를 품은 한수 형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나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그럼, 식충식물을 구하러 탑에 다녀올게요. 내일 들어가도 일주일 후에 내려올 수 있으니까, 일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 부탁드릴게요.”

“알았다.”

우리가 일을 마무리하고 일어나려고 할 때, 원장실의 TV에서 또 다른 소식이 흘러나왔다.

─다음 뉴스입니다. 근래 각성자 갱단에 의한 폭력과 금전 갈취를 목적으로 한 납치 등 강력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경찰 당국은 책임을 통감하며 각성자 폭력 조직을 소탕을 위해서 민간 길드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찰 주도적인 각성 전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각성 범죄 조직 소탕에는 한계가 있으며, 각성자 범죄 조직의 규모가 앞으로 더욱······─

“이것저것 난리네요.”

“그러게. 이 근처에도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놈들이 있다는 것 같더라고.”

“그래요? 허, 참. 이러다가 우리나라도 중남미처럼 되는 거 아니에요? 각성자 카르텔 같은 거요.”

“이번 일도 있고, 고아원 순찰 인원을 증원하겠지만, 애들 주의시켜. 밤늦게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고.”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흉흉해지고 있었다.

근래 전 세계에 ‘균열’ 발생 빈도가 최근 몇 년 새, 3~4배는 증가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서 민간인 피해도 막대한 데다가,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 오지에서는 몬스터들이 터전을 꾸리까지 한다지.

그리고 등탑자들의 힘이 강력해지면서, 정부 행정력의 고삐에서 벗어나는 길드나 기업이 늘어나고, 법을 초월하는 힘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또한, 무책임한 힘들이 풀리면서 저런 갱단도 생기는 중이었고.

말세다 말세.

나는 괜스레 이 세상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남 걱정할 땐가. 나 먹고살기 바쁜데. 돈 벌 궁리나 하자.”

*

다음 날, 나는 탑에 올라갈 준비를 하기 위해 시내로 나왔다.

“커피 믹스 좀 더 사고. 아 맞다 제임스가 소스류가 다 떨어졌다고 했지?”

경비대원들은 케첩과 스리라차 소스에 환장했다. 어디에 뿌려도 음식의 맛을 살려주는 만큼 하나씩 들고 다니면서 매끼 소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면에 이어 경비대원들의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새로운 소스 맛 좀 보여줄까? 바비큐 소스랑······ 땅콩버터랑······.”

그리고 치약과 칫솔 같은 생필품도 유통해보면 어떠려나?

경비대원들은 털로 만들어진 칫솔이나 헝겊을 소금물에 묻혀서 양치했다. 당연하지만, 현대의 양치 기술과 비교하면 부족할 따름.

하지만 확실한 양치에 대한 욕구가 있을지는 모르겠네.

“요즘 98층 날씨가 슬슬 쌀쌀해지던데, 핫팩도 좀 챙겨가 보고. 음료수는 무게가 많이 나가서 좀 그렇지만, 콜라도 몇 개 챙겨가서 시음 좀 시켜보자.”

그렇게 마트에서 장을 본 뒤, 빠르게 집에 돌아가기 위해 지름길은 좁은 골목을 통과하는 순간.

툭!

누군가 빠르게 골목으로 들어오며, 골목을 나가려던 나와 어깨를 부딪쳤다.

“아, 죄송······.”

내 사과받지도 않고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남자.

그런데, 그 남자의 품속에서 무언가가 빛나고 있었다.

나는 한순간 남자의 품속에서 빛나는 물건을 훑어보았다.

우우웅.

그 빛과 함께 느껴지는 너무나도 익숙한 마나의 파동.

마법?

시내에서?

“······왜?”

빛나는 물건의 정체는, 발동 준비를 마친 마법 스크롤이었다.

“구린내가 나는데?”

나는 어제 봤던, 각성 범죄 뉴스를 떠올리곤, 남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발을 돌려 뒤를 쫓았다.

남자는 골목을 나가서, 사람들이 많은 길거리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어느 정류장에 서더니,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마치 누군가를 찾듯이.

이내 그의 눈은 한곳에 고정되었다.

“설마······.”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여자애들.

고등학생쯤 되었을까?

그는 여자애들을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고.

곧 발걸음이 빨라지더니─

“꺅!”

여자애들을 덮쳤다.

괴한은 아이 두 명을 거칠게 밀치더니, 한 명의 팔을 붙잡고는 도로변으로 끌어당겼다.

“전부 물러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라며 쳐다보았다.

“꺅! 살려주세요!”

“겨, 경찰 좀 불러주세요!”

여자애들의 비명에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몇몇은 카메라를 켰고 몇몇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가까이 다가오지 마!”

그때, 놈이 들고 있던 스크롤에서 빛이 발현되더니, 발아래에 마법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아봤다.

“미친.”

텔레포트 마법.

짧은 거리만 이동이 가능한 마법 스크롤이다. 공간을 도약할 수 있는 거리는, 기껏해야 백여 미터 정도.

하지만 이동 경로를 추적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은신 같은 스킬을 가진 각성자 인신매매범들이 사용하면······ 잡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아까 그 남자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한 여자아이의 팔을 붙잡은 채, 사라져가고 있었다.

설마 이런 게, 어젯밤 뉴스에서 본 각성자 갱단인가?

금품 때문인 건지, 다른 일인지 모르겠지만 저 여자아이도 끌려가면 끔찍한 일을 당하겠지.

나는 원래 불의를 보면 잘 참는 성격이지만······.

순간, 여학생의 얼굴에서 민희와 해나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쫓아.’

나는 그림자 분신에게 명했다.

내 분신은 사람들의 그림자를 타고 순식간에 이동했고, 납치범의 그림자에 뒤섞였다.

그때,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울렸고, 경찰들이 몰려왔다.

일이 터진 시간을 고려할 때 상당히 빠른 도착이 아닐 수 없었다.

“잡아!”

후우웅.

그러나 경찰들이 납치범을 붙잡기 전, 마법이 완성되었고, 납치법과 여자아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법은 골목부터 이미 준비되고 있었고, 텔레포트 마법이 일단 발현되면 모습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 길어야 십여 초니까.

“눈앞에서 놓치다니······ 저건 추적이 안 돼! 일일이 찾는 수밖에 없어!”

“증원 요청해! 어디로 간 건지, 근처를 샅샅이 뒤져!”

“마법이 발동되었으니, 이번에도 못 찾을 거야. 그놈들이 이런 짓 한, 두 번 해? 틀렸어.”

경찰들은 비관하면서도 빠르게 뛰어다니며 무전을 날리기 시작했다.

곧 이곳저곳에서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리고, 나는─

“찾았다.”

납치범의 그림자에 분신을 붙여놓는 데 성공했다.

분신의 위치를 보니, 여기서 멀지 않다.

위치는 여기서 150m 정도.

지하인 걸 보니, 주차장이겠지.

나는 천천히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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